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인가? 50여일이 넘는 역대 급 최장기간의 장마를 겪으며 금수강산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산사태로 마을을 휩쓸어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은 공공시설에 임시로 거처를 옮겼다. 논밭은 한창자라는 농작물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농민들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하고 있다. 인명과 재산피해가 너무 커서 지칠 대로 지친 민심은 흉흉하고 습도가 높아 빨래도 마르지 않는 눅눅하고 꿉꿉한 나날을 보내며 우울감에 빠져있다. 간간이 햇볕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 번 장마는 집중호우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 장마였다. 코로나 19로 정상생활이 실종 된지 반년이 되었는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장마까지 겹쳐서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재앙이 위기감을 불러오고 말았다. 자연(하늘)도 무심하지 인간들에게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감과 절망감을 준단 말인가? 최근 인류에게 안겨준 재난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화(禍)가 나도 너무 크게 난 것 같다.' 자연이 인간들에게 너무 심한 보복을 가하는 것 같다. 성인(聖人)들의 말씀을 살펴보면 천지(天地)는 불인(不仁)하다고 하였다. 자연이 인간을 크게 사랑하며 인(仁)하다면 이렇게 심한 재난의 고통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연 속에서 자연의 무한한 혜택을 입으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무한한 욕심 때문에 자연을 자연대로 두지 않고 파헤치고, 막고, 쌓고, 만들어가며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면서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도 참을 만큼 참았을 것이다. 도시화로 도로를 넓히고, 빌딩과 아파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가고,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만들어 매연을 내품어 대고 있으니 자연이 좋아할까? 자연 속에 버려진 그 많은 쓰레기들을 청소하자면 장맛비 아니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장마가 끝나가니 태풍이 상륙한다는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다. 태풍까지 겹치면 인간은 3중의 재난에 시달려야 합니다. 수해복구 현장을 보면 너무 비참하여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이런 난세에 정치권에서는 4대강 사업이 홍수를 못 막았다느니, 태양광사업이 산사태를 초래했다느니 하며 남 탓만 하고 있으니 이를 바라보는 민심은 울화통이 터집니다. 인구의 4/1이 서울에 몰려 살고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몰려서 집값은 천정부지(天頂不知)로 치솟고 있어 자고나면 몇 억씩 오른다며 서민의 한숨소리만 들립니다. 누에고치는 열흘만 살다가 집을 버리고, 제비는 6개월만 살다가 집을 버린다고 합니다. 까치는 1년을 살다가 집을 버리는데 모두 자연으로 돌린다고 합니다. 누에는 집을 지을 때 자신의 창자에서 실을 뽑아 집을 짓고, 제비는 자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집을 짓고, 까치는 볏 집을 물어 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 줄 모르고 집을 짓습니다. 날짐승과 곤충들은 이렇게 혼신을 다해 집을 지었어도 시절이 바뀌면 미련 없이 집을 버리고 떠나갑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시멘트와 철근으로 탄탄하게 집을 짓고 끝까지 움켜쥐고 있다가 끝내는 빈손으로 떠나고 맙니다.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 집이 있는데 집이 너무 좋고 집안에 비싼 물건이 너무 많으니 사람이 집을 지키는 개(犬)신세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하던 시절에 비하면 사용하지 않는 빈방이 너무 많은데도 집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환경만 있으면 행복할까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재난을 겪으면서 겸허한 마음으로 욕심을 줄이고 자연에서 받는 무한의 혜택에 대해 감사하면서 자연을 살리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졌다. 생일이 되면 주말에 외손자들까지 모두 모인다. 초등학교 3학년인 외손녀가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이 너무 어색해 보이는데 손녀는 더 편하다고 하며 글씨도 왼손으로 쓰고 가위질도 왼손으로 한다. 철저한 왼손잡이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반드시 오른 손으로 숟갈을 잡도록 시켰다. 예전의 부모는 아이가 왼손으로 숟갈을 들거나 물건을 잡으면 슬그머니 오른손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고전을 살펴보면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예기(禮記)』「내칙(內則)」에 처음 나온다. "아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오른손으로 먹도록 가르쳐라.[子能食食, 敎以右手]"라고 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에티켓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의 시작이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는 사회화의 첫걸음이라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오른손일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았던『예기』의 해설서『예기집설(禮記集說)』에 실려 있는 송나라 학자 방각(方慤)의 주석(註釋)에 따르면,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이며, 이 점은 남녀가 동일하다.[取其强, 是男女所同也] 남자와 여자는 왼쪽과 오른쪽을 달리해야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른손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밥 먹는 손은 남녀를 막론하고 오른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도록 가르치라는『예기』의 내용은 훗날 주자(朱子)가 편찬한『소학(小學)』에도 인용되었다. 『소학』은 조선시대의 필독서였으므로 글을 배운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편찬한 『소학집주(小學集註)』에서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이유를 달리 설명했다. 오른손이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取其便] 명나라 학자 오눌(吳訥)의『소학집해(小學集解)』에 근거한 설명인데, 정작『소학집해』를 찾아보면'강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율곡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바꾼 것인지 실수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논쟁을 야기했다. 정 개청은 오른손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밥 먹는 이유를 음양(陰陽)의 차이로 설명했다. 왼손은 양에 해당하고 오른손은 음에 해당하니, 임금이 신하를 부리듯 왼손이 오른손을 부려먹는 게 맞다. 는 것이다. 하늘의 서북쪽에 별이 많고, 땅의 동남쪽에 평지가 많은 것처럼, 사람도 한쪽 방향으로 힘이 쏠려 있으므로 오른손과 오른발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近齋集』卷12) 왼손잡이는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 왼손이 편하기 때문이다. 오른손이 강해서라느니, 편해서라느니 하는 주장은 모두 오른손잡이 입장에서 하는 소리이다. 따라서 반드시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른손으로 밥 먹는 행위가 모든 교육의 시작이라는 믿음은 건재했다. 왼손잡이가 생기는 원인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자의 작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할 뿐이다. 왼손잡이가 특별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타고난 성향에 불과하다. 