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무장(武將)은 이순신을 비롯하여 조영무, 남이, 구인후, 정충신, 이준, 김시민, 이수일, 김응하 등 아홉 명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충무공 하면 오직 이순신 장군만을 떠올린다. 너무나 훌륭한 명장(名將)이라 광화문에 동상이 세워졌고 아산 현충사 사당을 지어 온 국민이 존경하고 추모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오니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능히 적을 이길 것이옵니다."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명언은 임진왜란에 나라를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불후(不朽)의 명장이다. "대장부로 세상에 나와 나라에서 써주면 죽음으로써 충성을 다할 것이요, 써주지 않으면 야인이 되어 밭갈이하면서 살리라(丈夫出世 用則效死以忠 不用則耕野足矣)"고 했다. 임용발령을 기다리며 자신의 보직이나 출세를 위하여 권문세가에 아첨하거나 영화를 탐내지 않기로 한 결심으로 보인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꿈나무들 중에는 청소년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꿈을 키우려는 의지가 약한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순신 장군의 11가지 생활신조가 감동을 안겨주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①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②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둘의 늦은 나이에야 겨우 합격했다. ③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 장교로 돌았다. ④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⑤ 몸이 약하다고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⑥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에야 마흔일곱에 제독(提督)이 되었다. ⑦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이겼다. ⑧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갖지 마라. 나는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뺏긴 채 옥살이를 해야 했다. ⑨ 자본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라. 나는 빈손으로 돌아온 전쟁터에서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적을 막았다. ⑩ 옳지 못한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 말하지 마라. 나는 스물의 아들을 적의 칼날에 잃었고,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로 나섰다. ⑪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적들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이 말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왜군 장수『와키사카 야스하루』가 후손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이순신은 전란 내내 그처럼 놀라운 전략과 무용으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순신은 전란 내내 당리당략에 빠진 뭇 위정자들로부터 충심을 외면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흩어진 군기를 바로 세우며 왜군과 맞서 싸웠던 충신이었다. 아울러 그는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던 백성들의 안위를 살폈던 의인이었고, 심지어 어린 왜군 포로에게까지 온정을 베풀었던 인도주의자였다. 그래서 이순신장군을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를 부쳐졌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순신 장군의 생활신조를 마음속에 새기며 활력을 찾았으면 한다.
최근의 우리정치상황을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느낀 점은 잔머리 굴리는 머리 좋은 정치인 보다는 우직하지만 정직한 정치인이 국민을 더 편하게 해준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근자에 우리나라 정계는 청년정치인의 전성시대가 되어버렸다. 20대나 30대의 공동비대위원장이나 당대표가 정치판을 죄지 우지 하려는 모양새이다. 신선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청년이 우두머리 역할을 맡으니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새로운 맛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과일에 비유하면 아직 익지 않은 풋과일처럼 풋풋한 참신성은 보이나 백발이 성성한 원숙한 정치인들이 나라를 안정감 있게 이끌고 있는 선진국과 비교가 된다. 인도의 성자 간디의 말씀에 나라가 멸망(滅亡)할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사회악(社會惡)을 열거하였다. 첫째가 원칙 없는 정치라 했다. 원칙이 없이 당리당략에 의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정치가 국민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이는 오랫동안 쌓아 온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경기장에서 뛰어야 할 인물들이 감독 노릇을 하는 격이 되어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고 있는 꼴이 되었다. 둘째는 노동 없는 부로 땀 흘려 일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직업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노동 없는 부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때문에 직업도 없이 아빠찬스로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소비만 할 줄 안다. "땀 흘리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라는 말이 있듯이 어려서부터 자립하려는 의지가 상실되고 있는 젊은이가 증가하는 사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는 양심 없는 쾌락이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는데 쾌락의 유혹에 빠져들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지도층이 늘고 있음을 지적했다. 네 번째는 인격 없는 교육을 꼬집었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인성의 기본을 갖춘 교육이 아니라 한 줄로 세우는 경쟁으로는 나라가 건전하게 성장하는 교육이 못 된다고 보았다. 자라는 아이들의 각기 얼굴이 다르듯이 남다른 개성을 소유한 인격체로 키우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다섯째는 도덕 없는 상업이라 했다. 탈세, 감세를 하려고 거짓신고가 다반사인데 비해 이웃 선진국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다. 상(商)도의가 무너진 상업은 남을 속이고 상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하여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상업이 판을 치는 경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여섯째는 인간성 없는 과학이라 했다. 과학의 발달로 이룩한 문명의 이기는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과학은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일곱 번째는 희생 없는 종교라 했다. 종교인들이 자기희생 없이 종교를 이용해서 신도들에게 대가 없는 희생을 요구하면 국민들의 정신세계는 황폐화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간디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든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체 하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 하는데 비해 아는 것도 동료와 협의하며 일을 처리함에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경제, 국방, 믿음이라고 답했다. 자공은 다시 묻기를 부득불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자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국방을 버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자공이 또 물었다. 