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가을이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알맞은 기온에 하늘은 높고 가을 산을 물들인 단풍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다가 없는 충북에 살면서 남해로 2박3일 가을여행을 가기로 했으니 마음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봄가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이었으면 한 해를 춘추(春秋)라 하여 어른의 나이를 높여서 춘추가 어떻게 되셨느냐고 했겠는가? 여행은 모임에서 가야지 모든 것을 툭툭 털고 떠나게 된다. 코로나로 외국여행이 안 되니 남해안을 돌아오자는 의견에 모두 찬성하며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일기예보가 떠나는 날 비가오고 다음날은 기온이 떨어진다 해 마음을 졸이며 출발했다. 여덟 명이 15인승 봉고버스에 올라 상기된 마음으로 동심으로 돌아갔다. 고속도로를 달려가면서 간간이 햇빛이 마음을 열어주었다. 남쪽지방에는 아직 단풍이 한창이었다. 내장산과 송광사 단풍을 보고 싶었지만 아쉬움만 남긴 채 순천에 도착해 꼬막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한국의 '나폴리'라 하는 미항(美港) 여수로 가면서 세계 1위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보고 유월드, 루지 테마파크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오랜만에 오동도 동백숲길을 걸으며 힐링을 맛보았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는 광장을 둘러보며 어둠이 내려앉기를 기다렸다. 야경이 일품인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여수 밤바다 위를 케이블에 매달려 휘황찬란한 밤풍경을 구경하면서 크루즈유람선 보다 더 좋다며 야경을 즐겼다. 저녁을 먹으려고 일행 중 조 선생님의 제자가 예약한 방에 들어가니 모두들 입이 딱 벌어졌다. 이런 상을 처음 받아본다며 풍성한 바다 회 정식을 먹으며 술도 한잔씩 곁들였다. 예약을 한 제자분이 저녁 값을 계산을 했다하여 일행은 감동으로 고마워했다. 충주사과를 답례로 보내 주기로 했다. 둘째 날은 숙소 인근의 유명한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이순신 대교를 건너 거제로 출발했다. 두 시간이 넘게 달려가 거제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유람선을 타고 푸른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배를 따라 갈매기 떼가 끼륵 거리며 새우깡을 채가는 풍경은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금강산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이 바다에 서 있다해 해금강이라 하는 천하절경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금강을 뒤로하고 아름답게 정원을 가꿔놓은 외도에 배가 접안했다. 외도는 여러 차례 다녀갔지만 너무 아름다운 섬이다.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던 분이 바다낚시를 왔다가 너무 좋은 섬이라 섬을 사서 나무와 꽃을 심으며 정원을 가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다음 목적지인 울산을 향해 가거대교 해저터널을 빠져나가 가덕도를 바라보며 울산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했다. 저녁은 장생포에서 고래 고기를 먹기로 했다. 냉동고기라서인지 중학교 때 먹어본 고래 고기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은 대왕암 숲길을 걸어 황금색의 바위로 된 작은 섬을 다리를 놓아 아기자기한 관광을 즐기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최근에 놓았다는 가장 길다는 출렁다리를 건너는데 흔들려서 재미있었다. 날씨가 여행하기에 너무 좋아서인지 카페에서 사온 커피를 마시며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태화강변을 따라 십리대숲 길을 걷기 위해 하상주차장에 내렸다. 대숲 들어가기 전에 순천에 못 들린 갈대숲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대숲에 들어서니 색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서 빠져나오니 넓은 벌판에 노란 소국(小菊)이 꽃 카 페트를 깔아놓은 듯 화사했다. 사모님들은 사진 찍기에 바빴다. 점심은 장어를 먹고 활력을 충전한 꿈같은 가을 여행이었다.
충주 출신으로 한자교육운동을 20여 년 이끌어 오다가 결실을 보지 못하고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진태하 박사가 창간해 매달 발행해오고 있는 월간 '한글+漢字문화'가 지식인의 교양지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달 11월호가 268호니까 22년 3개월이 된 셈이다. 이 잡지는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에 애독신청을 하면 추진위원이 되며 연회비 5만 원만 내면 월간지를 매달 받아볼 수 있다. 한자문화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식교양지로 한글전용으로 빚어진 문제점을 짚어보고 한자교육에 대한 의식의 확대와 한자교육에 관련된 뜻있는 분들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지난 9월호에 실린 추성(秋聲)이란 제목의 한시(漢詩) 한 수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 한시를 쓰신 분은 교직에서 은퇴하고 거창(居昌)향교에서 16년 동안 한문 강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박성근(朴聖根·88세)선생님이시다. 7언 율시(律詩)를 소개하면 "방야추성홀이경(方夜秋聲忽耳驚) 밤이 되니 가을 소리 문득 귀를 놀라게 하고, 소소일기태허청(蕭蕭一氣太虛淸) 쓸쓸한 기운이 하늘을 맑게 하네, 불현불관선간수(不絃不管宣間樹) 현악기도 관악기도 아닌 것이 나무 사이에서 베풀어지고, 위우위풍뢰상성(爲雨爲風籟上城) 비도 바람도 아닌 것이 성위에서 소리 들리네, 습로충제처부절(濕露蟲啼凄復切) 이슬에 젖은 벌레소리 처량하다가 다시 애절하고, 천운안읍단환생(穿雲雁泣斷還生) 구름 뚫은 기러기 소리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네, 흡수고열신양자(吸收苦熱新凉者) 고열(苦熱)을 흡수한 초가을의 서늘한 기운은, 해이도심별유정(解弛陶心別有情) 답답한 마음 풀어주니 특별한 정이 있어라." 참으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좋은 한시여서 소개했다. 이 분은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장학사, 장학관, 교육장까지 지내셨다고 한다. 미수(米壽)라고 하는 88세의 연세이신데도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향교에서 한문경전(經典) 강의를 하신다니 대단하신 분이라 생각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인데 누구나 계절의 변화를 보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시를 읊거나 독서를 하며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추억여행을 하며 가을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한시(漢詩)는 뜻글자인 한자로 지은 시(詩)이기 때문에 시를 읊으며 느끼는 맛이 깊이가 있고 상상력에 날개를 달고 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살아오신 어른들은 자연 속에 살면서 풍류(風流)를 즐기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한글전용으로 한자를 배우지 않고 자라는 젊은 세대들은 이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흥취와 감흥(感興)을 맛보지 못하며 산다는 것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옛 선비들은 누각(樓閣)에 모여앉아 벗들과 시가(詩歌)를 서로 주고받는 수창(酬唱)시를 즐겼으니 마치 신선처럼 우아하고 멋있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럽다. 이러한 전통문화가 계승되지 못하고 한문세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맥이 끊어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안타깝다. 우리문화를 우리가 보전하고 가르쳐야지 그 누가 지켜주겠는가? 간편하고 흥미만 쫒아가는 신세대들의 문화는 그 뿌리가 어디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민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야 하는 의무는 기성세대에게 있다고 본다. 