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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식

시인

아침저녁으로 베란다에 바람이 머문 지도 꽤 여러 날 된다. 서늘한 한기가 가슴에 스민다. 살다보니 세월 어찌 지나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아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을 그냥 넋 놓고 살았다. 그 무엇 하나 마음을 움직일 신나는 일들이 없었다. 코로나라는 핑계로 모든 관계가 소원해졌고 나만의 소아적 영역을 구축한 채 제자리 삶을 빙빙 돌았다. 편한 타성에 젖어 겨울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세상 살며 부끄럽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매번 커다란 벽에 부딪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사람들과 눈 맞추며 서로를 소통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관료화된 조직의 영혼 없는 결정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화가 났다. 40여년을 문화현장에서 뒹굴며 살아온 것이 갑자기 허무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생계를 챙겨주던 회사를 그냥 그만뒀다. 벌써 몇 달이 지나고 있다.

그렇게 날들이 지나간다. 어쩌면 세상은 그 무덥던 여름 한낮에도 이미 식어있었다. 모두들 마음의 문들을 닫아걸었다. 돌아보면 허둥대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우거진 풀만 무성하다. 나 역시 자신의 욕심이라는 벽에 매달려 저 혼자 정의로웠다. 그것이 자신을 향한 칼날임을 알면서도 넘어설 수 없는 자신의 허상을 붙잡고 괜한 고집도 부리고 화도 냈다. 이미 그때 나의 마음은 황량한 벌판에 흔적조차 부서져나간 폐사지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새삼 아린 바람을 느낀다.

적막한 전화기에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건강은 어떠냐고, 어찌 사냐고, 요즘은 무엇 하냐고 걱정스런 토닥임이 가슴을 적신다. 덧없는 허허 웃음만 목젖을 누르며 새어 나온다. 사실 생계에 대한 불안이야 늘 달고 살지만 요즘은 가만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날이 갈수록 가슴 한 곳 무너지며 서서히 나는 풍화되고 있다. 낮과 밤이 뒤엉킨 어느 날, 시를 읽다 지금의 나를 닮은 글을 발견한다. 정호승 시인의 '폐사지처럼 산다'라는 시이다.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폐사지에서 쓰러진 탑을/일으켜 세우며 산다//

<중략>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폐사지처럼 산다

내 사는 삶의 꼬락서니와 닮았다. 지금에서야 산다는 것이 무언지 어렴풋이 이해된다. 큰소리 낼 일도 가슴으로 씹어가며 그저 바람에 실려 고개만 끄덕인다. 마음에 무성히 자란 풀들이 가을 햇살에 황량이 부서진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지 나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 우매하고 이기적인 그간의 삶을 돌아보며 폐사지에서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싶다. 마음마저 무너져 내린 폐사지에 마른 풀들이 힘없이 흔들린다.

누구나 폐사지처럼 산다. 누구나 무너진 자신의 탑을 일으켜 세우려 애쓰는 몸짓들을 한다. 그것이 텅 빈 폐사지에서 몸을 낮추며 자아를 찾는 여정이다. 진정 가슴이 통하지 않는 황량한 세상에서 애써 표현하지 않지만 아파하는 마음들은 같다. 세상 살며 우리가 넘어야할 것들은 타자의 무례나 거짓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기와 습속이다. 세상이 변화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묵묵히 옹골차게 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폐사지에 바람이 분다. 가슴에 안고 살았던 돌덩이를 삭히기 딱 좋은 계절이다. 가만 돌아보면 그래도 참 아름다운 날들이다. 아팠지만 지치지 않고 땀 흘리며 함께한 모든 날들이 그리움이다. 폐사지에 물드는 저녁 햇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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