만부득이 해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남은 둘 중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요? 공자는 경제를 버리라고 했다. 배가 부르나 믿음이 없는 사회는 곤란하다. 정치는 국민들이 믿음을 갖게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성현의 말씀이 새롭게 느껴진다.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청주교육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하신 윤건영 교육감께서 충북교육을 이끌게 되어 축하와 함께 도민의 기대감도 큽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아이들을 편하게만 해주면 잘하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머리 좋은 아이들의 기본인성을 소홀히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험을 안 보게 해주고 숙제도 없애 방임하다시피 교육을 하다 보니 기초학력이 저하됐고 아이들은 창의력과 학습의욕은 떨어져 둔재(鈍才)로 만드는 교육을 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적 신체적 발달과정에 따라 반드시 가르쳐야할 덕목이 있고 때를 놓치고 방치하는 것은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가정교육이 살아 있었습니다. 다소 엄했지만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 배우며 자랐습니다. 때론 매를 가하면서 자식이 살아갈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들은 언행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가족 형태는 대부분이 핵가족으로 가정교육은 거의 실종되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되어 학교현장교육에 반영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마저 시행이 유야무야되는 현실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부(工夫)의 의미는 사람다운 인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성의 바탕위에 지식을 배워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인간의 바탕이 되는 인성교육을 소홀히 해온 역기능이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병폐로 악영향이 심각하여 법까지 만들어 강제하려는 것은 그 시기를 놓친 기성세대의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성교육과 어문정책은 그 때를 놓치고 방황하고 있는데도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인성교육은 인성교육진흥법이라도 만들었지만 어문정책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글전용정책이 50여 년 이어지고 있어도 관심 밖입니다. 그 결과 젊은 세대들이 글을 읽을 줄은 알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어의 약 2/3가 한자어(漢字語)이기 때문입니다. OECD 국가의 학생을 대상으로 문자해독능력을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가 최하위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뜻글자인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는 한글전용정책은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편하게 해준다는 미명 아래 바보로 만드는 아주 잘못된 정책인데도 바로잡지 않고 있습니다.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님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요즘 아이들이 글을 잘 못 쓴다고 합니다. 한자어라는 언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뜻이 담긴 한자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글을 써도 문맥이 잘 통하지 않고 깊이가 없으며 글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300자 정도의 기본한자를 가르쳐야 합니다. 한글로만 써도 문장의 앞 뒤 문맥을 연결하면 뜻이 이해가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한자세대만 가능한 일입니다. 경북도교육청 관내 많은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충북교육청에서도 초등학생들에게 기본한자 300자를 가르쳐야합니다. 한자교육을 받은 세대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한자어를 쓰면서도 모든 국민이 문맹자가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언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그 뜻을 모르며 사용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기본 인성 형성이 12세면 끝나고 문자인지능력과 어휘력이 왕성하게 발달하는 초등학교 과정을 지나면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인성과 문자 교육은 초등학교 시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부디 교육감님께서는 학생들의 인성교육과 잘못 가고 있는 어문정책을 바로잡아 초등학생들에게 한자교육을 실시하도록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7월의 폭염이 기승(氣勝)을 부려 찜통 속에서 살아가는 느낌이다. 체온에 가까운 기온에다 후덥지근하고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충북에서만 열사병(熱射病)으로 23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를 보고 폭염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인데도 전력사용량은 매일 증가하고 있어 에너지 대책에 경제마저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작은 더위'로 불리는 '소서(小暑)'가 지난 7일이었고, 삼복더위의 첫 더위인 초복(初伏)이 다가오는 주말인 16일이며, 23일은 '큰 더위'로 불리는 대서(大暑)가 기다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는 절기인 피서철이 다가왔다. 이상기후의 조짐은 일찌감치 보였다. 폭염이 시작되었고 장맛비까지 내리면서 여름이 한참 지난 느낌이 든다. 변덕스런 여름철 날씨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장마가 온 다음, 일주일 가까이 폭염이 지속되고 다시 장마전선이 다가오고 일주일 정도 또 다시 폭염이 발생하는 이상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폭염의 한자는 햇볕쪼일 폭(暴), 불탈 염(炎)으로 매우 더운 날씨를 말하는데, 특정 온도를 기준으로 기상청에서는 폭염 주의보와 폭염 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이면서 이 더위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 주의보,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이면서 이 더위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 경보가 발령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인체에 해가 될 수 있으므로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으며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6년 여름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았다. 8월 한 달만 놓고 봤을 때 다른 해보다 기온도 평균 기온 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비는 많이 오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22일 동안 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는 1973년 이래 가장 긴 열대야였다. 이처럼 해가 갈수록 더워지고 폭염이 심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지구온난화 현상의 결과물로 보인다. 기후의 이상변화가 나타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대응을 잘해야만 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온상승이다. 여름철 평균기온의 상승은 폭염 일수의 빈도와 강도를 증가시킨다. 