다행히 요즘은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거의 사라졌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다수 아닌 소수를 신기한 존재로 취급한다. 왼손잡이라는 사소한 성향조차 이럴진대, 그 밖의 사회적 소수자들은 오죽하겠는가. 소수자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편견의 역사적 유래를 추적하여 그것이 근거 없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노자 도덕경 2장에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풀이하면'있고 없음이 서로 낳는다.'는 말입니다. 아주 쉬운 말 같은데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이어지는 말은 어렵고 쉬움이 서로 서로 만들고(難易相成), 길고 짧음이 서로 꼴을 이루고(長短相形), 높고 낮음이 서로 기울고(高下相傾), 가락과 소리가 서로 어울리고(音聲相和),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前後相隨)까지 읽으면 어렴풋이 닥아 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有無相生은 있음은 없는데서 나오고 없음은 있는데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즉 모든 것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있는 것이 내일은 없을 수 있고, 오늘 없었던 것이 내일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難易相成은 어려움은 쉬운데서 만들어지고, 쉬움은 어려운데서 만들어 집니다. 즉 이것이 어려운 것은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이며, 이것이 쉬운 것은 어려운 것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長短相形은 긴 것은 짧은 것과 견주어 긴 것이고, 짧은 것은 긴 것과 견주어 짧은 것입니다. 즉 한 팔은 한 뼘보다 길지만 한 팔은 한길 보다는 짧은 것입니다. 高下相傾은 높음은 낮은 데로 기울고, 낮음은 높은 데로 기웁니다. 즉 높은 것은 낮은 것보다 높은 것이고, 낮은 것은 높은 것보다 낮은 것입니다. 키다리는 난쟁이 보다 키다리이지만 난쟁이는 키다리에 비해 난쟁이인 것입니다. 音聲相和는 가락은 소리를 타고 소리는 가락을 타기 때문에 가락과 소리는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가락 없는 노래도 없고 소리 없는 노래도 없습니다. 前後相隨는 앞의 것은 뒤의 것에 쫒기며 뒤의 것은 앞의 것을 따릅니다. 앞은 뒤보다 앞서고, 뒤는 앞보다 뒤처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함이 없는 일에 머물고,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고 합니다. 만물을 만들었으나 말이 없고(萬物作焉而不辭), 낳으면서도 갖지 않고(生而不有), 하면서도 자랑하지 않고(爲而不恃), 공이 이루어지면 머물지 않고(功成而弗居)고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11장에도 유무상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수레바퀴의 바큇살이 한 곳으로 모여 가운데가 비어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없음을 만나야 수레가 쓸모 있게 됩니다. (三十輻, 共一轂, 當其無,有車之用), 흙을 이겨 차지게 하여 그릇을 만드는 까닭은 빈 곳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릇의 빈 공간(無)을 만나야 그릇이 쓸모가 있게 됩니다.(埏埴以爲器, 當其無,有器之用),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 까닭은 방의 빈 공간을 쓰려는 것이므로 없음(無)을 만나야 방이 쓸모 있게 됩니다.(鑿戶牖(爽)以爲室,當其無,有室之用), 따라서 있음(有)의 유익함은 없음(無)의 쓰임(用)에 있는 것입니다.(故有之以爲利,無之以爲用) 즉 유무(有無)가 별개가 아니고 서로 상생(相生)하는 것입니다. 바퀴도 가운데가 비어있기 때문에 원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구기 종목의 모든 공(球)도 둥근 모양의 속은 공기로 채워져 비어있기 때문에 굴러가고 튀어 오르고 변화무쌍한 묘기가 연출되는 것입니다, 그릇도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릇의 모양이지만 그 쓰임은 그릇의 빈 공간입니다. 집도 비바람을 막아주고 더위와 추위로부터 사람을 보호 해주지만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삶의 보금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집의 쓰임은 겉모습이 아니라 생활하는 빈 공간입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빈곳이 쓸모가 있고 필요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이익이 되려면 보이지 않는 것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없음은 있음을 쓸모 있게 해줍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자 철학에서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배워야 합니다.
어느 젊은 학생이 막노동으로 생활비와 검정고시준비를 하는 학원 비를 벌던 시절에 밥값이 없어 저녁을 거의 굶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머니에 400원 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집으로 가는 길목에 포장마차에 들려 오뎅 한 개 사 먹고 국물만 열 번은 떠먹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아주머니께서 오뎅을 열 개나 주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퉁퉁 불어서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먹어요." 허기를 채우려고 허겁지겁 먹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습니다. 그 후에도 가끔 퉁퉁 불어버린 오뎅을 거저 얻어먹었습니다. 젊은이는 아주머니께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꼭 갚아드린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군대(軍隊)를 제대하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운 좋게도 대기업 인사과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6년 만에 아직도 그 포장마차가 그 곳에 있을까 싶어 찾아가 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 옆에 아들이 함께 있었는데 다리를 심하게 저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마땅한 취직(就職)자리가 없어서 아주머니는 안타까워 하셨는데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젊은이가 다니는 회사는 장애인을 전문으로 채용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급여는 많지 않았지만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학자금도 나오는 회사였다. 당장 회사 부장님께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젊은이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부장님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습니다. 장애인아들이 회사에 채용되자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습니다. "이 은혜(恩惠)를 어떻게 갚죠? 청년은 대답했습니다. "제가 먼저 빚 졌잖아요. 그걸 갚았을 뿐인걸요." 젊은이는 배고팠던 시절의 고마움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나니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어렵지 않는 일이 그 분에게는 절실한 일이었고, 나에게는 꼭 필요한 게 그 분이 필요하지 않기도 합니다. 배고픔의 설움을 달래주었던 아주머니는 작은 베풂으로 큰 은덕을 받게 된 사연을 읽고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옛 성인의 글에도 있습니다. 명심보감 존심편(存心篇)에 시은물구보(施恩勿求報) 여인물추회(與人勿追悔)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은혜를 베풀거든 그 보답을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뒤에 후회하지 말지니라.'보답을 바라며 은혜를 베푸는 것은 순수한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직간접으로 많은 사람의 은혜를 입으며 살아갑니다. 