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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마당의 자귀나무에 분홍 꽃이 피었다. 요즘 나는 자귀나무 꽃이 피어서 무척 행복하다. 연등을 켜 놓은 듯 환한 꽃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하면서 여유 있는 선열(禪悅)을 즐긴다. 올 봄에 자귀나무 아래에 벤치를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그 때문인지 자귀나무의 그늘 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자귀나무에 꽃이 피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꽃을 만나러 가곤 한다. 오늘 아침에는 밤새 내린 빗방울을 털어내지 못해 가지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중노릇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으니까 20년이 훨씬 지난 일인 것은 분명하다. 어느 날, 만행 길을 떠나기 위해 사하촌(寺下村)의 어귀를 지나고 있었는데 논둑에 도열하듯 피어있는 분홍 꽃을 보았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여름에 만난 분홍 색깔은 옛 연인을 보는 것 같은 가슴 저미는 어떤 기억이었다.

아마 나는 그 때,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 어떤 그리움이 있었나보다. 어떤 이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으나 먼저 붉어지는 얼굴 때문에 차마 말문을 열지 못하는 망설임…. 그 논둑의 분홍 꽃은 그런 설렘이자 아픔이었다. 나는 그날, 그 꽃이 자귀나무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분홍빛은 내 가슴에 아주 오래 남게 되었다.

그 후 자귀나무는 나의 첫사랑이 되었음이다. 이를테면 자귀나무는 20대 젊은 시절의 분홍빛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오랜 벗이다. 그래서 해마다 자귀나무 꽃이 필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가슴에 빛바랜 사연 하나 담고서 자귀나무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 셈이다. 어느 시인은 “오늘밤도 자귀나무 꽃등에 하나 둘 유순한 사모의 불 켜지고”라고 읊었다. 그이도 나 같은 심정 이었나보다.

최근 ‘월간 해인’ 기자로 활동했던 김영옥 씨가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했는데 그 제목이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이었다. 그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얼른 서점에 들러 책을 구입해 읽었다. 운문사에서 밭일하는 스님을 소개하면서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 팥씨를 뿌려야지…”하는 대화를 나눈다. 자귀나무는 6월 중순부터 피는 꽃이라서 농사 짓은 이들은 첫 꽃이 피기 시작하면 팥씨를 뿌렸다고 한다. 이처럼 파종시기를 알게 해주는 여름철의 대표적인 나무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여름에 피는 야생화 가운데 자귀나무를 유독 좋아한다. 자귀나무 꽃은 명주실에 물감을 들인 것 같기도 하고, 붓끝을 풀어 물감을 들인 것 같이 아름답다. 그래서 멀리서 보아도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아무래도 ‘자귀’라는 이름은 ‘잠자는 귀신’의 줄임말 같다. 자귀나무의 잎은 밤이면 마주난 두 잎이 꼭 껴안고 잠을 자는데, 이러한 독특한 수면운동을 일러 ‘자는 일에는 귀신같다’라고 해 자귀나무라 했단다. 또한 야합(夜合), 합혼(合婚)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서로 금슬이 좋은 부부처럼 보였나보다.

지금의 자귀나무는 내가 관음사에 처음 올 때 심었으니까 10년 동안 우리 정원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가지도 제법 굵어지고 꽃도 많아져서 오가는 이들에게 향기를 전해주기도 한다. 자귀나무의 품격을 더 드러내려면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을 정리해주고 자리를 크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년 봄에는 감나무를 잘라주고, 목련나무를 옮겨 심을 작정이다.

“꽃은 늘 웃고 있어도 시끄럽지 아니하고 새는 항상 울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송나라 야보선사의 게송이다. 마음에서 시비분별이 사라지면 자연의 모습 그대로가 진리이고 법음(法音)일 것 같다. 자귀나무는 그저 무심(無心)하게 피는데, 이 여름 날 나 혼자서 분별심으로 사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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