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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지금은 김소진의 '자전거도둑'을 읽는 시간! 수도상회에서 소주 두 병을 도둑질 한 아버지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아들인 소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우리 학생들은 숨을 딱, 멈춘다.

학생들의 머릿속에도 자신의 어린 시절, 연약한 내면을 할퀸 어른들의 날카로운 말과 행동이 뾰족하게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바른생활 어린이상을 받았어요. 칭찬받고 싶어서 상장을 들고 신나게 집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엄마가 '사촌은 공부 잘한 어린이상을 받았다.'며 제 상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어요.", "달걀을 식초에 담가놓고, 달걀 탱탱볼 만들기를 시도했어요. 분명히 탁, 튀어오를 것을 예상하고 방바닥에 탕, 튕겨보았는데 글쎄, 달걀이 푹 퍼지는 거에요. 강아지는 그걸 와서 핥아 먹고요. 결국엔 강아지와 저, 둘 다 집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죠.",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수다를 떨었어요. 그런데 할머니가 저의 아버지께 '얘가 나더러 집에 오지 말란다!'라고 거짓말을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아버지께 파리채로 두들겨 맞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할머니의 치매 초기 증상이셨어요." 순진한 마음, 왕성한 호기심이 어른들과 충돌하면서 생긴 드라마틱한 어린 시절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성장소설 읽는 시간! '자전거 도둑'에 푹 빠진 우리 학생들은 아버지의 눈 속에 '흐르지도 못하고 괴어 있는 눈물'을 어린 소년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소년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자전거도둑'에서 소년을 만나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소년에게 '힘내!'라며 응원한다. 생계를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던 아버지보다는 "길티 기게 바로 진짜 교육이야."라며 따귀를 부추기는, 수도상회 주인 혹부리 영감이 사실은 더 큰 권력인 것을 소년도 알았던 것일까. 복수의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혹부리 영감이다. 소년은 하수구를 통해 혹부리 영감의 가게에 무단 침입하여 한바탕 분탕질을 치고 금고에다가 한 바가지의 똥까지 싸대는 대담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받은 서러움을 어떻게 다독이고 있을까. 엄마의 립스틱이나 아이섀도를 뭉개놓는 작은 악동이 되기도 하고, 할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교쟁이 손녀로 변신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열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아버지라는 벽과 묵언 수행 중인 경우도 있고, 아버지보다 자신이 더 힘이 세지는 그 날, 반드시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겠다고 와신상담(臥薪嘗膽) 중인 경우도 있다.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 때문에 매일매일 상처받는다. 때로는 크게 멍들거나 깊은 흉터가 생기기도 한다. 지금은, 상처가 덧나지 않게 연고를 발라주는 성장소설 읽는 시간! 열일곱 살 소녀들이 더 어린 일곱 살 자신에게 '힘내!'라며 응원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화자가 특별한 경험 후 성숙한 화자로 변한다는 내용의 성장소설! 우리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난 후 마음의 키가 한 뼘씩 자라난다. 그러면 어른들은요· 우리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리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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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