은혜는 잊지 말고 갚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하찮은 당신의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몇 백배의 가치를 가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뎅 국물 한 컵이 큰 고마움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꽃 한 송이,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내가 남의 은혜를 입을 필요가 없다하여 베풀기 보다는 모으고 채우기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넘치는 사람은 자신을 남에게 나타내고 자랑하려 하여 교만(驕慢)해집니다. 그러나 부귀(富貴)는 영원히 항상 하지 않습니다. 부귀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선행을 베푼다고 바로 보답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옛 사람들은 사람을 크게 네 부류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소인(小人)은 재물(財物)을 남기고, 중인(中人)은 이름(名)을 남기고, 대인(大人)은 제자(弟子)를 남기며, 성인(聖人)은 혼(魂)을 남긴다고 했습니다. 되 새겨 볼만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따스한 사랑의 눈으로, 따스한 마음의 눈으로, 작은 일에 감동할 줄 알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알아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코로나 19로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에서 부분등교로 바뀌면서 과제학습지를 받아 외가(外家)에까지 와서 공부하는 외손자의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아빠 엄마의 도움을 받으며 숙제하느라 휴일도 마음 놓고 못 노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다. 5학년 동우는 수학과 사회학습지에 답을 달고 있는데 학습용어를 옆에서 듣자하니 대부분이 한자어(漢字語)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학과목에서 분수(分數), 배수(倍數), 공약수(公約數), 가분수(假分數), 최소공배수(最小公倍數)등 교과서에 한자로 병기(倂記)만 해줘도 문장의 독해력이 높아질 텐데 말이다. 사회과목은 한반도(韓半島), 영동(嶺東), 영서(嶺西), 영남(嶺南), 호남(湖南), 관동(關東)등 지역의 명칭 등의 용어를 얼마나 이해하며 학습을 할까? 나는 손자가 잠깐 쉬고 있을 때 옆으로 다가가서 한자어를 풀어서 설명을 해줬다. 섬 도(島)자는 새 조(鳥)와 비슷한데 새의 날개를 형상화한 점 4개 대신에 뫼 산(山)자가 들어가 새가 바다 위를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위섬에 앉아서 쉬었다 다시 날아가는 곳을 섬(島)이라 생각하여 만든 글자다. 사방을 물로 에워싼 것이 섬인데 반도(半島)는 반쪽 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의 반도를 한반도(韓半島)라 한다고 한자어 풀이를 해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애 엄마는 "아! 그렇구나,"하며 감탄을 하였다. 대학(國文科)을 나와 행정공무원인 딸 역시 학교에서 한자를 안 가르쳐서 한자어의 뜻을 모르는 것이다. 이게 한글전용정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닌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약 2/3가 한자어인데 학생들에게 학습부담을 준다고 소리글인 한글만 사용하는 교육정책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의사'라고 한글로만 표기하면 안 중근 의사(義士)인지 안 중근 의사(醫師)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식수'라고만 쓰면 마시는 물 식수(食水)인지, 나무를 심는 식수(植樹)인지 구분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사기'라고 써 놓으면 남을 속이는 사기(詐欺)인지, 사기(砂器)로 만든 그릇인지, 역사를 기록한 책 사기(史記)인지 알 수가 없는 문맹(文盲)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只今), 금방(今方), 시방(時方), 고동색(古銅色), 사과(沙果), 사탕(砂糖), 총각(總角)등 고유어로 알고 있는 한자어도 있다. 필자는 10여 년 동안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와 인연이 되어 초등학교 한자교육운동을 하면서 서명운동, 공청회, 1인 시위, 학술발표회 등에 참여 하면서 마침내 2019년부터 초등 5~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교육정책이 결정되었을 때 가슴 뿌듯한 보람을 맛보며 기뻐하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어느 날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폐기 시켜버렸다. 이 일을 이끌며 2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충주 출신 陳 泰夏 이사장은 어깨 수술 후 요양 중에 충격적인 소식에 쇼크를 받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한글전용정책이 우선 편해보일지 모르나 한자어라는 연못 속에 살아가는 고기와 같은 학생들의 문장 해독(解讀)능력은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초래하고도 반성은커녕 한글전용만 고집하고 있다. 매일 학습용어로 사용하는 언어의 어원과 참 뜻을 모르는 아이로 키우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한자의 핵심인 300자 정도만 가르쳐도 독해력향상은 물론 자기 주도적 학습이 되고 학습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딸이 "아! 그렇구나,"하는 말이 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느 대기업 건물 앞에 있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한 중년 여인이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성난 표정으로 아이를 훈계하고 있었답니다. 마침 근처에서는 한 노인분이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그 여인이 핸드백에서 화장지를 꺼내더니 손을 닦고는 노인이 일하는 쪽으로 휙 던졌습니다. 노인은 황당한 표정으로 여인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지만, 여인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심드렁하게 노인을 쳐다봤습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화장지를 주워 쓰레기 바구니에 집어넣었습니다. 잠시 후에 여인은 아이의 코를 훔친 화장지를 또 던졌고, 노인은 역시 묵묵히 화장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노인이 관목 손질용 가위를 집어 드는 순간 세 번째 화장지가 또다시 그의 눈앞에 툭 떨어졌습니다. 여인의 무례한 행동이 반복되는 동안 노인은 언짢은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여인이 아이에게 나무를 손질하는 노인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너 잘 봤지? 어릴 적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 할아버지처럼 미래가 암울해!""평생 저렇게 천한 일을 하며 고단하게 살게 돼!"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손에 잡은 가위를 내려놓고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부인! 이곳은 회사 소유의 정원이라 직원들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그거야 당연하죠, 전 이 회사 소속 계열사의 부장이에요." "산하 부서에서 일한다구요!"그녀는 목에 잔뜩 힘을 준 채 거만하게 신분증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휴대전화 좀 빌려 주시겠소·" 노인이 그 여자에게 부탁하자,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때다 싶어서 아들에게 한 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저렇게 나이가 들었는데도 휴대전화 하나 없이 궁색하게 사는 꼴 좀 봐라!""저렇게 안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해, 알았지·"휴대전화를 건네받은 노인은 통화를 끝낸 후, '고맙다'며 휴대전화를 여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남자가 급하게 달려와 노인 앞에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였습니다. 