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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촌 공방 장작가마 ‘속’

뜨거운 불길…‘신비 美’ 잉태

  • 웹출고시간2008.07.23 20:25: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그릇. 도예가의 고운 손으로 다듬고 얼러서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바르고. 이것이 세상에 나와 그 쓰임을 다할 때까지는 꼭 거쳐야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 있다. 도예가의 땀이나 시간이나 마음에 품은 정성이나, 이렇게 만든 이가 감내해야할 몫이 아닌, 그릇 자신이 꼭 견디어야 할 다른 몫이 있다. 그릇이 이것을 견뎌내지 못했을 경우 도예가는 다시 그의 몫을 다하기 위해 그것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만다.

그릇이 세상과 소통하기위한 여정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야 하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 천도가 넘는 불길 한가운데서 의연하게, 한 치의 뒤틀림 없이, 도도하게 그 자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 이곳에 그릇이 앉혀지면 모든 통로는 밀폐되고 오직 불을 때는 도공만이 그들과 끊임없이 교감한다.

그들이 세상에 나와 그 쓰임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의 속내를 살피면서 그들이 견디고 있는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그릇은 자신의 몸을 태워 성불한 등신불(等身佛)처럼,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때로는 주저앉아 허물어지고 싶고 때로는 분출해 자신의 몸을 터트려 그 고통을 끝내고 싶으면서도 참고 또 참아야하는 그 곳. 장작가마 속이다.

처음 땅을 고르고 몇 장의 벽돌을 쌓았을 뿐이다

대체 그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불을 품고 그 불로서 그릇을 품어 혼을 다한 도예가와 마음을 나누다, 모든 것이 처음처럼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늘에서 무엇이 뚝 떨어진 것처럼, 그릇이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갖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게 하는 그곳. 진정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형제들이 커가자 방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채아래에 집을 손수 짓기 시작했다. 볕이 좋은 봄이나 여름이었다. 바깥마당에서 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반죽하고 나무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 반죽을 붓고 빼내기를 반복했다.

한쪽에 일렬로 늘어놓고 다시 찍어내고를 몇날며칠 하더니 바깥마당은 사람이 간신히 걸어 다닐 공간만을 제외하고는 흙벽돌이 줄지어 가득 차 있었다. 장관이었다. 지금도 그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낮과 오후 해거름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벽돌이 건조되면서 색이 달라졌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벽돌 그림자 때문에 그 풍경이 시시각각 다르게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었고 마당에 설치 작업한 독특한 현대미술품이었다.

당시의 이미지가 마음속에 각인돼 있어 가끔 미술하는 작가들에게 그 이야기를 자랑삼아 해주면서 커다란 광장에 수 만장의 흙벽돌이 줄지어 전시 된다면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조형성을 가져 ‘히트’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더욱이 흙벽돌을 오브제로 삼아 하나하나에 다른 그림이라도 그려놓는다면....... 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찬 감동이 느껴지는 광경이라고 말이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벽돌의 높이와 부피가 더해지자 장작가마의 원형이 보이는 듯 했다. 옛 사람들이 삶을 이루고 살았던 흔적같다.

벽돌에 관한 막연한 공상은 이렇게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던 차에 벽돌로 장작가마를 짓는다는 소문(벽촌공방.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을 접했다.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장작가마를 짓고 있는 도예가의 평소 생각처럼 전통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만이 아니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어서 옛 사람들의 방법은 따르지만 좋은 재료들을 외면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40년 전 아버지가 만들던 크고 투박한 흙벽돌이나 매생이 전통 장작가마용 흙벽돌은 아니었지만 좀더 불에 강하고 섬세하고 작고, 어디는 좀더 붉고 어디는 회색빛이, 어느 부분은 갈색을 띠는 벽돌의 색깔이 부분부분 다양해 그것 자체만으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내열벽돌이었다. 그 벽돌이 유난히 멋스러웠던 것은 어딘가에서 이미 오랫동안 사용했던 중고 벽돌이기 때문이다. 이미 세상에서 그 몫을 다하느라 자신의 몸에 다양한 흔적을 남기고 아직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벽돌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다.

10여 평의 공간에 지붕이 지어져 있었고 주변에 벽돌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사람이 오르내리기 편안하면서 불길이 잘 번질 수 있는 각도, 그것은 가마를 직접 사용할 도예가가 경험에 의해 계산한 각도다. 12도 경사란다.

땅을 다지고 고르며 계단형의 3칸짜리 장작가마(길이 7m, 속 너비 1.5m, 겉 너비 2m, 속 높이 1.01m, 전체 높이는 미정)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큰 장작가마는 다섯 칸, 일곱 칸도 있지만 좀더 자주,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작게 만들었다는 것 역시 사용할 도예가의 생각이다.