폭염의 주요 원인은 지구 온난화, 엘니뇨현상, 티벳 고원의 적설량 감소, 열섬 현상 등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온상승은 계속되고 있어 21세기 말까지는 평균 기온이 1.8∼6.4도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폭염으로 인해 건강에 많은 위협이 되고 있는 층은 65세 이상 노인이나 5세 이하의 어린이, 고혈압·심장병·당뇨병·정신질환 등 만성질환자,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 저소득층, 홀몸노인 등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은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요망 된다. 낮에만 더운 게 아니라 밤잠을 못 이루는 열대야로 24시간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폭염으로 건강 이상자가 발생하면 가능한 빨리 몸을 차게 식히는 것이 중요하다. 옷을 벗기고 노출된 피부에 물을 뿌리고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몸을 식힌다. 119 구급대를 불렀다고 해도 도착하기 직전까지 몸을 식혀야 한다. 수분과 염분을 제공해 탈진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폭염현상은 자연을 거스르며 살아 온 인간의 욕심이 자연의 균형을 깨트린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하나뿐인 지구촌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병들게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을 보호하지 않으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대선의 바람이 지방선거에도 불었다. 4년 전에는 파란 바람이 서편에서 불어오더니 이번에는 빨강 바람이 동편에서 불었다. 바람이란 기압의 변화에 따른 공기의 이동으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말한다. 바람은 자연현상이지만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너무 큰 것 같다. 봄철에 솔솔 불어오는 꽃샘바람에도 예쁜 꽃은 피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남실바람에 이어 여름이 시작할 무렵엔 훈풍에 보리가 익어간다. 들에서 불어오는 들바람이라 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파람이라 하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추운 바람은 막새바람이라 한다. 서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맞바람이라 하고, 명주처럼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은 명주바람이라 한다. 들뜬 행동을 하려는 낌새나 기세를 보고 바람기가 있다고 하고, 큰 바람이 일어나려 할 때 먼 산에 낀 뽀얀 기운을 바람꽃이라 한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씻어주는 시원한 산들바람! 기둥을 만들어 올라가는 회오리바람을 용수바람이라 한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는데 약풍, 강풍, 태풍이 불어오는 늦여름에는 나무가 쓰러지고 지붕이 날아가는 크나큰 피해를 남기며 육지에 이르러 소멸된다. 선들선들 부는 바람을 선들바람이라 하고, 첫가을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서늘바람이라 하며 가을에 부는 선선한 바람을 갈바람 이라 한다. 오곡과 과일이 익도록 불어주는 가을바람이 햇볕과 함께 결실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좁은 문이나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문바람이라 하고, 살을 에는 듯 몹시 찬바람을 매운 고추바람이라 한다. 눈보라를 일으키며 살을 에는 눈바람을 칼바람이라 하여 옷깃을 여미게 한다. 봄철 양강지풍(襄江之風)으로 관동지역의 산불의 피해가 너무 커서 고생을 하지만,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으로 전력생산을 하는 이로움도 있다. 각종 운동경기에 사용하는 공과 자동차 튜브 등도 바람을 넣어 이용하고 있다. 갑자기 생긴 저기압이 주변으로 한꺼번에 모여든 공기가 나선 모양으로 돌면서 일어나는 바람을 돌개바람이라 한다. 나이가 들어서 뒤늦게 시작하는 방탕한 행동을 보고 늦바람이 났다고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허탕을 치는 경우에도 바람 맞았다고 하고, 뇌일혈로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는 중풍(中風)에 걸리면 바람맞았다고 한다. 민심의 흐름에 따라 한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선거의 표심을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고전에도 바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당나라 왕발(王勃)에 얽힌 고사에 "좋은 때를 만나면 등왕각에 갈 수 있고(時來風送·王閣)라는 시구(詩句)에 바람이 나온다. 왕발이 어느 날 꿈에 '망당산' 산신령의 현몽을 받고 순풍 속에 배를 저어 하룻밤에 칠백 리 나 떨어진 남창에 도달하여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등왕각 시서(詩序)문을 세워 그의 명성을 천하에 알렸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북방을 평정한 조조는 천하 통일 대업을 이룩하고자 형주와 강동으로 진격했을 때 형주의 유종은 조조 대군에게 겁을 먹고 투항했다. 다급해진 유비는 남쪽으로 도망쳐 손권과 연합해 적벽 부근에서 각각 진을 친다. 연합군의 황개는 조조군의 함선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조조에게 거짓 투항한 뒤 조조의 함대에 불을 질렀다. 이로써 조조군의 함대는 순식간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남동풍이 불어와 불길에 휩싸여 연합군에 대패해 바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연현상인 바람이 도와주어 왕발처럼 명성을 얻기도 하지만 유비의 연합군은 남동풍이 불어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늘이 도왔다고 한다. 바람은 산불이나 태풍을 일으켜 수많은 재해를 남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을 도와서 명예와 승리를 안겨 주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숫자는 4라고 한다. 4층을 F층으로 표시하는 것부터 '사'로 발음하는 한자 중에 하필이면 4를 '죽을 사(死)'라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발상부터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자 중에는 사(事), 사(思), 사(史), 사(士), 사(師), 사(辭))등 좋은 뜻을 가진 글자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4는 완전성, 전체성, 질서, 합리성을 상징하는 수라고 한다. 4에서 비롯되는 것은 동서남북의 4가지 기본방위,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정사각형의 4변, 십자가의 네 개의 팔, 4박자의 안정된 음감도 있다. 그 뿐인가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자문화권에서 고사(故事)를 함축해 교훈적인 가르침으로 사자소학(四字小學)이나 넉자로 된 천자문(千字文)등으로 학동(學童)을 가르쳐 왔다. 한글, 영어, 한자를 혼합해 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내로남불'이라는 신판 사자성어도 나왔다. 숫자 4의 의미와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과연 안 좋은 뜻이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숫자에 익숙해져 있고 각 나라마다 좋아하는 숫자 행운의 숫자가 있으며 기피하는 숫자는 세계적으로 단 한 가지 숫자 4라고 한다. 정말로 숫자 4에는 무슨 의미가 부여되어 있고 왜 기피를 하고 있는가? 숫자 4는 '성스러운 숫자'로 길한 숫자, 행운의 숫자라고 한다. 4대성인, 4대문명, 생년월일을 말하는 사주(四柱), 팔과 다리를 말하는 사지(四肢), 매(梅)란(蘭)국(菊)죽(竹)의 사군자(四君子), 관혼상제의 사례(四禮) 등 우리나라는 4를 중요시 하는 나라였지 나쁜 의미로 부여한 적은 없으며 죽음의 숫자로 여긴 적도 없는데 하필 죽을 사(死)와 연관시켜 기피하는 수(數)로 쓰이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신성한 숫자로 피타고라스에서 처음 4개수인 1, 2, 3, 4를 더하면 10이 된다고 해서 4는 신이 계시한 신성한 수로 여겼다고 한다. 4는 사물의 근본이나 중심이 되는 수였으며 세상이 점, 선, 면 입자의 4가지로 구성되어 있다거나 물, 불, 흙, 공기 4원소로 이루어 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4는 가장 조화로운 숫자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네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고, 운동경기에도 4는 안정적인 숫자이며 야구에서 4번이 중심이 되고 농구선수의 등번호는 4번부터 시작하며 보통 4번을 단 사람이 주장이고, 축구 경기장이나 체스 판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경기들도 4각의 틀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 행운의 상징인 4가 언제부터 불길한 뜻이 되었을까? 