노인은 그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저 여자를 당장 회사에서 해고시키게..." "알겠습니다! 지시하신대로 처리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인은 아이 쪽으로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하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란다."짧은 한 마디만 남기고 그는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여인은 눈앞에 벌어진 뜻밖의 상황에 너무도 놀랐습니다. 달려온 남자는 그룹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임원이자 그녀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저 정원사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는 거죠?" "무슨 소리야! 정원사라니? 저 분은 우리그룹의 회장님이셔!""뭐라고요? 회장님!"여인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직장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겉모습만보면 안됩니다. 지위나 신분이 높은 분에게는 아부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렇게나 대하면 안 된다는 좋은 예화입니다. 특히 자녀 앞에서 엄마로서 취한 행동은 자녀를 망치는 언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 교육은 오만한 말이 아니라 모법적인 언행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코로나로 답답했던 오월을 보내며 되새겨 보았습니다.
동물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보금자리며 새끼를 낳아 기르는 집을 짓고 살아간다. 나뭇가지나 풀, 흙 등 자연물을 재료로 집을 짓고 자연동굴이나 토굴을 파서 살아간다. 인간도 원시시대부터 집을 짓고 살아왔는데, 선사시대 유적을 보면 나뭇가지로 원뿔 모양을 만들고 풀로 둘러싸서 만든 움집에서 살았다. 또는 절벽에 굴을 파서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토굴도 있고 귀틀집, 초가집으로 발전해 왔다. 인간이 기록으로 남길 글자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집을 나타내는 상형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한자에 집 가(家)자를 보면 그 시대의 생활모습을 짐작 할 수 있다. 우리가 갓머리라고 알고 있는 집 면(·)은 집을 의미하는 뜻을 가지고 있어 부수자로 쓰고 있다. 즉 집 면(·)자가 들어간 한자는 대부분 집을 뜻하는 글자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집안에 돼지 시(豕)자가 왜, 들어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집 가(家)자는 집이라는 의미를 넘어 어느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사람을 표현 할 때 소설가, 전문가, 발명가, 미술가, 성악가 등으로 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쓰이고 있는데 집 가(家)자의 자원을 풀어보면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안에 어째서 豕(돼지시)자가 들어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한자가 만들어진 시대의 생활 풍속과 관련이 깊다. 당시는 뱀(蛇)이 많아서 원두막처럼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래도 밤에 독이 있는 뱀이 기둥을 타고 올라와 사람을 물기 때문에 뱀의 천적(天敵)인 돼지(豕)를 집 아래서 길렀다고 한다. 돼지가 뱀을 모조리 잡아먹어 안전하게 살 수 있어서 집안에 돼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돼지 시(豕)를 넣어 집 가(家)자가 만들어 졌다. 지금도 중국 소수민족인 야오족(瑤族, Yao, 요족)은 집 아래 돼지를 키우고 있는 모습이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구이린(桂林)편에 소개된 바 있다. 집을 뜻하는 한자를 살펴보면 집 댁(宅), 집 실(室), 집 궁(宮), 마루 종(宗), 부자 부(富), 잠잘 숙(宿), 잠잘 매(寐), 잠깰 오(寤)등이 있고, 관청을 의미하는 부수자인 지킬 수(守), 벼슬 관(官), 벼슬 환(宦)등도 있다. 편안 안(安)자를 여자가 갓을 쓰고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며 자원풀이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갑골문을 보면 집안에 여자가 있는 모습인데, 즉 집안에는 여자가 있어야 편안하다는 의미를 담은 글자이다. 사람이 얼음이 맺힌 집에서 추워하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찰 한(寒)이다. 집안(·)에 동전꾸러미(·)와 재물(貝)이 가득한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열매 실(實)이다. 집안에서 제(祭)를 지낼 때처럼 자세히 살핀다는 뜻이 살필 찰(察)이다. 집안에 재물(貝)과 옥(玉) 도자기(缶)를 보관한 것이 보배 보(寶)이지 갓(·)으로 보물을 덮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집이라는 뜻은 사람이 사는 것만이 아닌 집 우(宇)와 집 주(宙)를 합하여 우주를 표현한 지혜를 엿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집을 나타낸 글자는 서당(書堂)이나 명륜당(明倫堂)같은 집 당(堂)과 오죽헌(烏竹軒)에 집 헌(軒)을 썼다.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지은 다락집을 루(樓)라 한다. 법원, 병원은 집 원(院)을 쓰고 있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면서 매년 지붕을 볏짚으로 다시 만들지 않고 기와나 함석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서양의 집이 들어오면서 양옥(洋屋)이 늘었고, 좁은 터에 많은 가구가 살아가는 아파트가 대세를 이뤄 이웃 간의 공간적 거리는 가까우나 이웃이란 정은 너무 멀기만 한 새장 같은 집에 현대인은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로 3개월여 일상의 삶이 정지되어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는 사월의 마지막 날, 들뜬 마음으로 큰딸 가족이 오기를 기다렸다. 가정의 달 오월이 시작되는 황금연휴를 맞아 세 자매 가족 12명이 횡성으로 2박 3일 캠핑을 가는데 아빠도 함께 가자며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연휴시작이라 도로에 차가 밀려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김밥과 삼겹살을 사서 목적지를 향해 달렸는데 비교적 소통이 잘되어 좁은 계곡에 자리 잡은 캠핑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공기가 너무 상쾌하고 연두색 나뭇잎들이 싱그러운 자연의 품에 안겨 심호흡을 하며 짐을 풀었다. 옆 도랑에는 암반위로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정겨웠다. 인천에서 새벽에 출발했다는 둘째 딸 가족이 도착하여 반가웠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막내 딸 가족이 뒤따라 도착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모두 힘을 합쳐서 거실처럼 사용할 공동취사장도 만들었다. 수년 전부터 세 자매가 캠핑을 자주 다녀서 야영생활에 아이들까지 익숙하다. 일찍 출발하느라 빵조각과 김밥으로 허기를 채운 터라 내가 전 날 따온 두릅 전(煎)을 부쳐서 먹으니 제철 봄나물의 향을 느끼며 너무 맛있게 먹었다. 캠핑용의자에 둘러 앉아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며 코로나로 꽉 막힌 가슴을 활짝 열고 대자연과 호흡하며 주변에서 풍겨오는 꽃향기에 모두가 상기(上氣)된 표정으로 저녁을 맞이하였다. 어둠이 깔리는 야영장에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삼겹살을 구워먹는 재미에 길들여져 있다.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을 상추쌈에 싸서 먹는 맛은 식당에서 먹는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장작불을 피워 놓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도시에서 구경 못하는 밤하늘의 별들을 세면서 소쩍 새 소리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가끔 캠핑을 하면서 엄마 아빠 놀러 오라며 전화를 하면 아내와 함께 아이들 먹을 것을 사들고 찾아가 함께 저녁을 먹고 고구마도 구워먹으며 놀다가 오고는 했지만 천막 속에서 잠을 자기는 너무 오랜만이다. 