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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충북보건과학대학교 청소년문화복지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절망, 냉소와 비관이 우리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사회적 동기부여를 발견하기는커녕 저마다 자기 몫 챙기기에 혈안인 형국이다. 저마다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 생활현장에서 강제로 내몰린 희생자들에게는 사회의 보살핌과 든든한 유대, 그리고 회복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사회적 신뢰체계의 구축과 서로 돕는 공동체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이기주의와 경쟁 이념만이 대안인양 호도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류는 여러 분야에서 많은 진보를 추구해 왔지만 특히 생활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영상과 음향 기술의 발전일 것이다. 거기다가 정보 통신의 기술까지 결합되어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TV, VTR, 컴퓨터, 휴대폰 등의 화면을 들여다보며 살고 있다.화면만을 들여다보며 살다보니 실제로 사람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집안의 가족 관계에서부터 사회의 친구나 동료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절감하는 사람들이 동창회 모임을 자주 갖고 군대나 단체의 동기생 모임 또는 등산이나 낚시의 동호인 모임도 만들어 모이지만 이미 영상 문화 속에서 살게 된 21세기의 인류는 점점 개인으로 흩어져서 밀실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밀실 문화가 등장했다. 게임방 토크방 노래방 등 방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성탄절이 유난히 조용하다고 한다. 캐럴도 들리지 않고 오가는 선물도 줄어든 채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다는 푸념이 들린다. 물론 어려운 경제사정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야말로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흥청망청 소란한 속에서 산타와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꾸러미를 바라보느라 잊어버렸던 성탄의 뜻을 마음에 다시 새기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경제사정만 빼고 성탄절은 이렇게 조용했으면 좋겠다.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 난다. 한 도시에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살았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각각 걱정이 되었다. 서로에게 선물은 하고 싶은데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짐은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머리핀을 사기로 마음먹고 갖고 있던 시계를 팔기로 결정했다. 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시계줄을 선물하기로 하고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았다.

두 사람은 시장으로 나가 선물을 구입했다. 짐과 델라는 서로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거의 같은 시간 집에 도착했다. 짐은 머리핀을 들고 아내의 머리에 꽂아 주려고 했으나 아내의 머리는 이미 짧게 깎여 있었다. 델라 역시 시계줄을 들고 있었으나 남편에겐 이미 그 시계가 없었다. 준비된 선물은 쓸모없게 됐지만 둘은 곧 부둥켜 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추위를 녹인다. 12월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남녀노소(男女老少),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떠나 작은 나눔으로 큰 기쁨과 평화를 누렸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넘치게 나누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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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