중국에는 차량번호에 4가 없으며 홍콩에는 4자가 들어간 층이 없고 승강기 표시도 4가 없으며 4를 건너뛰고 5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으며 공식적으로 4의 사용을 꺼렸으며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약 3천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인류가 사용한 놀이 기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주사위(朱四位)라고 한다. 중국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황제가 거의 질 뻔 했는데 마침 4자가 있는 면이 나와 승리를 하여 현종이 너무 기뻐서 그곳에 붉은 색을 칠하라고 명했기 때문에 주사위(朱四位)라는 명칭이 나왔다는 설이 있다. 숫자 4를 기피하는 현상은 한자문화권인 중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듯 하며 우리나라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4라는 숫자는 죽을 사(死)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도리어 좋은 뜻이 많이 담겨있는 행운의 수라고 생각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수로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맛있고 탐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이를 이용해 유튜브에 음식 먹는 장면을 올려서 조회 수에 따라 돈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먹 방을 한번 보게 되면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주로 라면이나 자장면을 배추김치에 곁들여 많이 먹지만 삼겹살이나 고기종류를 먹는 영상도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먹는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저 많은 음식물을 어떻게 소화를 시키는가? 의심이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필자도 고등학생 시절에 우동, 자장면, 짬뽕을 한자리에서 먹었었는데 소화시키느라 무척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10인분이나 22그릇을 먹는 대식가도 있으니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몸집이 작은 여성들이 맛있다면서 많은 양을 먹는 모습을 보면 건강이 걱정 된다. 먹 방을 찍고 나갈 때 식당 주인이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며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음식은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함인데 어마어마한 양을 먹어가며 조회 수를 높여서 돈을 벌려한다면 이는 자살행위가 아닌가? 옛 말에도 소식하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는데 새겨 봄직한 말이다. 더 나쁜 것은 먹는 시간을 정하거나 누가 가장 빨리 먹는가 내기를 하는 것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많은 양을 몇 분 안에 먹으면 음식 값이 공짜라고 경쟁을 부추기는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는 내기처럼 미련하고 위험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급하게 먹는 음식에 체한다는 말이 있듯이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할 일이다. 넓은 철판 그릇이나 솥뚜껑에 라면을 가득 끓여서 김치와 함께 아삭 아삭 먹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침을 삼키며 영상을 보게 마련이다. 먹방의 주인공들은 예명까지 써가며 맛있는 음식을 찾아 지방을 찾아다니며 먹방 영상을 찍는다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우리나라 사람뿐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인들의 먹방 영상도 올라오는데 산더미 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음식을 앞에 놓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입안으로 밀어 넣는 모습은 사람이길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두 명 또는 세 명이 함께 먹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가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래전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TV를 보시면서 매일 먹는 것만 나온다고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즈음에는 음식을 만드는 모습과 먹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백반기행, 한국인의 밥상부터 연예인들이 시골집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 시청률을 올릴 줄은 몰라도 국민들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앞선다. 여행을 할 때 찾아가는 맛집 기행도 즐거움이지만 방송에도 자주 소개가 되어 간접 광고효과도 있는 것 같다. 달인 프로그램에도 음식요리 비법까지 소개가 되며 식도락가들을 맛 기행 충동을 부채질 하고 있다. 자연인 프로그램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대개 소박한 밥상으로 과식을 피하는 것 같다.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아서인지 소박한 밥상으로 식사를 하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먹방에 흔히 나오지 않는 돼지고기를 넓은 불판에 간장양념과 파절이를 넣어 익혀서 두 판을 먹고 나더니 공기 밥 세 그릇을 시키는 것이었다. 남은 고기에 세 그릇을 붓 더니 비벼서 모두 긁어 먹는 모습을 보며 대식가는 대식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먹방 영상을 규제할 방법은 없겠으나 너무 많은 양을 건강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먹는 데만 치중하는 비정상을 바로 잡아야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차츰 줄어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도 전면 해제돼 마스크만 착용한 채 봄 꽃놀이 여행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 봄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바닷가로 나서는 모습이 신선해 보인다. 코로나 이전 같지는 않지만 코로나로 굳게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얼굴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자연의 변화에 맞춰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연둣빛 이파리를 내미는 자연의 섭리에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관광지의 식당들도 활기를 되찾으려고 분주하기만 하다. 봄꽃 여행은 가족이나 모임에서 주로 다녀오는데 필자는 남매모임과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인연으로 부부동반 여덟명이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고속도로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벚꽃이 눈길을 끌었다. 장성IC를 빠져나가 백암산(白巖山)골짜기를 들어섰다. 연두색 새잎이 싱그러운 백양사 경내를 걸을 때는 고즈넉한 산사가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아담한 연못이 보이는 쌍계루(雙溪樓)를 지나 보물 제1346호인 백양사 주지를 역임한 소요대사탑(逍遙大師塔)이 보였다. 대웅전에 참배를 하고 나오니 천연기념물 제486호인 고불매(古佛梅)가 보이는데 이미 꽃이 진 상태였다. 3월 말 분홍 꽃을 피우는 홍매(紅梅)로 수령이 300여 년임에도 수세가 좋고 꽃도 왕성하게 피우며 알싸한 특유의 향으로 매화의 기품을 잘 갖추고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백양사를 둘러보며 풋풋한 풀 향기를 맡으니 머리도 맑아짐을 느꼈다. 