세계인들이 한류(韓流)에 열광하는 것은 그 만큼 인간의 본성(本性)을 지키며 뿌리 깊게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려면 조상이 만들어 사용해 온 한자를 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2/3가 한자어(漢字語)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여야의 예비후보들이 토론을 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예비후보들의 토론을 보면서 과연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는 어떤 인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만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던 1954년. 정반대인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겨우 6주가 된 신생아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치하 동독으로 갔던 딸은 아버지의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생활로 양육 받으며 자랐습니다.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했고 통일과정에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해 환경부장관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독일 총선에서 총리가 된 후 2017년 4선에 성공했습니다. 소박한 시골교회서 자란 소녀가 통일 독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바로 이분은 목사님의 딸인 '앙겔라 메르켈(Angelika Merkel)' 총리입니다. 얼마 전에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어 오다가 물러나는 그녀를 위해 독일 국민들은 6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가 18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고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과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의 여성총리 메르켈입니다.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 성숙해졌고 이렇게 존경받은 지도자는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시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 시인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도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을 외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다른 나라 지도자들처럼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은 화학 물리학자인 이 독일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위임한 후 그녀의 자리를 떠났습니다. 18년 동안 그녀는 한결 같이 새로운 패션의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습니다.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 했는데 다른 옷이 없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그녀는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지를 묻는 기자에게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의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해 주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정직했고 진실했으며 자랑 하지도 않았고 꾸밈성도 없었습니다. 장기 집권이라 할 수 있는 18년이란 세월을 정권을 유지하면서 이렇게 존경의 박수를 받고 퇴임하는 지도자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소박하고 청렴한 지도자를 언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데 어떤 아이가 흙으로 성을 쌓고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레가 가까이 가도 아이는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얘야. 수레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겠느냐?" 그런데도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하던 놀이를 계속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레가 지나가도록 성이 비켜야 합니까? 아니면 수레가 성을 비켜 지나가야 합니까?" 아이의 말에 공자는 똑똑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수레를 돌려 지나가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이름은 황택이며 나이는 8살이라 했습니다. 이에 공자는 한 가지 물어 보아도 되겠느냐· 그러고는 바둑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황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군주가 바둑을 좋아하면 신하가 한가롭고, 선비가 바둑을 좋아하면 학문을 닦지 않고, 농사꾼이 바둑을 좋아하면 농사일을 못하니 먹을 것이 풍요(豊饒)롭지 못하게 되거늘 어찌 그런 바둑을 좋아 하겠습니까?" 아이의 대답에 놀란 공자는 한 가지 더 물어도 되겠냐고 하고는 "자식을 못 낳는 아비는 누구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허수아비"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연기가 나지 않는 불은 무엇이냐?" "반딧불이 입니다." 그러면 "고기가 없는 물은 무엇이냐?" "눈물입니다", 아이의 거침없는 대답에 놀란 공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제가 한 말씀 여쭤도 되겠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공자가 그렇게 하라고 이르자 아이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에 모든 나무의 잎들이 말라 버렸는데 어찌 소나무만 잎이 푸릅니까?" 공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속이 꽉 차서 그럴 것이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속이 텅 빈 저 대나무는 어찌하여 겨울에도 푸릅니까?" 그러자 공자는 "그런 사소한 것 말고 큰 것을 물어 보아라"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늘에 별이 모두 몇 개 입니까?" "그건 너무 크구나." "그럼 땅 위의 사람은 모두 몇 명입니까?" "그것도 너무 크구나." "그럼 눈 위의 눈썹은 모두 몇 개입니까?" 아이의 질문에 공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공자는 아이가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를 가르쳐 제자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아이가 머리는 좋으나 덕(德)이 부족해 궁극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 봤습니다. 그리하여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수레에 올라, 가던 길을 계속 갔습니다. 실제로 황택의 이름은 그 이후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8살에서 끝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머리로 세상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머리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보다 가슴이 미치는 영향이 휠 씬 큽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앞서 덕(德)을 쌓고 덕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갖 거짓과 모순(矛盾)과 악(惡)으로 넘쳐나는 것은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덕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미래주인인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천재교육이 아니라 "재주가 덕을 이겨서는 안 된다" 는 소박한 진리일 것입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식을 천재(天才)로 키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천재가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본성인 선(善)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단체나 국가의 미래가 밝아지고 번영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게 된다.