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서가 담긴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아름다운 한옥이나 한복은 명절 때나 찾고 입어보며, 전래놀이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조선시대의 공립학교인 향교에 몸담고 있으니 더욱 심각함을 느끼고 있다. 조상이 남긴 유형(有形)또는 무형(無形)의 문화유산은 잘 보존하여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문화유산에는 조상의 얼이 담겨있기 때문에 고유의 정신이 담긴 전통의 맥을 이어가야만 후손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얼굴은 한국인인데 우리 고유어나 한자어를 버리고 영어에 묻혀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거리의 간판은 영어권 나라로 착각을 하게 한다. 표기는 한글로 하지만 그 뜻은 우리 것이 아니다. 아파트 이름도 영어투성이고 너무 길어서 연세 드신 부모님이 못 찾아오게 만들었다는 우수갯소리도 들린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용어나 낱말들은 한자어 인데 한글로만 표기하니 혼동을 일으킨다. 의학, 법률, 교육, 건축, 토목 등의 전문용어는 대부분 한자어인데 한글전용정책으로 기초 300자 정도의 한자도 가르치지 않고 있어서 고유문화의 맥이 단절되어 가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입증이 되었고 과학성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자문화권 속에서 수 천 년의 세월이 흘러온 우리의 언어를 소리글자인 한글로만 올바르게 전할 수는 없다. 동음이의(同音異義)어가 너무 많은데다가 한글로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난해한 낱말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자어를 병행하여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 어문정책은 이를 무시하며 편의 위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나라 중학생의 문자해독력이 OECD국가 중 최하위라 하는데 이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니까 문장을 읽기는 해도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글전용을 주장한 학자들이 한자어인 비행기(飛行機)를 '날틀'이라 하고, 이화여자대학을 '배꽃 계집 큰 학교'라 하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사용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한자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데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도 있다. 손아래 누이 매(妹)인데 누나의 남편을 매형(妹兄)이라고 잘 못쓰고 있는데 손 위 누이 자(姉)를 써서 자형(姉兄)이라 해야 맞다. 며느리들끼리 호칭할 때도 '동서'라고 부르는데 이는 남자들이 같은 집사위라는 뜻으로 동서(同壻)라 하는 것이지 여자는 시집 시(媤)자를 써서 동시(同媤)라 불러야 어법에 맞는 것이다. 옛 노인들은 동시발음이 부르기가 어색하여 '동세'라고 불렀던 것이다. 연속극에서도 남자처럼 며느리들이 '동서'라는 호칭을 쓰고 있으니 같은 집사위라고 부르는 꼴불견이 아닌가? 썰매를 고유어인줄 아는데 한자어 설마(雪馬)가 썰매가 되었고, 성냥도 석유황(石硫黃)에서 변한말이고, 서랍도 혀를 내민 합처럼 보인다고 설합(舌盒)이라 했고, 배추도 백채(白菜)에서온 한자어 이고, 바다에 떠서 덮치는 까마귀를 잡아먹는 물고기를 한자어로 오적어(烏賊魚)라 하는데 오징어가 되었다. 이들 모두가 음편(音便)현상으로 변음이 된 것이다. 옛 것을 익히어 새것을 안다는 뜻인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해야지 우리 것을 모두 버리고 새것만 취하는 마음가짐은 버려야 한다. 아름답고 정겨운 고유어나 조상들이 생활 속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생활풍습까지 짐작할 수 있는 한자어를 병기(倂記)하여 사용하면 언어생활이 품격이 높아질 것이다. 아이들은 틈 만나면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데 건전한 전통놀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건강하게 인성이 형성될 것이다. 대자연 속에서 맑고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법칙을 배우는 교육이 심리적이나 정신적으로 강건한 인성을 갖춘 아이로 키우는 길이라 생각한다.
올해는 봄꽃이 일찍 피었다. 봄꽃이 만개하는 시기에 축제일을 맞추지 못하여 화사한 봄 축제가 아닌 썰렁한 봄 축제가 되고 말았다.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기 힘 들었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일상을 헝클여 놓은 4월이었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詩)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된 "春來春不似春(춘래춘불사춘)"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다"라는 구절이 올 봄에 딱 맞는 것 같다. 계절은 봄인데 봄을 못 느끼는 자연현상이 야속하기만 한다. 주말을 끼고 벚꽃이 만개(滿開)하였지만 바로 봄비가 바람을 동반하여 내리는 바람에 꽃비가 되어 떨어지고 말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올해 4월은 자연으로부터 잔인(殘忍)함을 느낄 수 있었던 해였다. 이러한 이상 기후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을 마구 파괴하며 배출가스를 너무 많이 내보내어 말 못하는 자연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탄소(炭素)중립을 위해 전 세계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러다간 지구촌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힘든 상태가 다가오고 있는 것아 불안하다. 이런 현상은 인간이 편리하게 살아가며 발생시키는 탄소배출과 에너지 사용에 무감각해진데도 원인이 크다고 생각한다. 지구의 허파역할을 하는 숲이 봄철 산불로 인하여 영동지방에는 축구장 530개 넓이의 숲이 잿더미가 되었다니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수밖에 없다. 영서지역에서 발생한 상층의 따뜻한 공기와 하층의 차가운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어 동쪽 급경사면을 타고 영동지역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바람을 '양간지풍(襄杆之風)'또는'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 한다. 남서풍의 건조한 바람이 국지적으로 강한 돌풍(突風)으로 변하여 대형 산불을 일으켜 민가까지 잿더미로 만들어 이재민에게 한숨만 안겨주었다. 기온도 일교차가 너무 심하여 감기환자가 증가하였다. 자연의 혜택을 입으며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들은 천기(天氣)라 할 수 있는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지기(地氣)라 할 수 있는 자연에서 자라는 식물과 과일 채소 곡식의 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가는데 모두가 오염(汚染)되어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 모두가 자연을 마구개발하고 파괴한 인간들이 자연에게 보복(報復)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계의 정세를 살펴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1년이 넘게 전쟁을 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자고나면 대륙 간 ICBM을 쏘아 올리며 도발을 일삼고 있고 중국이 대만을 위협하면서 태평양에서는 한미일 연합훈련이 진행되고 있어 동아시아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어 불안하기만 하다. 국내 정치상황은 대형사건이 국민을 짜증나도록 불안하게 하고 있어 뉴스보기가 답답한 지경이 4월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각종사건 사고도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좋은 머리를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기(詐欺)사건이 OECD국가 중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나라가 되고 말았다. 4월을 보내며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도 법치(法治)보다는 덕치(德治)로 나라를 다스렸던 시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가정이 제 역할을 못하고 어려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인성교육이 되지 않아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이 정상이 아니다. 