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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도기박물관 소장 ‘오지화로’

단출·간결한 서민들 생활 그대로 담겨

  • 웹출고시간2008.08.20 19:43:0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예술이라는 것이 일상생활을 떠나서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특히 직접 손으로 무엇을 만들어내야 했던 옛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 했을 것이다. 집을 짓는 일이나,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고 농기구를 만들고 그릇을 만드는 일이 그러했다. 사랑방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안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듯 옛 사람들 개개인의 삶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예술 활동이었던 것이다.

목수가 집을 짓다 좀더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도면이나 문짝의 디자인에 변화를 주는 일이나, 대장간에서 무쇠화로를 만들다 좀더 쓸모 있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장식을 달고 화로 바깥 면에 그림을 새겨 넣는 일이나, 도공이 질화로를 만들다 변화를 주고 싶어 디자인을 다르게 하거나 음각을 넣어 문양을 새겨 보는 일들이 그렇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모든 것이 기계로 찍어내듯 똑같은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세상에 단 하나가 되어 옛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많은 공예품들을 오늘날 애지중지 아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지화로(높이 19x 입지름 30x 밑지름 21cm).

화로 중의 으뜸이 질화로라고 한다. 질화로와 비슷한 성질의 오지화로는 잿물 유약을 써 문양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잘 짜여진 유리 상자 안에 보물처럼 전시돼 있는 많은 공예품들을 본다.

누군가 오랫동안 사용하다 그 쓰임을 다해 유물이 되어 있는 것을. 이젠 현대인들의 눈요기를 위해 오랜 세월 그 유리 상자 안에 머물러 있어야할 공예품들이다. 이 공예품들의 진정한 역할이란, 그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사람들 곁에서 머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그것들의 쓰임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됐고 엿장수에게 비누나 엿으로 바꾸어버려야 한다면, 그것이 다시 용광로에 들어가 건축자재로 쓰이거나 파손돼 어느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일보다는, 유리상자안에서 현대인들에게 특별한 즐거움을 주는 일도 그들에게 부여된 새로운 몫이 아닐까 싶다.

동산도기박물관(대전시 서구 도마동)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화로와 국내 박물관들이 소장하고 있는 화로 사진을 싣고 화로의 역사, 화로의 종류와 문양 등에 대한 글을 쓴 책 ‘한국의 화로’(이정복, 동산도기박물관)를 접했다. 화로가 지방에 따라 만들어진 시대나 사람에 따라, 만든 재료에 따라 그 종류가 어찌나 다양하던지. 가히 그 다양성이나 아름다움에 입이 벌어진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이래 화덕을 거쳐 방안으로 옮겨진 화로는 우리의 옛 사람들에게 겨울 생활필수품이었다. 화로는 겨울철 난방용으로 쓰이기도 하고 음식을 익혀 먹는 용도로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만든 재료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서민들이 주로 만들어 사용했던 토기화로(질화로, 오지화로)가 있고 좀더 견고한 무쇠화로(철화로), 양반집 가옥에서 흔히 사용했을 놋화로가 있고 돌화로, 자기화로 등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화로가, 생필품처럼 사람들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로가, 언젠가부터 광에 천덕꾸러기처럼 박혀 있거나 엿장수들 눈에 띄어 헐값에 리어카에 실려 나가게 되곤 했다.

언젠가 엿장수에게 엿으로 바꾸어 먹었을, 우리가 그 안에 고구마나 밤을 구워 먹으며 밤 문화를 즐겼던 무쇠 화로가 문득 그립다. 짙은 갈색의 무쇠화로가 우리 곁을 떠난 것은 아마도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고 연탄보일러로 교체하던,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장작불을 지펴 밥을 하지 않게 되면서 숯불이 나오지 않았다. 덩달아 봄이면 기름칠해 잘 닦아 두었다 겨울이면 꺼내 요긴하게 쓰던 화로의 쓰임이 없어져간 것이다. 시대가 그렇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화화로

높이 22.5cm, 입지름 30cm, 밑지름 15cm

책 ‘한국의 화로’ 필자 역시 언젠가 골동품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화로를 발견하고 유년시절의 한 추억을 우물에서 물을 퍼 올리듯 내면에서 퍼 올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것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게 되었다. 직접 전국을 돌며 수집한 화로들을 모아 놓고 보니 한국의 화로를 대표할 수 있는 화로들이 다 모이게 되었다.

