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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충북도립대학 교수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바람은 부드럽고, 땅에는 풍요로움과 멋진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가을볕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추운 겨울로 가는 길목이 너무 짧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흔히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 한다. 봄에 씨 뿌려. 여름내 가꾸고, 가을에 거두어들여 갈무리를 잘 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리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새해 첫 날 세웠던 계획이 어느 정도 진척이 이루어졌는지 점검하고 지금은 마무리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가을은 마침표를 향해가는 일종의 쉼표와 같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일터로 향하고, 하루해가 저물면 돌아와 가족들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채 서둘러 저녁을 먹고, 다음 날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그야말로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에 현대인들은 지쳐가고, 감정이 메말라간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물을 틈도 없이 현실의 속도에 눌려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여기에 첨단 디지털매체는 우리 삶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빠르게를 강요하며, 속도위반을 재촉한다.

도대체 생각의 틈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말을 하고, 듣고 보고 느끼니 삶의 여유를 갖기 힘들다. 모든 세상일은 제대로 처리하기 보다는 빨리 처리하는 것이 능력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꼼꼼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사람은 게으르고 둔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얼마 전 아는 선배와 함께 등산을 할 때였다. 그 선배는 워낙 산을 잘 타고 체력도 좋아 나보다 한참을 앞서 나갔고, 난 따라가기 바빴다. 아무리 보조를 맞추려 해도 벌어진 간격을 좁히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화가 났다. 극기 훈련을 온 것인가? 왜 나하고 오자고 했을까? 체력 좋고 산을 잘 탄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인가· 같이 걸어가며 일상의 소소함을 얘기하면 안 되는 것인가?

따라가기 지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일부러 느리게 걸어갔다. 보조를 맞추려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의 사물을 둘러보며 갔다. 그런데 눈앞에 단풍이 들어왔다. 다양한 나뭇잎 모양만큼이나 형형색색의 이쁜 단풍이 보였던 것이다. 아하! 고은 시인의 시 구절처럼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처럼 느리게 걸어가니 멋진 신세계가 들어 온 것이다. 빨리빨리만 재촉한 그 선배는 이 멋진 광경을 보고 갔을까? 산봉우리만 보고 걸어간 선배에게 이 자연의 아름답고 신비한 느낌을 뭐라 설명을 해 주어야 할지.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속도와 경쟁으로 사람들을 내몰기만 한다. 느리게 사는 삶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 설국열차처럼 열차가 무한질주 하듯, 사람이 앞만 보고 달릴 수는 없다.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는 분명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 일상의 속도가 요구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이 계절이 나를 찾는 좋은 시간이다. 볕 좋은 가을날 걷자.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걸어보자. 사물들이 말을 걸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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