물질이 풍요해지고 조금 살만한데 인정(人情)은 사라지고 개인주의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출산율은 최저수준이고, 자연은 병들어가고 사회는 혼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너무 빠른 문명의 발달이 인간성을 갈라놓고 있다. 가족의 정을 느끼며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인륜도덕이 살아나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행복한 삶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친구를 사귀고 친구와 작별(作別)과 이별(離別)을 하게 된다. 나이가 70대가 되면 많은 친구를 먼저 보내면서 그리워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의 부음(訃音)을 듣게 되면 옛 추억이 떠오르고 마음 아파하곤 한다. 초등학교 동창생은 살아있는 친구보다 별세한 친구가 더 많다. 중학교 동창들은 반 정도가 생존하였고 고등학교나 대학 동창은 생존한 친구가 더 많아 동창 모임이 기다려지고 만나면 살아온 지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학 동창 중 두 명의 친구가 병원치료를 받고 있어 단톡방에서만 안부를 전하고 있어 안타깝다. 다달이 모임을 갖는 친구 중에 대학동창 네 명이 부부동반으로 40여 년을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안양에 사는 친구가 아파트 29층에 사는데 승강기 공사가 한 달이 걸린다 하여 가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가장 마음 편한 친구네 집에 와 있겠다고 하여 마음 넓은 친구가 허락을 하여 충주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경우는 피를 나눈 형제간에도 어려운 일이라며 그들의 우정을 칭찬하며 부러워한다. 더욱이 그 친구는 오래전에 뇌경색으로 반신불수(半身不遂)인 상태인데도 친구가 가보고 싶다는 곳을 차로 안내하며 나들이를 시켜주는 등 자식들도 외면하는 세태에 보기 드문 우정이 아닐 수 없다. 한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텐데 이해심이 바다처럼 넓지 않고 서야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지인들의 중론이다. 「서로 거스름이 없는 친구(親舊)」라는 뜻으로「허물이 없이 아주 친한 친구(親舊)」를 막역지우(莫逆之友)라 하는데 이 두 분 사이를 두고 하는 말과 같다. 또 자기(自己)를 가장 잘 알아주는 친한 친구(親舊)를 지기지우(知己之友)라 하는데 서로 뜻이 통(通)하는 친(親)한 벗이 있다는 것도 자랑이다. 「정직(正直)한 사람, 친구(親舊)의 도리(道理)를 지키는 사람, 지식(知識)이 있는 사람」을 익자삼우(益者三友)라 하여 사자성어도 만들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옛 현인(賢人)과 시대를 초월하여 벗함을 독서상우(讀書尙友)라 하고, 마음이 맞아 의기(義氣)가 통(通)하는 벗을 회심지우(會心之友)라 한다. 늘 존경(尊敬)하는 벗을 앙우(仰友)라 하고, 뜻을 같이하는 친한 친구(親舊)를 집우(執友)라 한다. 속세(俗世)를 떠나 산골짜기에서 자연인으로 은거(隱居)하는 벗을 계우(溪友)라 하고, 가장 아껴 존경(尊敬)하는 벗을 외우(畏友)라 한다. 친구(親舊)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극력(極力) 충고(忠告)하는 벗을 쟁우(諍友)라 하고,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 정도(程度)의 벗은 면우(面友)라고 한다. 친구에 대한 좋은 글을 몇 가지 보면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 - 그라시안 -", "한 사람의 진실한 친구는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에센바흐-",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 - 키케로-",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메아리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거든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법정스님-", "만약 한 쪽의 말만 듣는다면 친한 사이가 갑자기 떨어짐을 볼 것이다. -명심보감-", "친구를 칭찬할 때는 널리 알도록 하고 친구를 책망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한다. -독일속담-"등이 있다.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라는 속담 속에는 친구는 오래 사귄 친구일수록 정이 두텁고 깊어서 좋다는 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인생길에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봄꽃이 아름답게 피기 시작하는 3월의 마지막 주말에 충주시 주덕읍 당우리 산 30번지에 이장(移葬)안치 된 능양 박종선(朴宗善)선생의 묘소 옆에 건립된 시비(詩碑)제막식에 다녀왔다.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 소장하고 있는 능양시집 필사본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불과 10년 전인 2013년이다. 후손이 보존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능양 시집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중에 대구의 고서점에서 발견하여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2015년에 구입하여 존경각에 소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2017년에 2천여 수의 시가 실린 16책의 필사본을 영인(影印)하여 시집을 발간하였고 대동문화연구원이 주최한 학술대회를 개최 한 바도 있다. 선생께서는 충주 연원역(連原驛)근처에 사시다가 60세에 돌아가셔서 음성읍 석인촌에 안장(安葬)되셨다. 능양의 묘소를 201년 만에 현 위치로 이장하고 시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하게 되었다. 이장을 할 때 그의 관 뚜껑에는 "통훈대부행 음성현감겸 충주진관병마절제도위 박공지구(通訓大夫行陰城縣監兼忠州鎭官兵馬節制都尉 朴公之柩)라 씌어 있었다. 행사를 마련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이영호 원장, 안대회 문과대학장, 김경호 동아시아학술원장, 서울대국문학과 이종묵 교수, 서예가 김영복, 김보성 책임연구원과 반남(潘南)박 씨 문중 회원과 충주향교의 유림(전교, 유도회장, 유학회장 및 장의), 충주한시협회장, 이종배 국회의원, 충주시장을 대신한 문화예술과장, 충주문화원장과 주덕읍장을 비롯한 지역주민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충주지역의 유일한 한시 시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낸 시조(始祖) 박응주(朴應珠)의 20대손이신 박종선(朴宗善)선생은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조카이며 박명원(朴明源)의 아들이다.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을 지냈고 음성현감(縣監)도 지냈다. 능양시의 특징은 조선적인 정서를 담은 민요풍의 한시가 유행한 18세기 한국한시사의 흐름에 부응하여 박종선은 고락부(古樂府)의 정신을 빌면서도 당대 여성의 구체적인 삶을 때로는 낭만적인 기법으로 때로는 현실적인 기법으로 담았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 중의 한 분인 연암 박지원은 시집 서문(序文)에 "한 가지 법에 얽매이지 않고 온갖 시체(詩體)를 두루 갖추어 눈부시게 동방의 대가(大家)가 되었다"고 극찬을 하였다. 능양시집의 전문을 보면 중국 연행(燕行)경험과 금강산 유람, 한양의 세시풍속 등 18세기 조선을 조명하는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시비의 전면에는 공(公)의 대표시인 초동(初冬)이 새겨졌고 후면에는 시비건립에 관한 연혁(沿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서울대 국문학과 이종묵 교수가 번역한 충주락(忠州樂)을 낭송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충주에 사는 즐거움이란 오언시(五言詩)의 일부를 옮겨본다. "충주에 사는 즐거움 무엇인가? 강마을 아름다워 살기 좋다네, 아침에 달천의 물을 마시고, 저녁에 가흥의 생선을 먹는다네, / 충주에 사는 즐거움 무엇인가? 