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으려 한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인연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한다. 혈연으로 맺어지는 인연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혈연을 선택할 수 있다면 천륜으로 맺어준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서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될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묘한 면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실 예가 있다. 동양이 아닌 합리주의와 과학문명이 첨단을 달리는 미국 이야기라서 더욱 의아(疑訝)하기만 하다. 이 두 남자는 미국의 대통령 이었습니다. 한 남자는 18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한 남자는 100년 뒤인 1960년에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두 남자 가 금요일에 죽었는데, 머리에 총알을 맞고 죽었습니다. 두 남자 모두 총을 맞을 때 부인이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남자는 포드 극장에서 죽고, 한 남자는 포드에서 만든 자동차에서 죽었습니다. 극장에서 죽은 남자의 암살범 '부스'는 극장에서 암살을 하고 창고로 도망가다 잡혔고, 자동차에서 죽은 남자의 암살범 '오스왈드'는 창고에서 저격한 뒤 극장으로 도망가다 잡혔습니다. 암살범 '부스'는 1839년생이고, 암살범 '오스왈드'는 1939년생입니다. 이 정도만 봐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두 남자의 뒤를 이은 부통령 이름이 모두 '존슨'입니다. 앤드류 존슨은 1808년생이고, 린든 존슨은 1908년생입니다. 두 남자 모두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자식 중 한명이 사망했습니다. 두 남자의 암살범 모두 재판 전에 의문사로 죽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한 남자는 링컨 대통령이고, 한 남자는 케네디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인연인지 링컨 대통령의 비서 이름은 '케네디' 였고, 케네디 대통령의 비서 이름은 '링컨' 이었습니다. 링컨과 케네디 모두 이름이 알파벳 7자리입니다. 후임 대통령 앤드류 존슨과 린든 존슨의 알파벳은 13자리로 똑 같습니다. 암살범인 존 윌크스 부스와 리 하비 오스왈드는 15자리 알파벳으로 일치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 에는 너무 절묘한 일로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이런 인연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이해가 될까요?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 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중략)… 나무와 구름 사이 바다와 섬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수 천 수 만 번의 애달프고 쓰라린 잠자리 날개 짓이 숨 쉬고 있음을 ;(중략)… 인연은 서리처럼 겨울담장을 조용히 넘어오기에 한 겨울에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김현태님의 詩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일부가 마음에 와 닿아 옮겨보았습니다. 어떤 인연에 이끌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세의 인연으로 만나려면, 전생에 우리는 몇 억 겁을 스쳐야 만이 이렇게 현세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맺은 인연은 쉽사리 끊어지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늘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지곤 합니다. 어느 누구 한사람에게라도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심코 내가 주었던 마음의 상처가 훗날 나에게 상처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짧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성큼 닥아 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가을 추(秋)자를 자원(字源)풀이 해보면 벼화(禾)+불화(火)를 형상화 했는데 가을은 오곡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벼 이삭을 뜻하여 벼(곡식)가 햇볕(火)에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秋자는 '가을'이나 '시기'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秋자의 갑골(甲骨)문을 보면 禾자가 아닌 메뚜기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메뚜기를 구워 단백질을 보충하던 시기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본래'가을'은 메뚜기를 구워 먹는 계절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전(小篆)에서 메뚜기가 아닌 禾자로 바뀌면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을 뜻하게 됐다고 한다. 한자는 뜻글자이므로 한자를 만들었던 시기의 생활모습을 짐작할 수 있어 가을에 벼이삭에서 볼 수 있는 메뚜기를 구워먹는 민족은 동이(東夷)족 뿐이었다고 한다. 농약으로 지금은 보기 드문 메뚜기를 구워 먹었던 민족은 한자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던 동이족이라는 것을 유추(類推)해 볼 수 있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결실, 수확, 추억, 코스모스, 소풍, 수학여행, 운동회, 독서, 풍요, 사색, 단풍, 추석, 알밤, 홍시 감, 사과, 낙엽, 등 수없이 많다.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시골길을 걸어가노라면 파란 하늘에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고 낭만이 넘쳐난다. 뒷동산을 하얗게 물들였던 밤꽃이 지고 밤송이가 굵어지더니 알밤 삼형제가 세상을 향해 웃는다. 과수원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풍요를 알리는 사과도 빨갛게 익어가고, 올해는 유난히 많이 열린 대추도 붉게 익어가고 있다. 감나무엔 파란 감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어 껍질을 벗겨서 주렁주렁 매달아 햇볕에 말리면 호랑이도 겁을 냈다는 맛있는 곶감이 되고, 늦가을이 되도록 나무에 매달려 몰랑몰랑한 홍시가 되면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리게 된다. 가을볕에 시골 마당에는 고추를 말리는 풍경과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이 달덩이처럼 누워있는 옛날 풍경! 여기저기서는 추수 마당질을 하느라 농부의 일손이 바쁜 가을은 마음까지 풍요로운 아름다운 계절이다. 20여 년 전 우리 오남매가 지금은 모두 작고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설악산으로 단풍여행을 다녀 온 것이 추억으로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해외연수를 다녀와서 10월초 나는 새 차를 구입해 부모님을 모시고 굽이굽이 설악산 길을 운전하며 달릴 때 좋아하시던 부모님 모습이 가을이 되면 생각난다. 대포항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들뜬 기분에 노래방에 가서 매제들과 놀다가 큰 방에 누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느라 피곤한 줄도 몰랐던 일! 