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우리 곁에 왔음을 실감하는 꽃들이 서로 앞 다투며 산과 들을 물들이고 있다. 진달래가 수줍어 반겨주던 산책길! 호숫가 도로 절벽을 물들인 노란 개나리 군락을 바라보면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된다. 벚나무의 불그스레한 꽃망울이 터져 화사한 희망의 봄을 알리는 전령(傳令)이 되고 있다. 매년 봄나들이 축제였던 벚꽃축제는 코로나로 올해도 열리지 못해 아쉽다. 청순함의 상징인 백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연두색 잎이 싱그러운 버드나무, 야산에 자리한 복숭아꽃과 산 벚나무도 꽃망울을 터트려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농부들의 일손이 바삐 움직이는 생동감이 보이기 시작한 계절이다. 시간이 나면 아내와 함께 찾아가는 문경새재 관문 흙길을 걷기로 했다. 수옥(漱玉)폭포를 아래로 하고 조령산휴양림 입구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간 오르막길을 걸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은 얼음 녹은 연못가로 나와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었다. 골짜기 눈 녹은 물이 나무 홈통을 타고 흘러내려 겨우내 멈추었던 물레방아를 돌리는 모습은 여유(餘裕)를 누리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인 듯하다. 3관문을 넘기 전까지는 충북 땅인데, 예전에는 문경 땅은 산책 겸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지만, 최근에 충북도에서 등산로에 좋은 흙을 깔고 길을 정비하여 이제는 문경 쪽 보다 더 잘 만들어 놓았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한겨울에도 화장실 난방을 하여 등산객을 감동케 하였고 휴양림 입구에 먼지를 털 수 있게 공기샤워기를 설치하여 너무 편리하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는 휴지 한 장 보이지 않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어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며 건강을 다지는 좋은 장소이다. 오르막이라 쉬어 갈 수 있는 야외용 탁자시설이 두 곳이나 있고 옛 선비들이 이 길을 지나며 지은 한시도 원문과 번역문을 게시하여 과거 길의 흥취를 느끼게 하였다. 고개에 올라서니 석조 선비 상이 보였다. 팔각정 정자와 잘 다듬어진 정원엔 백두대간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고갯마루에 쌓은 성벽의 중심엔 3관문이 우뚝 자리 잡고 있다. 관문을 통과하니 영남의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다. 이제 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어 좋다. 좌측에 있는 주막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흙길이 촉촉하여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기온이 차서 맨발걷기는 아내가 말렸다. 곳곳에 쉬어갈 수 있게 원두막을 만들어 놓아 좋았다. 옛 선비들이 과거보러 가면서 목을 축이던 주막이 눈길을 끌었다. 아늑한 곳에 위치한'동화원'주막에 들어섰다. 파전에 동동주를 시켜놓고 구석에 자리 잡았다. 산속 주막에서 동동주 한잔에 파전을 먹는 운치는 선비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라면도 맛있게 끓인다하여 시켜서 점심을 때우니 별미였다. 조금 걷다보니 흙길 양 옆으로 봄눈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발장단을 맞춰주었다. 숲속의 흙길을 걸으며 졸졸졸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힐링 하는 장소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새재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중간 중간에 좁은 옛 과거길이 있어 걸어 보았다.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을 가는 길이었던 하늘재가 있었는데 새로 지금의 관문 길을 만들어 새로 만든 재라고'새재'라 이름 붙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 이름으로 바꾸다보니 새 조(鳥)자와 고개 령(嶺)자를 넣어 조령(새재)이 되었다고 한다. 일제의 수탈(收奪)흔적이 소나무에 남아있다. 서로 다른 나무가 얼싸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나무도 사랑을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옹달샘에서 시원한 지하수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되돌아오며 자연의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느꼈다.
지난주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마을금고 이사장을 31년간이나 이끌어오다가 지난해 퇴임을 하고 개인사무실을 열고 지인들과 만남의 장소로 노후를 즐기며 사시는 분이다. 퇴임 후 어깨와 디스크 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위문 전화도 못 드려서 반갑지 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시간이 되면 점심이나 함께 하자는 전화를 받고서 시내로 나가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전화 오는데도 뜸한데 점심초대를 받으니 뿌듯함이 설렘으로 다가왔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 그 자리에는 시의회 의장을 지내신 분과 향교 전교님이 계셨다. 격식을 갖추기 보다는 소탈하신 분이라 대화는 화기애애하였다. 20여분 대화를 나누다가 손수 운전을 하며 식사장소도 알려주지 않고 시내를 벗어나 탄금호가에 자리 잡은 아늑한 음식점에 도착하였다. 인근 골프장에 오는 손님이 많은 곳으로 맛있는 장어구이로 점심을 대접받았다. 제천 금성면 양화리에서 태어나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만 졸업하셨다고 한다. 근면 성실한 성품으로 점원, 국수공장, 밀가루 배달, 미곡상, 운수회사, 양곡보관업, 도정공장, 맥주 소주공장, 서울잠실의 상가, 아파트 건설업, 삼성면 대소과수원 등 다양한 사업을 하며 자수성가하신분이다. 젊은 시절의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불굴의 의지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실패담도 본받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모친과 네 식구가 좁은 단칸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 헛간에서 가마니 넉 장을 깔고 석장은 이불로 덮고 자다가 영하 15도의 추위에 발에 동상이 걸려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며 온갖 고생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운전을 하면서도 동승자 모두가 웃음이 터지는 농담을 하시는 모습은 삶의 고비를 여러 차례 겪으며 터득한 노후의 인생을 즐기는 분이다. 돌아오는 길에 호숫가에 자리 잡은 광활한 정원에 소나무를 비롯하여 회나무 느티나무 등의 귀한 조경수를 관람하고 왔다. 전원생활을 부러워하고 감탄을 연발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그 분에게서는 권위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람사귀기를 좋아하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다. 