무안회산백련지를 둘러보고 시골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낙지 맛집이 즐비한 무안 낙지골목을 찾아 낙지를 맛있게 먹고 숙소가 있는 증도(曾島)로 들어갔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이라 해안가의 섬 여행은 색다른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바닷가에 위치한 돔형의 펜션에서 1박을 하고 아침은 짱뚱어탕으로 먹었다. 들깨가 많이 나서 부쳐졌다는 임자(荏子)도 튤립축제장으로 들어서니 마치 덴마크에 온 기분이 들었다. 화려한 꽃밭을 걸으며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드넓은 튤립꽃밭이 감탄을 연발하기에 충분했다. 해변을 바라보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영광으로 가는 길에 벚꽃길이 보기 좋았지만 어느 시골길을 지나는데 유채밭이 너무 아름답게 펼쳐져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봄꽃의 화사함에 취해버렸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에서 굴비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왔다. 지난 일요일엔 남매 모임에서 서천의 마량리 동백 숲을 찾았는데 꽃이 거의 져서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왔다. 무창포 해변을 걸으며 모처럼 바닷바람을 느꼈다. 대천으로 가는 길에 죽도 상화원(尙和園)이라는 사설 정원의 나무로 지붕까지 있는 데크로 만든 둘레 길을 걸었다. 중간 지점 소나무 숲에서 입장객에게 주는 커피나 차를 한잔씩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섬에 한옥과 꽃들이 아름다운 한국형 정원을 감상하며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대천 수산시장에서 낙지와 주꾸미 샤브를 점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태안 꽃박람회로 가는 벚꽃 길은 너무 아름다웠다. 박람회장에 들어가 관람용마차를 타고 한 바퀴 돈 다음에 튤립과 아름다운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꽃향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퇴장시간이 다 되어 출발했다. 여행은 봄꽃과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외에 차안에서 우스갯소리로 박장대소할 때는 엔도르핀이 솟아나고 주전부리 간식을 나눠먹으며 정을 느낀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틀어주면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며 흥을 돋운다. 그래서 여행은 가슴이 뛰는 즐거움이 있는가보다. 올해는 봄 꽃놀이를 원 없이 했다며 좋아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꽃을 볼 수 있었다. 무덤덤한 일상에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어주는 즐거운 봄 꽃놀이 여행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오는 6월에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대선,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뽑는 후보가 많고 너무나 복잡하여 유권자가 혼란을 일으킬 정도다. 광역단체장인 시·도지사와 기초단체장인 시장 군수, 비례대표의원과 광역의회 의원, 기초의회 의원까지도 혼란을 주는데다가 시·도교육감까지 주민직선제로 뽑으니 선거공화국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선거는 주민의 대표자를 뽑아서 주권을 위임하는 신성한 권리행사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선거를 치르면서 민심을 갈라놓고 정쟁을 통해 발생하는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두 쪽이 나 있는데, 이번 대선을 통해서는 동은 붉은색, 서는 파랑색으로 나뉘어 정권 이양기인데도 권력충돌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다단계인 행정 구조를 2단계로 줄이면 선거로 인한 혼란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다. 특히 교육감을 주민직선제로 뽑는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생각한다. 원래 교육위원회에서 간선제로 교육감을 선출했을 때만 해도 교육계에서 덕망이 높은 분이 시·도의 교육을 이끌어 왔다. 초기엔 소수의 교육위원이 추대형식으로 교육감을 선출하여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지 않았었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생기면서 운영위원들이 모여서 교육감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오다가 제도가 정착도 되기 전에 민주주의를 앞세워 주민직선제로 급회전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을 주민이 직접 뽑으려면 "학부모를 비롯한 교육가족인 교육이해당사자가 뽑아야지 왜, 우리에게 뽑으라 하느냐?"라며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었다. 교육감 직선제는 다분히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당은 없지만 소위 보수와 진보로 나눠진 선거판은 교육자 출신의 보수후보가 난립하는 가운데 전교조를 등에 업은 진보후보간의 싸움으로 선거가 치러진다. 그 결과 단일화 목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보수의 표는 갈라지고 전교조출신 후보가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7개 시·도 교육감 중 14개 교육청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어 학교현장 교육이 좌경화되어가고 있었다. 전교조가 득세하는 모양세로 변질되어 역사교과서가 왜곡되었고 어린아이들에게 사상과 이념이 국가의 미래를 암담하게 하는 각종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논리라면 모든 단체장을 주민직선제로 뽑다보면 선거만 하는 선거공화국이 되어버릴 것이다.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전산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직원의 보수도 못 채우는 지방자치단체를 존치시켜가면서 전 근대적인 행정이 과연 효율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비효율을 바로 잡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고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선거처럼 한 번에 너무 많은 후보자를 선택하다 보니 입후보자의 면면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묻지 마!'식으로 투표를 하여 주권을 맡기는 사례가 많다는 하소연이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의 주권을 맡길 대표자를 뽑아 놓고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해지는 것이다. 유권자의 표만 의식한 나머지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여 유권자를 현혹시키는 경우도 많다. 선거의 4대원칙인 보통, 평등, 직접, 비밀을 지키며 엄중하게 치러져야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과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아 후유증으로 남아있다. 본 선거는 하루인데 사전투표는 이틀씩하면서 투표함 보관문제와 전자개표기도 논란이 많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크던 작던 선거를 치르고 나면 민심이 갈라져 후유증이 다음선거까지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민이 통합하여 한마음으로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미래가 있는데 선거로 인하여 두 쪽이 나는 현상을 치유할 방책(方策)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친구들에게서 오는 전화도 뜸해진다. 더구나 코로나로 만남이 자유롭지 못하니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달 한 친구의 전화를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나갔다. 세 명은 이미 와 있었다. 모두 잘 아는 사이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식사가 들어오기 전에 안부를 묻고 이야기가 시작됐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는 표정들이었다. 