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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우리 아이가 책은 안 읽고 판타지만 읽어요."

걱정스러운 눈빛에 '아, 맞아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판타지'는 '책'이 아니라는 논리에 나도 모르게 동의한 것을 깨닫고 '판타지 소설이 문학의 범주에 왜 들어갈 수 없는 거지?'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왜 우리 학생들은 소설을 읽으라면 지루해 하면서, 판타지를 읽으라면 신이 나는 건지, 소설 창작을 하라면 진저리를 치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청소년 판타지 작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하는지, 이상하고 신기한 자발성에 호기심이 생긴다. 이 시점에서 나는 판타지에 빠진 우리 학생들을 위한 문학적 변명을 조금 하고 싶어진다.

사실 문학의 환상성과 사실성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최초의 공간에서, 최초의 시각부터 끊임없이 공존했던 쌍생아적 성격을 갖는다. 문학은 현실이지만 현실 그대로도 아니고, 거짓이지만 거짓이기만 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환상성과 사실성은 어느 하나라도 변두리로 몰려 외면당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 이야기는 많은 문학가들에 의해 현실과는 거리가 먼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어 오랜 기간 문학의 주변부에서 맴돌았다. 특히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서구 문물의 급격한 유입을 경험한 우리나라는 복잡한 사회상을 사실적인 필치로 반영하는 것을 문학의 미덕으로 삼았으며, 환상적인 이야기의 비현실성과 비논리성에 대하여는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산신령과 금도끼는 지하로 숨어버렸고, 풍요롭고 재기발랄했던 환상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성 밖으로 퇴출당했다.

그렇다면 과연 문학의 환상성은 현실과 유리되거나, 현실을 외면하기만 하는 문학인 것일까? 사실 판타지는 현실과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과 관계를 맺는다. 환상의 영역은 단순히 망상이나 공상의 세계가 아니라 실재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한번쯤은 접한 동화라는 판타지, 영웅이라는 판타지가 현실의 나에게 얼마나 큰 선물을 주었는지, 그것이 현실의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때의 경험을 굳이 외면하지 말라. 문학에서의 환상성은 현실세계의 도피라는 수동적인 차원을 넘어서 현실의 적극적인 재구성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리얼리즘소설이 '현실을 보여주는 현실 드러내기'라면 환상소설은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 현실 드러내기'로 보야야 할 것이며, 그것은 리얼리즘과는 또 다른 모습의 현실 드러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 현실과 언어가 만나는 형태가 사실주의 소설에서는 '닮음'의 지향이라면, 환상소설에서는 '낯설음'을 추구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판타지 세계에 빠져있는 우리 학생들에 대한 어른들의 걱정을 조금 거두기를 바란다. 문학이라는 거울이 꼭 평평할 필요가 있는가? 때로는 볼록거울이 되어 현실을 일그러뜨려 놓기도 하고 과장해 놓기도 하면 어떤가? 그걸 통하여 그동안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했던 현실의 한 측면을 더 분명하게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평평하지 못하다는 것이 어쩌면 문학에 대한 반항처럼 보이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이 문학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미운오리새끼처럼 미워 보이겠지만, 그곳은 다소 비딱하고 거친 언어들과 발랄한 창의성이 뒤섞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환상의 놀이터라 할 만하다. 더 다양한 현실의 경험을 위하여 거기서 잠깐 놀아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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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