마을금고를 운영하면서 직원의 대형금융사고의 충격으로 쓰러지기도 하였다. 10억의 보험금 외에 부족분은 사비로 대납을 하며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하였다. 매년 총회 때는 관내 초중고에 발전 기금을 3억이 넘게 충주교통대학에 매년 1천 만 원씩 1억을 기증했다. 고향 양화리에 40년간 5백만 원씩 약 2억을 지원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오셨다. 배움에 한이 되어 한학(漢學)을 하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노력도 남다른 분으로 한국 교통 대에서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고향 금성초등학교 은사님 다섯 분을 30년간 매년 스승의 날에 찾아뵙고 식사를 대접한 다음 금일봉을 드리며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스승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일화는 만인의 귀감이 되는 모범사례이다. 31년간 금고를 이끌며 한 번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았고, 임직원의 근무복, 회식을 사비로 제공했으며 인근 호암지 공원에 부부가 함께 8년간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쓰레기 시설물설치비로 천만 원을, 금고 임직원과 8년간 쓰레기를 치우며 자연보호 활동을 한 분이다. 좀 도리 운동으로 30년간 불우이웃돕기를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이러한 베푸는 삶을 보고자란 자녀들도 대학교수, 의사, 약사 등으로 활동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오신 가장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 분의 항상 이웃과 함께한 삶이 멋있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옛날에 한 노인이 민들레란 소녀와 단 둘이서 살았다. 노인은 칠십이 넘어서 허리가 활 같이 구부러졌지만 아직도 기력이 정정하여 들로 다니면서 일을 하였다. 그래서 두 식구는 먹을 양식을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손녀딸은 나이가 열일곱 살로 꽃봉오리처럼 피어오르는 처녀가 되어 욕심을 내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욕심을 내는 사람 중에는 '덕'이라고 부르는 떠꺼머리총각은 노인의 손녀딸을 아내로 삼고 싶어서 열렬히 사모하고 있었다. '덕'이는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다가 운이 좋아서 민들레와 마주치면 몸 가눌 바를 모르고 나무 지게를 쓸데없이 두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덕'이는 민들레의 생각으로 병이 날 지경이었다. '덕'이는 이렇듯 그리움 속에 애틋하게 원하던 민들레와 생각지도 않게 한집에 살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노인의 집은 냇물과 가깝기 때문에 조금만 비가와도 집으로 물이 들어왔다. 그런데 오랫동안 장마로 온통 물바다가 되어서 노인의 집이 떠내려 갈 지경이 되었다. 그대서 '덕'이는 노인에게 자기 집으로 피난을 오라고 권고하였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손녀딸을 데리고 '덕'이네 집으로 피난을 갔다. 민들레와 한집에서 살게 되자 '덕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민들레를 자기 품에 안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이제 둘 사이는 남남이 아니었다. '덕'이는 사람이 성실하고 근면하여 혼례식을 치루 지는 않았지만 노인을 모시고 민들레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양식은 언제나 넉넉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 즈음, 나라에서 처녀를 뽑아 간다고 마을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였다. 얼굴이 반반한 처녀를 무조건 잡아 가는데 민들레 아가씨도 뽑혀가게 되었다. 군졸들이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하자 덕이 와 노인이 길길이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민들레는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마침내 그녀는 가슴에 품었던 푸른 비수(匕首)를 꺼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 죽고 말았다. 그녀가 자결을 하자 그 곳에서 난데없는 꽃 한 송이가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사랑을 못 다하고 죽은 민들레의 넋이 꽃으로 되어 피었다고 민들레꽃이라고 불렀다는 박영준의'한국의 전설'이라는 책에 애틋한 사연이 담긴 이야기가 경주지방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말은 한 남자를 위해 사랑을 변치 않는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이다. 즉 한결같은 참된 정성(精誠)으로 변(變)치 않는 마음을 오로지 한 곳으로 향하여 진정(眞情)에서 우러나오는 지조와 절개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숭고함을 표현한 고사 성어(故事成語)이다. 이러한 깊은 뜻이 있어 드라마나 노래가사에도'일편담심 민들레'가 등장하는가 보다. 전통유교 사회에서는 목숨과 맞바꾸는 지조와 절개의 덕목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음을 볼 때 인간의 인륜도덕이 무너졌다는 한탄의 목소리도 힘을 잃어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도덕적 규범이나 규정 또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도 부끄러움도 전혀 없이 뻔뻔하게 욕망을 앞세워 합리화를 주장하며 목적을 쟁취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통사회에서는 부모가 맺어준 배우자와 혼인을 하여 백년해로를 하는 반면에 수년 동안 연애를 하고 선택한 배우자와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법원에 이혼을 전담하는 판사와 변호사가 있을 정도라면 신뢰로 살아가는 사회라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중요한 가치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일편단심의 정신적인 가치가 중요시 되는 사회가 마음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천국(天國)이 아닐까?
오늘이 음력으로 정월 열 이튼 날이다. 우연히 '숫자 12의 신비'라는 글을 읽어보니 우주천체와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12간지에 맞춰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었고, 일 년도 열두 달로 나누었다. 숫자 12는 '우주의 질서'와 함께 '완전한 주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알고 보면 이것저것 신기한 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 역시 오전과 오후로 12시간씩 나뉘어져 있다. 이는 태양의 궤도를 상징하는 원을 30도씩 12등분하고 각각의 기점에 12개의 별자리를 붙인 조디악(Zodiac) 즉 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과 관련이 있다. 시계가 원형인 것은 해와 달의 원 운동을 본뜬 것으로 원에 같은 각도로 10개의 점을 찍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12개를 찍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12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숫자로 간주돼 왔다. 