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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하늘이 금시 흐렸다 개었다 하며 젖은 바람을 몰고 옵니다. 봄이라 그런지 하늘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혼란스럽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단단한 계절을 지나는 몸짓들이 어지러이 흔들리며 여러 색깔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골목 담벼락엔 산발한 개나리꽃이 봄날에 취해 샛노란 꽃잎 떨어지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춤추며 바람에 흔들립니다. 지층을 뚫고 나오는 수천의 작은 노랑나비가 날아오릅니다. 나비 꽃들이 먼지 켜켜이 쌓인 가슴에 연신 소식을 나릅니다.

저 멀리 미얀마라는 나라에 카알 신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가슴에 "다 잘 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장기기증서에 매일 오늘이 지구상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시위 현장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상징하는 세손가락 경례로 민중들과 합세하여 돌멩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학살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던 어느 날 그 소녀는 만달레이 거리에서 군경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나이 19세였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지난 2021년 2월 1일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미얀마 군부는 2020년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세력이 대다수를 차지하자 이 선거를 부정선거라 주장하며 쿠데타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에 저항하는 국민들을 총칼로 무력 진압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미얀마 국민들이 쿠데타 세력의 학살에 의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카알 신의 장례가 치러진 다음 날 쿠데타 정권은 그의 묘를 파헤쳐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마치 1980년대 우리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정치군인 세력들에 의해 자행된 만행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미얀마에서는 군사 쿠데타 세력의 만행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또 열 서너 살의 소년 소녀들이 시위대 맨 앞장에 서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총성이 울리는 미얀마 거리에 검정 티셔츠의 나비 떼가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쿠데타 세력에 의한 무자비한 살생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이들 앞에 미얀마 국민들은 모두 애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미얀마가 군사 쿠데타 세력에 의해 민주주의를 짓밟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도 봄을 봄으로만 느낄 수 없는 날들이 허다했습니다. 우리에게 봄은 수많은 주검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많은 사람들의 피가 긴 강물 이루며 흘러갔던 날들이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 피멍든 가슴에 피어나는 나비의 꿈들이 수줍게 흔들립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가 한라산 중산간에서 죽어간 수만의 주검들이 숨비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 금남로에서, 87민주투쟁의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히 눈앞에 날아다닙니다.

봄날 폭압과 고통으로 죽어간 주검들의 애절한 이야기들이 비에 젖은 날갯짓으로 힘겹게 날아오릅니다. 미얀마와 우리는 더 이상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미얀마가 군부독재에서 고통을 겪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하고 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나라나 유엔에서조차 시늉만 낼뿐 쿠데타 세력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눈을 감은 채 부끄럽게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학살에 대한 책임자들에게 참회와 죗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정의의 길일 것입니다.

봄은 저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바람이 되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봄이 전해주는 소중한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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