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속담에"대한(大寒)이 소한(小寒)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이 있다. 24절기 중 마지막인 대한이 가장 추워야 하는데 소한추위가 그만큼 매섭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일이 소한이었는데 여름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어찌 된 일인가· 삼한사온(三寒四溫)현상은 겨울철의 한파(寒波)를 몰고 오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에 의하여 나타나는 동부 아시아 지역의 특징적인 기후현상이다. 겨울엔 하얀 눈이 쌓이고 추워야 겨울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지구의 온난화현상으로 겨울 스포츠인 스키장이 휴업상태이고 저수지가 얼지 않아서 얼음낚시 축제를 열지 못하고 있다니 계절의 질서가 무너지고 겨울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라는 말은 중국기준으로는 대한이 가장 춥지만 우리나라는 소한 때가 가장 춥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지구의 모든 동식물은 자연을 이용하면서 살아가지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 동식물에게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창조의 행위를 인간만이 할 수 있다하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졌고 그걸 이용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이룩하며 살아왔다. 자연을 함부로 다루고 각종 재해를 일으키는 자연속의 바이러스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든다. 동양 사람은 옛 부터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자연의 모든 것은 인간이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개척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환경파괴라던가 산업공해 등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자동차나 공장을 만들고 빌딩과 아파트를 지어 편리하게 살고 있지만 지구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며 자원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미세면지와 공해가 발생하여 그 폐해(弊害)에 시달리고 있다. 즉 인간의 욕심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 중의 하나가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려서 바닷물의 수면이 높아지고 있어 육지가 점점 침식당하고 있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길이 없지 않은가· 사계절이 뚜렷했던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지구의 온난화는 자연의 질서마저 파괴하고 있으니 심각한 지구 이상 기온 현상인 지구온난화 위기를 극복하여 지구촌 살리기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3호기를 충북 청원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에 설치해 본격 가동한다고 한다. 온난화 현상으로 여름철새가 겨울이 돼도 안 떠나 국내 조류 350종 가운데 64종이 최근 40년 동안 사라졌다고 한다. 공업화 산업화로 우리경제는 성장하였으나 부산물로 공장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와 자동차 매연에다 중국 발 먼지까지 편서풍을 타고 한반도를 잿빛하늘로 만들고 있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삶의 질은 점점 나삐지고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경제가 발전하여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살아도 미세먼지를 마시며 산다면 삶의 질은 떨어지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와서 원시시대로 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고 하나뿐인 지구를 떠나서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와 물과 음식물이 오염되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어야 후손들까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늦었지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충북에는 향교가 18곳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유림들이 모여 유학을 공부하였던 학교였다. 오늘날에 중등학교에 해당하여 서당에서 학동들이 천자문, 동몽선습, 계몽편, 명심보감, 소학 등을 공부한 후에 향교에 모여 기숙을 하면서 사서(四書 : 대학, 논어, 맹자, 중용)삼경(三經 : 시경, 서경, 주역)을 공부하여 청운의 꿈을 품고 유일했던 국립대학이었던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더욱 깊게 연구하며 수신제가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인류의 스승이며 유교학문을 창시하신 성인(聖人)에 이르신 공자님의 철학사상은 오늘날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침으로 남겨서 따르고 있다. 흔히 공자를 "중국 사람인데 왜, 받들어 모시나요?"하는 분들이 있는데 중국 노(魯)나라 분인 것은 맞는데 선사시대 우리의 조상과 같은 동이족의 후예(後裔)라는 것입니다. 세계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보다 2천여 년이나 앞선 요하문명의 유적이 발굴되면서 중국에서 오랑캐라 불릴 정도로 진취적이고 강력한 정신과 문명을 일으킨 위대한 민족이었던 동이족(東夷族)의 세력이 중국대륙 쪽으로 이동하여 동이족이 만들어서 사용하던 한자를 근간으로 황하문명을 일으키는데 기여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양의 한자문화권이 꽃을 피웠던 것입니다. 