대화의 내용은 건강, 부동산, 친구들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를 하다가 금기(禁忌)시 하는 자녀들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필자가 고교동창회장을 할 때 이색적인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옆에 앉은 친구의 아들이 서울공대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변리사가 되어 결혼도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충주 집으로 내려와 사법고시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부모 허락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친구는 너무 황당해 만류를 하다가 고심 끝에 다음 날 아침에 허락을 했다고 한다. 공대출신이었던 아들이 3년 동안 공부를 하더니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필자는 친구 아들의 경사에 감동해 축하 화분을 친구의 아파트로 보냈었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회장을 맡고 있으니 동창회비에서 보낸 걸로 알고 총회 때 결산서를 살펴보고서 동창회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동기생들보다 5년이 늦었지만 사법연수를 마치고 성적이 좋아서 대전지방법원에 발령을 받아 판사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산더미 같은 사건기록을 읽어야 하는 격무를 수행하면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여 3년 전에는 모교에서 법학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니 너무 대견하지 않은가? 얼마 전에 40대 중후반의 나이인데 판사의 꽃이라 불리는 부장판사로 승진해 3월에 가족이 모여 축하자리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아들자랑 할 만하지 않은가? 이렇게 뒤늦게 진로를 바꿔서 정상궤도의 길을 당당히 가고 있는 예는 드물 것이다. 세 친구는 초등학교동창으로 흉허물이 없는 사이라서 시샘보다는 축하의 마음을 전하였다. 부모들은 자식을 잘 키운 보람을 느끼며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이게 바로 효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부모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모범을 보이며 가정교육을 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여러 곳의 학원을 돌며 아이의 능력에 넘치는 부담으로 진로를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1등만 강요해 자라는 싹을 시들게 만드는 어리석은 부모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교육이 어렵고 부모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자녀라 해도 모두가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 10대 천재 중 한 명으로 IQ 210 김웅용씨의 사연이 좋은 예이다. 괴테(IQ 190)와 아인슈타인(IQ 180)을 능가하는 대단한 수치이다. 그는 한글을 이틀 만에 뗐고 세 살 때는 그 동안 쓴 글과 그림 등을 모아 책까지 출판했다. 열한 살에는 미국 NASA에 취직했지만 일 외의 부분에서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김웅용은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타인이었다"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큰 인물이 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지만, 지독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8년 만에 홀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어디든 받아주는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학위가 없어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었다. 서울을 떠나고 싶어 선택한 충북대학교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김웅용은 드디어 공부 말고도 재미있는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가며 지금은 신한대학교에서 평범한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진로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하루였다.
깨끗한 세상을 만들라는 메시지를 담은 듯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어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설날 아침이었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2년이 넘게 헝클어져 명절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가운데, 임인년 설 명절을 맞이하였다. 경제가 성장하여 잘살게 되면 행복할 줄 알았으나 가난했지만 농경사회의 어린 시절이 더 행복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농촌에서는 명절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맷돌로 콩을 갈아 가마솥에 끓여서 순두부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으며 마을 사람들이 정을 나누었다. 방앗간에서는 가래떡을 뽑아 조청을 찍어 먹던 아이들은 대부분 노인세대가 되었다. 만두를 빚고 전을 부치며 시골집은 잔칫집 분위기였다. 객지에 나가 직장을 다니던 자녀들은 선물보따리를 들고 집안에 들어서면 부모님들은 그렇게 좋아하실 수 없다. 손주들을 안아주며 손님맞이로 집안이 떠들썩했다. 얼음이 둥둥 뜨는 감주와 먹을 것을 내오며 사람 사는 훈기가 돌았다. 고운 한복을 입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나면 세배를 드렸다. 가족이 모처럼 모여 전통놀이인 윷놀이로 가족애를 느끼며 웃음소리가 집안을 들썩이며 퍼져나갔다. 오후엔 성묘도 다녀오면서 조상님의 음덕을 기리었다. 예전에는 마을 어른들에게도 세배를 다녔다. 강정을 비롯한 한과와 과일을 차려내며 손님대접을 했다. 이제는 아름다운 민속 설풍경은 사라졌다. 동네 어른들은 넓은 마당에서 윷놀이도 하고 농악놀이를 하며 흥겹고 즐거운 명절을 보냈었는데 이제는 보기 힘들어졌다. 세상이 너무 급속도로 바뀐 탓인지 이웃과의 정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인구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면서 세대 간의 공간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한동네 사람이라는 개념은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족고유의 아름다운 설 명절이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잊고 너무 쉽게 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삶의 애환이 담긴 명절 음식에서부터 아름다운 한복! 그리고 명절의 전통놀이와 노래, 춤 등을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전하여 한국인다움을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다움이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 명절은 대보름을 거쳐 한 달 동안 축제로 이어졌었다. 설은 낯이 섧다, 조심한다, 삼간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그러므로 설은 기쁜 날이기 전에 한 해를 조심스럽게 무사하게 보내야 한다는 엄숙하고 뜻 깊은 날로 조상님들은 여겨왔다.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 조상은 음력을 기준으로 살아왔으며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896년부터라고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았어도 효도를 하지 않는다면 교육의 근본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의 가족제도의 효(孝)문화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앞선 자랑스러운 것으로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풍속이 되어 맥을 이어 오고 있다. 명절이 되면 민족이 대이동을 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는 조상을 찾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효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설 명절을 전후해서 우리의 효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고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집안은 설 명절이 다가오면 아들은 차례에 참석하고 딸과 사위들은 설날 저녁에 몰려온다. 