권금성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니 하늘을 오른 듯이 상기된 표정들이 생생하다. 신흥사를 둘러보고 흔들바위까지 오르며 가족여행 일정을 캠코더에 모두 담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하루 관광을 영상으로 TV에 재생해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너무 신기해 하시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속초관광을 마치고 낙산사를 거쳐 강릉오죽헌을 둘러보고 한계령을 넘으며 환상적인 단풍구경을 원 없이 했다. 단풍이란 날씨에 따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단풍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남매가 부모님과 함께 가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가슴 뿌듯한 감흥으로 가을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방학이 되어 외손자 네 명이 한 달 동안 있다가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떠나보내고 거실에 들어오니 텅 빈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아내도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 눈물을 훔치며 넋을 잃고 앉아 있다. "여보! 고생 많이 했어요" 칠순을 넘긴 아내도 처음엔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생활하니 활력이 넘치는 듯 했다. 맞벌이로 주말엔 와서 아이들과 놀아주었지만 사위는 백년손님이요. 딸도 친정은 편한 곳이다. 귀엽게 자란 아이들은 천방지축이다. 옷도 아무데나 벗어 던지고 화장실에서 나와도 불을 끌줄 모른다. 자기 물건도 정리정돈을 못 하고 이부자리도 정리를 못 한다. 일찍 결혼한 큰 딸은 아이 둘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이라 일주일씩 교대로 와서 동생들을 돌보며 놀아주었기에 도움이 됐다.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내도록 나는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한자공부를 시작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네 명을 교자상에 둘러앉게 하여 동몽선습과 사자소학을 가르쳤다. 한자가 어려운 문자가 아님을 인식시키기 위해 상형(象形)자부터 이야기로 자원(字源)풀이를 해주었더니 좋아했다. 넉자로 된 문장 속에 담긴 뜻을 익혀 교훈으로 삼도록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전래동화나 설화, 실화 등을 이야기해주면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수준에 맞는 한자급수 문제집을 풀어서 검사를 받으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아내는 손주들의 대견한 모습을 보고 간식을 준비해 먹인다. 손주들이 좋아하는 점심을 마련하면 너무 맛있게 먹으며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다. 이종사촌 간인데도 마치 친형제처럼 좋아하며 잘 어울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오후엔 가까이 있는 서 충주도서관에 데리고 가면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돌아오는 길엔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한다. 저녁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장면을 먹고 싶다고 해 탕수육과 함께 먹었다. 체온에 가까운 기온이 오르면 물놀이를 가자고 야단이다. 여름철 간식인 복숭아, 옥수수, 참외, 수박을 준비해 송계계곡으로 피서를 떠난다. 시원한 계곡 물놀이를 너무 좋아한다. 튜브를 타고나면 탱탱볼로 공놀이를 하며 물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할머니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물가의자에 앉아서 시중을 들어주며 중간 중간에 간식을 먹여주며 물놀이를 도와준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해주면 좋아하고 손주들 덕분에 시원한 여름을 보내니 너무 좋았다. 주말엔 엄마 아빠와 함께 물놀이를 하며 더 신이 난다. 일요일엔 문경으로 가서 약돌 삼겹살을 먹고 가은읍에 있는 석탄박물관엘 갔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관광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온 가족이 모였다. 큰 딸이 주변관광지를 검색해 보더니 청풍호반 관광케이블카를 타러가자고 해 오래전에 모노레일 타러 갔을 때 맛있게 먹었던 닭볶음탕 집을 찾아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을 오르며 펼쳐지는 청풍호반의 절경을 감상하며 모두 탄성을 질렀다. 사방으로 확 트인 산사이로 보이는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전망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너무 좋다며 단풍이 물든 가을에 또 오자며 감동을 받은 듯 했다. 때가 되면 무엇을 먹일까? 피자나 치킨 중국음식을 배달 시켜주기도 하고, 아이들 좋아하는 삼겹살도 사주었다. 아이들 빨래는 끝이 없고, 집안 청소와 설거지도 힘들어서 도와주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병나지 않고, 다치지 않게 놀아준 것이 고맙다. 광복절 사흘연휴에 차가 너무 밀려서 대체공휴일 날 아침에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 달 동안 정들었던 외가를 떠나는 아이들 얼굴에도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교자상(交子床)앞으로 손주들 네 명이 둘러앉는다. 여름방학이 돼 외가에 온 손주들에게 3주 째 기초한자를 가르치고 있다. 고전에 나오는 명문장을 배우며 올바른 인성이 함양되도록 동몽선습, 사자소학, 고사성어(故事成語)와 한자를 만든 자원(字源)이야기를 들려주면 손주들의 눈동자에서 빛이 난다. 모두 초등학생으로 1학년, 4학년 두 명과 6학년이다. 한글전용정책이 50여 년 가까이 이어지다 보니 현직선생님들도 한자를 모르는 세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조상대대로 한자를 만들어 사용해 왔던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2/3가 한자어(漢字語)로 돼 있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한자어로 된 문장을 해독(解讀)할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OECD국가 중 문장해독능력을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는 최하위로 나타났는데도 한글전용이 애국으로 생각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필자는 한자를 외국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자를 가장 먼저 만들어 사용한 민족은 황하문명보다도 천여 년이나 앞선 요하문명을 일으킨 동이족이었다는 것을 중국의 학자들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미 한자를 만들어 사용했던 동이족의 세력이 중국의 황하유역으로 넘어가서 문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황하문명이다. 한자(漢字)라고 하는 것은 한나라 때 정자(正字)인 해서(楷書)체를 완성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이족의 세력이 남하해 한반도로 내려왔기에 단군이전의 상고사에 따르면 한자를 만들어 사용한 동이족은 우리의 조상이기 때문에 한자는 국자(國字)라 할 수 있다. 물론 세계가 인정하는 한글의 우수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한글만 우리글이라고 하며, 우리민족의 정신문화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한자를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한글과 한자는 서로 보완하며 사용해야 할 우리민족의 글이다. 