그리스 신화의 신은 모두 12명이고 인도 경전 베다에 등장하는 주요 신도 12신이다. 예수의 제자도 12명이다. 동양에서는 십간(十干: 甲乙丙丁…)열자와 간지(干支)십이지(十二支 : 子丑寅卯…) 열두 자를 결합하여 육십갑자를 만들어 나이를 말할 때 ○○생으로 표현하고 태어난 해가 돌아오는 60주년을 회갑(回甲)또는 환갑(還甲)이라 하여 잔치를 하였다. 12간지로 동물의 띠를 만들어 십이지상(十二支像)이라 한다. 전 세계에 가지를 뻗친다는 북구 신화의 우주수(宇宙樹, 이그드라실)의 12과실, 아서 왕의 원탁의 기사 12명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12에 1이 더해진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겼다. 우리 생활 주변에도 12를 차용한 사례가 많다. 피아노 건반은 한 옥타브가 12개의 반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축구공은 20개의 흰색 정육각형에다 12개의 검은색 정오각형이 더해졌다. 연필 1다스도 12개, 키보드의 기능키도 F1~F12까지 12개이다. 영국의 작가 조너단 스위프트가 발표한 '걸리버 여행기'에서도 숫자 12를 찾을 수 있다. 걸리버의 키가 소인국 사람의 12배 정도 크다는 것이다. 한 해의 12월과 9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되며, 12월과 4월은 같은 요일로 끝난다는 점도 재미있다. 올해 2021년 12, 9월은 수요일부터 시작됐으며 12, 4월은 금요일로 끝나게 돼 있다. 12월이면 생각나는 음악이 있는데 해마다 겨울이 되면 캐럴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December(1982)' 앨범이다. 한자문화권에는 12개의 '띠'로 그해를 표시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왜 띠는 12년 주기로 반복되는가? 목성(木星)의 공전 주기가 12년이기 때문이다. 목성은 대략 12년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돈다. 그런데 이 목성은 태양계 행성 가운데서 크기가 가장 크다. 크기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인력(引力)도 비례해서 크기 마련이다. 해와 달 다음으로 지구에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별이 목성인 것이다. 목성이 어느 방향에 있느냐에 따라 지구에 미치는 미세한 영향력이 각기 다르다. 12지(支)는 목성의 공전 주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목성을 세성(歲星)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즉 바꾸어 말하면 12개의 띠는 목성이 있는 위치를 가리킨다. 말띠 해에 태어나고, 태어난 시도 말시(午時)인 팔자는 탄도치마(坦道治馬)라고 해서 '탄탄대로를 말 타고 달리는' 팔자로 보는 것이다. 12란 숫자는 반복되는 우주의 순환의 원리가 담긴 완벽한 숫자라고 하고 기독교에서는 '12'란 숫자를 매우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완전' '완벽'과 더불어 '축복'의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내일 모레면 민족고유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된다. 송편이 추석음식이라면 만두는 설 명절음식으로 차례(茶禮)상에 오른다. 만두는 제갈공명의 남만(南蠻)정벌 때문에 생긴 음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명(孔明)이 포로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늘까지 속여 가며 만들었다는 음식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남만 정벌을 끝내고 철수하는 도중 노수(瀘水)라는 강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풍랑(風浪)이 거세지면서 군대가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현지 원로(元老)가 억울하게 죽은 원혼(·魂)이 노(怒)해서 그런 것이니 마흔아홉 명의 사람머리를 베어 제사(祭祀)를 지내면 바람이 잔잔해지고 풍랑이 멎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 또 살생할 수는 없다며 밀가루를 반죽해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소와 양고기를 채워 강물에 던져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강물이 잔잔해져 군사들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속설(俗說)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만두의 한자(漢字)도 오랑캐 머리인 만두(蠻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만두에 관한 이야기가 구전(口傳)으로 전하는 속설이 또 하나 있다. 교자(餃子)만두의 유래(由來)로 한나라 말기 의사인 장중경(張仲景)이 추운 겨울 동상(凍傷)으로 귀가 떨어지는 백성을 가엾게 여겨 귀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뜨거운 국물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뜨거운 만두를 먹고 속이 따듯해지니 더는 동상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흥미로운 것은 공명의 만두, 장중경의 교자만두 모두 생명을 구한 음식으로 그려져 있다. 만두가 만들어진 전설에 이렇게 인간미를 담은 까닭은 만두의 출현 시기인 3세기 무렵이다. 삼국시대가 끝난 후 진(晉)나라 때 속석(束晳)이라는 사람이 쓴《병부(餠賦)》에 만두가 처음 나온다.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에 만두를 차려놓고 연회(宴會)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제갈공명과 장중경이 살던 당시는 중국에서 밀가루 음식이 본격적으로 발달한 때다. 다량의 밀가루를 갈 수 있는 연마(鍊磨)도구가 개발되면서 밀가루 음식이 발달하였다. 만두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야기에 휴머니즘이 담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3세기 사람들은 보통 기장, 수수를 먹거나 잡초에 가까운'피'를 곡식으로 먹었다. 그런데 부자나 귀족들이 곱게 빻은 밀반죽에 고기를 싸서 먹는 것을 보고는 아픈 사람도 병이 낫고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올 정도로 좋은 음식이라고 여겨 설날 만두를 먹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시 만두는 너무나 귀한 음식이어서 하늘에 바치는 제물로 쓰였다. 《事物紀原》에서 만두는 정월 제사에 제물로 놓는다고 했고 《병부》에도 만두는 정월에 먹는 음식으로 나온다. 봄의 시작은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에 맞춰서 잔치를 열고 만두를 빚었다. 2천 년 전에 만두는 귀한 음식이었기에 음양이 교차하는 시절인 새해 첫날 하늘에 제사를 올린 후 복을 빌며 먹었던 음식이다. 어린 시절 설 전날에 아낙들이 모여앉아 만두를 빚었는데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만두 소(蔬)를 김장 배추김치를 썰어 매콤한 고추도 함께 넣었기 때문에 못 먹었던 기억이 있다. 만두와 가래떡을 썰어 넣어 설음식으로 먹으며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하는 시절(時節)음식이다. 코로나 19로 설 명절이 예전의 명절분위기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가족이 식당을 갈 수도 없다. 귀성행렬도 줄어들 것이고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들도 못 오게 하니 민속명절이 되어도 인륜의 정(情)마저 끊어버리는 설 명절을 보내야 되겠다.
