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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미인도’

천년을 이어갈…‘달빛 아래 사랑’

  • 웹출고시간2008.06.24 20:35: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인간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뛰어 오르려 하고, 건널 수 없는 강에 몸을 던지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꿈꾸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곳에 손이 닿고 그 강을 건너고, 그것을 가진다면 가슴속에 들끓던 불덩이는 곧 재가 되고 말겠지요?”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라면 그리는 화인이 많고, 그저 뛰어난 그림을 그리는 화인은 별처럼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조선을 아껴 후대의 후대에 어떤 천재 화인을 내어도 이 같은 걸작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장안의 화제가 될 장편소설 ‘바람의 화원’(이정명)중에서 소설속의 두 주인공 혜원 신윤복과 그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단원 김홍도의 대화 내용이다. 자유로움을 갈망하는 천재화가 혜원의 내면이나, 혜원이 그려 내는 그림마다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의 그림이라는 것을 알며 질투와 사랑을 동시에 드러내는 단원의 내면을 표현한 대목이다.

이 소설이 곧 장안의 화제가 될 것이라는 것은, 아직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 모 방송국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중이며 오는 9월에 방영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바람의 화원’은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옛 그림에 대한 열풍이 한동안 불어닥칠 것이라는 예보도 해볼 수 있다. 더욱이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제작되고 있는 상황이라니 말이다.

어쨌든 이 소설 ‘바람의 화원’ 두 권을 하루 반나절 만에 다 읽어버렸다. 눈을 충분히 현옥시키는 단원과 혜원의 그림이 곳곳에 배치된 것이 한몫했지만 그보다 감칠맛 나는 문장과 그림을 감식하고 읽어내는 작가 특유의 탁월한 안목이 한 줄의 문장을 허투루 읽어낼 수 없게 만들었다.

‘미인도’

비단에 담채, 114x45.5cm, 간송미술관. 여리면서도 세밀한 필치로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정한을 표현하는 혜원풍의 절정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삼회장저고리를 입은 단아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맘껏 담아 당대 가장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다.

소설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면 흥미 있는 몇 가지가 관심을 끈다. 때는 18세기 후반 정조가 집권하던 시절이며 김홍도가 도화서(그림을 관장하는 나라의 관청) 교수로 있는 때 혜원이 생도생으로 들어와 수업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홍도는 윤복을 처음 보는 순간 어떤 예감을 하게 된다. 하나는 윤복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복이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의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한편 소설은 정조의 선대왕인 영조가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게 된 사건을 배경으로, 그 주변에서 파생된 도화원(도화서에 근무하는 화인으로 왕의 인물화나 궁중의 행사 등을 그리는 화가들) 살인사건의 열쇠를 풀어가는 과정을 굵직한 서사구조로 삼고 있다.

살인사건이란 도화원 장이자 홍도의 스승인 강수항과 동료수석화인 서징의 죽음을 말한다. 홍도와 윤복이 정조의 명을 받아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해결의 열쇠는 그림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추리력과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내면묘사가 압권이다. 그 과정에서 홍도는 윤복이 죽은 서징의 딸이고 가문을 빛내고 싶은 도화원 신한평이 데려다 알들로 삼아 남자로 위장해 키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소설 속에서 윤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는 게 이 소설이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소설은 ‘월하정인’을 비롯, ‘월야밀회’ ‘이부담춘’ ‘미인도’ 등 몇 가지 윤복의 그림을 통해 그가 남자가 아닌 여자 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동안 알려진 신윤복은 자는 입보요, 호는 혜원이며 고령인으로 부친은 첨사 신한평,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부친 신한평은 화원이었다. 속된 그림을 그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 등이다.

그 어떤 현존하는 자료에서도 윤복의 출생연도 조차 확실하지 않으며 이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최대의 미스테리한 인물, 그가 바로 신윤복인 셈이고 소설가는 이점을 단초로 해 ‘바람의 화원’을 낸 것이고, 이 소설 같은 신윤복의 삶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의 삶과 그림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 그것 역시 소설에서 홍도의 입을 통해 잘 성명해주고 있다.

“너는 혼을 담아 그림을 그리는 아이다. 양식을 거부하고, 규율을 무너뜨리며, 마음 가는대로 그리지. 하지만 화원이 되지 못하면 그건 천재가 아닌 미치광이의 그림에 지나지 않아.”

윤복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가슴이 아려오는 그림, 지금까지의 그 어떤 그림과도 다른 그림, 그 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월하정인(月下情人)’

종이에 담채, 35.6x 28.2cm, 간송미술관 소장. 달빛 아래 눈빛조차 은밀하다. 연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을 펼쳐놓으면 이렇다. 화면 한구석에 몰린 듯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연인들, 금방 떠나갈 듯 화면 밖을 향한 남자의 발길, 두 사람을 억누르듯 위압적인 반대편 기와집, 두 사람을 위협하는 듯 음모의 냄새를 풍기는 수수께끼 같은 숲, 숨막힐 것 같은 긴장과 대립을 감싸 안은 하얀 초승달빛이 처연하게 떠 있다.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림 위에 써있는 글 ‘달빛 어둑한 삼경(月沈沈夜三更)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 알겠지(兩人心事 兩人知)’를 보면 윤복이 품고 있는 내면의 은밀한 비밀을 들여다보게 된다.

삼경이라면 자시의 한 가운데다. 인적이 없는 한적함 밤 갖신을 신은 여인과 젊은 선비가 밀회를 나누고 돌아간다. 굳건한 양반집 담과 숨막힐 듯 조바심 나는 연인의 마음을 닮은 초승달이 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대에 이런 감성의 거침없는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은, 혜원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도 다다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경지를 갖고 있던 혜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혜원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의 바람같은 삶이, 도화원에서 쫓겨났다는 그의 예술적 경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밖에 없다. 당대 사회라는 것은 조선의 ‘절대 권력인 유교’가 있었다.

유교적인 사회에서 부녀자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것도 원색의 다양한 색채를 사용하거나 가슴을 드러내 은밀한 몸짓의 기생들을 등장시켜 양반사회를 희롱하고 그들의 행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특히 도화원의 화원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오풍정’

지본채색, 35.6x28.2cm 간송미술관 소장.

그럼에도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포기 하지 않은 그는 도화원을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며 그림을 그렸다는 소설속의 이야기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복의 그림 중 뛰어나며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알려진 ‘단오풍정’에서 단오 날 머리를 감는 아낙네들이 가슴을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몰래 중들이 훔쳐보고 있는 장면이나, ‘이부담춘’에서 소복을 입고 있는 상중 과부가 몸종과 나무 등걸에 앉아 마당에서 개가 짝짓기 하는 것을 보며 웃는 장면이나, 그의 그림 속에서는 인간의 내밀한 욕망들을 서슴없이 드러내 고 있다. 결코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소설 속에서, 홍도는 윤복의 그림에서 여인네들의 겉모양은 어떤 남자 화원이라도 아름답게 그릴 수 있겠지만, 여인네의 속마음은, 내밀한 속마음은 여인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윤복이 여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여자여서 여인의 그 깊은 속내를 그림에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과연 혜원, 그의 실체가 무엇일까. 그토록 정적이며 고즈넉한 여인네의 모습을, 달빛아래서 사랑을 꿈꾸는 여인의 속마음을 그토록 가슴 저리게 표현한 그의 실체는 과연 여자일까, 남자일까, 궁금하다


/ 김정애 (소설가.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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