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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2.04 19:39: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명절날 산사는 조용하고 한가롭다. 쌀쌀맞은 스님들의 표정도 명절날에는 반갑고 따스하다. 외진 암자에서 홀로 명절을 보내는 것보다 한 집에서 떡국이라도 나눌 수 있는 인연이 새삼 고마워진다. 비록 출가의 삶이지만 설날 같은 명절에는 절집에서 만난 인연이 가족이며 친지이다. 명절날 나이 든 노스님들 찾아 인사를 올리고 정담을 나누고 있으면 마치 온기가 넘치는 화로 곁에서 손을 쬐고 있는 것 같다.

머리를 깎았지만 명절날은 가족들과 고향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을 떠나 산지도 꽤 오래며 내 삶에서도 귀향은 이미 낯선 말이 되었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올리면 아직까지 가슴에서 실개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도 나는, 성큼 고향으로 가지지 않는다.

중국 선종사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마조 선사가 출가 후 고향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것도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당시의 명성으로 보아 몇 해 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틱닛한 스님 못지않게 고향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대단했을 터이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는데 마조 선사의 이웃집에 살았던 한 노파가 다가와서는 “나는 대단한 양반이 온 줄 알았는데 청소부 마씨의 아들이 왔구먼!”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마조 선사의 속성이 마씨(馬氏)였는데 그 노파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자존심이 좀 상했던 것일까? 마조 선사는 장난을 섞어 ‘출가자는 고향에 가면 대접이 소홀하니 고향에 가지 말라’고 일렀다.

물론 내가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은 이러한 마조 선사의 일화에 공감한 까닭도 있지만 수행자에게 있어 고향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고향은 존재하지만 애절한 정을 나눌 대상으로서의 가족은 없음이다. 한마디로 혈연이 주는 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향에서는 인간적인 가슴이 더 차가워진다. 나 또한 나이 든 노모만 계시지 않다면 고향의 산천은 마음에 묻어두고 싶다.

해인사의 성철 스님도 출가할 때 떠나온 고향을 평생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고, 심지어 부모님이 별세하였을 때도 출상에 참여 하지 않고 시자를 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 역시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종가의 고향에는 출가 이후 가본 적이 없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스님들의 냉담한 반응을 일부에서는 개인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굳이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어찌 보면 독신 수행이 주는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며 족보도 자식이 있을 때 펼쳐본다지 않는가.

지난해 사월 초파일에 시골의 어머니께서 내가 사는 절로 날 만나러 오신 적이 있다. 신심 돈독한 불자이지만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내 손을 잡으며 잠시 눈물을 보이셨다. 그때는 그저 아들 앞에 선 평범한 어머니였던 것이다. 내 어찌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알겠는가. 다만 당신의 마음에서 이런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만 알 뿐이다. 자식이란 삶의 위로이면서도 집착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님들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도 자식에게 쏟는 정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수행의 길에서 만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은 한낱 인간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구름처럼 떠도는 사람에게는 머무는 곳이 고향인데 명절날이라고 딱히 어딜 가겠는가.그러므로 출가 수행자에게 고향의 진정한 의미는 주어진 곳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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