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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수혜(繡鞋)’, 아름다운 신 ‘운혜(蕓鞋)’ 그리고 ‘당혜(唐鞋)’

수줍은 조선 여인들의 고혹적인 멋

  • 웹출고시간2008.09.21 20:16: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옛 사람들에게, 일년 중 유일하게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은 정해져 있었다. 헌 옷이라도 새로 고쳐 다시 만들어 새것처럼 고쳐 주던 추석이나 설이다. 사실 요즘처럼 생일이며 크리스마스며, 빼빼로 데이며 무슨 무슨 기념일이 많아져 서로 선물을 주고받은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먹고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여 매던 시절이어서 생일날 고기 몇 개 둥둥 띄운 미역국만 얻어먹을 수 있어도 감지덕지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운이 좋은날 아버지가 장에 나가 황소라도 내다 팔거나 다른 농산물을 좋은 값에 받아 돌아오는 날이면 보따리에 가족들의 선물이 들어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른들로부터 선물을 받아 볼 수 있는 것이 추석빔과 설빔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집안이라도 이날만큼은 양말 한 켤레라도 마련해 두었다가 자식들에게 신기는 미덕이 있었다. 양말보다 좀 나은 것이 있다면 바로 꽃신이었다.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 일색이던 시절에 언젠가부터 화려한 색채의 꽃문양이 들어간 꽃신이 장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값도 비쌌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꽃신을 어느 해 추석에 선물로 받고 온 동네를 휘 젖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철이 없었던가. 검정고무신 조차 구멍 난 것을 신고 다니는 남자아이들이 부지기수였던 때에 말이다.

조선 후기의 신 당혜(唐鞋), 서울 역사박물관 소장

그렇게 접한 꽃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화나 검은 에나멜의 반짝이는 구두를 선물받기 전 한동안은 보물 같은 꽃신이어서 비가 오는 날이나 체육을 하는 날은 잘 닦아 마루 끝에 놓아두곤 했다.

당시 선물로 받은 꽃신은 사실 옛 조선의 여인네들이 신었던 꽃신과는 다른 것이었다. 옛 여인네들이 신던, 코가 위로 날렵하게 솟고 발등이 없는 그런 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신는 하얀 고무신과 비슷한 형태로 여성용이어서 볼이 좁고 앞부분에 곡선을 내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활동하기 편하게 발등을 어느 정도 덮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이 위에 화려한 꽃이 인쇄된 고무로 만든 신인 것이다. 지금도 종종 재래시장에 가면 고무신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화려한 꽃신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근대화의 물결과 함께 불어 닥친 60,70년대의 고무로 만든 꽃신은 말 그대로 근대화를 상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역시 아름다웠지만 조선시대 양반가의 여인들이 신던 다양한 신발 중 가죽에 비단으로 장식한 ‘당혜(唐鞋)’는 그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조선 여인들의 멋을 상징하는 조형미가 넘쳐흐른다.

보통의 당혜는 가죽을 부분 부분 재단해 바닥과 옆, 코를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꿰맸다. 겉에는 문양이 있거나 색채가 있는 비단으로 덧대 장식을 하고 안에는 융이나 다양한 천을 붙였다. 앞 코는 신발 전체의 색과 대비되는 청색이나 붉은 색으로 덧대 색감의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이중에서 신코의 뒤축에 구름무늬가 있고 안에 융단을 붙인 것을 ‘운혜’라고 하며 제비부리같이 생겨서 ‘제비부리 신’이라고도 했다. 운혜는 마른신으로 사용했으며 신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의 신 수혜(繡鞋), 서울 역사 박물관 소장

흔히 꽃신이라 불리는 ‘수혜(繡鞋)’는 비단에 꽃무늬가 있으며 이 꽃무늬도 원하는 이의 취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수혜를 만드는 장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자기 취향에 맞는 꽃무늬를 선택한 것이다. 수혜 역시 마른신의 일종으로 신코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신발 색과 다른 색으로 장식했다.

이런 신의 디자인은 대부분 비슷한데 신는 사람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집안의 빈부에 따라 좀더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의 차이가 있다.

가죽신의 종류에는 당혜외에 가죽의 재료에 따라 녹피혜(鹿皮鞋)라는 것이 있고 검게 염색한 흑혜(黑鞋)가 있고 궁중에서 신는 궁혜(宮鞋)가 있었다.

일반 평범한 양반가의 부녀자들이라면 녹피혜나 흑혜와 같은 소박한 가죽신을 신었을 것이다.

비단천의 다양한 색감과 다양한 문양으로 수놓아 장식한 화려한 당혜는 왕족이나 문벌 있는 사대부 집안의 여인이거나, 장안에 잘나가는 기생들이나 신었을 것으로 본다.

이처럼 조선여인들의 신발은 만드는 재료나 기능에 따라 다양했지만 이들 신발의 공통점이 있다면 신코의 날렵한 곡선이다. 뒤축에서 시작된 선이 옆으로 유유자적하게 흐르다 앞에 신코의 중심에 모아지는 것이다. 이는 신의 중심을 이루고 사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다. 두개의 선이 완벽한 대비를 이루며 중앙으로 모아지는 신코의 아름다움은 세련된 디자인의 완성품이다. 아름다운 형태와 그 안에 담길 발의 보호까지. 어느 것 하나 허술하지 않은 조선 여인들의 신. 어느 나라 신의 디자인에서 이처럼 고혹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이러한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다양한 비단 천에 새와 꽃잎 문양의 수를 놓아 섬세한 장식을 더한 꽃신은 한 폭의 동양화다. 손끝에서 만들어져 발을 장식하고 보호하며 발에서 완성되는 조선 여인들의 아름다운 이 꽃신이야말로 조선여인문화의 정수인 셈이다.

서양의 양말이나 서양의 신발을 신으면 감추고 싶은 발의 형태가 적저라 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의 버선이 중심에 코가 있어 못생긴 발조차 예쁘게 감춰 주는 미덕이 있다면 그 역할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해주는 것이 조선 여인들의 당혜와 같은 아름다운 가죽 꽃신이다.

문학박사 이어령은 신발을 ‘문화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신발 없이 맨땅을 딛고 살았던 원시사회에서 신발을 만들어 신은 것은 문명의 시작이기도 하고 문화의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단지 발을 가리고 보호하기 위한 ‘신’에서 발달하여 발의 아름다움까지 생각하기에 이른 조선의 수혜, 운혜, 당혜. 고운 한복 속에 살포시 언뜻언뜻 드러나는 그 신의 코를 보면 그게 조선 여인네들의 자체가 아닌가 한다. 보일 듯 말 듯 수줍고, 뛰거나 빠르게 걸을 수 없는 꽃신. 그래서 꽃신은 여인들의 꿈이고 미래고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정애/ 문화담당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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