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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가을이 베란다 창을 타고 슬그머니 들어왔습니다. 가을이란 놈이 내 일상에 불쑥 이렇게 찾아오건만 나는 매번 깜짝 놀라곤 합니다. 여름 내내 나에게 평안을 안겨준 얇은 이불과 이별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가는 놈을 위하여 욕조에 물 받아 물장구치며 서로의 속살을 느꼈습니다. 하얗게 베란다에서 햇살 받는 녀석을 보노라니 떠나보내는 맘이 그리 서운하지만 않습니다. 그렇게 여름은 나의 곁을 떠났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산다는 게 행복이지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란 많지 않습니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것이 변화에 대한 우리들의 최선이지요. 사람 사는 게 뭐 있겠어요. 실수투성이로 살면서도 매번 똑 같은 일이 닥치면 다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는 거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지요. 이제 내 몸도 여름의 뜨겁던 날들이 훠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의 깊은 골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옷깃 여미며 뒤돌아보니 안개만 눈가에 잔뜩 서렸습니다.

살며 뭐했는지 도통 헛웃음만 나옵니다. 그동안 손에 모래를 들고 살았습니다. 주먹 쥔 모래는 잡을수록 더 빠져만 나갔습니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번번이 바보같이 살았습니다. 그래도 더러는 꽃피고 더러는 열매 맺어 웃던 날도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찌 살다보니 등하나 기댈 것조차 없습니다. 허깨비로 살았습니다. 뭣하나 매조지 짓지 못한 채 독하게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그게 다 내가 살아온 꼬락서니이지요. 이제 내 삶의 가을에 그래도 해야 할 게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햇살 여무는 가을이 되니 철들었는가 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참으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그 때만큼 힘들어하고 그 때만큼 아픕니다. 늘 팍팍하고 힘들지요. 누구나 아프고 힘든 계절입니다. 내 주변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신선하고 똑똑한 젊은이들이 매년 이맘때만 되면 거취가 불안해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애써 외면해 왔습니다. 참으로 비겁했습니다. 이 지경에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다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사라진 그들의 웃음만큼 희망이라는 것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아파할 것들이 많은 세상에서 버티고 사는 것 보면 대견하기만 합니다.

황혼이 지는 언덕에서 멀리 흐르는 산들을 봅니다. 길을 나서는 바람이 산마루에 걸려 우수수 흔들립니다. 젖은 이파리가 힘겹게 매달려 있습니다. 세상 만만하지 않음을 이파리가 뒤척일 때마다 저리게 느낍니다. 살며 수없이 흔들렸고 수없이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 하나 없이 세상에 맞선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초라한 자신을 바라보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잘날 것 하나 없는 중년의 모습이 저 어둠 속에서 터덜거리며 걸어옵니다. 그 두려움이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구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누구나 떠남에 대하여 동경을 갖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한없이 가라앉아 보고 끝없이 나를 발견하는 길을 가는 것이 오랜 바램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느닷없이 인연의 끈들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아예 못할 수도 있겠지요. 나 스스로에게 덧없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위해서라도 이런 용기를 내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길을 열기위해 길에 나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요. 떠날 때를 아는 것, 꺾이는 것을 안다는 게 얼마나 큰 용기이고 아름다운 것인가요. 매순간 갈대처럼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가을, 바람은 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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