코로나 19가 1년이 넘게 진정기미(幾微)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층간소음문제가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고 집안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뛰거나 장난치는 아이들만 꾸짖는 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장난꾸러기 유치원생과 초등 저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는 딸의 아파트에 가보면 현관부터 거실전체가 마치 체조경기장 같다.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아파트인데도 두꺼운 매트리스를 깔아 놓아 층간소음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고 있는데 공동주택인 아파트건축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연립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는 소리를 소음공해라 정의한다. 공동주택 층간소음 방지기준을 보면 층간소음의 범위는 직접충격 소음과 공기전달 소음이 있다. 직접충격 소음은 뛰거나 걷는 동작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며, 공기전달 소음은 TV나 음향기기(音響器機) 등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이다. 단, 욕실이나 화장실, 다용도실 등에서 급수나 배수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은 층간소음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2014년 제정된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직접충격 소음과 공기전달 소음으로 나뉘며'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막기 위해 공동주택의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는 210mm 이상, 라멘구조의 공동주택은 150mm 이상이어야 한다. 로 규정하고 있다.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를 규정했어도 그 이후에 지은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직접충격 소음의 층간소음 기준은 1분간 등가소음도가 주간 43dB(데시벨), 야간 38dB이며 최고 소음(騷音)도는 주간 57dB, 야간 52dB이다. 공기전달 소음의 층간소음 기준은 5분간 등가(等價)소음도가 주간 45dB, 야간 40dB이다. 공동주택의 입주자는 「주택법」에 따라 층간소음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로 되어 있다. 「주택법」제44조의2에서는 층간소음으로 피해를 본 입주자는 관리 주체에게 층간소음 발생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층간소음문제로 관리주체가 개입한 이후에도 층간소음이 계속된다면 피해를 본 입주자는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나「환경분쟁조정법」에 따른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으나 모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층간소음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세대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아이들을 뛰지 못하게 단속을 하는 것이다. 완벽한 방음시공을 하면 해결 될 일을 아이들에게 주의만 주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층간소음문제로 다툼이 일어나 감정이 앞선 폭력 사태로 번져 심한 경우는 살인까지 일어나지 않았는가?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새로 짓는 아파트에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는 아파트 업체의 기본건축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층간 소음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방음(防音)이 되도록 방음재를 넣어 시공을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건축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라면 이는 기업윤리의 문제이다. 전국의 모든 아파트의 공통된 문제인데 층간소음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 아파트를 지으면 된다. 사생활의 침해를 막을 수 있고 공동주택에 살아도 이웃 간에 정(情)이 더 두터워 질 텐데도 과연 해결할 수 없는 일인가?
우리 인간은 생태계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고,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은 하늘의 기운인 공기로 호흡을 하고, 땅의 기운인 물과 흙에서 자라는 곡식과 채소 등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들은 먹이사슬로 균형을 유지하며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균형을 이룬 먹이 사슬이 무너져서 고라니와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도심까지 내려오는 현상도 생태계의 교란이라 할 수 있다.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하여 지구의 기후에 이상 현상으로 온난화가 발생하여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이다. 공장의 매연 가정의 난방과 전자제품사용, 자동차의 증가 등이 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에 고등동물인 사람들만 유일하게 도구를 사용하여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시화가 가속되었고,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발명되어 자연은 몸살을 앓기 시작하였다. 도로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 도시를 만들면서 자연을 너무 많이 훼손시켰기 때문에 자연은 몸살 수준을 넘어 중병에 걸렸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은 대가로 미세먼지를 다시 우리 인간이 마시게 되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막으려고 마스크를 썼는데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못하게 하여 경제는 물론 모든 일상이 엉클어지고 인간의 삶을 교란시키고 있다. 코로나 방역으로 학생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못 받고 온라인학습을 해야 되고, 졸업식과 입학식도 못한 채로 비정상이 지속되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모든 행사와 모임은 취소되고 혼례와 상례(喪禮)도 극소수의 인원으로 치러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정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어 사람과 사람이 코로나를 의심하며 인간의 따뜻한 정이 멀어져가고 있다. 마스크를 하니 사람을 알아 볼 수도 없고 대화도 조심스러워 답답함을 호소하며 우울증에 시달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날씨까지 추워지면서 코로나는 더 극성을 부려 하루 확진 자가 천명을 넘어 섰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올리지 못하는 답답한 처지에 처해있다. 코로나 백신개발은 되었다는데 봄철이 되어야 공급이 될 것 같다는 늦장 대처에 하루하루가 답답하고 불안과 고통 속에서 한해를 넘겼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아 서글프기만 하다. 코로나는 편리함만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불러들인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생태계의 교란을 넘어 반란(反亂)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로 인간에게 보복을 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인간이 받는 고통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날아다니는 새는 물론 호랑이와 사자도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집을 짓고 살지 않는다. 