한자를 배척(排斥)하는 정책은 크나큰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충주 출신의 국문학자이신 청범(淸凡) 진태하 박사는 한자교육운동에 앞장서 (사)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를 설립해 초등학교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교육부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에 20여 년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7차 교육과정에 반영돼 2019년 5~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倂記)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갑자기 폐기해버리는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져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3년 전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이 운동에 함께 참여한 필자의 안타까운 마음은 어떻게 표현 할 줄 모르겠다. 잘못된 어문정책이 바로 설 때까지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정신으로 한자교육이 어문정책에 반영되도록 다음정권이 선택해 주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예의범절을 지킬 줄 모르고 버릇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사자소학은 어린이들의 언행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재로 사용하면 유익하다. 부모가 나를 낳아서 길러주신 은혜를 알게 하면 효도하는 마음이 싹트게 된다. 하늘과 땅이 생명을 살려주고 있기에 인간이 살아 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자연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마음이 싹트기 때문에 인성교육이 저절로 되는 것이다. 지금 초등학생인 손주들이 성장하면서 여름방학에 배운 한자공부가 도움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면 나에겐 작은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인천과 수원에 사는 손자 손녀 네 명이 왔을 때 마침 밭에 여러 가지 모종을 한창 심는 시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호기심이 넘쳐나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시장에 가서 모종을 사서 밭에 심어보자고 했다. 네 명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농사체험을 시키는 것이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놓고 실천해보고 싶은 마음이 의기투합했다. 도시의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자연환경과 격리 된 삭막함 속에서 자라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수확이라고 생각해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태워 각종 모종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 인도에까지 내놓은 포토에 잘 키운 모종이 즐비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자기가 키우고 싶은 모종을 3~5개씩 골랐다. 서로 중복이 되지 않게 고르라고 했다. 가게 주인에게 각자 비닐봉지에 담아주라고 하였다. 1학년 명균이는 방울토마토와 참외를, 4학년 형인 태균이는 딸기와 브로콜리를 골랐고, 4학년 여자아이인 선우는 수박을 골랐다. 동생들에게 양보한 6학년 형인 동우는 마땅히 고를게 없어서'비트'를 고르며 시무룩해 있었다. 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6학년 동우는 처음 들어보는 비트 모를 고른 것이 아쉬운 지 "애들아 ! 우리 나중에 먹을 때는 같이 나눠먹자!"하며 참외, 수박, 방울토마토를 못 고른 섭섭함이 묻어남을 보고 나 혼자 웃고 말았다. 이미 밭에는 고추, 오이, 토마토, 가지, 상추, 부추, 쌈 채, 고구마 등을 심어놓은 뒤였다. 상기 된 얼굴표정에는 새로운 농사체험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모종 심는 방법을 시범을 보였다. 아이들은 모종삽을 들고 비닐을 씌운 밭두둑에 정성들여 모종을 심었다. 간격을 맞춰 모종삽으로 파놓은 곳에 싹을 놓고 물을 준 다음 물이 스며든 다음에 흙으로 덮고 고사리 같은 양손으로 꼭꼭 눌러주는 모습은 앙증맞기까지 했다. 각자 자기 것을 심는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가족 밴드에 올려서 아이들 엄마 아빠도 보여주려고 말이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자라는 모습을 사진 찍어 보내주세요?"하며 너무 궁금한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들은 모종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만 보고 신기해했다. 6학년 동우는 방울토마토, 딸기, 비트를 보고 "말도 안 돼?"라는 댓글을 달았다. 가까이 살면 밭에 자주 가보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식물 모습을 보는 아쉬움이 컸다. 거의 한달 만에 와보고는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농사체험은 잘 한 것 같았다. 참외와 수박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작은 열매를 맺더니 커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새로운 농사체험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참외와 수박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유월의 햇볕을 받고 방울토마토도 주렁주렁, 참외·수박도 주먹만 해 지더니 7월 뙤약볕에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여름방학으로 외가에 와있는 동우와 선우는 참외와 수박을 먹어보더니 시장에서 사먹는 맛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맛있게 잘 먹었다. 내가 먹어봐도 자연의 순수한 맛이 나고 아삭한 맛이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키운 옥수수도 쪄먹으며 주말에 계곡으로 피서를 가서 먹는 간식으로 너무 좋았다. 딸, 사위, 아들, 며느리도 먹어보더니 농약을 치지 않은 노지재배의 맛이라며 하우스재배와는 다르다며 좋아했다. 이제 7월말에 모두 모인다고 하니 달덩이 같은 수박과 노란 오이는 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손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복잡한 도시의 문명에 찌 들어 있는 현대인은 자연휴양림, 친환경리조트, 산림욕장, 아름다운공원, 올레길, 둘레 길을 자주 찾아 나선다. 자연치유로 건강한 삶을 찾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숲속의 맑은 공기와,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가꾸고 운동으로 산을 오르며 정서적 안정감을 추구한다. 우리 몸은 이러한 자연환경을 좋아하며 기분도 상쾌해지고 활력을 얻어 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제논(Zenon of Elea)이 창시한 스토아학파는 올바르게 사는 것을 곧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자연은 우주의 원리이고 신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로서'자연권'이 강조돼 왔다. 흙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의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과 함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기회를 만들어 내부에 잠재된 감각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연 우주와의 분리가 아닌 상호공존으로 정신적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인간 모두가 자연생태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자연(nature)은 넓게는 우주적이지만 좁게는 우리 주변의 공원, 숲, 짐승, 날씨, 바람, 땅, 공기, 물 등과 관련된 물리적세계이다. 우리가 야생동물과 식물, 들꽃, 땅에 대해 늘 고맙고 아름답게 보고 느끼는 감정은 곧 자연 사랑이고 생명을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생명 애라 할 수 있다. 특정 화학물질, 산업먼지 등이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머지 전체 자연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해 왔다. 