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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사업팁장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폭염도 그렇게 갔습니다. 햇살이 몇 잎 남지 않은 봉숭아 꽃 위며 코스모스 위에 야무지게 떨어집니다. 끈적끈적하게 휘감던 습기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밤이 되면 풀벌레 울음이 깊어갑니다. 아침마다 이불을 끌어 덮는 내 모습을 봅니다. 삶의 언저리에 맺힌 여름의 아픔이 시린 알갱이 되어 변명도 할 새 없이 찾아왔습니다. 가을이 이렇게 소리 없이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삶에 지친 몸을 이끌고 컴컴한 산길을 걷는 것과 매 한가지 이었습니다. 아예 잠을 설치기가 일쑤였고 오만가지 일들이 엉켜서 속앓이 하는 날들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욕심에 스스로가 무겁게 세상을 바라다보았습니다. 헤쳐 나가기엔 아직 힘이 부쳤고 나의 생각도 어리석었습니다. 온몸이 달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스스로가 알면서도 어쩌지 못했습니다. 절망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며 아예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맵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머리가 허옇도록 열심히 살아왔지만 항상 맺고 끊음이 불명확했습니다. 위선이었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알지만 생계에 매달린 자신에게 관대했습니다. 하루하루 매조지 짓지 못하고 일상에 던져진 게으른 모습이었습니다. 나를 먼저 꾸짖고 나를 먼저 부지런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길가에 숨죽이며 피어나는 누런 들풀처럼 차마 고개를 숙였습니다. 서글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픈지도 모릅니다.

순식간에 가을이 바람 되어 다가 왔습니다. 아침 길을 나서면 달궈지지 않은 햇살에 아직 이슬이 남아 있습니다. 햇살에 영그는 자연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이 순리이긴 하지만 점점 허한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삶의 허기가 밀려옵니다. 몸도 아프고 자꾸만 잠만 쏟아집니다. 서성이며 흔들리는 바람이 가슴에 잠시 머물더니 이내 빗질하며 거리에 흐릅니다. 세월이 이토록 사무쳐 그래서 가을이 아픕니다.

살며 오늘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내 삶의 한여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내 슬픔이, 상처 난 욕망이 아프도록 자신을 얽매입니다. 우리에게 반복되는 일상은 더 이상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지금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필요하지요. 그리고 일상의 계절은 우리에게 세월의 지층을 남겨놓습니다. 상처는 아물지만 고통의 기억과 흉터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삶이란 희망과 고통을 한 몸에 이고 사는 것이지요. 가을이 되면 낮은 곳으로 내리는 저녁의 소리와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그곳에 눈부신 축복 같은 인생들이 노래를 합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먼 하늘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피어오르고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 섬 하나가 떠있습니다. 그렇게 계절은 출렁이고 내 몸 위에 한줌의 햇살이 조각배 되어 지나갑니다. 세월의 무게를 이고 흔들리는 철 이른 갈대가 반짝입니다. 가을 햇살에 그을린 강물이 짙은 산그늘에 묻혀 흐릅니다. 저 멀리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어느 중년의 남자가 지나갑니다.

이제 내일은 그 무엇이 찾아와도 스스로가 당당해질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들어야지요. 그저 묵묵히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가야지요. 그럴 때 그냥 물결 투명한 강가에 떨어진 꽃 이파리로 물수제비를 뜨는 것도 괜찮겠지요. 초가을 바람이 서늘합니다. 하늘의 별 몇 개 내 눈 속으로 떨어집니다. 내 속에 여름을 다녀온 그래서 더 단단해진 알갱이들이 젖고 있습니다. 세상은 쓸쓸하지만 그대로 더없이 따뜻한 가슴들이 아름답습니다.

내일은 어느 계절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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