세배하러 오기도 하지만 다음날이 아내의 생일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저녁상을 받기 전에 사남매와 손주들의 세배를 받으며 가족의 정을 느낀다. 가족이 명절에 만나서 나들이도 마음 놓고 하고 식당에 가서 음식도 함께 먹으며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화목한 명절을 명년에는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澎湃)해지고 이웃과 화합하면서 살아가던 아름다운 풍습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슴은 단아하고 청초한 기품을 느끼게 하여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인 십장생의 하나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들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를 녹명(鹿鳴)이라고 하는데요. 이 녹명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동물 중 사슴만이 먹이를 발견하면 함께 먹자고 동료를 부르기 위해 운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울음소리를 들어 본적이 있는지요? 여느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은 것은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오히려 울음소리를 높여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녹명'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에도 등장합니다. 사슴 무리가 평화롭게 울며 풀을 뜯는 풍경을 어진 신하들과 임금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녹명' 속에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살인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사랑했는데 형제끼리는 왜 역사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싸워야만 했는지? 권력과 돈 앞에서는 왜 형제가 아닌지? 또한 가족이 아닌지? 마음이 아프고 저려옵니다. 오늘날 재벌가의 유산 상속 분쟁도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정된 재화나 권력을 독차지할 수 있는 비극적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는 너를 잡아먹어야 하고, 내가 성공하기 위해 너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냉엄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약육강식으로 이긴 유전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를 한 '종(種)' 이 더 우수한 형태로 살아남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보호하면 그 남이 결국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기심보다 이타심,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을 도와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지요. 남이 잘 되도록 도와줘라 남이 잘 되어야, 내가 잘된다. 태공이 말했습니다. 남을 무시하지 말라.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자기가 크다고 생각해서 작은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되고, 용기를 믿고 적을 가볍게 대해서는 안 된다." 서로를 지켜주고 함께 협력하는 것은 내 몸 속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요? 세상에는 셀 수도 없는 소리들로 넘칩니다. 개도 울고, 닭도 울고, 심지어 하늘과 바람도 울고 있습니다. 좋아도 울고, 슬퍼도 울고, 이별에 울고, 감격에 겨워도 우리는 울며 삽니다. 시인 조지훈은 '울음이란 지극한 마음이 터지는 구극의 언어'라고도 했습니다. 삶을 복되게 한다는 몇가지 명언을 공유합니다. "남을 기쁘게 하라 10배의 기쁨이 나에게 돌아온다", "끊임없이 베풀어라.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지게 마련이다", "약속은 꼭 지켜라",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은 자기를 파괴하는 자살폭탄이다" 사람이 못 믿는 사람은 하늘도 못 믿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엄동설한의 겨울 날씨!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도 그대의 베푸는 마음으로 인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는 따뜻한 하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인년 올해를 검은 호랑이 해라 한다. 검은 호랑이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간(十干) 즉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를 오방색에 대비해 갑(甲)을(乙)을 청색(靑色)에 방위는 동(東)으로, 병(丙)정(丁)은 적색(赤色)에 방위는 남(南)쪽으로, 무(戊)기(己)는 황색(黃色)으로 방위는 중앙(中央)에, 경(庚)신(辛)은 백색(白色)으로 방위는 서(西)쪽으로, 임(壬)계(癸)는 흑색(黑色)으로 방위는 북(北)쪽을 가리키고 있다. 임(壬)의 색깔이 흑이고, 인(寅)의 띠가 호랑이 이기 때문에 '검은 호랑이 해'라 하는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우리가족은 1월 1일 해맞이 명소를 찾아 다녔다. 새해 아침 바다 위를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한 해의 소망을 기원했다. 강릉 경포대, 양양 낙산사, 포항 호미곶, 여수 향일암, 태백산 등을 찾아다니며 희망찬 새해를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해맞이를 못가는 해는 30여 분 거리에 있는 월악산으로 가족등산을 시작했다. 손자들까지도 방한복 차림으로 덕주사부터 여섯명이 걷기 시작했다. 전에는 길에 크고 작은 바윗돌이 너무 험해 걷기가 불편했었는데 지금은 등산로를 정비해 산을 오르기가 편해졌다. 가파른 길이라서 햇볕이 많은 곳에서 한번은 쉬어가야 한다. 귤도 까먹고 음료수도 마시며 쉬다보면 새해 월악산의 기운을 받으려고 산에 오르는 가족들이 많다. 아이들이 앞장서 올라가며 더 좋아하는 모습이다. 영봉까지는 몇 차례 올라봤지만 대부분 마애불상과 절이 있는 곳까지 오른다. 화강암으로 큰 바위산을 이룬 월악산을 둘러보면 장관이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으로 산세가 수려한데다가 소백산맥으로 흐르는 정기가 명산임을 느낄 수 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감지할 수 있어 언제 와도 활력을 얻을 수 있는 명소(名所)이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 일행과 이곳에 들렀을 때 절을 세워 절 이름을 덕주사라 하고, 골짜기 이름을 덕주골이라고 했다는 계곡을 따라 오르면 마애불상이 있다. 자연암벽이나 구릉에 새긴 불상을 벼랑부처 또는 마애불(磨崖佛)이라 하는데 바위에 양각이나 음각으로 조각한 불상이다. 당우(堂宇)는 극락보전법당과 삼성각과 요사(寮舍)채가 있지만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基)와 조선시대의 부도(浮屠) 4기가 있는데, 이 우탑 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덕주사에 승려가 많아져 절이 좁아서 새로이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어디론가 실어 날랐다. 뒤따라가 보니 지금 마애불이 있는 바위 아래였으므로 거기에 절을 짓고, 목재를 다 실어 나른 황소가 죽은 자리에는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통일신라말기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 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와 자신의 형상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약 10여m 높이 자연석에 새겨져 있는데 너무 커서 그런지 세심한 부분이 없고 뭔가 좀 엉성해 보였으나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올해도 함께 산행을 한 둘째 딸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왔기에 새해 소망을 빌고 좋은 기운을 받아 가라고 했다. 아내와 딸은 극락전 법당에 들어가 108배를 하며 새해 소망을 기원했다. 내려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산행 후라서 출출해 식당가에 내려와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 들려 전망이 좋은 2층 양지바른 곳에 앉아 월악산 북쪽 봉우리를 바라보며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를 즐기며 새해맞이를 하고 돌아왔다.