공자의 일화 중에 수제자인 안회(顔回)가 시장 포목점에서 상인과 시비하는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려고 하다가 마침내 공자님 앞에 와서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는 "안회야 네가 졌다."하시며 목숨을 걸었던 상대를 살리기 위해 제자인 안회의 관(官)을 벗으라고 하셨다. 안회가 크게 실망하여 공자님의 곁을 떠나겠다고 고향집으로 길을 떠났다. 공자는 안회에게 다음과 같이 '천년고수막존신(千年古樹莫存身), 살인불명물동수(殺人不明勿動手)라고 두 가지 글을 써주셨다. 큰 나무아래서 비를 피하다가 첫 글귀가 생각나 벼락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와 목숨을 구했고, 밤중에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다른 사람과 자는 것을 보고 칼을 뽑았다가 두 번째 글귀가 떠올라서 참았는데 아내가 자기 누이동생과 자는 것을 보고 크게 깨우쳐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갔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렇듯 공자께서는 사람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대의(大義)를 위해서 인(仁)을 실천하신 성인으로 만세종사(萬世宗師)가 되신 분이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 일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이를 자절사(子絶四)라 한다. 첫째가 무의(母意)로 함부로 억측하지 마라. 어떤 것을 예단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과 다름이 없는지 지나치게 편견에 의존 한 판단은 아닌지 늘 경계하셨다고 합니다. 둘째는 무필(母必)로 자신만 옳다고 믿지 마라. 자기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걸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믿고 내세우면 주위에 적이 많아진다. 유연한 태도로 대처 하는 게 좋다고 하셨다. 셋째는 무고(母固)로 끝까지 고집부리지 마라. 사소한 거 하나하나 자기 뜻대로 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웬만한 건 적당히 넘기고 중요한 것만 취할 줄 아는 요령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무아(母我)로 자신을 내세우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말처럼 전면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대부분 적극적인 사람을 자신감보단 자만 감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으니 나설 땐 늘 조심(操心)해야 한다고 하셨다. 요약하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았으며,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았고, 따라서 아집(我執)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모두를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겸손(謙遜)'입니다. 2천570년 전 성인의 가르침이 기해년 세모에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각종 기관의 명칭은 익숙해 질만 하면 명칭을 바꿔 이용자를 헛갈리게 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써가며 누구를 위한 명칭개정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 행정조직은 전산화가 잘되어 행정업무가 편해졌는데도 시·군 행정을 맡아하는 기초단체, 시도의 행정을 관장하는 광역단체로 구분하는데 그 조직이 비대해져 재정이 열악한 데서는 공무원의 보수를 줄 수 없을 정도라 하는데 조직을 축소하거나 개혁하지 못하고 도리어 기구와 인원이 비대해 지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읍면동사무소의 명칭을 2007년에 주민자치센터로 변경하여 10여년이 지나 익숙해 질만 하니까 2016년부터 행정복지센터(행복센터)로 명칭을 바꿔 이용자들에게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약식 명칭은 행복(行福)인데 행복(幸福)이라고 억지주장을 하는 꼴이 아닌가? 약 175억 원이란 예산을 써가며 말이다. 해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행정기관이라는 지적이다. 복지! 복지! 하다가 나라 재정이 거덜이 난 나라를 많이 보았는데도 복지와 영어인 '센터'를 너무 좋아한다. 반월공단을 반월스마트허브로, 시화공단을 시흥스마트 허브로, 남동공단을 남동인더스파크로 명칭을 바꿔 사용하니 주체성을 망각하면서 세금낭비를 하는데도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닫지도 않는다. 이름만 바꿨지 실제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형태를 갖추었지만 실질적인 주민자치는 미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거나 주민자치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육기능까지 담당하는 변화는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관들은 청사를 너무 화려하게 건립하여 주민위에 군림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교라는 명칭도 마찬가지다. TV자막에 대학원대학교라는 표현을 보고 어리둥절했었다. 대학교안에 대학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대학교 ○○대학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학사 학위 과정은 운영하지 않고 석사, 박사 학위 과정만을 운영하는 대학교를 대학원대학교(大學院大學校)라 한다. 