인간의 환경파괴로 삶의 질을 파괴하는 기후변화 등 생태환경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구촌 자연환경은 자연그대로의 완전한 생태계가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로 인한 인간의 절망과 고통의 감정은 질병상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이어갈 때 수명의 연장은 물론 정신 및 심리적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구의 생명력과 모든 생명체가 우리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 느낄 때 마음이 깨끗해지고 병든 몸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나무숲, 강, 바다와 직접 만나게 할 때 효과적인 생태치료는 물론 건강한 삶을 계속 유지해 갈수 있다. 자연의 고요함과 평화를 느끼며 여백을 즐기는 삶이 진정한 건강한 삶이라 할 수 있다. 열자(列子)는 자연을 인간 삶의 본질로 보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본래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성대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인간 본성은 진실한 감정, 천진난만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자연적이라는 것이다. 인간본성은 원래 노자(老子)가 말한 무(虛無)와 같은 것으로 유(有)로서의 감정, 지식, 욕망 등을 버려야할 대상이라 했다. 인간본성은 태어난 대로 살아야 한다면서 인위적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삶의 질을 본질적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은 숨겨진 보화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자연 속에 살면서 그 보물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자연과의 겸손한 대화, 사랑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때 그 보물은 열리게 마련이다. 정원을 가꾸고 채소밭을 일구는 일은 매우 행복한 즐거움이다. 건강한 삶은 자연을 살리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얼굴 모습을 보려면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못 느끼는 모습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는 눈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간 유럽의 어느 기자가 한국 친구에게 보내 온 글 제목이 '3광(狂)1무(無)1유(有)'의 나라로 표현 했다는데, 3狂의 첫째가 한국인은 모두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 폰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대부분 카톡, 게임이나 먹방, 노래, 심지어 고스톱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전철에서 스마트 폰 대신에 책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유럽 사람들은 보통 책을 읽는다. 가족이 공원이나 식탁에서도 가족 간의 대화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였다. 둘째는 공짜 돈에 빠져있는 사회라고 꼬집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 돈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짜 돈이라 해도 그 돈의 출처라도 알고 받아 써야 하는데 재난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주는 공짜 돈은 선심성 돈이 아닌가? 2016년 6월 스위스 국민들은 정부가 공짜 돈 300만 원 정도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국민 투표에 부쳐 76.9%로 부결시켰다고 한다. 너도 나도 전부 공짜 돈을 받아 챙기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세 번째는 트로트에 빠져있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트로트는 한국의 대부분 방송국에서 단골 프로가 되었다. 가수들이 중복 출연하고, 노래도 중복되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한국의 문화라면 어쩔 수 없다며 이상하게 본 것이다. 한국인들은 음주 가무를 즐긴다. 인구 비례로 노래방 수는 세계 1위다. 퇴근 후에 집으로 바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주말이나 휴일에 즐겨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시도 때도 없는 트로트와 음주 가무는 정신을 황폐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로마가 망할 때 포도주와 공짜 빵 그리고 서커스에 취해 망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렇다면 1無는 무엇인가? 그것은 안타까운 말이지만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무사고(無思考)이다. 한국인들은 생각하길 싫어한다. 그러니 진지함도 별로 없다. 유머 중에 "일본사람들은 생각하고 난 뒤 뛰고, 중국인들은 일단 뛰고 난 뒤 생각하고, 미국인들은 뛰면서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뛰다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자기가 왜 뛰는지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뛴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니 나라가 어떻게 되더라도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일하는 것이 한국인의 습관이자 문화가 돼 있기 때문이다. 안전 법규나 안전수칙은 안중에도 없는 無思考가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마지막 1有는 무엇인가? 그것은 '말은 한다.'는 것이다. 전부 말로만 하지 행동이나 실행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모두 말은 번지르르 하게 많지만 전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 했으면 한국인을 "행동은 하지 않고 말만 한다."는 나토(NATO)족이라고 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침묵하고 있는 모습이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역사를 그렇게 좋아하는 한국인들이지만 정작 자기나라에 대한 투철한 역사의식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고 했다. 나라는 국민들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지각(知覺)도 생각도 없는 한국인들인가 싶어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니 한국인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드는 유럽 기자가 보낸 편지를 모든 국민이 한 번 읽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낙원(樂園)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꾸고 가족이 화목하게 살아갈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어 가든파티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안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애리조나 주에 억만장자들이 은퇴 후에 모여서 사는 '썬 밸리'(Sun Valley) 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은 모든 것이 현대화된 시설로 호화로운 곳일 뿐만 아니라 55세 이하는 입주 금지란다! 일반 평범한 동네에서 흔히 들리는 아이들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없고 아무데서나 볼썽 사납게 애정표현을 하는 젊은 커플도 없는 청정지역이다. 갖가지 음식 냄새를 풍기는 노점상도 없고, 길거리 벤치에 누워서 자는 노숙자도 물론 없는 곳이란다. 그곳에서는 자동차도 노인들을 놀래 키지 않기 위해 시속 25킬로미터 이하의 속도로 달려야만 한다. 누구나 노후에 살고 싶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치매 발병률이 훨씬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에 우리나라 이시형 박사가 그 이유를 조사하고자 그곳을 가보니 정말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모든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고, 최신 의료시설에 최고의 실력을 지닌 의사들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었다. 