사람의 일생은 누구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태어나서 100일이 되기까지는 누워서 젖을 먹으며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란다. 백일을 맞이하면 겨우 앉을 수 있게 되고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엔 백일잔치를 반드시 해주며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돌잔치는 음식점에서 이벤트행사로 성대하게 치르는 풍습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성년에서 성년이 되는 예전의 관례(冠禮)와 계례(筓禮)는 단발령 이후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5월 셋째 월요일을 성년의 날로 지정했지만 가정에서는 성년례를 치러주는 부모가 거의 없다. 일부 자치단체나 군부대 등에서 성년의 날에 우리 고유의 전통성년례를 해주는 곳이 있지만 진정한 성년이 됐음을 자긍심으로 느끼게 치러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신체적으로는 성년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하여 독립해 살아가지 못하고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성년이 많은 것 같다. 유대민족이 전 세계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약 30%가 유대인이고 억만장자의 30%도 유대인이다. 아인슈타인, 에디슨, 헨리 키신저, 애담 스미스, 록펠러, 워런버핏, 빌게이츠 등 언론, 과학, 문화, 경제, 의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은 성년례를 성대하게 치러준다고 한다. 혼례(婚禮)는 예전에는 신부 집에서 저녁시간에 치렀다. 전통혼례엔 전안례(奠鴈禮)를 했는데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짝을 바꾸지 않고, 날아갈 때 줄지어 가고 상하의 질서를 지키며 협동으로 살아가고,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자손을 낳아 대를 잇는다하여 혼례 때에 기러기를 닮으라고 전안례를 했는데 나무모형이라도 주고받는 예를 되살렸으면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음양(陰陽)에 근거해 예(禮)를 행할 때 방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자연 방위와 상관없이 예식장의 주빈(主賓)을 기준으로 북(北)을 상석(上席)으로 하고 동쪽을 좌(左), 서쪽을 우(右)로 해 남좌여우(男左女右) 즉, 남동여서(男東女西)로 위치를 정했는데 혼례에서 대부분 반대로 하는 경우가 있어 이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상례(喪禮)에서는 돌아가시면 위치가 살아계실 때와 반대로 한다. 상례 때 돌아가신 분만 알고 유족은 잘 모를 때는 조상(弔喪)을 하는 것이고, 유족만 알 때는 문상(問喪)을 하는 것이다. 조상의 조(弔)자와 문상(問喪)의 앞 글자를 따서 조문(弔問)이라 하는데 이는 고인과 유족을 모두 알 때 조문을 하는 것이다. 제례(祭禮)는 돌아가신 분을 추모(追慕)하는 예로 기일(忌日)이 시작하는 밤 12시 이후에 기제(忌祭)를 지내는 것이 전통 예법이다. 가족이 떨어져 살고 직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제사 시간을 앞당겨 밤 9~10시에 기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살아계신 날에 제를 지내는 격이 되므로 다음날 일몰 후에 제를 지내고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 가정의례준칙에도 돌아가신 날 일몰 후에 기제를 지내도록 되어있다. 차례(茶禮)는 제례와 차이가 있음을 모르고 기제와 똑같이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차례는 아침에 무축(無祝)일헌(一獻)으로 간소하게 올리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예법이 형식을 중요시했는데, 편리성을 따르는 현대인들에 의해 변질이 되고 있어 본래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전통예절을 지켜나갔으면 한다. 필자가 충주향교에서 '관혼상제'를 주제로 교재를 만들어 1년간 강의를 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건의한다. 정부의 관련부처에서 연구하고 의례를 정비하여 예의지국(禮儀之國)답게 가정의례준칙을 제시해주기를 간절히 청원(請願)하는 바이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큰 딸 차를 타고 김포공항을 향해 달려갔다. 입동 무렵에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는 날 여행을 가자고 해 두 딸은 금요일에 직장에 휴가를 내고 2박3일로 떠나는 여행이라서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에 도착해 렌터카로 갈아타고 공항근처 포구에 자리 잡은 식당에서 전복죽과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동쪽으로 돌면서 들른 곳이 함덕 해수욕장이었는데 물이 너무 맑고 빛깔이 예쁘다며 감탄의 연발이었다. 아내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딸들과 어울려서 추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즐거워했다. 성산 일출봉 근처농장에 들러 갖가지 식물과 꽃을 보며 넓은 농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보니 어둠이 내려앉았다. 저녁은 흑돼지고기를 맛있게 하는 식당으로 갔다. 연탄불에 굽는 돼지고기를 먹으며 술도 한잔 곁들이니 여행은 점점 무르익었다. 서귀포에 있는 리조트엔 우리가 가장 늦게 도착해 1층 구석에 남은 방에 투숙을 했다. 늦잠을 자고 아침은 산방산 근처에 있는 빵을 맛있게 굽는 카페에서 커피와 브런치로 해결하고 송악산 둘레길이 너무 아름답다 해 걷기로 했다. 녹색 이끼가 예쁜 해변 바윗돌에 앉아 사진을 찍고 둘레 길을 오르니 멀리는 한라산이 보이고 형제 바위 근처로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간다.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가 파란 바다와 너무 잘 어울렸다. 송악산 바닷가를 따라 계단을 만들어 놓아 편히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 길이었다.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가 보였다. 절반을 돌다보니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송악산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았다. 나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걸으니 운동도 되고 산책 코스로 너무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귤 박물관에 가서 귤 따기 체험도 했다. 그런데 귤이 너무 시어서 귤 맛을 제대로 못 느꼈다. 아내는 박물관 앞 농장에 들러 귤 맛을 보고 맛있다며 사위와 손자들에게 한 상자씩 택배로 부쳤다. 일몰을 보자며 가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 포기하고 근처 포구를 찾아 좁을 길을 뚫고 바닷가 포구에 차를 세우니 붉게 물든 해가 수평선에 걸려있었다. 모두 야! 하는 함성을 지르며 차에서 내려 아름다운 노을을 폰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1시간 정도를 달려 중문에 고급호텔이 몰려있는 횟집에서 맛있는 회로 저녁을 먹으며 둘째 날 여행의 재미가 무르익어 갔다. 저녁은 딸들이 여행을 시켜줘서 고맙다며 아내가 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출을 보자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7시가 넘자 일출 명소라 하는 코스모스 꽃밭이 예쁜 신라호텔로 이동해 바닷가 전망대에 도착하니 수평선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환희의 기쁨을 맛보았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하고 전복 돌솥 밥과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마침 둘째 딸이 생일을 맞이해 아름다운 도시 서귀포에서 아침생일상을 받으며 좋아했다. 근처에 있는 천제연폭포로 향했다. 식물원처럼 꾸며놓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행이야기를 하며 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저녁은 내가 산다고 했더니 좋은 것을 먹겠다며 공항근처 영국식 요리를 하는 집에 도착해 코스요리를 먹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제주도마저 없었다면'얼마나 가슴 답답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딸들과 꿈같은 포근한 겨울여행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