말 못하는 생태계 입장에서 보면 도구를 만들어 문화생활을 하는 인간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동물들은 털로 몸을 보호하는데 인간은 옷을 만들어 입고, 자동차, 기차, 배와 비행기를 만들어 전 세계를 여행하며 각종 동물의 고기의 맛을 즐기기 위해 잡아먹고 있지 않는가· 생태계 속에서 인류가 영원히 살아가려면 욕심을 줄여야 할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며 문명을 누리면 대자연의 반란도 멈추지 않을까·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고 말로만 하지 말고 원시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더라도 더 이상의 생태계훼손을 하지 않는 것만이 자연에서 받고 있는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코로나 시국이 한파로 인해 극심해져서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으면 난감한 입장에 처한다. 대부분 우편이 아닌 SNS로 통보가 오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2.5단계 상태에서 참석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참석이 어려움을 감안하여 상가(喪家)의 호상(護喪)이 계좌번호를 함께 보내어 조위금을 보내는 것으로 문상(問喪)을 대신하기도 한다. 혼인의 경우 친인척의 연락을 받고는 망설이게 된다. 지난 12일 사촌처남이 며느리를 본다는 연락을 받고 아내는 고심을 하다가 얼굴이라도 보고 오자며 출발하였다. 신랑이 고모가 없다는 핑계 속에는 친정의 가족들을 보고 싶어 하는 아내의 마음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가친척의 애경사에 가야 만나는 것이 전래풍속인데 반가움은 너무 당연하다. 마스크를 하고 인사를 하니 단번에 못 알아보겠다. 안부를 물으며 악수도 조심스러웠다. 체온 체크를 하고 참석자 기록을 남기고 삼삼오오 모여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친인척만 초청을 해서 단출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는 좋았다. 예식장이 돔 형식으로 기존의 예식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명은 어둡고 혼례진행 내용이 천정 벽에 화면과 자막으로 볼 수 있어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전통혼례는 저녁에 신부 집 마당에서 예식을 치러 혼(婚)자는 여(女)자와 어두울 혼(昏)자 결합하여 만들어 졌다. 전통혼인식의 첫 번 순서로 신랑이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을 전안례(奠鴈禮)라 하는데 기러기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덕목을 본받자는 뜻으로 첫째, 기러기는 사랑의 약속을 영원히 지킨다. 보통 수명이 150-200년 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둘째,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을 하여 예를 지킨다고 한다. 셋째,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어 자식을 낳아 기른다. 이러한 기러기를 본받아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기러기를 놓고 예를 올리는 조상의 지혜는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신랑 신부가 맞절하는 교배례(交拜禮)의식은 지금도 하고 있고, 신랑 신부가 한 표주박을 둘로 나눈 잔에 술을 따라 마시는 합근례(合巹禮)는 부부의 화합을 의미한다. 표주박은 그것이 반으로 쪼개지면 그 짝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게 되며 그 둘이 합쳐짐으로써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신랑가족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폐백(幣帛)례는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주례 없는 혼례가 점차 늘어나서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은 예식의 도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주례로 모실만한 분이 없다는 것도 이유겠지만 인생의 스승이 없다는 것도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빠르게 변모하는 혼례를 보면서 남녀의 인연으로 맺어지는 깊은 의미는 점점 사라지고 편리함만 추구하는 경솔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옛 사람들은 부모가 짝을 정해주면 얼굴을 보지 않고도 혼인을 하여 백년해로(偕老) 했는데 자신의 짝을 찾아 연애를 한 다음 혼인한 부부들이 왜? 이혼이 그리 많을까? 기러기만 닮았어도 이혼하지 않고 잘 살 텐데 말이다. 결혼상대를 선택하는 데는 본인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살아 본 부모나 어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표주박의 반쪽 짝을 찾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더 큰 사회적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듯이 관혼상제(冠婚喪祭)도 그 본연의 의미까지 저버리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24절기에 입동을 전후하여 5일간에 김장을 담그면 가장 맛이 있다고 하여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겨우내 반찬으로 먹기 위하여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배추로 김치를 많이 담그는 것을 김장이라 한다. 어원을 찾아보면 한자어로 침장(沈藏)이라 했는데 짐장, 김장으로 변했고, 김치도 침채(沈菜)에서 딤채, 김채로 변하여 김치가 되었다. 배추도 백채(白菜)가 배차, 배추로 변했고, 무(蔔:복)도 무꾸, 무수, 무우, 무로 변했다. 총각무도 한자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옛날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받은 모발(毛髮)을 함부로 자르지 않아 아이들은 댕기머리를 하다가 성인이 되기 전에 짐승의 뿔처럼 양쪽머리를 묶었는데 한자로 묶을 총(總),뿔각(角)자를 써서 총각(總角)이라 했다. 무 모양이 총각의 묶은 머리모양과 비슷하다하여 총각무라 하는 것이다. 나박김치도 원래 나복(蘿蔔: 무를 썰어 담근)김치인데 변음 되어 나박김치라 한다. 김치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제133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런 김장문화는 비닐하우스나 냉장고가 없었던 농경사회에서 춥고 긴 겨울동안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없어 발효식품인 김장을 장독에 담아 땅에 묻었다가 먹었던 문화이다. 요즈음은 대부분 아파트가 주거공간이 되어 김치냉장고에 저장하여 먹는 문화로 바뀌었고 비닐하우스에서 사계절 채소가 공급되고 다양한 반찬재료가 공급되기 때문에 김장을 예전처럼 안 담그는 가정도 늘어가고 있다. 재래시장에서 산더미처럼 배추를 쌓아놓고 팔았고, 우물가에서 배추를 씻어 절이는 아낙네들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절임배추를 하는 농가나 농협이 이를 대신 해주기 때문에 양념만 준비하여 버무려서 저장하는 모습으로 김장문화가 변모되었다. 우리 집 김장 문화도 이웃 또는 지인과 품앗이로 김장을 해오다가 지난 해 부터는 가족이 모두 모여 하고 있다. 온난화 현상으로 입동이 지나고 2주후인 지난달 21일에 김장을 했다. 일주일 전부터 고춧가루, 마늘 까기, 쪽파 다듬기를 하는 아내를 도와주었다. 금요일 늦은 시간에 딸, 사위, 아들, 며느리가 도착하여, 아침에 절임배추를 사오는 동안에 무 채썰기, 갓 썰기, 양념버무리기 등을 하였다. 절임배추 다섯 박스를 열어보니 노란 배추 속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위들까지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버무림 비닐방석 주위에 둘러앉아 배추에 양념 속을 넣는 모습은 김치축제에 참석한 아이들 같았다. 2학년짜리 외손녀도 사이에 끼여서 제법 잘 따라하는 모습은 앙증맞기 까지 했다. 양념을 묻힌 겉절이를 보면 군침이 넘어간다. 중간 휴식 시간에 돼지고기 수육을 얹은 속대쌈을 입에 넣고 먹는 모습은 미풍으로 전해지고 있어 축제분위기였다. 가족이 함께 모여 공동의 일이나 체험을 하면서 가족애도 느끼고 그 동안의 이야기도 나누며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장을 마치고 햇김치를 쌀밥에 수육을 얹어 볼이 터져라 푸짐하게 먹는 모습만 보아도 아내는 좋아 한다. 인천 사는 딸이 주문한 택배박스를 여니 가리비와 홍합, 꼴뚜기, 굴 등 해물을 먹으며 가족 캠프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오래전 서유럽 여행을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파리에서 열차로 스위스로 넘어 갈 때 여행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내어 열차의 좁은 공간에 들어가 창문을 닫고 몰래 숨겨온 김치를 꺼내어 먹으려는데 김치의 특유의 냄새가 열차 안에 퍼져나가 창피를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라면과 김치의 조합이 허용이 되지 않았던 일화로 한바탕 웃었다. 김장은 한국 민족의 가을철 월동풍습 가운데 매우 정겨운 문화라는 것을 느꼈다.