산골마을 풍미가 좋다네, 봄엔 산에서 고사리 꺾고 가을엔 동산에서 대추를 턴다네. / 이하생략" 시비가 있는 묘역(墓域)은 지방도로 변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는데 공간을 더 확보하여 자라나는 세대들이 현장학습을 와서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고 특히 충주를 사랑하는 시 내용을 배우는 유익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건이 마련된다면 전국의 한시를 하는 많은 유림들이 모여서 선생을 추모하는 한시백일장이 열리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생각한다. 충주지역에 보기드믄 고전 문화유산이 생겼는데 사장(死藏)되지 않고 교육의 장으로 잘 활용되어 충주문화관광과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홀로 사는 노인이 늘고 있는데 한자어로 독거노인(獨居老人)이라 하며 예전처럼 가족이 돌보지 못하는 가정의 문제이자 사회문제로 그 심각성은 점점 더해가고 있다. 독거노인은 가족, 친구, 이웃 등 사회적 관계망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사회적 역할상실에 따른 외로움과 고립감 으로 사회생활의 단절에 따른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5년 전에 작고하신 필자의 모친도 평생을 살아오신 시골의 낡은 집에서 90세의 몸으로 홀로 사실 때 찾아뵙고 저녁을 사드리고 외딴집에 모셔서다 드리고 뒤돌아 설 때 마음이 무척 아팠던 기억이 있다. 운전하고 나올 때 옆자리의 아내는 너무 불쌍하고 가슴 아프다며 눈물을 훔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부부(夫婦)가 일생을 함께 지내며 함께 늙어 감을 해로(偕老)라 하는데 전교를 지내셨던 분으로 올해 93세가 되셨는데 2천여 평의 농사를 지으며 두 살 아래 이신 사모님과 해로하시는 다복한분도 있다. 대부분의 독거노인은 어느 한쪽이 사별을 하기 때문에 홀로사시다가 노환이나 병환으로 거동이 어려우면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봉양하는 자녀들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향교의 유림으로 교직에서 정년을 하시고 오랜 세월 장의와 유림회장을 맡으면서 사재를 털어 TV, 난방기, 카메라, 서가(書架) 등을 희사하셨고 읍 단위 노인대학 학장을 맡아 베푸는 삶을 사실 무렵 병환으로 사모님과 사별하고 홀로 사시게 되었다고 한다. 아들은 교수, 대기업의 임원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부모를 봉양할 여건이 되지 않을 때 노인 대학에 나오는 홀로사시는 제자(?)할머니께서 선생님을 모시겠다고 자원하셔서 부부의 연이 아닌 사제의 연으로 85세의 노인이 92세의 거동이 불편하신 선생님의 수발을 들어주며 집안일도 하시는 성녀(聖女)같으신 분을 며칠 전에 만나 뵐 수 있어서 감화를 받았다. 노후에 독거노인을 돌봐주시는 분이 너무나 고마워서 자녀분들이 매월 금전적으로 보상을 해드리고 있지만 너무 고마워 상을 받게 해주었으면 하는 뜻을 비쳐서 향교 춘기석전 때 존경상을 드렸다. 사회생활이 단절되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줄어든 '사회적 노쇠' 노인은 사회생활을 잘 유지하는 노인에 비해 우울 감 발생 위험이 4배 높았다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또한 옷 갈아입기, 세수나 양치질하기, 식사 챙겨먹기 등의 일상생활도 혼자하기 어려운 장애 발생 위험도가 2.5배 높아지는 등 사회적 노쇠가 전반적인 노인증후군 발생 위험을 높여 노년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65세 노인인구가 901만8천412명 중 독거노인은 187만5천270명으로 20.8%나 된다고 하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 한다. 장수는 축복이라고 하지만 가난이 더해지면 저주(咀呪)가 된다. 한국이 OECD 노인 빈곤률이 1등으로 OECD 평균보다 수치가 3배가 높다고 한다. 노인 자살률 1등으로 유명하고 살기가 힘드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하고 생계형 범죄에 빠지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그나마 노인 자살률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인데 노인 범죄율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고독사하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과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혼자 살다가 돌아가셔도 아무도 모르는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 근로소득이 끊기는 순간부터 갑자기 가난해지고 빈곤률이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유독 우리나라가 이게 심하여 어르신들을 부양할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장수시대에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진정한 복지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5일 오후 2시에 탄금대 솔밭에 자리 잡은 충주문화원 대강당에서 원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우륵이 가야금을 탄주한 명승지에 우뚝 선 문화원 강당을 가득 메운 각급 기관단체장과 문화원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8년간 충주문화원장으로 많은 공을 세우고 이임의 석별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임하는 손창일 원장은 1983년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문화원의 주요직책을 두루 역임하면서 2015년에 16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17대 원장까지 재임하고 명예롭게 퇴임하는 손 원장의 가장 큰 업적은 국립충주박물관 유치라 할 수 있다. 충주는 삼국의 문화유산이 산재한 역사문화도시인데도 국립박물관이 없어 충주지역 문화재가 타 지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안타까움을 안고 있었는데 국립박물관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토론회와 학술발표회 시민결의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전국 5대 문화권 중 하나인 중원문화의 유물 보존과 문화허브 기능은 물론 고구려 문화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국립충주 박물관을 2020년 5월 27일 업무협약식을 갖고 박물관건립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지난해 충주문화원 부설로 충주학연구소를 설치하여 충주시의 역사, 문화, 인문지리, 예술, 문학, 환경 등 제반 분야에 대한 조사, 발굴 및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일에 "삼국 이전 충주지역의 정체성" 이란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고, 12월 2일에는 충주의 문학과 사상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또 하나의 공로는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문화원원사(院舍)를 충주시장의 배려로 새로운 부지에 건축을 하기로 확정한 일도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손 원장은 학창시절 웅변을 하였다고 한다. 각종 행사를 주관하거나 타 기관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할 때는 원고 없이 특유의 언변으로 청중의 관심을 끄는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취임하는 유진태 원장에게 원기(院旗)를 넘겨준 뒤, 신임 원장이 전임원장에게 행운의 열쇠를 이임원장은 후임원장에게 직접 촬영한 탄금대 일출전경 사진작품을 선물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임하는 손창일 원장은 "중원문화의 중심이자 역사도시인 충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지난 8년간 중책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앞으로 충주문화원이 유진태 신임 원장님을 중심으로 지역문화를 선도해 나가도록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하면서 꽃다발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8년 동안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조길형 시장이 손창일 이임 원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며 축사를 하였고, 이종배 국회의원과 박해수 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문화원회원을 대표하여 심창현 이사가 떠나는 손원장에게 송공패도 전달했다. 