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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4.22 16:59:40
  • 최종수정2021.04.22 16:59:40

김희식

시인

벌써 사월도 저만치 지나가고 있다. 참 세월 빠르다. 언제부턴가 멈추어진 세상의 벽장 속에서 한줌 햇살을 가지고 노는 재미에 나는 내 사는 시간마저 멈추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절은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맘때면 나는 밖에 나가 온갖 꽃들과 새소리가 가득한 봄 길을 걸었다. 낮은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울음은 어느새 꽃 진 자리마다 초록의 잎사귀 되어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사월이면 나의 가슴은 쉼 없이 요동쳤다.

꿈결 같은 사월이 간다. 자연은 그렇게 대지의 기운을 돋우며 생명을 노래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자연을 파괴하고 문명의 덧에 걸린 인간은 바이러스 앞에 아주 미개한 모습이 되었다. 벌써 해를 넘기며 이어지는 감염병의 불안으로 세상은 모든 것이 멈추어 있다. 입 안 가득 뜨거운 고구마를 삼키지 못한 것같이 답답한 호흡은 뻐근히 가슴으로 짓누르고 있다. 꽃피고 바람 부는 것조차 멈춘 듯하다. 우리의 사월은 내일조차 기약할 수 없다. 마스크를 쓰고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곤혹스럽다. 툭 떨어지는 동백꽃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요즘 우리주변에는 감염병의 거리두기보다 더 힘들고 답답한 일들이 허다하다. 전 국토가 투기꾼들의 노름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투기꾼들의 노름에 이리저리 끌려가며 살았다. 어쩌면 최근 LH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일들이 어찌 하루 이틀에 이루어칠 수 있겠는가. 아주 오래전부터 부패의 관행이 지속되어온 것이다. 그 옛날 왕조시대의 아전으로부터 일제 강점기의 친일 관료와 해방 후 지금까지 일부 부패 관료들과 가진 자들의 오래되고 못된 관행이다. 이것이 적폐가 아니고 무엇이 적폐인가.

부패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들은 비록 정략적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를 비난하고 침소봉대하는 경향은 있을 수 있지만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은 둘 다 같다. 정치인들은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자들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남을 속이거나 국민의 등을 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판에는 여와 야가 아닌 부패 공직자들로 구성된 아전당이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지금에 까지 여와 야를 넘나들며 자신들의 유리한 곳에 깃들기도 하고 넥타이 색깔만 바꾸며 깃발을 들어왔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자리를 세습하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개입해 자신들의 퇴임 후를 보장받아 왔다.

오늘 대한민국은 코로나의 감염병보다 더 독한 이기적 아전들의 병폐로 죽어가고 있다. 감염병은 마스크를 쓰던지 백신으로 물릴 칠 수 있지만 아전들의 자기보신과 부패의 악행은 백약이 무효하다. 어떠한 비밀결사보다 강한 이들의 결사는 역대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정책에도 살아남아 자리를 보존해 왔다. 수많은 투기 관리들이 구속되고 재발방지 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이미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후의 일이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도 자신들만의 가면을 쓰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은 부패의 고리를 부정하며 별반 개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 포장하며 국민을 기만해 왔다.

내년 이맘때면 마스크를 벗고 살 수 있을까. 부패 없는 세상이 오려나. 시인 신동엽은 사월은 갈아엎는 달이라며 절규한다.

사월이 오면/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광화문서 목 터진 사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진달래는 피어나는데,/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불야성 갈아엎었으면/갈아엎은 한강 연안에다/보리를 뿌리면/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일어서는 달.

신동엽 '사월은 갈아엎는 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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