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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 갔는데 아는 분이 불쑥 “스님, 출가해서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장가 안가서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사실이다. 출가를 해서 행복한 부분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결혼을 하지 않아서 주어지는 행복의 영역이 더 많다. 청춘시절에는 신혼부부가 부럽기도 했는데 불혹을 넘긴 나이가 돼 보니 독신의 선택이 오히려 자랑스러울 때가 많다. 이 말은 독신수행을 함으로써 주어지는 삶의 기쁨과 여유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배우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인연의 부피로 그들의 삶과 비교해보면 홀로 사는 즐거움이 더욱 또렷해진다. 이를테면 아내가 없으니 부부싸움할 일이 없고, 자식이 없으니 속 썩을 일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인연을 만들지 않아서 나에게 주어진 홀가분한 부분들이기도 하다.

신앙하는 절대다수의 소망은 자녀에 관한 부분들이다. 모두가 자식 잘 되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그 만큼 인생에서 자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자식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땅의 부모들은 자식의 재롱에 손뼉 치며 웃다가도 자식의 눈물에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고통도 즐겁게 감수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들의 인생에서 가정이나 자식을 위해 투자하고 할애하는 시간을 숫자로 따진다면 삶의 절반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어찌 보면 핏줄에 대한 사랑은 숭고할 정도로 절대적이고 희생적이다. 오죽했으면 자식에 대한 이러한 인연관계를 부처님은 ‘내 인생의 장애물’라고 표현했을까.

부처님이 출가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가장 큰 장애물이 태어났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이 탄식이 그대로 아들의 이름에 반영됐는데 이른바 ‘라훌라’다. 라훌라는 해와 달을 가린다는 ‘복장(覆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자신의 출가에 방해꾼이 나타났다는 의미인 것이다. 출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자식 앞에서는 그 결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처님 또한 인간으로서의 부정(父情)때문에 고뇌했음인데 범부는 말해 무엇 하랴. 어쩌면 이시대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라훌라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왜냐하면 자식은 인생의 선물이면서 또한 멍에이니까.

부처님은 출가한 후 12년의 세월이 흘러서 고향을 찾아간다. 그 때 성장한 아들 라훌라와 만나게 되는 장면은 사뭇 새롭다. 라훌라의 어머니가 12세의 어린 아들에게 “저 곳에서 법을 설하는 분이 너의 친아버지이니라. 찾아뵙고 너에게 물려줄 귀중한 재산을 달라고 해라”고 했다. 이윽고 어린 아들이 상속해 줄 물건을 달라고 말하자 부처는 옆에 있던 제자에게 일러 라훌라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고 한다. 즉, 출가를 하게 만든 것이다.

이 때 부처님은 자식에게 출가를 상속(相續)한 것이다. 명예나 재산을 물러준 것이 아니라 출가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의 바른 길과 올바른 사상을 상속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암시해 준 것이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재산은 인생의 가치관과 삶의 정체성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자식에게 스승이 될 수 있을 때 부모로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말이겠다.

스승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주듯 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처님과 아들의 일화를 통해 자식을 향한 세속적인 집착에서 자유로워져야 그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자식의 일에서는 남의 일처럼 평정을 지킬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므로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욕심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부모들의 이런저런 사연들을 들어보면 자식은 행복의 존재면서도 연민의 대상이다. 이런 결론이라면 혈육을 향한 부모의 눈길과 사랑은 자식의 나이와 관계없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부모은중경에는 ‘팔십 넘은 노모가 환갑 지난 자식을 걱정한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정도라면 자식으로 인해 생기는 기쁨이나 슬픔, 그 양면성을 다 수용하고 인정해야 지혜로운 삶이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이 모두가 결혼을 하면서 생겨난 인연들이며 고민들이다. 이럴 땐 궤변 같지만 고통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 우선적 행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들어서는 거듭 거듭 장가 안가길 참 잘 했다며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세연(世緣)을 떠난 이 홀가분한 만족과 자유를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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