사회적으로 학위를 인정해 주니까 너도 나도 학위과정을 설치하여 박사(博士)학위의 가치만 떨어뜨린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명칭은 동양이 한자문화권이기 때문에 한자어를 쓰는데 중국에서는 ○○대학교를 운영하는 최고책임자를 교장(校長)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는 총장(總長)이다. 교육행정 기관 중에 시군의 교육을 관장하는 교육청을'교육지원청'으로 바꿔서 일반인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 공공(公共)의 명칭은 뜻이 함축되어 간결하고 쉬워야 한다. 명칭에 내용까지 넣으려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용에 해당하는 복지(福祉)가 중요하다고 명칭에 까지 넣으면 아이 이름도'영리한 ○○ '라고 지어야 하겠는가? 도로명주소도 그 뿌리를 내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흘러야 할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동양 장기(將棋)는 선(線)을 따라 이동하지만 서양장기는 면(面)을 따라 공격을 하여 승부를 가린다. 이처럼 문화가 다른 것이다. 서양 것이 합리적이고 좋아보여도 이를 사용하는 국민들에겐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정착하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이다. 도로 명 주소도 낯선 이름이 많아 세월이 흘렀어도 어리둥절 하는 것이다. 도로에다 산의 이름을 옮겨다 놓으니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구분을 못하는 것이다. 종로구에 좁은 도로에 한글로 '필운대로'라는 도로표지 판이 있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는 이게 왜, 대로(大路)냐고 한다. 백사 이항복의 집터였던 필운대로 가는 길을 필운대로(弼雲臺路)라 했는데 한자표기를 안하니까 헛갈리는 것이다. 명칭은 함부로 바꿔서 역사적 유래나 본래의 뜻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 때 국토의 중앙을 상징하는 탑평리 7층 석탑이 세워진 이래 대한민국의 중심(中+心)고을(州)이 충주(忠州)의 지명과 맞아 떨어진다. 국보 6호인 중앙탑을 상징으로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용이 모여 살았다는 용전리(龍田里)에 서충주신도시가 건설되어 입주가 시작 된지도 2년이 되었다. 용(龍)자 지명이 충주 주변에 많이 있다. 충주댐 아래 용탄동(龍灘洞), 용산동(龍山洞)을 비롯하여 서쪽에는 용관동(龍觀洞), 용두동(龍頭洞)와 맥을 잇는 용전리는 남한강을 끼고 있는 탑평리 서쪽 낮은 구릉 지역에 발달한 마을이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서고동저(西高東低)형국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용전리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인근에 동서고속도로와 연결되어 교통망이 신도시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갈동에 위치한 충주휴게소 옆으로 기업도시와 서충주신도시로 쉽게 진출입할 수 있도록 충주시에서 하이패스전용 톨게이트도로를 개설하고 있어 2010년부터는 교통이 너무 편리할 것 같다. 서충주의 아파트단지는 호암지구 신도시건설영향으로 다소 부진하였으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신도시에는 젊은 세대가 많이 입주하여 지난해 3월에 중앙탑초등학교가 개교하였고 올 3월에는 중앙탑중학교가 개교하였다. 후년에는 가칭 용전고등학교 설립이 확정되어 새로운 교육도시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신도시는 숲 세권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지역으로 야산이 둘러싸고 있다. 주민건강을 위해 계단과 벤치, 정자, 전망대가 갖추어진 등산로가 양쪽에 잘 정비되어 한 시간정도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행을 즐길 수 있고 탄금호를 바라보는 조용한 청정휴식공간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가지역엔 병원, 약국, 마트, 식당, 금융기관, 중앙탑면 민원실 등 주민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불편이 거의 없다. 초등학교 옆에는 서충주도서관을 짓고 있어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바로 옆에 소공원을 조성하여 잔디광장과 관람석을 갖춘 야외공연장도 만들어 도서관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산책과 휴식공간으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장미산성 아래 입석마을에는 국보 제205호인 충주 고구려비가 있다. 이 비석은 한반도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다. 여름철엔 중앙탑 근처에서 맛있는 막국수를 한 그릇 먹고 중앙탑공원을 산책하며 조각품을 감상하면서 운동도 즐기고 커피한잔을 마실 수 있는 즐거움에 가끔 오는 딸들은 너무 좋아한다. 2년 가까이 서충주 신도시에 살아보니 시내에 모임이나 볼일이 있을 때 20~30분 승용차로 이동하는 불편을 제외하면 너무 살기 좋은 명품도시라고 자랑하고 싶다. 한편 시내를 나갈 때는 탄금호를 끼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탄금대교를 건널 때는 강북에서 강남으로 진입하는 일터로 나아가는 기분이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신도시는 북서풍을 막아주기 때문에 겨울엔 아늑하고 여름철엔 시원한 쾌적함이 있다. 최근에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데 막힌 곳이 없고 사방으로 확 트여서 답답함이 없다. 계명산과 금봉산, 대림산이 막고 있는 시내도심의 미세먼지가 고여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깝다. 