유진태 신임 원장은 "문화로 충주의 품격과 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지역 문화 고유 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학 발굴을 위한 연구 활동을 통해 시민들의 삶과 질을 향상시키는데 앞장서 나가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문화원은 1947년 최초로 강화문화원이 자발적으로 출발하여 1962년 문화원연합회가 출범하여 현재 231개의 전국지방문화원이 문화선진국으로 우뚝 서기위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향교는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으로 선비들이 모여서 공부 한 다음 당시 대학 교육기관 이었던 성균관에서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하면 벼슬길로 나아갔다. 전국의 234개 향교는 현재는 학교기능은 잃었지만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향교는 문화원과 달리 법적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자력으로 운영되는 향교도 손을 꼽을 정도로 적고 열악한 실정이다. 전통문화는 현대문화의 근본 뿌리이며 민족의 혼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복지혜택이 너무 많다보니 공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옛날 어느 임금이 신하에게 백성들에게 교훈되는 책을 써서 바치라고 어명(御命)을 내렸다. 신하들은 각고(刻苦) 끝에 12편의 책으로 국민들에게 교훈이 되는 책을 냈다. 임금은 노발대발하며 백성들이 12권의 책을 언제 읽을 거냐 하고 다시 쓰라 했다. 신하들은 줄이고 줄인 끝에 1권으로 줄인 책을 발간했다. 임금은 이것이 너희들에 실력이냐 하고 화를 참지 못한 채 역정(逆情)을 냈다. 그러던 끝에 한 신하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하는 한 마디를 임금께 아뢰었다. 그리고는 "심는 대로 거두리라"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됐다 한다. 공짜와 관련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옛날 어떤 가난한 사람이 품을 팔아 받은 돈으로 낡은 베옷 한 벌을 사서 입었다. 이것을 본 이웃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귀족의 자손인데 왜 이런 낡은 베옷을 입었는가. 내가 그대에게 아름답고 훌륭한 옷을 입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이니 내 말을 따라하시오. 나는 결코 그대를 속이지 않겠소" 그는 기뻐하면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그 사람은 그 앞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지금 그 추하고 낡은 베옷을 이 불 속에 넣어 태워버리시오. 그 옷이 타고 난 자리에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옷이 생길 것이오" 그는 입고 있던 낡은 베옷을 불 속에 던졌다. 그러나 그것이 다 타서 재가 되도록 아름다운 옷은 생기지 않았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웃 사람에게 소리쳤다. "이 사기꾼아! 너는 어찌하여 훌륭하고 아름다운 옷을 구해준다고 거짓을 말했는가" 이웃 사람이 말하였다.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다. 자기의 낡은 옷에 만족하는 그대가 어리석어 내 잠시 뉘우치게 한 것뿐이다. 너는 몸만 귀족이고 마음은 거지이지 않은가." 그는 그제야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보다 훌륭한 가르침은 없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 대가를 얻으려는 것은 썩은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또 다른 이야기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어느 날 한 부자에게 발송자의 이름과 주소가 없는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습니다. 부자가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어보니 그 속에는 값비싼 뮤지컬 관람권 두 장이 들어 있었지요. 부자는 누가 티켓을 보냈는지 매우 궁금했지만 부인과 함께 공연장으로 가서 뮤지컬을 아주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뮤지컬은 참으로 멋있고 황홀했어요. 모처럼 낭만과 추억에 젖어 뮤지컬을 재미있게 관람했던 부부는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집안은 온통 흐트러져 난장판이 돼 있었고 값진 귀중품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거실 한복판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기에 그 쪽지를 펼쳐보니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이제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겠죠? 저의 이름은 도둑입니다. 당신도 역시 공짜를 좋아하는군요." 우리는 이글을 보고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만사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는 것과 이 세상에 순수한 의미의 공짜는 없기에 우리는 땀을 흘려 수고해야 합니다. 뿌리고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세상은 우리를 끝없이 유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안에 자리하고 있는 탐심이 참된 평안을 빼앗고 참된 행복을 잃게 합니다. 지나친 복지혜택은 국민들이 땀 흘려서 일하는 보람과 즐거움! 즉 신성한 노동의 대가를 잃게 하고 무기력해지기 때문에 나라경제가 파탄이 나는 경우를 복지천국을 자랑하던 나라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그 동안 코로나로 실시하지 못했던 새해맞이 행사가 마즈막재 종댕이길 제2주차장에서 충주문화원주관으로 개최한다는 안내장을 받고 망설이다가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방한복은 물론 목도리와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하니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더 편했다. 4대의 셔틀버스를 준비하여 해맞이 나온 시민을 실어 나르는데도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한 승용차가 끝없이 늘어섰다. 모처럼 실시하는 해맞이 행사라 인파가 대단히 많았다. 새해소망 매달기, 느린 엽서 부치기, 캐릭터(토끼, 충주 씨)와 사진 찍기가 부대행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새마을 부녀회에서 떡국을 준비하여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광장 중간 중간에 몸을 녹일 난로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난간 쪽에는 일출장면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자리를 선점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는 사물놀이장단이 새벽을 열고 있었다. 정호승의 시 『희망의 그림자』가 낭송되었고, 중창단이 충주찬가와 희망의 나라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새해 덕담 나누기로 조 길형 시장과 이 종배 국회의원, 박 해수 의장, 유치원 어린이의 축하 메시지, 행사를 주관한 손 창일 문화원장의 덕담이 이어졌다. 이어서 신나는 난타공연이 있었고 세시음식으로 떡국을 나눠먹는 순서로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동쪽 하늘엔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산등성이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일출시간이 한 시간이 지난 귀가 길에 해가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화기엔 카톡 소리가 계속 울리더니 집에 도착하여 열어보니 강릉으로 해맞이를 간 둘째가 보낸 사진은 일출이 선명하게 보였고, 막내 딸네는 서해안 궁평항으로 해맞이를 갔다며 일출이 선명한 사진을 올렸다. 딸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강릉경포대로 해맞이를 다녔는데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초등생 아들딸을 데리고 해맞이를 하고 있으니 한세대가 훌쩍 흘러갔음을 느꼈다. 아이들이 큰 다음에도 지인과 함께 포항 호미곶으로 해맞이를 갔다가 숙소를 못 구해 식당에서 새우잠을 잠깐 자고 떡국을 얻어먹으려고 긴 줄을 섰다가 국물만 먹었던 적도 있었다. 