노자(老子)는 중국 제자백가(諸子百家)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로 생몰(生沒)의 기록이 없고 BC 6세기경에 활동한 도덕경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넬슨 만델라(1918~2013)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권운동가이며, 27년간 수감생활을 한 후 흑인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노자의 사상을 실현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남아공에서는 물론 전 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로 알려졌다. 2천여 년이 넘는 시간 격차가 있으며 공간적으로도 아프리카대륙에서 태어나 활동한 인물인데 마치 스승과 제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델라의 주요경력을 보면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회장,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에 맞서 운동을 벌이다가 1962년부터 수감생활을 했다.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와 동시에 석방되어, 흑인들의 투표권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제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남아공을 이끌었다. 흑인인권운동을 비롯하여'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위해 비폭력 저항운동, 무장투쟁운동을 전개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수많은 흑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남아공에서 투표로 선출된 첫 번째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백인사회에 대한 보복을 하지 않고 화해와 평화, 단합을 주장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과거사를 정리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후에도 에이즈 퇴치, 어린이 교육,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1927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템 부족 왕의 후원을 받아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어대학에 진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았다. 변호사가 되어 흑인차별정책에 대한 민주화 운동을 했고, 1964년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1990년 석방되기 전까지 장장 2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만델라는 흑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 교육, 경제개발계획도 도입했다. 그는 1999년 임기를 마치고 그해 6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노자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僞自然)에 있으며, 그것이 '도'(道)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무위'는 우주론적 정향(定向)을 지향하는 것, 즉 부자연스런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노자는 통치자의 도를 지키는 통치술에 대해 도는 언제 어디서나 두루 작용하여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대가를 바라는 일은 없다. 통치자야 말로 바람이 없는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의 통치여야 한다고 했다.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로 결정 된다. 따라서 넬슨만델라의 진정한 위대성은 "겸허하고, 소탈한 삶의 자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사로운 복수나 개인적인 축재보다 무조건적인 헌신과 국가적 화해의 길을 택했다는 점이 노자가 말하는 통치자라 할 수 있다. 노자는"어떻게 해야 통치자의 권력을 축소 제한할 수 있을까?"겸허한 통치와 욕망의 절제, 전쟁의 최소화, 형벌의 간소화 등의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백성에 대한 노자의 시각은 대단히 따뜻하고 호의적이며 박애정신이 넘친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남에게서 얻고 싶으면 그에게 먼저 주라고 하였다. 도는 이름을 얻으려하지 않고, 공을 이루지만 그 명예를 얻고 명성을 가지려 들지 않는다고 했다.'만델라'는 사사로운 감정을 절제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낮은 데에 임하며 남을 앞세우며 수많은 고통조차도 감사하게 여기며 항상 웃음을 띠고 있는 얼굴에는 악의나 그늘이 없는 부드러움과 사랑이 넘치는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주말 오후에 단풍구경 겸 집근처 등산로를 혼자 걸었다. 잘 다듬어 놓은 공원길을 지나 오솔길 등산로를 걸어가니 낙엽이 뒹구는 가을 운치(韻致)를 느낄 수 있었다. 서 충주신도시는 숲이 우거진 야산으로 둘러싸고 있다. 산책 겸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등산로를 네 곳이나 만들어 놓았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고, 비탈길은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정상에는 전망대 또는 팔각정을 만들어 쉬어갈 수 있게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놓아 주민의 건강관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올라가고 내려가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오솔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파른 길에는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계단 길을 걷지 않고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다닌 갓길이 생겼다. 나도 갓길을 걷는 것이 훨씬 편해서 자주 이용하고 있다. 산길을 걸을 때는 보폭이 좁아지고 발을 높이 들어 걷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규격화 해놓은 계단보다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갓길을 사람들은 선호하는 것 같다. 자치단체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등산로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용하지 않는다면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을 무위(無爲)라 한다면 규격화 된 계단을 만든 것은 유위(有爲)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국가는 국민을 다스리는 법과 규칙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지나친 규제는 도리어 불편을 주기도 한다.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던 원시시대부터 길은 생겼다. 누군가 지나간 길을 사람들은 걷기 시작하여 굽이굽이 길이 생겨난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며 편리함을 추구해 왔다. 수레로 짐을 실어 나르다가 자동차가 발명되면서부터 도로가 생겨났고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포장도로와 고속도로가 생겨나서 길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해 가고 있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하늘 길도 있고,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뱃길도 있는 것이다. 굽이굽이 돌아서 고개를 넘어가던 대관령(大關嶺)같은 큰 재도 직선으로 터널을 뚫어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새로 만드는 고속도로는 터널이 너무 많아 주변의 경치를 구경할 수 없다고 아쉬워한다. 일부러 경치가 아름다운 옛길 도로나 지방도로를 달리며 여행의 멋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자의 道자를'길 도'라고 하는데 길이라는 것은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길 말고도,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을 도리(道理)라 한다. 도가(道家)사상의 창시자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이라는 경전을 남겨 현대인들이 그 철학에 매료되어 서양에 까지 번역되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고 있다. 노자는"학문을 하는 길은 날로 더해가는 것이나, 도를 깨달아 가는 길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또 세상이 운행하는 본질적인 길을 하늘을 넘어서 스스로 그러함에서 찾고 있다. 도는 있는 듯, 없는듯하나 끝이 없으므로 삶에서 길을 얻는 것이 도(道)이다. 노자는"도도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크다."고 하며 도는 현묘(玄妙)하다고 한다. 지금은'바른생활'로 바뀌었지만 종전의 교육과정에서는 도덕과목을 중요시 하였다. 도는 진리이고, 덕은 실천이므로 진리를 알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도덕(道德)이다. 우리가 길을 통해 오고가듯이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있고 살아가는 길이 있다. 도는 어머니처럼 해 줄 것은 다해주면서도 조용히 이름도 모르게 받들어 줍니다. 마치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으며 생명을 유지해주지만 맛도 없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다하지도 않는 것이 도(道)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길이라 합니다.