가끔 서울을 갈 때는 터미널까지 나가서 주차를 하고 다시 북 충주 IC로 가기 위해 신도시 옆을 지나가고 돌아 올 때도 집을 바라보며 시내까지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금천주유소 옆에 신도시지역주민을 위해 고속버스 승하차장을 만들고 있어 명년부터는 너무 살기 좋은 명품도시로 탈바꿈 할 것 같아 신도시에 사는 보람과 삶의 질이 향상되어가는 즐거움에 행복하다.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단풍을 보러 여행을 떠난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며 가족의 정을 돈독하게 해주기 때문에 좋고, 모임에서 떠나는 여행이 더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올 해도 어김없이 가을이면 떠나는 동문들의 모임에서 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일생을 사계절과 비교하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여 가을과 어울리는 희끗 희끗한 반백이나 백발의 머리에다 인생이 익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실버세대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부부동반으로 관광버스 한 대에 올라 내륙고속도로 충주 IC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니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산에는 단풍이 아름답고 들판에는 황금물결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40년 가까이 된 이 모임은 고등학교 동문으로 초·중·고·대에서 근무했던 교원들이 모임을 만들어 동문선후배 간에 우의를 다지고 있는데 정년을 한지도 벌써 10여년을 넘어서고 있다. 정년 후 에도 모임에 대한 애정은 변치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설악산 한계령 계곡의 아름다운 주전골 단풍과 지난해는 밀양 영남루와 표충비의 신비함을 느꼈고, 만어사의 경석을 보며 바닷물고기가 살아서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위양지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익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그 동안 주왕산, 대천 천리포 수목원, 삼척 환선굴, 강릉과 고성 등 바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갈 때는 싱싱한 활어 회를 먹으며 맛 기행도 겸하니 여행이 더욱 즐거웠다. 일행은 진주를 상징하는 영남제일의 명승지인 촉석루(矗石樓)가 있는 진주성 공북문(拱北門)을 통해 입장하였다. 남강에서 펼쳐진 유등축제 때 사용했던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는 촉석루는 매우 웅장하였다.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한 건물에 촉석루와 남장대(南將臺)라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평소에 남강의 경치를 즐기면서 휴식의 장소로 쓰일 때는 '촉석루'라는 누각으로 사용되지만, 전쟁이 일어나거나 남해안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는 '남장대'라는 군사 본부가 설치되기 때문이라 한다. 촉석루하면 논개(論介)가 유명한데 누각 옆에 영정을 봉안한 의기사(義妓祠)가 있다.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함락되고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양손에 반지를 모두 낀 채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빠져 순국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촉석루(矗石樓) 삼장사(三壯士)詩를 보면, 矗石樓中三壯士(촉석루중삼장사)촉석루 위 마주 앉은 세 장사들은 / 一杯笑指長江水(일비소지장강수)한잔 술로 웃으면서 남강 물을 가리키네. / 長江之水流滔滔(장강지수유도도)남강 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 波不渴兮魂不死(파불갈해혼불사)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넋도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한시(漢詩)가 그 시대를 회고하게 해준다. 오후엔 진양호 전망대에 올라 아름다운 주변경관을 관람하고 진주수목원으로 향했다. 산림박물관을 먼저 둘러보고 자연을 살려서 조화롭게 가꾼 식물원 동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버스에 올랐다. 선배 교장 한분이 정년을 하고 서울에 사시면서 "황금연못"에 나오셔서 늙지도 않는다고 부러워하던 분이 며칠 전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이야기가 화재거리가 되어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하였다. 교수를 하신 동문은 무릎 연골이 닳아 수술을 연기하고 여행을 왔다고 하였다. 나이 들면 걸음도 어기적거리게 되고 건강이 관심거리가 된다. 튼실한 과일처럼 익어가는 인생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가을이 익어가는 13일 일요일을 맞아 충주종친회원들과 함께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에 소재한 운강 이강년 선생 순국 111주년을 기념하는 추모문화제에 참반(參班)하였다. 출발시간이 일러서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에 있는 효령대군 영당(影堂)을 먼저 찾아갔다. 이곳에 모셔졌던 영정은 서울 방배동 청권사 사당으로 옮겨갔지만 남아있는 영당의 영정 앞에 후손으로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가은으로 향하여 이강년 선생 추모제에 참석하였다. 선생은 1858년(철종 9년)에 태어나셨다. 전주(全州)이씨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8대손이다. 