이들 화로를 통해 한국인들의 생활변화를 알 수 있었고 화로를 만든 이들의 다양하고 타고난 감각들을 점쳐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문헌을 뒤지게 된 것이고, 화로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 보았고 만든 이들의 속내를 살펴보게 되었다. 결국 화로전문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수많은 화로, 한국의 옛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하나쯤은 갖고 있었을 그 화로에 새겨진 문양과 장식들이다.

화로에 사용한 문양의 기법은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주로 질화로에 사용한 문양들은 그릇을 만들었던 것처럼 꽃이나 글씨 등을 판에 새겨 그 도형대로 눌러 찍는 인화법이 있고 조각처럼 새기는 투각기법이 있다. 금이나 은, 동에는 무늬를 새기는 상감기법이니 놋쇠에 은사를 장식하는 은입사 기법 등이 화로에도 사용되었다.

문양의 형태는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문양으로 연화문이나 국화문, 죽문, 당초문 등이 있고 새나 나비, 거북이 등 동물의 모양을 본떠 만들기도 했으며 완자문, 태극문, 격자문 등 기하학적 문양도 새겨 넣었다. 문양을 통해 장식의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손잡이나 화로 받침대, 다리 등의 변형을 통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장식성을 추구한 것이 화로다.

이렇듯 집안의 빈부 격차에 따라, 사용하는 이나 만든 이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문양과 장식을 했기 때문에 집집마다 화로의 생김새가 모두 달랐던 것이다. 이들 화로 중에 그 기능이나 쓰임 면에서 으뜸이 질화로라고 한다. 비록 화려하고 세련된 맛은 없지만 흙으로 만든 질화로가 불의 온도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고 화로 벽에 전도되는 열의 감도도 은근하여 화로를 직접 만져도 손을 데이거나 하는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질화로도 화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자배기를 닮아 아래는 좁고 위는 입을 벌린 것처럼 넓고 받침대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어 사용했으며 종종 손잡이를 만들거나 문양을 넣어 장식을 하기도 했다. 옹기그릇 굽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질화로와 달리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구어 낸 것이 오지화로다. 오지화로는 반들반들하고 광택이 난다.

동산도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오지화로(높이 19x 입지름 30x 밑지름 21cm)에 새겨진 그림이 시선을 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그림이 결코 아닌, 옛 서민문화를 알 수 있는 가장 소박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무쇠화로

높이 24cm, 입지름 49cm, 밑지름 26cm

이 오지화로는 옹기그릇을 만들 듯 자배기 형태를 만들어 잿물을 묻힌 다음 건조하는 과정에서 문양을 만들어 넣었다. 국화문양과 목이 긴 새를 단순하게 그렸다. 마치 서민들의 생활처럼 단출하고 간결하다. 잿물 유약의 반질반질한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고 유약이 묻지 않은 그림 부분이 붉을 색을 띠면서 화로의 장식성을 뽐내고 있는 셈이다. 그 형태가 부드럽고 둥글어 추운 날 아랫목에서 끌어안고 앉아 있으면 동장군도 무섭지 않을 것처럼 따듯하고 정겨운 느낌이 나는 화로다.

화로는 우리의 안방문화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브랜드이며 다양한 예술적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는 조형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 화로가 변형되어 오늘날 아파트에서도 멋을 부리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이 벽난로를 설치하는 경우를 본다. 벽난로도 좋고 화로도 좋다. 그 곁에 사람들이 둘러 앉아 불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많은 문호들이 이 화로의 풍경과 애틋함을 글로 남겨 놓는다.

‘한국의 화로’에 인용된 시를 다시 인용해 본다.

오누이들의 /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입담배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김용호 시 ‘눈오는 밤에’-


/김정애 (프리랜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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