주차장이 부족하여 논에 임시로 주차장을 만들었는데 차량이 너무 많아서 빠져 나오는데 몇 시간을 소모하며 고생만 하고 왔던 일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사실 해가 바뀌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달력에 의해 년도가 바뀌는 것이고 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해가 뜨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인데 새해맞이로 전국의 해맞이명소엔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것을 생각하면 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휴대폰을 누구나 가지고 있어 평소에도 소통을 하고 있지만 새해 안부 인사를 주고받느라 메시지가 쌓여 열어보며 답장을 주고받는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진에 인사말을 넣기도 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실감 있게 새해 인사를 나눈다. 학생들도 옛날처럼 공책에 글씨를 쓰지 않고 자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필기구로 글씨를 쓰지 않아서 난필이 되고 있다고 한다. 글씨를 잘 쓰던 사람이 대우받던 시절도 사라졌다. 컴퓨터가 모두 대신해 주기 때문에 수기(手記)로 하는 것은 서명뿐이다. 올 해는 1월 1일이 일요일과 겹쳐서 대체휴일도 아니라 휴일하루를 손해보고 한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의 시작도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부터이기 때문에 시작의 의미가 확실한 한해라는 생각이 든다. 새해맞이를 멀리 이동하며 들뜬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개인의 계획과 함께 가정의 일 년 계획도 수립하여 알찬 한해를 설계하는 풍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연말이 되면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우리사회를 훈훈하게 해주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거리에 나타난다. 동무사무소에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다녀갔다는 뉴스가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여준다. 70대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휴지나 종이박스를 주워 모아 판돈 100만원을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고 맡기고 사라졌다는 얼굴 없는 천사 뉴스는 너무나 큰 울림을 주고 서민들을 감동케 한다. 조선일보 12월 19일자 1면 톱기사로 경비원 김방락 씨는 한성대 에듀센터 경비원으로 일하며 120만원의 월급을 10년간 모아 1천만원을 기부하고 이듬해 말까지 9천만원을 추가로 내겠다고 약정서에 서명하여 1억 원을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훈훈한 뉴스이다. 이 밖에도 한우축사농장대표의 1억 기부, 동대문구 완구시장 야간경비원 1억 기부, 대구 수성구 보건소 공무원 1억 기부, 강릉 꼬막비빔밥 가게 2억 기부, 서울서 단팥죽 가게운영 하는 분이 15억 기부, 대구 키다리아저씨가 13억 기부 등 올해 1억 이상 기부한 회원이 3천명을 돌파하였다고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들은 예금을 깨고 분양권을 포기하면서 이웃을 생각하며 돕는 분들이라고 한다. 한자어 기부(寄附 : 공적인 일이나 남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와 영어 (Give : 주다 . 전하다. 제공하다. 기부하다. 수여하다)로 신기하게도 발음이 똑 같은 동양과 서양이 일치하는 유일한 단어인 것 같다. 남에게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나누며 살아가라는 거룩한 가르침을 주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은 진정한 기부행위이기에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도리어 도움을 받아야 될 분들도 이웃을 돕는 마음은 연말에 더욱 돋보인다.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수혜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경제적 기부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함께한다는 따뜻한 마음가짐은 숭고한 것이다. 기부행위는 상호간의 희망, 사랑, 자존감, 기쁨, 신뢰, 정직, 용기 등과 같이 광범위한 범위에서 신뢰감이 형성되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기부문화의 의무는 생존을 위한 경제적 소득이 없는 사람에 대한 자녀들의 보호와 질병 등으로부터 건강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빈곤층에 대한 생활상황 개선과 자력을 위해서는 경제적 기회와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기부문화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희생의 원칙에서 빈곤자들의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기부는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황폐화 하거나 파괴할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국내 주요 그룹인 삼성이 500억, SK가 120억, LG도 120억 등 연말을 맞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한 '통 큰 기부'에 나섰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향교를 600여년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선배유림들이 개인 재산을 향교를 위해 기부하여 후대를 위한 기부문화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조상이 남긴 전통유교문화를 위해선 지원금(支援金)이 전혀 없어 전국의 234개 향교 중에는 재정이 빈약하여 춘주 석전제를 봉행하지 못하는 향교가 100여개나 된다고 하니 풍요 속에 빈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성균관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성균관·향교·서원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루속히 국회에 통과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미풍양속인 효를 실천하는 경로잔치를 어버이날을 전후하여 주로 베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궁으로 70세 이상의 원로대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어 드린 데서 기로연이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원로 문신들의 경륜과 경험을 공경하고 예우하기 위해 국왕이 직접 주재해 다과상 등을 베푸는 자리였습니다. 예조(禮曹)의 주관으로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고령의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매년 봄 상사(上巳)일인 음력 3월 3일과 가을 중양(重陽)일인 9월 9일에 베푼 잔치라고 합니다. 현재는 지역 향교에서 어른을 공경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경로효친 사상을 기리는 전통문화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충북의 18개 향교 중에서 가장 늦게 지난 1일에 200여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간소하게 충주향교 기로연(耆老宴)잔치를 치렀습니다. 국악과 민요를 30분간 공연하여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축사와 격려사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단양 출신으로 고려 때 고시조의 원조이신 우탁(禹倬)선생의 탄로가(歎老歌)가를 낭송하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하였습니다. 중원음사(中原吟社)와 충주 해동연서회 회장인 서동형 선생의 성균관지상백일장 장원 한시를 독송하여 유림들의 시심(詩心)을 발현(發現)시켰습니다. 예전엔 70세까지 살기를 원했다하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노인의 수가 늘어 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장수노인을 조사한 사람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친구의 수' 이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고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였다는 것입니다. 