아버지는 이기태(李起台)이며,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그러나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제천으로 유인석(柳麟錫)을 찾아가 유인석의 문인이 되고, 유인석 의병부대의 유격장으로서 문경·평천·조령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일본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자 영춘(永春)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원주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閔肯鎬)부대와 합세해 충주를 공격하였다. 1907년 7월 7일 제천에서 일본군과 교전한 것을 비롯해 9월 16일에는 싸릿재[杻峙], 9월 27일에는 죽령, 10월 5일에는 고리평(故里平), 10월 23일에는 백자동(柏子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전국의 의병들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각도 의병장을 따라 양주에 집결해 13도 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이에 참석하였다. 다음 해인 1908년 봄부터 휘하장병들을 독려하여 2월 17일의 용소동전투(龍沼洞戰鬪)를 비롯해 2월 26일의 갈기동전투(葛其洞戰鬪), 3월 12일의 백담사전투(百潭寺戰鬪), 4월의 안동서벽전투(安東西壁戰鬪)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강년의 의병활동 지역은 주로 강원도·충청도·경상북도 일대에 걸쳤다. 저서로는'운강문집'이 있고, 또 그 제자와 의병시절의 부하들에 의해 엮어진『운강선생창의일록』이 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이날 추모제는 식전행사로 점촌3동 농악단의 길놀이로 시작하여 한두리국악단의 사물과 대평소 합주에 이어 개회식이 이어졌다. 두 편의 추모시 낭독과 조총발사가 있었다. 추모공연으로는 가은초 학생들의'의병의 노래'문경여고 합창단의'독립운동가'육군 제 5837부대 5대대 공병부대 장병의'전선을 가다'공연에 이어 만세삼창으로 추모는 마무리가 되었다. 경내에서는 운강 선생의 위패를 모신 의충사에서 유족 및 청권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기신제가 진행되었다. 올해는 서울에서 청권사에서 제향을 주관하여 더욱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이갑재 청권사 이사장이 초헌관을 맡고 문경시장을 대신하여 가은 읍장이 아헌관을, 기념사업회장이 종헌관을 맡아 엄숙한 가운데 기신제가 올려졌다. 부대행사로 식장주변에 운강 격문(檄文) 및 시 패널이 전시되었고, 기념관 옆에서는 활쏘기 체험도 진행되었다. 임승천 시인의 "님이여 ! 바라보소서, 살피소서"에 "나라잃은 슬픔과 울분으로 일으켰던 창의(倡義)의 깃발 오직 나라사랑과 백성을 위한 일념으로 싸웠던 님의 기개 십삼년 동안 두 번의 창의와 서른번의 격전으로 철천지 원수 적을 참수하였던 그 장한 기개와 의지"라는 싯구가 가슴에 울림으로 닥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제 1관문에서 열리고 있는 문경사과 축제장과 수옥정을 둘러 보며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
주말에 TV를 시청하기 위해 앉아있는데 자막이 너무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어지러울 정도였다. TV화면에 영상과 소리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답답할까· 자막을 통해 시청자에게 정보전달을 효과적으로 하여 이해를 돕기 때문에 자막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시국(時局)이 어수선하여 뉴스를 보니 검찰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는 화면인데'조국수호'가 클로즈업되어 눈에 들어왔다. 피켓을 만든 사람은 조국이라는 장관을 지키자는 뜻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세대인 재외거주 동포가 보면 조국수호(祖國守護)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국을 떠나서 살아가고 있지만 두 쪽으로 갈라져 위태로워지고 있는 조국을 수호하여 세계 속에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평소에도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자막의 글자는 내용을 함축하여 줄임말로 쓴다. 대부분 한자어(漢字語)를 한글로만 표기하기 때문에 무슨 뜻인지 혼동을 하여 이해가 잘 안 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생기부'라는 자막을 보면'정부부처에 또 새로운 부서가 생겼나·'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내로남불'은 한자어가 아니고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이다."라는 자기중심적 생각을 조롱하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사자성어(四字成語)처럼 정치가들이 사용하던 용어인데 이를 따다가'조로남불'이라는 말도 나오는 현실이다. 요즘 자막으로 많이 뜨는 내통(內通), 색출(索出), 공방(攻防), 유출(流出), 유도신문(誘導訊問), 소환(召喚), 조율(調律), 인멸(湮滅) 기각(棄却) 각하(却下)등 법률용어가 모두 한자어 인데 한글로만 표기하기 때문에 TV를 시청하는 서민들까지 이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다. 자막의 기법(技法)이라 할 수 있는데 글자의 크기를 다르게 한다든지 색깔로 구분하기 좋게 한다든지 글자체를 다르게 한다든지, 도표(圖表)나 그래프 도형 등은 자막을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뉴스속보를 알릴 때 시청하면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도 자막의 장점이다. 예능·연예프로는 출연자의 생각이나 느낌까지 오감(五感)을 동원하여 흥미를 유발시키는 기법이 시청률을 높여준다고 하니 자막의 효과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50여 년 전 조모께서 흑백 TV를 보시면서'맨 날 먹는 것만 나온다.'