연구결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첫째로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가 없고, 둘째로 생활고에 대한 '걱정'이 없으며, 셋째로 생활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병을 유발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다시 자신이 원래 살던 시끄러운 마을로 돌아간다고 한다. 행복한 삶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보다 오히려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낙원'은 다름 아닌 바로 내가 가장 고민하고 걱정하며 다투고 화내며 살고 있는 이곳이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뒤 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의 낙원은 풍부한 물질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인생은 누구나 자기가 선택할 수 없는 환경과 여건에서 살아가야할 운명을 타고 나는 것이다. 즉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누구의 후손이 되느냐를 선택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려고 공부하며 노력하여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서 낙원을 만들고, 행복을 느끼며 삶의 보람과 사는 맛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한국전쟁으로 잿더미만 남아 '보릿고개'라는 굶주림을 겪으며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초가집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새마을 운동으로 가난을 벗어나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공장과 빌딩이 숲을 이루며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 마이카 시대가 되어 주말이 되면 고속도로가 저속도로가 되며, 무상(無償)의 복지혜택이 넘쳐나는 그야 말로 지상낙원이 되었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뒤로 밀리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물질만능의 인위적인인 낙원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 같다. 가족과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멀어지고 서로가 믿지 못하는 복잡 다양한 사회에 속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간의 본성을 회복해 물질이 아닌 사람이 주인이 되어 따뜻한 정으로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지상의 낙원이 아닐까요?
지난달에 막내 이모님께서 팔순고개를 넘으셨다. 외가의 어머니형제자매는 칠남매 이셨는데 지금은 이모님 두 분만 생존에 계신다. 오월이 되면 지난해 작고하신 어머님 생각이 떠오른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청주 사시는 이모님께서 조문(弔問)오셔서 영정 앞에서 통곡을 하시던 모습이 가슴 찡하게 느껴졌던 일이 생각난다. 학생시절 여름방학에 외가를 방문하여 추억을 쌓고 돌아왔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노은에 사셨던 막내 이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던 이모님이 충주에 사시면서 더욱 가까워졌다. 이모님은 아들만 셋을 두셨는데 살아온 역경이 남다르시고 잘사는 살림은 아니었지만 항상 베푸는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피붙이인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오셔서 주변에 항상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로는 언니 오빠와 막내 동생을 항상 보살피며, 시댁식구는 물론 친정 식구들까지 관심을 가지고 나누며 살아오신 분이시다. 친정 조카·이질까지도 도와주시려는 마음은 아마도 깊은 불심(佛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니 두 분에겐 보약을 자주 지어드리고 용돈도 드리며 남다른 우애로 살아오신 분이다. 그래서 인지 자녀들도 잘 키워서 큰 아들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부부공무원이 되어 충북도청에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막내아들은 서울대를 나와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아내는 고교 교사이다. 세 아들이 졸업한 충주고등학교에 장학금 1천만 원을 선뜻 내놓아 주위의 칭찬을 받으셨다. 용산동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며 세 아들을 키우고 학교를 보내셨다. 아들 셋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왕복하시며 반듯하게 키우신 '작은 거인'이란 소리를 들으신 분이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이모님과 함께 식사대접을 가끔 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6·25전쟁이 발발하여 학교를 중단하신 후로 배움의 열정은 있었으나 학업을 할 수 없어 틈틈이 책을 가까이 하시며 살아오셨다. 하루는 어머님을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고 이모님 댁으로 가는데 좋은 글을 읽고 가끔 시를 쓰고 싶어서 쪽지에 적어보신다고 하셨다. "이모님! 2년 후면 팔순이 되시는데 틈틈이 시도 쓰시고 살아오신 일들을 적어놓으세요." 그래서 팔순문집을 만들어 보라고 하였다. 팔순을 두 달 앞두고 공책과 쪽지에 적어놓으신 원고 보따리를 나에게 보여주셨다. 사진첩이나 액자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 와서 편집을 시작하였다. 맞춤법이나 띄워 쓰기 제목붙이기 등을 하며 가족(행사)사진, 시(詩), 살아온 이야기, 가족축하 글, 주민 센터에서 무늬 색칠하기, 서예사진 등을 엮어 한 달 만에 편집을 마쳤다. 청주 사는 둘째 아들이 도청근처 출판사에 맡겨 팔순기념문집을 만들어 냈다. 표지 사진은 제주여행 때'섭지 코지'에서 찍은 아름다운 노을 사진으로 했고 책 제목도 '아름다운 노을'이라 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모님과 수시로 통화를 하며 이모님의 목소리에 생기(生氣)가 솟아남을 느꼈다. 팔순 문집을 만들면서 삶의 보람을 느끼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서울에 사는 막내아들도 어머니 목소리가 활기가 있다고 했다. 미국 사는 큰손녀는 영어로 축하 글을 보내왔고 아들 삼형제 며느리, 대학생과 고등학생손녀 손자들의 생생한 축하 글은 더 없는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온가족과 일가친척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이모님께서는 지인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기념문집을 선물하신다. '아름다운 노을'처럼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신록(新綠)이 싱그러운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또한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 하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주(週)를 가정주간이라고 한다. 올해는 첫째 수요일이 어린이 날이고, 주말인 토요일이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어버이날이 닥아 오면 나름 효도를 하려고 형제자매들과 어떻게 할까? 상의(相議)도 하고 준비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까 형제자매들과의 만남이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자녀들이'흔 줄'이라하는 40대가 되니 가정주간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위로는 시댁과 친정부모를 아래로는 어린이날을 챙겨주느라 마음이 분주한 것 같다. 아이들 선물준비를 해야 하고, 양가(兩家) 부모님들에게 효도하려니 빠듯한 살림에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는 것 같다. 3대 가족의 중간위치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바쁘게 보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마음고생을 할까? 