젊은 교사시절 청소년연맹 전임지도자로 활동할 때 연합야영을 주관하면서 야영에 익숙했지만 나이가 들어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 야영을 하니 새삼스러웠다. 가끔은 이렇게 자연인이 되어 원시적인 삶을 즐기는 것도 일상의 찌든 먼지를 씻어내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니 잘 따라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기운을 온몸에 받으며 숙면을 할 수 있었다.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가 상큼하게 들려왔다. 아이들도 일찍 일어나 저녁에 냇물에 담가놓은 통발을 건지러 갔다. 버들치를 잡았다며 너무 좋아했다. 물고기는 구경만 하고 오후에 냇물에 놓아주기로 했다. 둘째 날은 날씨가 좋아 캠핑장 주인에게 송어횟집이 근처에 있느냐고 물으니 차로 5분 거리에 있다하여, 회를 떠다가 점심에 맛있게 먹었다. 송어는 1급수 찬물에서 자라는 고기라서 강원도 청정지역에서 송어 회를 먹으니 맛이 너무 좋다고 하며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저녁에는 참숯불에 닭갈비를 구워먹으니 이 맛 또한 일미였다. 남은 숯불엔 고구마를 구워먹고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야영이 무르익어 절정을 맞이하였다. 마지막 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려 짐정리 할 걱정이 앞섰다. 감자찌개로 아침을 먹고 젖은 텐트를 걷으며 고생하는 사위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연휴라고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펜션을 빌려 연휴를 보내는 것 보다 자연 속에서 야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자연을 배우는 체험을 시켜주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좋았다. 핵가족시대 이종사촌끼리 만나 함께 즐겁게 놀면서 배우는 기회였다.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이 함께 건전한 연휴를 보내는 것이 너무 유익했고 모두가 만족한 캠핑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수그러들고는 있지만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21대 총선을 무사히 치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공기로 전염이 되는 폐렴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공포 속에 모든 일상이 정지돼 있다. 모임이나 행사는 물론 종교 활동까지 중지되었고 새 학기가 되었어도 개학을 못하고 있다가 겨우 영상으로 수업을 받는 온라인개학을 한 상태이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고 손 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있다. 사람과 거리두기로 서로를 의심하고 서민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인정이 메말라가고 있는지 벌써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민심이 반영 된 총선의 결과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꼼수라는 비판 속에 준 연동형비례대표제 라는 새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48.1cm나 되는 투표용지에 이름도 모르던 35개의 정당이 올라있지만 거대여당과 야당의 양당체제로 굳혀졌다. 19세가 되어야 성인(成人)으로 인정을 받는데, 서양을 따라간다며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18세로 선거연령이 낮춰진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다. 당선지역을 당의 색깔로 나타낸 지도를 보면 파랑색과 분홍색으로 갈라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남북이 상하로 나눠진 분단국가에서 정치는 동서로 나누어진 분포도를 보고 있자니 민족통일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권의 중진의원들이 무참히 패배하는 모습을 보니 권력이 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선거는 개표가 끝나야만 알 수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공천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된 분들의 선거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권 잠용이라 불리는 분들도 패배의 아픔을 맛보게 되니 정치에서 민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냉엄한가를 알 수 있다. 또한 초선이 많이 늘어났고 신인들이 후광을 업고 당선의 기쁨을 맛보는 경우도 몇 곳에 있었다. 선거에서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선거였다. 말을 함부로 하는 막말 파동은 정치판에서 자주 보게 된다. 지역의 주민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총선인데 지역에 삶의 근거를 두지 않고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뿌리가 없는 지역에 후보로 나타나도 당선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정치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고 시류(時流)의 흐름을 잘 읽고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에게 당선의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거에서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좋아서 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후보의 상대방에게 표를 주는 경향도 있다. 투표는 나의 주권을 위임하는 행위이다. 나와 우리지역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이 가는 사람, 인격을 갖춘 사람,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여 실천할 사람을 꼼꼼하게 점검하여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하여야 한다. 그러나 너무 감성적으로 가볍게 투표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TV나 SNS 같은 매체가 없던 예전의 선거는 많은 군중이 한 장소에 모여 유권자를 향해 정견발표를 하던 시절이 후보자의 면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번 선거는 코로나로 소위 말하는 깜깜히 선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유권자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시류에 휩쓸리거나 정확하지 못한 정보에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선거에서 득표수에 상응하는 의석을 각 정당이 획득하도록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인 비례대표제는 개선되어야 할 것 같고 법을 바꿀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믿음을 주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 1년 동안 입원해 계시던 어머님께서 안 좋으시다는 연락을 받은 곳은 팔공산 갓 바위에서 108배를 마치고 인증 샷을 찍고 있을 때였다. 매년 정초가 되면 갓 바위를 찾아 소원을 비는데 올해는 보름 날 친구 내외와 함께 갔다. 서둘러서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머님 상태를 전화로 확인한 아내는 오늘은 넘기실 것 같다는 말에 인근에 있는 은해사를 잠깐 둘러보고 걱정이 되어 휴게소에 한번 쉬고 달려왔다. 충주에 도착하여 다시 확인 전화를 해본 아내가 내일 가뵈어도 될 것 같다는 말에 쉬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요양원으로 간 아내한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옷 깨끗이 갈아입고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아, 이제 어머니와 이별하는가?'라는 생각을 안고 서둘러 조금 과속을 하면서 달려갔다. 코로나19 때문에 면회사절이라 문도 막아 놓았다. 직원이 문을 열어주어 올라갔더니 5분전에 운명하셨다고 한다. 아들과 딸은 오고 있는 중이라 임종을 못하고 큰 며느리만 임종을 하였다. 요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신니면 화석리에서 태어나신 어머님은 열일곱 어린나이에 일본 색시공출을 피하기 위해 이모님이 계시던 박달산 아래 산골마을로 시집을 오셨다고 한다. 76년을 한곳에서만 사셨는데 오남매를 두시고 구순이 되시도록 텃밭에 들깨를 심어 기름을 짜서 나눠주시는 자식사랑이 남다르셨다. 