고 하시던 생각이 떠오르는데 요즘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세상이 복잡해졌고 삶이 각박해 져서인지 복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사람도 늘어난 것 같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도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을 동경하며 살아가고 자연경관을 즐기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경향으로 흘러간다. 가뭄에 콩 나듯이 한자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한자로 쓰면 이해하기 쉬운 낱말은 한자자막으로 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유일하게 한글전용만 고집하는 대한민국의 어문정책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의 핏속에는 면면히 흐르고 있고 2/3이상의 한자어를 사용하며 살아가는데 소리글인 한글전용만이 애국인양 고집하는 정책은 분명 잘못 가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정책이 아니라 우수한 두뇌를 가진 우리국민들을 바보로 만드는 우민정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자라는 2세들에게 우리조상이 만들어 수 천년이상 사용했던 문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단절시키는 크나 큰 죄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 추석은 '여름한가위'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일렀다. 대추가 붉어지려면 가을 햇볕을 더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풋사과처럼 푸른색 대추를 차례(茶禮)상에 올려야만 했다. 시골길 도로변에는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거리지만 가을느낌을 느끼기에는 이른 추석이 지나갔다. 추석날은 날씨가 너무 쾌청하여 파란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뭉게구름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고향 성묘 길에도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이른 계절임을 알 수 있었다. 벌초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묘객도 예년보다 줄어들었다. 밤송이는 아직 알밤을 숨겨놓고 입을 벌리지 않고 있어서 성묘 길에 알밤 줍는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태풍 '링링'이 지나갔지만 큰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추석민속놀이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추석 다음 날 초등학교 마당에서는 가을 운동회가 열려서 지역의 축제장으로 정겨운 풍경을 즐겼었는데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컸다. 필자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건물 일부와 대학찰옥수수권역사업장으로 숙박과 야영장으로 활용되고 있어 동문 어울림 마당으로 사용 할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된다. 올해로 33회를 맞이하는 동문체육과 화합하는 행사가 열렸다. 모교에 첫 발령을 받아 가르쳤던 제자들이 행사를 주관하여 개회식부터 참석하였다. 반세기가 되어 만난 제자는 반가움에 눈물을 보였다.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모른다. 당시 6학년 담임을 초청하여 꽃다발과 선물도 안겨주었다. 경향각지에 살면서 원근을 불문하고 달려와서 "친구야! 반갑다"라는 인사를 나누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하루해가 짧다며 정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시골학교 동문회 치고는 프로그램이 다양했다. 식전 행사로 농악놀이 한마당이 축제분위기를 돋구었다. 수준 있는 난타공연도 돋보였고, 12회 졸업생이 국악단체를 이끌고 있어 우리소리 한 자락에 어깨춤이 절로 들썩였다. 배구, 족구, 2인3각, 바구니 터트리기, 줄다리기, 노래자랑, 경품추첨 등으로 승부보다는 선후배의 화합에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참여 동문가족의 기념 촬영을 하여 행사 책자에 실리고 있다. 하늘에는 드론을 띄워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풍성하고 짜임새 있는 행사준비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와 함께 공부한 시골학교 2회 졸업생들은 십여 명이 매년 참석하는데 올해는 한명이 병환 중이라 불참하여 아홉 명이 모였다. 횡성에서 참여한 여자동창이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저녁을 내면서 흐뭇해하였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함께 공부했던 동창생을 만나면 70대 중반을 달리는 나이에도 어린 시절처럼 흉허물이 없이 대한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편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창생들 중에는 유명(幽明)을 달리한 친구들도 과반을 치고 올라오고 있고, 졸업 후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무정한 친구도 꽤 많이 있다. 한두 번 나왔다가 안 나오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마음만은 모교에 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동문들이 일 년에 한자리에 모여 동창과 선후배를 만나 소식을 주고받는 행사는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가? 행사 후에도 사진과 동영상을 동문카페와 밴드에 올려 소통하고 있어 좋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공부하던 고향은 우리들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튼튼한 목재로 자랄 수 있듯이 고향은 삶의 근원이고 뿌리이다. 자연환경과 풍토의 영향을 받고 자란 곳이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듯이 고향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추석명절에 만나는 동문가족의 행사 덕분으로 행복했고 가슴 뿌듯한 하루였다.