올해는 어버이날이 주말이라서 한쪽 부모님을 찾아뵙는 가족행사는 앞당겨서 주말에 하느라 동분서주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사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정 주간도 예전과 같지 않아 코로나로 여러 가족이 외식을 하며 가족모임을 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찾아뵙고 안부를 묻고 용돈이나 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옛 어른들은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하며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며 살아오셨다. 오늘날처럼 물질적인 효도 보다는 곁에서 진정한 효심으로 공경하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며 살아오셨다. 세 살까지 부모님의 보살피며 키워주신 은공에 보답하려고 돌아가신 다음에 3년간 힘들게 시묘 살 이를 하며 효를 몸소 실천하셨던 효심은 거의 사라졌다. 부모가 연로하시면 잠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인사를 드리며 봉양을 하였는데, 요즈음은 자녀들이 떨어져 살지만 전화안부도 드물다고 한다. 요즈음은 궁금한 부모가 자녀에게 먼저 전화를 하여 안부를 묻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효도라는 것은 부모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자녀가 하는 일이 순조 로우며 손자 손녀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노인복지 혜택이 좋아졌고 요양원같은 시설이 생겨서 자녀들이 연로한 부모님을 직접 봉양하지 않고 시설에 맡기고 있어 편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요양원에 들어간 노인들은 가족의 정이 그립다고 한다. 어쩌다 면회 오는 것만으로는 외로움을 달래기엔 부족하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노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인구의 역삼각형 구조로 노인문제가 국가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코로나 역병(疫病)으로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며 사람사이의 정을 멀어지게 하니 삶이 위축되어 비정상의 생활이 2년이 지나고 있다. 백신접종도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예전보다는 잘살게 되었지만 삶의 재미가 없고 일그러진 일상 속에서 자연의 숲에서 나오는 맑은 공기도 마시지 못하고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갑갑해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여러해 전부터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나들이를 하며 식사를 대접해 드리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혼인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자녀들이 자라게 되니까 사촌까지 모임을 만들어 1년에 여름휴가철이 되면 계곡을 찾아 하루를 즐기는 일을 연례행사로 해왔다. 겨울철이 되면 스키장으로 모여 하루를 즐기며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였다. 가정주간이 되면 온 가족이 펜션에 모여 1박 2일을 즐겁게 보내던 지난날의 화목한 모습이 언제나 다시 찾아올지 그리워지는 가정주간이었다.
옛날 우리조상들은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5일장에 나갔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농사지은 곡물이나 달걀 산나물 등을 지게에 지거나 아낙들은 머리에 이고 20리~30리 먼 길을 걸어서 장에 나갔다. 장날 이 되어야 다른 동네 사는 일가친척이나 아는 분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물교환을 하다가 엽전이나 지폐가 나오면서 물건을 사고팔고 하는 상거래가 이루어졌다.어린 시절 어머니가 장에 간다고 하면 따라나섰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장에 따라가면 맛있는 과자나 빵 같은 주전부리를 하는 재미가 쏠쏠하여 힘든 줄 모르고 따라 나선다. 시장에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고 오는 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 급히 다녀 올 때는 배를 쫄쫄 굶고 돌아 올 때도 있다. 장마당에서 만나야 그간의 안부를 묻고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알려주기도 한다. 자녀 시집장가를 보내면 오라고 구두로 청첩을 하는 곳도 장마당이다. 누가 아프다던가, 땅을 샀다던가, 자식이 군대를 가거나 대학을 갔다는 등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남정네들은 대포 집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웃음꽃이 핀다. 농기구를 사거나 대장간에 수선을 맡긴농기구를 찾아서 지개에는 고등어나 명태, 꽁치 등을 매달고 해가 뉘엿뉘엿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지금은 사라져서 볼 수 없다. 장에 가신 부모가 언제 오시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개구쟁이들은 잔뜩 기대를 걸고 반갑게 맞이한다. 이러한 예전의 농경사회 풍습이 사람 사는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었다. 장날 고무신을 사오면 좋아서 머리맡에 두고 잤고, 학교에 갈 적에는 신발이 닳을까봐 손에 들고 맨발로 걸어 다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다. 여름방학이 되면 동생과 외갓집을 찾아가 며칠씩 묵다가 돌아오곤 하였다. 그 당시는 친척집에 가서 하루나 이틀정도 잠을 자며 친인척과 정(情)을 나누며 살았다. 부모상을 당하거나 자녀 혼사가 있으면 으레 전날에 와서 잠을 자고 애경사에 참여하였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없을 때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좁은 방에서 이불을 함께 덮고 잠을 자고 한 상(床)에서 식사를 하며 불편한 줄 모르고 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손님으로 올 때는 작은 물건이라도 들고 왔고 헤어질 때도 과일이나 산나물 한 봉지라도 들려 보낸다. 오늘날은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너무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손 전화를 개인이 가지고 다니니까 수시로 안부를 묻고 전하며 목소리를 듣는다.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하며 그 때 그때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친척집에 가서 하루 이틀을 묵어오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편리함이 인간의 정을 멀어지게 하는 것 같다. 코로나가 2년이 되어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모임을 할 수도 없고 축제를 비롯한 각종행사도 못하고 있어 삶이 답답해지고 있다. 문자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하고는 있지만 예전의 생활이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온다. 전화를 안 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얼굴을 본지 너무 오래되어 그리운 마음만 주고받는다. 마스크를 착용하니 사람을 만나도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어렵다. 악수도 손을 잡지 못하고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나누니 마치 권투를 하자는 것과 같아 어색하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자주 해야 하는데 도리어 부모가 자녀의 안부가 궁금하여 먼저 전화를 건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살기가 바쁘다는 핑계 같지만 마음은 우울하기만 하다. 코로나로 정상생활이 일그러져 우울증까지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친인척이나 친구 지인(知人)들과 안부인사로 소식(消息)을 전하며 코로나 시국을 극복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