574돌 한글날이 금요일이라서 사흘의 연휴를 만들어주었다. 연휴가 끝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1단계로 낮춰져서 정말 다행이다. 코로나로 답답한 가운데 우리의 한글이 2회 세계문자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세계 문자 학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열린 2회 세계문자 올림픽대회에서 한글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계 문자올림픽 대회에는 한글, 영어, 러시아, 독일 등 27개국의 문자가 경합을 벌였다고 한다. 각국 학자들은 대회에서 30여분씩 자기나라 고유문자의 우수성을 발표했다. 문자 올림픽 심사기준은 문자의 기원, 문자의 구조와 유형, 글자의 수, 글자의 결합능력, 문자의 독립성 및 독자성, 문자의 실용성, 문자의 응용 개발성 등을 기초로 평가됐다고 한다. 세계 문자올림픽은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 할 수 있는 문자를 찾아내기 위한 취지로 열린다고 한다. 한글은 16개국이 경쟁한 지난 2009년 대회에 이어 또 다시 1위를 차지하여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세계 문자올림픽에서 1위는 한국의 소리 문자 2위는 인도의 텔루구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한민족의 얼이 담긴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문화민족의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의 다양한 문자 가운데서 훈민정음에 밝혔듯이 창제 근거와 이유, 만든 날짜와 만든 사람이 밝혀진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고 한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께서는 스스로 필요한 글자를 만드는 자주(自主)정신,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 널리 글을 알려 사람들의 생활을 이롭게 하겠다는 실용(實用)정신이 녹아 있는 자랑스러운 글이다. 오늘날 한국은 한글 덕분에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는 세계문화유산 지정과 함께 세종대왕 탄신일을 세계 문맹퇴치의 날로 정했다. 소리글인 한글의 우수성은 발성기관의 구조를 본 따서 아(牙), 설(舌), 순(脣), 치(齒), 후(喉)로 닿소리를 만들고, ·(하늘), ㅡ(땅),ㅣ(사람)을 홀소리로 조합하여 낱말을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 있는 과학적인 글자라는 것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우리 한글이 훌륭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데도 어려운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남용하거나 신조어, 비속어 등을 부끄럼 없이 사용하는 것은 한글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우리 고유어를 많이 사용하고 우리글을 바르게 사용하여 언어를 순화하고 영어를 사용하며 우쭐대서는 안 되겠다. 쓰레기 소각장 시설을'클린 에너지 파크'라고 해야 하는가· 아파트 이름, 거리의 간판, 공공기관명칭 등에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1월 15일을'조선 글 날'이라고 기념하고 있다. 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에 음력 9월 상한(上澣)으로 기록되어 한글날을 정했다고 하는데 그레고리 역(曆)으로 환산하여 조선시대 사용했던 율리우스 역으로 계산하면 10월 17일이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니 정부에서는 역사적 기록을 점검하여 정확한 날짜로 바로 잡아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용어는 한자어인데 한글로 표기해서 그 뜻을 잘 모르는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매일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工夫)의 자의(字意)를 모르고 있다. 공부의 공(工)자는 만들어간다는 뜻이고, 부(夫)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람을 뜻하므로 자기수신(修身)을 통해 인격을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 공부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올 추석은 설렘도, 반가움도, 풍성함도 반감(半減)된 명절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일상생활 패턴을 헝클여놓은 코로나라는 미증유(未曾有)의 호흡기 역병(疫病)을 꼽을 수 있겠다.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만남을 제한하는 예방책으로 일상을 제약받다보니 웃고 즐기는 명절이 아니라 우울한 명절이 되고 말았다. 50여일의 최장(最長)장마와 태풍까지 세 차례 할퀴고 지나간 들녘에는 모든 작물의 수확이 줄었다고 농민들의 한 숨 소리만 들려오니 풍요로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모든 것은 자연재해로 일상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지원이 있었지만 이재민의 삶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늘만 원망할 수도 없고 자연재해의 원인 중에는 문명의 발전에서 오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들에게 거대한 자연이 미세먼지에 이어 질병과 풍수해로 보복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나뿐인 지구는 자손만대로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터전이고 자연환경이 아닌가· 늘어나기만 하는 에너지사용량은 지구온난화로 자연은 중병에 걸려 있는 것 같다. 지구는 이미 자정(自淨)능력을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문명의 발전이 조금 더디더라도 자연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예전의 농경사회는 지금처럼 잘 살지는 못했지만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민족 고유 명절이 닥아 오면 햇곡식을 수확하여 정성들여 송편을 빚고 음식을 만들어 조상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차례(茶禮)를 올리고 성묘(省墓)를 하고 농악대를 앞세워 온 동네사람들이 화합하여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결실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고유의 전통 민속놀이와 풍습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가 우리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편리함만 추구하며 민족의 뿌리인 전통문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떠한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자기용을 타고 다니며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며 심신의 정서(情緖)가 핍박(逼迫)해져 가고, 눈도 나빠지고 체격은 커도 체력은 떨어지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안타깝기 까지 하다. 부모나 학교에서는 자연을 찾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 주기 보다는 학원을 몇 개씩 보내어 자식만은 일등으로 키우려고 경쟁심만 키우며 부모의 욕심을 채우려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생각해 볼일이다. 36년간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정부수립의 혼란 속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50년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을 겪으면서도 조상의 유산인 고유민속명절은 지켜왔는데 말이다. 그 시절의 기록사진을 보면 열차와 버스에 짐짝처럼 몸을 싣고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의 모습은 자신의 뿌리인 조상을 숭배하고 고향을 아끼는 애향심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명절도 고향보다는 캠핑장이나 명승지를 찾아가는 인파가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 방역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국민이 명절에 이동을 자제하고 가정에서 보냈으면 좋겠지만, 호흡기로 전염이 되는 코로나는 밀폐된 공간인 노래방, PC방, 식당, 나이트클럽, 예배 장소 등에서 비말(飛沫)이나 손에 묻어서 전염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장소를 피하고 조심하면 될 것 같다. 한편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 된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여 연휴기간에 자연휴양림, 삼림욕장, 계곡의 산림이 울창한 캠핑장 등을 찾아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며 자연치유를 하도록 하여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은 도리어 권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도 한가위 날은 온 가족이 모두 모여 명절음식을 먹으며 구름 속에서 가끔 얼굴을 내미는 한가위 보름달을 구경하였다. 명절 다음 날 평소 주말과 연휴가 되면 캠핑을 자주 다닌 딸네 가족과 강원도 법흥리 계곡에 자리한 캠핑장으로 2박 3일 떠난다며 엄마와 아빠는 개천절 날 놀러오라고 하였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부족한 식품을 사오라며 문자가 날아왔다. 아내는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푸줏간에 가서 맛있는 고기를 사고, 마트에 가서 식품과 술 음료를 사서 트렁크에 싣고 제천을 지나 주천면을 거쳐 처음가보는 무릉도원(武陵桃源)면에서 법흥사를 가는 계곡의 야영장을 찾아갔다.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짧은 하루지만 코로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손자들과 캠핑을 즐기고 돌아오니 심신이 건강해 지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봄에도 한차례 캠핑을 다녀온 터라 저녁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군밤과 군고구마를 먹으며 초롱초롱한 별밤에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족 간에 정을 나누고 화합하는 분위기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틀에 박힌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겐 황금연휴가 호연지기를 기르고 건강을 챙기며 심신을 정화하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면서 밤늦게 돌아왔다.