유학의 창시자이며 만세(萬世)종사(宗師)이신 공자께서는 자절사(子絶四)라 하여 자기 마음대로 결정(決定)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斷言)하지 않았으며, 자기 고집(固執)만 부리지 않았고, 따라서 아집(我執)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모두를 하나의 속성(俗性)으로 묶으면 바로 '겸손(謙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본받아야 할 성인의 실천덕목입니다. 어느 노인의 글에 "나는 늙어 자연을 느낀다. 인생은 자연 과정이다. 태어나는 것도 자연이고 늙는 것도 자연이고 죽는 것도 또한 자연이다. 자연과정에서 자연을 따라야 마음이 평안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새겨볼만한 글입니다. 우리나라도 문명의 발달로 물질이 풍요롭고 편리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풍양속과 전통문화는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륜도덕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초인 가족이 붕괴되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노인들께서 나라 잃은 아픔과 전쟁의 잿더미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잘살아 보자는 일념으로 성실근면하게 일하고 근검절약하며 일으킨 경제성장이기에 젊은 세대들이 그 노고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노인을 받들어 모셔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백행의 근본인 효(孝)사상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내 인생 남이 살아 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됩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즐기라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어른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충주향교의 기로연 행사에 참여하신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가 얼어붙은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습니다.
가을이 익어간다. 단풍이 아름다운 늦가을에 여행을 떠나면 마음이 설렌다. 매년 가을이면 부부동반으로 고교동문들의 모임에서 여행을 다녀왔다. 사모님들도 기다리는 여행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3년 만에 여행을 떠나니 더욱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8시에 충주를 출발하여 10시가 되어도 자욱한 안개가 걷힐 줄 모른다. 첫 여행지는 바다처럼 넓은 예당호(禮唐湖)였다. 관광버스에서 내리니 모노레일을 바로 탈 수 있었다. 호수 옆에 자리 잡은 동산을 굽이굽이 오르고 내리며 주변 경관을 관람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호숫가에 유유히 떠다니는 고깃배가 소나무 숲 사이로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군데군데 정자(亭子)도 있고 멋진 출렁다리가 눈길을 끌었다. 출발했던 곳에 도착하니 모노레일을 타려는 인파가 긴 줄로 서있는 것을 보고 모두들 바로 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했다. 출렁다리 중앙에 높은 탑이 솟아있고 다리를 지탱하는 긴 줄이 마치 현악기를 연상하여 호수와 잘 어우러졌다. 일행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리 중앙에 전망대를 오르니 주변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다.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한바탕 웃으며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두 번째 여행지인 바다에 떠있는 유일한 간월암(看月庵)으로 이동하였다. 3년 동안 못 나눈 이야기와 회원들의 동정을 공유하면서 퇴직 후에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갯벌이 들어난 간월암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푸짐한 바다 회와 식욕을 돋우는 음식으로 술잔을 기우리며 여행기분이 한끝 고조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여행에서 맛 기행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바닥이 다 들어난 갯벌에 썰물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무학 대사가 창건한 간월암은 밀물 때 섬이 되는 천수만에 자리 잡은 암자이다. 간월(看月)의 뜻은 넓은 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는 경관이 좋은 곳이라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치 바다위에 떠있다는 느낌을 주는 암자로 유명하여 서산 9경중 3경이라 한다. 마지막 여행지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위치한 추사(秋史)고택으로 향했다. 넓은 잔디밭에 묘소가 보였고 단아하면서 고풍을 간직한 추사고택은 한옥기둥의 대련(對聯)을 보니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서예의 대가(大家)이며 특유의 서체를 남기신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혼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은 예술가이며 구문화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인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이기도 하다. 벼슬은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예술은 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등에도 뛰어났다. 생에 최고의 명작은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歲寒松)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歲寒圖)이다. 불이선란(不二禪蘭), 죽로지실(竹爐止室), 화암사(華巖寺)무량수각(无量壽閣), 일산이수정(一山二水亭)등 유작(遺作)을 보며 그의 묘소 앞에서 추모하는 마음으로 가을 풍경을 느끼며 기념관으로 이동하였다. 기념관에는'예산 추사의 마지막 그리고 시작'이라는 특별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주차장 옆에는 체험관이 있어 자라는 세대들이 현장학습의 장소로 조성되었고, 묘소 주변에 드넓은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었고 노란 은행나무가 고택과 어우러진 가을의 경치를 뒤로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회원들도 모두 만족해하는 가을 여행이었지만 동행한 사모님들이 너무 좋아하며 춘추로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모두 박수를 치며 헤어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여 독서주간행사도 하고 도서관은 많이 생겨났지만 교양도서나 인문학의 독서보다는 취업시험 준비생들이 많다. 한국이 공업화를 이루기 위해 지방 공단에 공장을 많이 짓고 있을 때 일본의 후쿠다 구매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지방 공단을 방문하며 유심히 한국 사람들을 관찰하고 나서 내가 20여 일 동안 한국을 여행했지만 책을 읽는 한국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순간은 있을지 모르지만 미래가 없다고 하며"한국은 일본이 걱정할 나라가 아니오"라고 말했다 한다. 너무나 부끄러운 평가이다. 5년 전인 2017년 문화체육부가 국민 실태 조사에서 나타난 연간 평균 독서량은 한국의 성인은 8.3권인데 반하여 일본은 40권이었다. 일본은 우리에 비해 무려 5배 정도 책을 더 많이 읽고 있었다. 미국은 12권, 프랑스 20권,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60권 정도의 독서량이었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성인들 40%는 일 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무지하고 억지 부리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외부 포장은 세계적 수준이나 내용물은 저급하기만 하다.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버핏은 년 간 약 5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다. 