옛날에 음식을 훔쳐 먹는데 도(道)가 튼 쥐가 있었다고 합니다. 늙은 쥐는 차츰 눈도 침침해지고 귀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더 이상 제 힘으로는 무엇을 훔쳐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답니다. 그때 젊은 쥐들이 찾아와 늙은 쥐의 훔치는 기술을 배워 그 기술로 훔친 음식물을 나눠 늙은 쥐를 먹여 살렸다고 합니다. 꽤 많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저 늙은 도사(道士) 쥐는 기술도 바닥이 나서 우리에게 더 가르쳐 줄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그 뒤로 다시는 음식을 나눠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늙은 쥐는 몹시 분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서 솥 속에 넣은 다음 무거운 돌로 뚜껑을 눌러 놓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젊은 쥐들은 그 음식을 훔쳐 먹고 싶어도 훔치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쥐가 말했습니다. 늙은 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 모두가 "그게 좋겠다."하고는 함께 가서 묘안이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늙은 쥐는 화를 발끈 내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나에게서 기술을 배워서 항상 배불리 먹고살면서도 지금까지 나를 본체만체했으니 괘씸해서라도 말해 줄 수 없다." 이 말을 들은 쥐들은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간청했습니다. "저희들이 죽을죄(罪)를 지었습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따를 수 있습니다(往者不諫 來者可追)하니 원(願) 컨데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늙은 쥐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러주마. 솥은 발이 세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얹혀 있는 곳 땅을 모두 힘을 합쳐 파내어라. 몇 치 파내려가지 않아 솥은 자연히 그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고 그러면 솥뚜껑은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쥐들이 달려가서 파내려가자 과연 늙은 쥐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역시 경험이 많은 늙은 쥐의 지혜가 돋보였습니다. 쥐들은 배불리 먹고 돌아오면서도 남은 음식을 가져다가 늙은 쥐를 대접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젊은 쥐들은 늙은 쥐를 무시하지 않고 잘 받들었다는 이야기가 조선중기의 학자 고상안(高尙顔)의 효빈잡기(效嚬雜記) 노서(老鼠)에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시사(示唆)하는 바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되돌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은 가정에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주택형태가 아파트로 변하면서 핵가족화 되어 집안에 어른이 없는 가운데 아이들이 자라고 있어 인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관습이나 가족문화에서 형성되는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우리사회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정보활동이 뒤지기 때문에 밀려나고 있어 좋은 지혜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국회의원들은 60~70대의 원숙한 의원이 많은데 비해 우리사회는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초중등학교 교원의 정년을 단칼에 3년을 단축시키더니 교원이 부족하였습니다. 수급도 고려하지 않고 나이 든 교원을 교단에서 한꺼번에 몰아내더니 교원이 부족하여 장롱자격증을 가진 오랜 기간 교직을 떠나서 타 직업에 종사하다가 집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을 다시 교단에 서게 했습니다. 주먹구구식 정책으로 비난을 받고 교육현장은 안정을 되찾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어느 사회나 활력 넘치는 젊은 패기와 풍부한 경험의 지혜가 조화를 이뤄야 균형 잡힌 사회로 성장할 수 있다는 교훈을 노서(老鼠)에서 되새겼으면 합니다.
"인(因)은 결과를 산출하는 내적·직접적 원인이며, 연(緣)은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외적·간접적 원인이다."라고 백과사전에 적혀있다. 즉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주된 것이 인이며 보조적인 것이 연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노년기에 접어든 요즘엔'사람의 인연이란 이미 정해져 있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혈연관계는 인위적으로 정할 수가 없지 않은가· 내 마음대로 정하거나 선택할 수 없는 것은 필연(必然)이라는 생각으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맞추어 살아가야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천명(天命)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나 살기 좋은 곳에 부자 집에 태어나길 원할 것이다. 