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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충북문화재단 기획전략팀장

가만 귀 기울인다. 겨우내 모진 바람에 떨던 가냘픈 손들이 머리에 인 무게를 밀며 소리치고 있다. 지금 세상은 조용히 일어선다. 모든 덮여지고 찢겨진 것들을 다시 잇고 피톨기가 돌게 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궤짝 속에 숨겨온 진실들이 하나 둘 새싹처럼 고개를 든다. 아직 매서운 바람이 가시지 않았지만 움돋는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봄이 기지개를 켜며 두런두런 일어선다. 봄은 그래서 모두에게 희망이다.

봄은 모든 억압된 것을 풀어주고 욕심에 의해 뒤틀린 것들을 바로 세운다. 그 것은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이고 굴곡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힘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켜켜이 쌓인 부정과 부패의 어이없던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았고 국민들은 촛불로 봄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무엇이 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침몰시켰는가를. 언제까지 우리가 지나간 것들에 매달릴 수 없지만 그 역사에 대한 기억은 계속해서 간직해야 한다. 분명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역사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 봄은 비정상화가 된 것을 정상화시키려는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먼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희망과 좌절이 있고 숨이 멎을 정도의 고통이 따르지만 우리가 내딛는 새 발걸음들이 쌓여 새로운 생명들이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쌓여진 것이기에 그 것들은 쉽사리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바로세우는 노력으로 민주주의의 움을 틔우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가 변화를 이야기하고 변혁을 꿈꾸는 것은 내 개인의 삶을 바꾸려는 것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상의 삶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게 봄이다.

이젠 서로에게 상처 내는 말의 칼날들을 접어야 한다. 저 들판에서 부는 환호와 바람이 서로의 갈등을 씻겨내는 훈풍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땅의 기성세대들은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고리를 내려놓고 함께 살아가야할 터전에 대한 겸허한 논의를 시작하여야 한다. 들불처럼 소리치는 아우성들에게 입을 틀어막고 위협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난 시절의 생채기들을 서로가 보듬고 반성과 회개의 통절한 아픔으로 생살을 내는 고통의 성인식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삶의 이치는 체제와 이념의 갈등을 넘어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속에 적폐청산도 있고 역사 바로 세우기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 새봄을 맞이하는 자세이다.

봄이 소리 없이 일어선다. 새 싹이 올라올 때 땅은 햇볕을 받아 느슨해진다. 견뎌내는 세월은 그 움을 틔우기 위해 바람을 감싸 안는다. 그래야 세대의 갈등이나 계층의 갈등, 갑과 을의 갈등에서 벗어나 누구나 노래할 봄이 되는 것이다. 싹이 제대로 올라야 생명의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에게 쌓여진 거짓의 구태를 벗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입술 다문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겨울을 떠나보내는 비가 속절없이 내린다. 목덜미에 반짝이며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시처럼 따갑다. 메마른 목청 되어 흔들리는 공허한 손놀림이 무겁게 젖는다. 이렇게 흔들리며 또 게으른 세월을 보낸다. 뒤돌아 움츠린 내 어깨가 훠이 바람에 젖는다. 이미 수없이 지나간 봄들을 그리워한다. 다시 세워지는 기억들을 바라본다. 촛농 가득한 저 광장에 핀 꽃을 바라본다.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새봄은 다시 오는가. 젖은 어깨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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