독서가 주는 중요한 가치는 인간의 생각을 깊게 하고 진지한 성찰을 도와준다. 독서가 바탕이 되는 인문학은 사람들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하는 힘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독서량이 적으니 한국 사람들은 너, 나를 구분하지 않고 생각의 힘이 약한 것이 아닐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니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도 아무 생각 없이 하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것 같다. 정치꾼들이 벌이는 나라 망치는 짓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과 분별력이 부족한 것 같다. 2018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혼조 다스쿠(76세) 교토 대 교수의 좌우명은 '유지경성(有志竟成)' 즉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독서와 오랜 묵상과 깊은 사유에서 나오는 것이다. 독서량이 형편없으니 한국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 않고 이성적인 생각이나 말보다는 감(感)으로 하고 억지가 많고 떼를 많이 쓴다. 법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떼를 써서 그 법과 원칙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떼씀과 우김이 법보다 상위에 있으면 그런 국가는 미개 국가로 분류한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잘살고 있어 근대화는 이루었지만 정신적 근대화는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생각의 능력은 바로 독서에서 나오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생각할 힘이나 능력이 없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에 속아 피해도 제일 많은 나라이다. 거짓말에 잘 속고 유언비어에 약하다.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나 삶의 신념도 철학도 없으니 생각의 내공이 약할 수밖에 없다. 탐욕심이 강해 욕심이 많고 공짜에 약하다. 국민정신을 바로세우는 길은 독서를 바탕으로 인문학이 바탕이 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심보감 입교(立敎)편에 독서는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이치를 따름은 집을 잘 보존하는 근본이요, 근면과 검약은 집을 다스리는 근본이요, 화목과 순종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라 했다. (讀書는 起家之本이요. 循理는 保家之本이요. 勤儉은 治家之本이요, 和順은 齊家之本이니라) 독서의 중요성을 성현들이 강조한 대목이다. 곡식을 잘 키우려면 밑거름이 중요하듯이 인문학이 바탕이 없으면 모든 분야도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 바탕은 동양이나 서양이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조지 워싱턴(1732~1789)이 군대에서 제대하고 민간인의 신분으로 있던 여름날 홍수가 범람하자 물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합니다. 물이 넘친 정도를 살펴보고 있는데 육군 중령의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초로(初老)의 군인 워싱턴에게 다가왔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제가 군화를 벗기가 어려워서 그런데요. 제가 이 냇물을 건널 수 있도록 저를 업어 건네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렇게 하시구려!" 이리하여 중령은 워싱턴의 등에 업혀서 냇물을 건너게 됐다고 합니다. 등에 업힌 군인은 워싱턴에게 질문했습니다. "노인께서도 군대에 다녀오셨나요?" "네 다녀왔지요!" "사병이셨습니까? 장교였습니다." "혹시 위관급(尉官級)이셨습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러면 소령이었나 보네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그럼 중령이셨군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대령이셨단 말씀이십니까?" "조금 더 위였습니다." "아니 그럼 장군이셨네요?" 중령이 당황해서 "저를 여기서 내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냇물을 건너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소, 내가 업어 건네 드리리다." "노인께서는 그럼 준장이셨습니까? 혹시 중장이셨나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최고의 계급인 대장이셨단 말씀이세요." "조금 더 위였습니다." 냇가를 다 건너게 되자 워싱턴이 중령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을 업어 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 중령은 텁수룩한 노인이 당시 미합중국의 유일한 오성장군(五星將軍) 조지 워싱턴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일화입니다. 이런 일이 동양에서 일어났다고 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젊은 군인을 업고 냇물을 건너게 해주는 노인이 있을까요? 경로사상이 투철한 한국의 노인들은 장교를 꾸짖거나 젊은이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면 군 서열로 보면 아득한 후배장교에게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하고 과거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 호통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을 낮추고 젊은 후배장교를 업어서 물을 건네주었던 그 인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큰 인물의 행동이었기에 우리가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노인의 등에 업혀 중령이라는 위상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노인에게 군대시절의 계급을 묻는 거만한 젊은이에게 "조금 더 위였습니다"라고 하는 겸손한 말씀은 어찌 보면 성인(聖人)의 무언(無言)의 가르침과 같이 느껴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가르침의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며 생명체를 살리듯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거도 없다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변화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은 제헌의회의 의장으로 선출됐으며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런 인격을 갖춘 인물이기에 달러 지폐에 사진이 올랐고 그 이름을 따서 수도(首都)의 이름이 정해졌다고 봅니다. 지도자의 길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이 안 되고는 걸어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워싱턴은 책보다는 야외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널리 여행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판단보다 휘하 장군들의 판단을 더 존중하는 경향이었다고 합니다. 후배 장교를 위하는 마음은 곧 국민을 위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차림새가 초라하다거나 몸에 걸친 의복이 다소 남루 하다고 해서 사람을 낮춰보는 우(愚)를 범하기 쉽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워싱턴의 일화(逸話)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산(茶山)은 근기(近畿)지방의 남인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연간에 문신으로 벼슬을 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한 인물이다. 유배기간에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 경세유표(經世遺表),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신서(欽欽新書)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다.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해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했다. 