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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정진할 때의 일이다. 절에서 가까운 이웃 암자에 나이 어린 동승이 살고 있었는데, 산중에서 이 동자승의 인기는 영화배우만큼이나 대단했다.

하루는 절에 찾아온 이가 동승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물었단다.

“스님, 왜 출가하셨나요?”

이때 어린 동승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단다.

“인생이 무상해서요.”

이 문답을 듣고 주위에 있던 어른들이 무릎을 치며 한참을 웃었다. 아홉 살도 되지 않은 순수한 꼬마가 인생이 무상했으면 얼마나 무상했을까? 그래도 한순간에 상대방의 말문을 막아버린 재치 있는 그 대답이 마치 선가의 활구(活句)같아서 좋았다.

지난주 무렵 속리산에 들렸을 때 법주사의 행자(行者)님들을 만나게 됐다. 그 때 요즘 출가자들의 ‘입산동기’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행자(行者)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원주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행자들의 신상을 적은 입산원서를 보게 됐다.

입산원서는 입산하려는 이들이 처음으로 기록하는 자기 고백서이다. 비교적 솔직하게 자기 문제를 기술하는 이들은 몇 명되지 않고 대부분 형식적이다. 무슨 시험을 치르듯 진지하게 적었던 내 입산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탁 아무개 행자는 입산동기를 ‘인연 따라’ 라고 적었다. 어쩌면 이런 단순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중노릇을 잘 할지도 모른다. 중노릇은 인생 문제를 꼬치꼬치 따지는 일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부단한 구도행각이니까.

그리고 김(金) 행자는 ‘사람 몸 받은 값을 하기 위해’라고 적었으며, 장(張) 행자는 거창하게도 ‘인생무상’이라고 썼다. 1983년생 이니까 이제 나이 스물 둘. 일찍 인생무상을 경험한 셈이다. 그러나 인생무상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감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삶에 대한 시간적 개념에 가깝다. 그래서 덧없는 세월 속에 자신을 흘러 보내지 말고 세월을 이끌어 가는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즉, 무상을 느낀다는 것은 인생에 대한 체념이나 방관의 순간이 아니라 현재의 인생을 리얼리티하게 관조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러므로 입산은 은둔이나 회피가 아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행자의 입산동기처럼 무상한 삶을 통해 발심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특히 출가를 결심했을 때는 뚜렷한 입산동기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수행의 부침이 적다. ‘왜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입산동기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 대한 확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가하라고 권하고 싶다. 출가는 관념이나 이론만으로 이루어지는 혁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부처님처럼 자신이 가진 기득권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위대한 출가’라고 한다. 우리 삶의 근원적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고자 떠나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를 테면 ‘도대체 나는 누구지?’하는 문제와 만나게 되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당당한 실존의 확인을 위해 내딛는 철 걸음이 바로 출가이다.

그래도 ‘인생무상’이라고 적은 장행자의 입산동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그도 중노릇을 통해 실감할 것이니까 말이다.

하늘에 닿을 듯한 큰 일 들도,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을 듯한 큰 뜻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 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해인사 백련암에서 열반하신 성철큰스님이 25세에 입산을 결행하면서 노래한 출가송이다. 깨달음의 길로 나서는 대장부의 호연한 기품이 느껴진다. 모름지기 입산하는 이들의 결심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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