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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참으로 뒤 돌아보기 좋은 날이다. 추석을 앞둔 햇살이 기분 좋게 따뜻하다. 오랜만에 큰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낼 모레 벌초할 것이니 아침나절에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살다보니 명절이나 제삿날 아니고서는 형제간에 내왕도 뜸한 것이 현실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나마 동기간의 정을 누릴 매개체가 부재하다보니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엎드리면 코달 곳인데도 혼자 살다보니 더 했다. 나만 바라보고 저 혼자 아파했다. 비우며 살겠다했지만 제대로 비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바보 같았다.

부모님이 계신 곳은 고향 근동에서 제일 높은 목령산 산꼭대기 근처라 산소에 갈 때마다 거의 등산하는 수준이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님과 눈물로 자식을 키워 오신 어머님이 함께 모셔져 있는 그 곳은 웬만한 사람들도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 명절 즈음에는 우리같이 장비를 들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 서로 비껴 지나갈 때가 많다. 호흡을 고르며 눈인사를 하지만 서로 그리 어색하지 않다. 올 한해 가뭄과 장마를 버티며 자란 산 길가 풀들과 눈 맞춤하며 산을 오른다. 그늘진 풀숲에 방끗 얼굴 내미는 며느리밥풀 꽃이며 쑥부쟁이가 반갑다. 벌써 맥문동은 꽃이 지고 까만 씨를 힘차게 내민다.

가파른 산길 오르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지 조카 놈이 불쑥 한마디 한다. 다음부터 벌초는 대행사에 맡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때에는 산소를 집근처에다 옮길 것이라 한다. 허허, 웃어넘기긴 했지만 어쩌면 이렇게 산을 오르내리며 벌초하는 것이나 제사지내는 것은 우리세대가 지나가면 끝이 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이 내 귀에는 괘씸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나마 조상을 모시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럴 수 있지. 아예 성묘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산을 오르다보니 고단한 생각이 바람에 한결 가벼이 지나간다.

그동안 우리는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남성중심 사회에서 많은 것들을 억압하며 살아왔다. 이 곳에서는 여성과 아이는 무시와 굴종의 대상이었고 제대로 사람 취급도 받아오지 못했다. 나도 그 한가운데서 살아왔다. 이러한 남성중심사상과 낡은 생각의 폐해와 고집을 전통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조상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예를 지키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를 후손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옳다고 남도 그것을 꼭 따라야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번 추석 상에는 참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만나 깊은 정은 나눌 수 없지만 상머리에 오를 반찬은 진정 한가위 만큼이다. 내년 대통령선거며 백신이야기 그리고 기후변화와 누구네 시집 장가가는 이야기, 취직이야기 등 상이 넘친다. 어쩌면 그 이야깃거리들에 체해 동기간에 의가 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특권과 반칙에 기반을 둔 강자의 논리를 주장하지 않고 나만 옳다고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않으면 서로간의 의는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움을 없앨 수 있는 것이리라.

살아온 여정이 모두 다르듯 앞으로 살아가는 방식 모두 다를 것이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리라. 아는 것 보다 모르는 일이 많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이제 다음 세대들에게 물으며 살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사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바로 잡아 가는 것 바로 그것이 잘 사는 일이 아닌가. 가을볕이 따갑게 솔가지를 뚫고 나온다. 나뭇가지의 새가 힘찬 날갯짓 한다. 하늘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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