3년 전 한정식 집에서 이모님 두 분과 친정조카와 슬하의 오남매와 손자손녀 조카들이 모여 구순잔치를 해드린 것이 피부치가 한자리에서 축하를 해드린 마지막 기억을 안고 가셨다. 서울에 사는 큰딸과 구미에 사는 작은 딸 내외는 주말이 되면 교대로 찾아와 온천욕을 해드리고 점심을 사드리는 일을 여러 해 동안 해드려서 행복해 하셨다. 한번은 평소에 좋아하시던 송어 회를 먹는데 쳐진 눈을 크게 뜨시며 누군가를 확인하시더니 15년 전 앞서간 둘째 아들 이름을 부르며 왜 안 오느냐고 하실 때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이가 빠지듯이 한 자식만 안 보이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쓰리셨을까?'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탄금호반을 바라보는 곳에서 장례의식을 치르면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막을 길이 없었다. 코로나19로 외출을 삼가는 가운데도 원근을 불문하고 조문을 오시는 분들을 맞이할 때 감사의 마음으로 죄인 된 불효를 생각하며 향을 피웠다. 평소 어머님은 과유불급을 지키시며 음식을 절대로 과식하시지 않으셨고 항상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온화하신 성품을 닮아서인지 장례 날 까지 날씨가 좋아 복을 받으셨다는 말을 많은 분에게 들었다. 13년 전 먼저가신 아버님 곁으로 합장(合葬)을 하여 묘 표석 앞에서 제(祭)를 올리며 어머님은 영면(永眠)에 드셨다. 마을 회관에서 동네여러분과 점심을 나누고 감사의 인사도 드렸다. 요양원이 있는 미타사(彌陀寺)에 49재(齋)를 모시기 위해 위패와 영정을 안치시키고 돌아왔다. 재우(再虞)날엔 봄비가 촉촉이 내려 어머님을 떠나보낸 상주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은혜를 받았고 산소에 잔디가 잘 살겠다는 덕담을 들었다. 삼우제를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개여 세 번째의 염려하는 마음으로 축문으로 고하고 돌아왔다. 토요일이 첫 재이기 때문에 아홉시에 모두 절에 도착하여 스님의 독경을 따라하였다. 두 시간동안 극락왕생을 기원 드리기를 일곱 차례가 되어 3월 마지막 주말에 49재를 올리고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였다. 사시던 집에 들려 생전의 웃으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보니 해무리가 생겨서 신기하다는 생각으로 어머님과 영원한 이별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인류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연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수많은 도전을 받으며 목숨을 걸고 싸워왔다. 풍수해, 지진 등 자연과의 전쟁으로부터 도전을 받으며 살아왔고, 영토를 확장하여 세력을 넓히려는 전쟁이 나면 소중한 목숨을 바쳐가며 나라를 지켜왔다.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도전은 세균과 변종바이러스 등 돌림병이라 했던 질병과의 전쟁으로 전 세계가 불안과 공포 속에 모든 일상이 정지 된 상태에서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샤스와 메리스를 겪었지만 코로나 19는 강한 악성 변종바이러스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구촌의 시계가 멈춰선 듯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7년 만에 받는 딸의 학위수여식도 취소하더니 신학기는 시작되었으나 학생들은 입학식도 못하고 3월 한 달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가파르게 늘어나던 확진세가 꺾이는 모양이지만 안심하기는 이르고, 밀폐된 공간에서 집단감염이 확산되므로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사람과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고 있어 모든 일상 활동이 정지되고 있어 정상적인 생활이 멈추었다. 친목모임도 취소되고 각종 회의나 집회 행사까지 중지되어 자영업은 개점휴업상태가 유지 되고 있다. 국내외여행이 안 되기 때문에 여행업계의 타격이 매우 크다. 대부분 집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기 때문에 시가지나 도로가 한산(閑散)하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거리를 바라보면 적막감마저 들어 전쟁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도 비상이고 이탈리아가 심각한데다가 미국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전 세계가 코로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다.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세한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무기나 핵을 사용하지 않는 전쟁 중이라 할 수 있다. 요즘 가장 인기가 있는 품목은 단연 "마스크"라 할 수 있다.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약국이나 우체국, 농협하나로 마트 앞에 서너 시간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2장의 마스크를 살 수 있고, 요일 제 판매를 해도 품절이라는 안내문을 써 붙인 곳도 많다. 공기를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되므로 이를 차단하기 위해 거리두기와 마스크쓰기는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손잡이나 버튼 등을 통해 전염되므로 외출 후에 손 씻기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사람이 타고 있으면 안타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미 타고 있는 사람은 서운한 감정이 생기지만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2020년 봄은 왔는데 봄을 느끼는 마음보다는 코로나 19 때문에 세상인심은 험악해 지고 있다. 만약에 지구촌을 다스리는 그 무엇이 있다면 왜, 전 인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러스 균에 의거 폐렴증상으로 고열이 나며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촌의 자연현상에 균형을 맞추기 위함인가? 이런 저런 사유(思惟)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인간이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고 일침을 가하는 경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집에서 음식을 조리하여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하라는 무언(無言)의 가르침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맛 집을 찾아 즐기느라 가족과 소원해 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도 있는 것 같다. 안 만나도 될 일을 오가느라 도로는 차로 넘쳐나고 매연을 일으켜 미세먼지로 건강을 해치지 말고 왕래를 자제하라는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더 겸손해지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껴보라는 암시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春來不似春)는 시구(詩句)는 전한시대 절세의 미인으로 궁녀(宮女)였던 왕 소군(王昭君)과 관련된 동방규(東方虬)의 시(詩)의 한 구절인데 우수(雨水) 경칩(驚蟄)이 지난 이 땅의 3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어 일상생활을 헝클어 놓았고 공포 속에 정상의 멈춤이 지속되고 있다. 졸업식과 입학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나 모임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되었고 초중고 개학도 연기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공기감염의 공포 속에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끝없이 늘어서는 등 불안에 떨며 위축된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 경북지역엔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확진환자가 하루에 몇 백 명이 발생하고 사망자도 늘고 있어 전 국민이 긴장하고 있다.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모자라 몇 천 명이 자가 격리상태로 대기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의료진과 간호사들이 대구로 달려가 환자를 돌보기 위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방역 복을 입고 쪽잠을 자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거룩해 보이기까지 하다. 