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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9.05 17:30:22
  • 최종수정2019.09.05 17:49:32

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팀장

 구월 들어 바람의 색이 깊어졌습니다. 방에 스미는 서늘한 기운이 이불을 당기게 합니다. 워낙 지난여름이 힘겨웠던 터라 이번 여름은 그만큼 가볍게 견뎌왔습니다. 저 하나 가슴에 매어둔 어리석음을 벗으니 견딜 만하였습니다. 그래도 여름을 나는 것이 올해도 여간 아니었습니다. 요 며칠 태풍이 몰고 온 늦장마에 꽃들이 무더기로 집니다. 바람이 후드득 거리를 달립니다. 자박자박 진 걸음들 사이 어느새 이른 추석이 코앞입니다. 가을이 훌쩍 다가왔습니다.

 빗소리에 실어 늦은 여름을 띄워 보냅니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가슴에 흐릅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가을 앞에 선 여윈 나의 모습을 봅니다. 바람이 훅하고 입김을 붑니다. 내 삶의 이파리들이 흔들립니다. 그리움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생각들에 힘겨워 고개 숙입니다. 바람에 색이 묻어나 시야가 흔들립니다. 계절을 닮아가는 사이 그렇게 흐르고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언가 이루기보다 무언가 내려놓을 것이 많은 계절입니다.

 우리는 가끔 매우 씩씩하게 바람에 맞서 걸어갑니다. 사방에 가득 들어찬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려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스스로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려 하는 것도 어쩌면 우매한 바보의 짓이지요. 그만큼 그렇게 있는 것인데 자꾸 우리는 자기 생각에 맞춰 세상을 규정하려 하지요. 성숙하지 못한 아둔한 생각입니다. 순간순간 뒤돌아보지만 부끄러움뿐입니다. 그렇게 나를 품고 삽니다. 우수수 꽃 진 자리가 아름답습니다.

 요 며칠 계절이 바뀌는 시절이라 그런지 세상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국민을 인질 삼아 정파의 이득을 취하려 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가증스럽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사태를 보면서 조광조가 개혁정책을 두고 훈구파와 싸웠던 그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과한 상상일까요. 이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는 그리 오랜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 듯싶습니다. 저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면 거짓이고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진실이겠지요. 더는 거짓 고변에 허망이 무너지는 역사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을은 깊어지는 것입니다. 빗방울 맞고 바람에 쓸리며 가슴으로 쌓이는 그리움을 잘 간직하는 것이 가을이지요. 커다란 달을 기억하기보다 가녀린 흐느낌의 초승달을 가슴에 시리게 안는 것이지요. 빠르고 느린 것은 우리의 판단이지요. 모든 피었다 지는 것들과 말 없는 끄덕임으로 흐르는 시간에 어깨를 들썩이는 것도 어쩌면 인생이지요. 모든 생명이 다 그렇게 있는 것이지요. 서로를 향해 토닥여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 진정 살아가는 것이지요.

 삶이란 스스로 실패한 기억들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돌멩이 하나 갈대숲으로 던지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의 그리움은 어쩌면 사치입니다. 쓸쓸함조차 억지로 만든 자기의식인지도 모릅니다. 서로 이기겠다는 생각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스스로가 불행해집니다. 내어줄 줄 모르는 것은 아집입니다. 더 비우고 더 천천히 살아가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조화롭게 자리하는 것, 그것이 세상살이지요. 어울림은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드는 것이 마냥 깊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추하게 살아가지 않도록 꽃잎에 스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살며 천천히 비우며 계절이 깊어지는 것을 눈감고 느끼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삶의 중심에서 살짝 비켜서는 것도, 그렇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행복한 조연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지는 해가 애달파 엷은 구름 속에서 노을이 배어 나오듯 텅 비어 기다리는 것도 좋은 것이지요. 그 자리 허전이 있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의 가을도 그렇게 깊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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