계단형의 바닥에 몇 장의 벽돌을 쌓았을 뿐인데, 그것은 다시 한 장 한 장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사각형의 단순한 형태가 반복되며 기역(ㄱ)이 되고 니은(ㄴ)이 되고 디귿(ㄷ)이 만들어질 때, 그 질서 정연한 모습은 사람의 감각과 땀만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조형물이었다. 벽돌 사이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회색 몰타르가 질서를 무너트리며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질감을 만들어준다. 마치 유물 발굴현장 같은 분위기 같아 벽돌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4천여 장의 벽돌로 쌓은 장작가마의 그 속내는 도공의 경험과 직감과 감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벽돌은 그 부피와 높이를 더해갔다. 장작가마 속의 원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룡의 등뼈처럼 길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완성된 장작가마만 보다 처음으로 장작 가마 속의 실체를 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 하는 것이 완성된 결과가 아름답다면, 유일한 예외가 바로 장작가마 ‘속’이었다. 이번에는 저 먼 나라 그리스와 로마의 신전 같기도 하고 고구려나 백제의 이름모를 성터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다. 길고 깊은 세월동안 사람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 것 같은 흔적처럼, 그 안에 사람의 삶이 들어 있을 것처럼 웅숭깊은 맛이 난다.

가장 처음 불을 지피는 중앙의 아궁이 봉통이 아치형으로 벽돌이 쌓아지고 칸과 칸을 막고 있는 벽에는 불길이 고루 퍼지도록 유도하는 살창이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여러 개(8개) 나 있다. 칸과 칸을 연결하는 불의 통로인 이 살창에 얼굴을 묻고 깊이 들여다보니 그 안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바로 눈 앞의 공간은 은밀하면서도 깊고 어두운 넓은 광장이었다.

그 눈길이 두 번째 세 번째 칸의 살창을 통과해 막다른 곳에 다다르니 벽촌공방 뒷산의 푸름이 성냥갑처럼 작게 클로즈업돼 들어왔다. 넓고 깊고 어두운 곳을 통과 하고 났을 때 드러난 청명한 초록은 그대로 하나의 그림이었다.

가마의 속내를 이토록 감탄하며 아름답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가마가 만들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이 위에 흙이 두껍게 덧씌워지고 엎드린 공룡의 머리를 닮게 될, 그 막다른 끝에 굴뚝이 완성되면 모든 것은 비밀이 되어 그 속에 어떤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지 영원히 감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살창을 통해 바라본 칸과 칸의 속은 은밀한 넓은 광장 같으면서도, 그 끝, 벽촌공방 뒷산에 다다르자 한점 초록이 된다. 이토록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숨긴 채 가마는 곧 흙으로 덧씌워져 영원히 비밀스러움을 간직할 것이다.

살창을 통해 다다르는 각 칸에는 부뚜막에 올려진 도자기에 불이 갑자기 닫는 것을 막기 위해 불 턱을 둔다. 이 불 턱이 장작가마의 전체적인 외형을 계단 형으로 만들어주는 까닭인 듯 하다. 오른쪽 벽으로 칸 불 아궁이 3칸의 문 역시 한 사람이 허리를 구부려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아치형이다.

측면 각 칸에는 벽돌 한 장 크기의 불보기 창(유약이 녹는 정도를 확인하는 구멍)이 나있다. 이 불보기 창을 통해 도공은 안의 그릇과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게 될 것이다. 가마의 끝에는 불기운을 한곳에 모아 밖으로 내보내는 굴뚝개자리가 있다. 처음 시작의 아궁이 봉통 못지않게 불의 기운을 조절해주는 중요한 공간인 이 굴뚝의 적절한 높이 역시 수도 없이 경험한 도예가의 본능이나 직감으로 결정한다.

이것이 도공의 힘인 모양이다. 몸으로 경험한 느낌과 직감이 아니면 그 어떤 우연도 믿을 수 없는, 철저한 장인의 정신 말이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벽돌을 쌓는 모습을 무심한 관객은 아름답게만 봐줄 수 있지만 지극히 과학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하는, 그릇의 쓰임만큼이나 장작가마의 쓰임을 우선 생각하는 마음 말이다.

이제 가마 짓는 일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장작가마는 이미 그 속에 그릇 못지않은 조형적인 아름다운 비밀을 간직한 채 거대한 몸채로 불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영원히 그 속내의 신비함을 비밀로 한 채 말이다. 참으로 도도한 것이 장작가마였다.


/김정애 (프리랜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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