코로나바이러스(cor ona virus)는 호흡기 및 소화기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그 형태가 태양의 바깥쪽 층인 코로나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이러스는 1937년 닭에서 최초로 발견되었고, 조류뿐만 아니라 소, 개, 돼지, 사람 등을 감염시킬 수 있다. 2003년 발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샤스(SARS )로 인해 전 세계 약 800명 정도가 사망에 이르렀다. 2015년에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 RS)바이러스에 186명이 감염되고 38명이 사망하였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인한 질병에는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 없다. 고대 라틴어로'바이러스'란 '독(毒)'이라는 뜻인데, 바이러스세균의 크기는 1~10마이크로미터(㎛)수준이라 전자현미경으로 관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미세한 세균 앞에 현대의학이 무기력하기만 하다. 질병으로 인한 국가대란이 일어나면 매뉴얼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대처하여 국민을 안심시켜야 하는데 허술하기만 하여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손님의 발이 끊긴 자영업자들은 가계세도 못 낼 형편이라며 울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데 서민들은 삼중고를 겪으며 봄은 다가오고 있으나 반갑지만은 않다. 이 번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교훈도 얻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인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질병의 도전을 받았고 병마(病魔)와 싸워왔으며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은 자연 앞에 교만하지 않았나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그 동안 인류는 편리 함 만을 추구하며 과학문명이 끝없이 발전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지 않았나 생각한다. 늘어나는 공장과 자동차 행렬 때문에 맑은 공기는 미세먼지로 오염되어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기후의 온난화로 생태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식문화로 맛있는 음식을 찾아 과식을 하면서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과 거리두기로 접촉을 줄여 모임이나 집회가 취소되니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음식을 해먹으라는 것이 아닌가· 전화와 영상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데도 원근을 불문하고 차로 이동하여 만나려고 하니 교통난은 증가되고 있다. 자연의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의 고마움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닥쳐온 재앙 앞에 자연의 큰 가르침을 따르라는 교훈으로 생각하면 코로나를 극복하는데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아쉬워 할 때 퇴임식을 하고 떠나는 모습은 아름답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말도 있고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둔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동안 여러 계층의 퇴임식을 보아왔지만 식장을 빌려서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퇴임식을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눈발이 날리는 일요일 제 2금융권의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퇴임식에 회원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식장에는 많은 축하객이 모여들었다. 축하무대에 이어 화기(和氣)가 넘치는 가운데 주인공인 강 칠원 이사장 내외분이 입장한 다음 31년간의 걸어온 길이 영상으로 소개되었다. 내빈소개도 참석한 단체소개로 지루하지 않았다. 대학교수인 큰아들 의사부부와 둘째아들은 약사부부로 키워 부러움의 박수를 받았다. 형식에 억매이지 않고 임직원과 가족을 소개하면서 사진촬영도 겸해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퇴임사도 재임기간 겪었던 애환을 토로하는 격의 없는 말씀에 축하객에게 감동으로 전달되었다.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가 고향인 강 이사장은 스승의 날이 되면 어린 시절 은사님을 찾아뵙고 식사대접과 함께 선물을 드리는 일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왔고 고향 발전을 위해 발전기금을 지원해준 공로로 고향대표가 감사패를 전하는 모습도 훈훈하였다. 지난 12일 42년차 총회에서 장학금과 좀 도리 운동 후원 2천100만원, 복지사업비 1천500만 원 등 총 1억900만 원 상당이 소외계층에 지원하는 일을 22년째 통 큰 나눔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각 급 학교에 장학금 7천300만원을 전달하였다. 문화새마을금고는 1998년부터 시작한 장학금 지원사업으로 그동안 10억3천여 만 원을 지원하는 등 끊임없이 지역 인재 양성에 기여해왔다. 충북도내 북부 최대금고로 성장시킨 강칠원 이사장은 재임기간 동안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현재 자산 3천51억 원, 공제 3천562억 원, 자기자본 375억 원의 2만여 회원을 보유한 금고로 성장시켰다. 2019년도엔 충북경영평가대회 최우수상 수상금고가 되었으며, 사랑의 좀 도리 운동 전국최우수상, 행정자치부장관상, 대통령 표창도 수상하였다. 본점과 문화지점, 서 충주신도시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본점 2층엔 스포츠댄스교실, 3층엔 서예교실, 노래교실, 한시교실, 시조문학회, 소회의실, 대회의실 등을 두고 시민과 함께 운영하면서 공동체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엔 점원생활로 시작하여 미곡상(米穀商)을 바탕으로 자수성가(自手成家)를 한 입지전(立志傳)적 인물로 알려졌다.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대학 논어까지 독학으로 공부하여 배움의 열정을 불태워 국립충주대학교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등 유림으로서 본보기를 보이는 분이다. 사회봉사활동으로는 내외분이 호암지 공원에 나무를 심고, 쓰레기 수거활동을 벌이며 자연환경보호에 앞장서 왔다고 한다. 30여년 금고를 이끌어 오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직원이 12억을 비롯하여 세 번의 금고사고를 맞아 심적 고통을 받아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하였다고 한다. 금고사고를 수습하며 부족분은 사비(私費)로 해결하는 어려운 고비도 넘겼다는 이야기는 회원들의 신뢰를 얻는 바탕이 되었다. 공적직책을 맡아 자리에 한번 오르면 내려 올 줄을 모르고 오래도록 누리려는 사람들의 끝이 좋지 않은 경우를 종종 보았는데 때를 알고 후진에게 넘기고 물러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식장을 나서니 하늘도 감동하였는지 함박눈이 날려서 아름다운 퇴임을 축하 해주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事物)이 정도(程度)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重要)함을 가리키는 말이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마음에 새기는 지혜를 넉자로 함축하여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자주 활용합니다. 옛날에 두 눈을 실명하여 앞을 못 보는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평생소원은 눈 한 번 떠보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문을 들은 부엉이가 " 아저씨! 나는 밤에만 돌아다니고 낮에는 가만히 잠만 자기에 낮에는 눈이 필요하지 않아요. 낮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 테니 밤이면 눈을 돌려주세요."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너무나 고맙다. 