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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06 17:19:18
  • 최종수정2020.02.06 17:19:18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예술교육팀장

봄이 왔습니다. 어느덧 입춘이 지나고 있습니다. 햇살이 머무는 곳에는 새순이 돋아 겨우내 빨갛게 매달려있던 산수유 열매들이 후드득 집니다. 해묵은 겨울의 먼지만큼이나 덕지덕지 묻은 내 안의 게으름도 딱지 되어 떨어집니다. 이렇듯 한편에선 벌써 봄이 왔건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바이러스로 시끄럽습니다. 우한으로부터 온 신종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우리는 손조차 잡기를 꺼리며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거리마다 하얗고 검은 마스크의 행렬이 바쁜 걸음을 재촉합니다. 멀리서 들리는 기침 소리에조차 불안한 눈빛들은 서로를 외면한 채 진저리를 칩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깊은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전 중국 우한에 사는 우리 교민들이 창궐하는 바이러스를 피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귀환은 절대 순탄치 않았습니다. 길을 막아선 플래카드에서는 증오와 혐오의 문구들이 가득했습니다. 언론은 갈등을 부추겼고 정치권은 그들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간 대한민국이 나라의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국민이 느끼는 불안은 어쩌면 당연하였습니다. 혐오와 배제의 바이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아산과 진천의 국민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신종코로나의 공포와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들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이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산이다.' '우리가 진천이다.'라는 국민의 격려가 쇄도했습니다. 우리는 불과 며칠 만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감동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한 교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깊이 새기게 하였습니다. 나라가 나라다운 일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일입니다.

살며 싫어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이런 혐오와 배제의 모습은 어디에나 많이 있습니다. 이기심으로 상대를 배제하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사회를 더 팍팍하고 갈라지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존엄과 동포의 아픔을 이해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병에 걸리는 불안한 상황이 싫었던 것이지 우한의 교민이나 중국인들을 혐오하거나 차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한 진천주민이나 아산의 주민들이 그래서 더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염병은 항상 존재합니다. 또한, 많은 학자는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 전쟁의 역사라 합니다. 중세의 흑사병을 비롯하여 최근 에볼라, 사스, 메르스, 그리고 지금의 신종코로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이 가져다준 재앙입니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며 오래전 보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에는 문명과 인간의 욕망 때문에 죽어간 멧돼지의 분노로 만들어진 재앙으로 저주를 받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진정 자연에서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지만, 인간의 욕망에 의한 죽임은 더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신종코로나 사태보다 더 나쁜 것은 민심이 감염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에 대한 불신과 혐오, 그리고 차별과 배제의 전염성과 파괴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보다 더 큽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서로를 혐오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아산과 진천의 주민들처럼 서로를 인정하고 끌어안는 모습을 가져갈 때 우리의 못난 모습도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은 왔지만, 아직 우리에게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진정 우리의 봄은 바이러스 불안을 함께 극복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뜨거운 가슴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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