다산의 글 중에 노년유정(老年有情)에 관해 마음으로 쓴 글이 좋아 옮겨 본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으니, 그댄 자신을 꽃으로 보시게. 털려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 들면 못 덮을 허물없으니 누군가의 눈에 들긴 힘들어도 눈 밖에 나기는 한 순간 이더이다. 귀가 얇은 자는 그 입도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도 바위처럼 무겁네. 사려 깊은 그대여! 남의 말을 할 땐, 자신의 말처럼 조심하여 해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너그러 움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은 정은 사람을 감동케 하나니, 마음이 아름다운 그대여! 그대의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 지리라.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뜻이요,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리라.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이고,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정신이 돌아 버릴 테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리라." 구구절절이 지당한 문구가 노인들의 마음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좋은 글이다. 고령화시대에 노인인구가 증가하여 노인복지에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게이트 볼 장과 그라운드 골프, 파크 골프장을 만들이 여가를 즐기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만 우리나라가 잘사는 나라라는 증표다. 그 뿐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경로당을 만들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운동시설을 이용하며 체력도 단련할 수 있고 정담을 나누며 노후를 보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선시대 실학자의 글이지만 오늘날 노인들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명언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자라는 세대들에게 경로사상을 기대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변했음을 실감한다. 노인들도 유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있었건만 자기들은 늙지 않고 마냥 젊음을 유지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우리의 전통 효 문화는 서구의 개인주의 사상이 확산되어 쇠퇴하고 있다.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효사상이요 공경해야 하는 사람의 도리인데 부모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 사항으로 치부하며 젊음만 즐기려고 하는 것 같다. 또한 노인들 중에는 자기기준으로 젊은 세대를 대하면서 간섭을 하거나 훈육하려고 들면 노인의 품위만 잃고 존경을 받을 수 없음을 감지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베푸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추선(秋扇)은 가을 부채라는 말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늘 가까이하다가 선선한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어지는 것이 부채와 선풍기다. 추선이란 말은 총애를 받던 신하나 사랑받던 여인이 임금과 낭군에게 잊히는 신세일 때 종종 비유되는 말이다. 해마다 오는 가을인데 올가을을 맞는 느낌은 조금 특별하다. 올해는 절기가 빨라서 추석인데도 풋대추를 차례 상에 올려야만 했다. 체온을 웃도는 무더위와 싸우면서 삼복더위를 이기느라 모두가 힘들었던 지난 여름이었다. 단골손님으로 찾아오는 태풍이 올해는 역대급이라는 예보에 모두가 긴장했었는데 대륙에 접근하면서 다소 약해져서 큰 피해가 없었던 것은 천만 다행이다. 제주와 남해안을 할퀴고 지나간 '힌남노'의 상처는 피해 복구에 땀 흘리는 분들에게는 추석의 풍요와 화목한 가족의 행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범람하는 하천, 무너지는 산, 가옥과 차량의 침수,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삼복더위에 간절히 바라던 시원한 바람은 없어도 되는 계절이다. 가을이면 상자 속에 던져 넣는 부채처럼 여름내 가까이했던 선풍기와 에어컨을 잊어도 되겠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계절이 변해서 내년에 여름이 또 온다는 사실이다. 우주의 섭리는 오묘하면서 규칙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는 수조개의 혹성이 분화하면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다니 인간이 생존하는 지구촌도 자전과 공전을 하는데 이는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라 한다. 그러나 쉬지 않고 돌고 있는 지구에 살면서도 어지러움을 느낄 수 없는 것도 자연현상의 오묘함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적응하는 위도에서 살아가는 것도 특권이요,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추위와 더위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가뭄과 홍수의 피해도 반복됨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철저히 대비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가을 부채는 더운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지 상자 속에서 잊힌 존재로 남았다가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 손에 들려 연신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가뭄과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가 가을 부채와 같아서는 곤란하다. 뒷전으로 미루고 멀리하다가 예년과 같은 내년이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태풍도 큰 재앙이지만 지구촌의 대청소라고 생각하면 자연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의 위도가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은 나라들이 문명이 일찍이 일어나서 문화국가로 성장 발전해 왔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을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가을처럼 풍요로운 것은 없는 듯하다. 들판에 황금물결이 일렁거리고 사과를 비롯한 밤, 감, 대추와 고추가 가을볕에 익어가는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하기 까지 하다. 예전의 농촌풍경은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농부들의 환한 웃음이 아름답게 보였었다.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나면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마을 축제를 겸한 운동회가 큰 행사였고 명절에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가을바람에 펄럭이는 만국기 아래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달리기를 비롯하여 기마전, 차전놀이, 곤봉체조,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공굴리기 짝 체조, 농악놀이, 어른들의 경기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웃음꽃이 만발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운동장 구석에서는 국밥을 끓여 먹던 점심시간도 즐거웠다. 면내에 평균 3곳의 학교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되고 면소재지에 한곳만 남은 곳은 그나마 다행이다. 졸업생들이 모교가 없어져 동문체육대회를 할 곳이 없는 곳도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고향을 찾아와도 사용하지 않는 가을부채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만 떠올려 보게 하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