밤에는 꼭 돌려 줄 테니 낮에만 빌려다오. 나도 밤이면 잠만 자면 되니까 필요 없지."부엉이가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밤에는 꼭 돌려 주셔야 합니다."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너무나 눈부시게 보였습니다. 그 날부터 눈은 낮이면 이 남자가 밤이면 부엉이가 교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남자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 교대로 사용할 필요가 없잖아 밤이 되어도 주지 말고 도망가자." 남자는 부엉이 눈을 가지고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밤에도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점점 눈이 흐려지더니 다시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소경이 된 남자는 더듬더듬 부엉이를 찾아 갔습니다. 부엉이가 "아저씨! 왜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쳤나요? 눈이 없어서 난 먹이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나는 굶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 눈이 힘을 잃어버린 것이 예요."부엉이는 이 말을 하고 기운이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땅을 치며 후회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엉이는 먹지 못하여 죽었습니다. 소경에겐 이제는 소문이 나서 자기에게 눈을 빌려 줄 부엉이는 없었습니다. 좋은 동반자 부엉이를 잃어버린 크나큰 아픔에 그도 울다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좋은 것을 가졌을 때 좋은 이들을 만나고 교류할 때 눈앞의 이익보다는 서로 감싸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지 않을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을 쫓는데만 급급하여 남을 속이고 있어 인간사이의 믿음이 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사기죄 고발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양심을 속이고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서 사회가 혼란스럽습니다. 어려서부터 마음공부가 중심이 되어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가족제도의 붕괴로 밥상머리 가정교육은 사라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학교교육도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기보다 학원으로 몰려다니며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평생 동안 바르게 살아가도록 사람다움의 틀을 짜주는 인성교육은 외면당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윤리도덕과 역사를 바로 가르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전통과 주체성을 갖춘 인물보다는 잔재주와 편의주의에 안주하는 몸과 마음이 연약한 아이로 키우고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밝지 않습니다. 어른과 사회는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모범을 보이는 사표(師表)가 되어야 하는데 잘못된 언행을 보고도 바로잡아주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만 19세가 성인인데 젊은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보통교육도 마치지 않은 18세의 고 3학생들을 선거판으로 끌어내는 일이 올 4월 총선에 도입된다고 하니 미성년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요? 어른들은 약속도 못 지키고 위선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인들이 바로 우화(寓話)속의 소경인 것입니다.
올해 설 명절은 토요일이 설날이라 월요일이 대체공휴일로 나흘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우리민족의 전통명절은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시기로 오랜 세월 전통 민속명절이라 자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추석과 설은 귀성전쟁이라 할 정도로 사람을 짐짝처럼 취급하던 50 ~ 60년대에 비하면 교통기관과 도로가 많이 좋아져서 자가용을 타고 고향을 찾아가는 행렬을 보면 전통문화가 대하(大河)처럼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종가의 종손들은 귀성행렬에 함께 할 수 없다. 지금은 중년이 된 딸이 어린 시절에"아빠 우리는 언제 명절 쇠러가요·"하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 때때옷을 입고 선물을 들고 귀성나들이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중과세를 막으려고 정부에서 신정을 쇠도록 강제했었다. 차례를 지내고 학교에 등교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민속명절인 추석과 설날은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휴일과 겹치면 대체공휴일까지 만들어 쉬게 하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가정마다 가족제도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 다른 변화는 가족제도가 허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독주택에 대가족이 모여 살다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부터 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3대가 함께 살던 시절에는 밥상머리교육을 하며 가문의 전통과 가풍이 이어져 왔는데, 오늘날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하여 따뜻한 가족의 정을 느끼지 못하며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집안에서도 각자의 방에 들어가면 가족과의 대화가 사라지고 만다.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핸드폰이 사람과 사람의 정을 이어주는 대화를 단절시키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심지어(甚至於) 젊은 세대들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도 대화를 말이 아닌 문자로 한다고 하니 인간이 기계문명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농경사회에서는 설 명절에 가족이 모여 윷놀이를 하면서 화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척사대회를 하며 이웃의 정을 느꼈고 농악놀이를 하며 흥겹게 명절을 즐기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 집은 설날 저녁이 되면 집안이 떠들썩하다. 그 이유는 아내의 생일이 설 다음날이기 때문이다. 신혼 초에는 아내 생일을 맞아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식당이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와서 명절음식으로 대신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결혼하여 손자를 데리고 사위까지 찾아오면 완전 잔치분위기로 보낸다. 지난 해 혼인한 며느리가 들어와서 맞는 첫 생일이라서 더욱 좋아하였다. 식당도 명절대목을 보려는 집이 많아서 생일이 너무 좋은 날이라며 좋아한다. 평일이 생일이면 미리 주말에 앞당겨서 생일을 해먹는데 아내 생일은 매년 휴일인데다가 명절음식도 풍성하고 형제 조카들까지 참석하여 매년 환갑잔치를 하는 기분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중화요리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몰려와 뒤풀이 까지 하며 매년 온 가족의 축하를 받으니 좋은 날에 태어났다고 말해주면 이제는 좋아한다. 설 명절은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면서 조상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가족의 소중함을 온정으로 느끼는 시기이다. 설 명절에는 온 가족이 한복을 입고 모여앉아 가족 간의 호칭이나 훌륭한 조상의 얼을 본받고 조상님의 업적을 전해주며 가풍을 이어가는 화목한자리를 마련하는 가정의 모습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 명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