얼마 전에 이런 글을 읽고 한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미국의 한 노인이 자기가 기르던 강아지에게 1천560억 원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사육하는 사육사에게 1년에 5만 달러씩, 5천만 원의 연봉을 주겠다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개가 죽으면 1천560억 원 중 남은 돈을 동물보호소에 기증하도록 했답니다. 그렇다면 이 노인에겐 유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외동아들에게는 100만 달러(10억)만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도대체 어떻게 내가 개보다 못합니까? 개에게는 1천560억을 주고 나에게는 10억을 주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판사님, 억울합니다. 바로잡아 주세요"라며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했습니다. 유산을 더 받으려고 법에 호소한 것입니다. 그 젊은이에게 판사가 물었습니다."젊은이, 1년에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뵈었는가?" "……." 말을 못합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즐겨 드신 음식을 아는가?" "……." 또 대답을 못합니다. "전화는 얼마 만에 한 번씩 했는가?" 판사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못합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님 생신은 언제인가?" "……." 역시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판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어 놓은 비디오를 틉니다. "내 재산 1천560억을 내 사랑하는 개에게 물려주고 사육사에게는 매년 5천만 원씩을 주고, 내 아들에겐 100만 달러만을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혹 아들이 이에 대해 불평을 하거든 아들에게는 1달러만을 물려주세요" 그리고 판사가 이야기를 합니다. "자네에게는 1달러을 상속하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결국에 100만 달러라도 받았으면 될 일인데 개에게 물려준 유산을 더 차지하려고 변호사를 사서 재판을 했지만 단돈 1달러만 받게 된 실화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기를 낳아 길러 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노후의 부모님에게 은혜에 보답하지 않은 과보(果報)라고 생각합니다. 효(孝)는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조상님들은 자기를 낳아서 3년 동안 젖을 먹여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돌아가신 부모의 3년 상(喪)을 치를 때까지 시묘(侍墓: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탈상을 할 때까지 3년 동안 묘소 근처에 움집을 짓고 산소를 돌보고 공양을 드리는 일)를 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를 만난 임(林)교수에게 자식은 비록 어버이를 버릴지라도 어버이가 자식을 그리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며 서양의 노인들은 쓰다버린 자동차처럼 버려진 것이라고 했답니다. 토인비는 "임(林)선생! 나는 한국의 가족제도가 인류를 위해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확신합니다. 부디 그 좋은 한국의 가족제도를 영원히 보존하고, 또 서양에 와서 꼭 가르쳐주시오"라고 했답니다. 토인비는 한 인터뷰에서 "만약 지구가 멸망해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 할 때 꼭 가져가야 할 문화를 꼽으라면 그건 바로 한국의 효(孝) 문화"라고 한 말은 우리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큽니다. "가장 한국적인 사상인 효 사상은 가장 세계적인 사상이다"라는 말을 그냥 흘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화평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인간생활의 근본입니다. 84세의 토인비 교수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임 선생! 우리도 옛날에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가정이 파괴됐어요. 내 생각에 인생에서 자식은 부모를 저버릴 수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고 효 사상을 고취하고 실천해 도덕적으로 세계적인 모델 국가로 만들자고 제의하는 바입니다.
휴가철이 되면 출가한 딸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자주 찾아온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계곡에 와서 피서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공무원인 둘째 딸이 작성하던 원고를 정리하려고 오래 된 내 노트북을 열고 한참을 기다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이렇게 느린 노트북을 어떻게 사용해요?"오래 쓰다 보니 느려지긴 했지만 나는 그런대로 익숙해 졌는데 딸은 너무 답답해하였다. 보름이 지난 후 저녁 늦게 도착한 둘째 딸은 새 노트북을 사왔다며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직 쓸 만한데!" 돈 쓸 일도 많은데 왜? 사왔냐며 걱정의 마음을 표했지만, 새 노트북을 열어보니 너무 좋았다. 그 동안 1주일에 두 강좌를 강의하면서 강의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하느라 거의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헌 노트북의 자료들을 새 노트북으로 옮기려하니 자료가 너무 많이 쌓여서 이 작업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마치 이사 다닐 때 짐을 정리하면서 버려지는 것이 너무 많은 것처럼, 필요 없는 자료를 정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버릴 것을 삭제하며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사진을 정리했다면 이런 불편이 없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지루한 작업에 한 가닥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지난 날 추억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년을 앞두고 자녀들과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 생일이나 휴가철에 다녀온 국내 관광지 추억, 아내의 회갑기념으로 아이들이 주선한 하와이 가족여행, 딸들이 보내준 피지, 팔라우 섬 여행, 나의 칠순 기념으로 15명이 다녀온 호주여행! 지금은 부쩍 자란 손자들의 귀여운 어린모습을 보면서 지난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 몸에서 엔도르핀이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추억어린 사진들은 모두 용량이 큰 외장하드로 옮기고 나머지 자료만 새 PC로 옮기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였다. 필요 없는 자료를 청소했을 뿐인데 마음까지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향교에서 6월부터 개강한 시민정신 함양교육으로 마련 된 강좌인 채근담(菜根譚)과 우수프로그램에 선정된 노자 도덕경(道德經)강의를 하고 있다. 중국 고전의 주된 내용은 마음을 비우고 양보하며 부귀공명보다는 남에게 베풀고 신의를 지키라는 가르침이 주로 많이 나온다. 노자의 사상은 비우고, 버리고,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철학이 현대인에게 감동으로 닥아 옵니다. 수레의 바큇살이 한 곳으로 모여 있지만 바퀴의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돌아가므로 없음(無)을 만나야 쓸모 있게 된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빈곳을 얻으려는 것이므로 빈곳을 만나야 그릇이 쓸모 있게 된다. 방을 만드는 까닭은 방의 빈 곳을 쓰려는 것이므로 역시 없음을 만나야 방이 쓸모 있게 된다. 따라서 있음(有)의 유익함은 없음(無)의 쓰임(用)이 있다는 무위(無爲)철학이 도덕경 11장에 있습니다. 바퀴의 쓰임은 가운데의 빈곳이고, 그릇의 쓰임도 빈곳이며, 집은 틀이 아니라 집의 빈곳을 쓰게 되니 빈곳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없음(無)은 있음(有)을 쓸모 있게 해줍니다. 있음은 없음의 작용으로 비로소 중요해집니다. 있음은 없음이 쓰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비우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므로 쓸모는 보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것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비어있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즉 유(有)와 무(無)는 서로 상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