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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역경 속 올곧은 조선시대 선비 정신 그려

  • 웹출고시간2008.09.24 20:16:4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그대가 지난해에 계복의 ‘만학집’ 과 운경의 ‘대운산방문고’ 두 책을 부쳐주고, 올해 또 하장령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 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천만 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끗을 보살펴 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중략-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하는 처신을 돌이켜 보자면,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 도 없지만,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다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소나무, 잣나무를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중략-. 슬프다! 완당노인이 쓰다.


세상에 단 한 사람.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 줄 수 있는 사람, 어떤 세상의 비난이 있어도 그 비난조차 두렵지 않아 겸허히 편들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사람만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추사 김정희(1786~1856)

위의 글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당시 184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에게 보낸 작품 ‘세한도’에 들어 있는 화발글이다. 김정희는 충남 예산에서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노경은 판서까지 지냈으며 어머니는 유씨부인이었다. 당시 큰아버지 댁에 아들이 없어 큰댁의 양자가 된 탓에 김정희는 일찍부터 친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 유년시절의 외로움은 그로 하여금 책과 그림에 깊게 빠져들게 한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의젓했고 철이 일찍 들었다는 얘기들이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서화가들이 다방면의 예능에 능했던 것처럼 김정희도 과거 급제해 집안 대대로 큰 벼슬을 이어 갔음에도 그림그리기에 남다른 관심과 탁월함을 보였다.

그래서 김정희의 그림을 조선시대 문인화의 으뜸으로 꼽는 이유다. 특히 이 그림 ‘세한도’는 그림을 그린 김정희의 삶 만큼이나 우여곡절이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의 완성도나 거기에 담긴 글씨의 내용이나, 서체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그 가치가 대대손손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김정희는 말년에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어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당시 김정희는 제자를 둠에 있어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았는데, 이 제자 이상적이 중인의 신분이었다. 이상적은 시문에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는 화려하고 섬세했다. 그의 재주를 높이 산 김정희의 총애를 받았으며 덕분에 역관이라는 벼슬을 하게 되었고 중국을 드나들며 중국에서 시문집까지 간행한바 있다. 헌종도 그의 애송하여 ‘은송당집’이라는 시집이 전한다.

이런 이상적에게 김정희라는 스승은 하늘같은 존재였다. 비록 스승이 정치권력에서 밀려나 귀양을 갔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고 변방에 밀려나 있는 스승이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을 대한 것이다. 스승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변치 않았던 것이다. 이상적은 역관을 지내며 구입한 좋은 책들을 멀리 스승에게 보내주었으며 글과 그림이 들어 있는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던 것이다.

스승으로서는 홀로 섬에 갇혀 춥게 지내고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애정을 담아 보내오는 이상적이, 그 제자가 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한도’는 추운시절의 김정희 자신의 모습이면서 김정희와 이상적의 끈끈한 사제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정희 작, ‘세한도(歲寒圖)’ 종이에 수묵, 23.7x61.2. 국보 180호. 개인소장. 이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이다. 이는 중국의 많은 문인들도 보고 감탄한 작품으로 훗날 이상적이 제자 김병선에게 전해졌으며 이것이 광복 직전에 일본에까지 건너가게 되었다. 이것을 알게 된 소재 손재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를 구입했고 구사일생으로 국내에 다시 들여오게 된 것이다.

‘세한도’를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너무나 쓸쓸하고 황량하다. 그럼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세한도’다. 툭툭 불거진 나무 기둥 껍질의 질감이 손에 대면 만져질 것 같다. 겨울을 지낸 소나무와 잣나무라고 설명한 글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푸르른 여름의 소나무는 정령 아니다.

그럼에도 그 나무가 갖고 있는 강인함을 보자. 뿌리가 얼마나 견고하던지. 땅에 딛고 선 뿌리를 보면 그 어떤 비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은 강한 힘이 느껴진다. 그 위로 올라와 있는 나무기둥은 하늘을 향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그 뒷면의 집은 어찌나 간결하던지. 그저 가난한 초가집을 선으로 이리저리 그어 그렸다. 가릴 것도 없고 보여줄 것도 없고 살림살이도 없고 부귀와 영화도 없고 사람의 온정도 없다.

그 어떤 군더더기나 설명이 필요 없는 ‘집’이다. 김정희 자신을 닮은 집인 것이다. 자신을 상징하는 집인 것이다. 그 안에 김정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오른쪽 소나무 한그루가 화면의 여백까지 나와 공간을 채워 주고 있다. 그 줄기가 위태로운 듯 하면서도 줄기를 따라 기둥으로 이어지고 뿌리까지 시선을 따라 간다면 그 줄기가 전혀 위태롭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집의 왼쪽에는 멀리 우뚝하게 솟아 있는 잣나무가 층층 간결한 줄기를 하고 서 있다. 역시 곧은 기둥 아래로 납작하게 엎드리듯 뻗어 도드라진 뿌리를 보면 그린이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결국 그림을 통해 자신을 상징하고 싶은 것이다.

중국의 사마천이 귀양을 가서, 궁형이라는 극한 형벌을 받고도 그에 굴하지 않고 역대의 저서 ‘사기’를 완성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김정희는 떠올렸던 것일까? 그의 제자 이상적 같은 이가 잣나무처럼 곁에 버티어 주고 있는 것이 든든한 힘이 되었을까? 그림을 그리고 그 곁에 이상적에게 쓴 글을 통해 김정희의 굳건한 정신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시련과 혹한 속에서도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려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한 의지가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세한도’는 슬프지만 연민을 느낄 수가 없다.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 그 안의 주인이 불쌍하지가 않다. 까실 까실하고 메마른 붓으로 툭툭 터치하듯 그린 것임에도 그 안에 강건한 자기 의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력, 거기에 예서와 같은 글씨가 빈 여백마저 균형을 맞춰주고 있다.

이상적에게 쓴 해서체의 편지글씨는 얼마나 칼칼한가. 흔들림 없이 한 획 한 획 그은 글씨가 칼로 날렵하게 휘둘러 쓴 글씨처럼 그의 나이나 귀양살이라는 고적한 편견을 일순간에 허물게 한다. 이것이 자신을 지켜온 힘인 모양이다. 완벽한 한 폭의 문인화로 많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김정애/ 문화담당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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