성씨도 선택할 수 없고 부모 형제도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렇게 필연적인 인연은 타고난 운명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태어난 연월일시를 사주(四柱)라 하고, 사주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여덟 자를 합쳐서 사주팔자(四柱八字)라 하고 그 사람의 운명을 사주풀이로 해석하고 있다. 이렇게 천명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나 운명(運命)은 본인의 노력이나 현명한 선택으로 좋은 인연을 맺으며 성공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연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혼기가 되어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인연에 따라 만나는 것 같다. 백년해로할 인연이라면 자신의 마음에 든다하여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 마음에도 들어야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 할 만 한 모든 조건을 갖춘 선남선녀가 만나 결혼을 했는데도 오래가지 못하고 파경을 맞아 헤어지는 경우를 보면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옛날엔 결혼상대자의 얼굴도 모르고 부모님이 정해준 배우자를 맞아 해로하는 것을 보면 현대인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어떤 친구를 만나는가· 어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가· 어떤 직장동료를 만나는가· 동호회나 사회활동의 단체나 조직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어떤 이웃을 만나는가· 등 모두 인연으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함께 공부했던 동창들과의 인연, 고향이 같다는 인연으로 만나고,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다는 인연으로 모임을 갖고, 자녀들이 같은 반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어머니들이 모임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인연의 정이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는 민족도 드문 것 같다. 정보화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은 SNS로 유익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편리하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인연이 반드시 좋은 관계로 유지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인연으로 인간관계가 잘 유지 되다가도 악연(惡緣)으로 변하여 인연을 끊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혈연으로 맺어진 천륜도 끊고 집안의 애경사도 오고가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일편단심으로 인연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마음은 변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말이 명심보감 성심(省心)편에 나온다. 바다가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드러내지만,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리지 않는다.(海枯면 終見底나 人死엔 不知心이니라)즉 사람의 마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불가에서는 일체(一切)의 중생(衆生)은 인(因)과 연(緣)에 의하여 생멸(生滅)한다고 한다. 인연법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살이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좋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야 마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체온에 가까운 찜통더위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엊그제가 월복(越伏)한 말복(末伏)이 지났는데도 폭염이 물러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는 태풍이 큰 피해가 없는 가운데 올 여름 휴가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휴가를 가장 즐기는 계절이 여름철이다. 한자로'휴가'를 쓰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쉬는 것으로 생각하여 휴가(休家)로 쓴다. 휴가(休暇)의 가(暇)자는 틈새, 겨를 가 자(字)이다. 즉 틈이 있는 날, 한가히 놀다. 의뜻을 가진 한자어(漢字語)이다. 더위를 피하여 계곡과 바다로 피서를 다녀오는 인파가 도로에 넘쳐난다. 두 내외만 적막하게 살아오던 우리 집에 방학을 맞은 손자손녀들이 물놀이 용품을 안고 몰려온다. 집안이 떠들썩하니 사람 사는 집 같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인 개구쟁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뛰면서 장난을 치니 아래층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되면 동생과 함께 시외버스를 타고 외가(外家)를 찾아갔다. 외할머니께서 가장 반겨주셨다. 외가는 대 가족이었기 때문에 식사시간은 잔칫집 분위기 같았다. 큰 가마솥에 감자를 넣은 보리밥을 하여 된장찌개와 나물반찬만 먹어도 꿀맛이었다. 저녁엔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옥수수와 참외를 먹으며 모깃불을 피워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반딧불이를 쫒아 다니다 멍석에 누워 밤하늘에 별을 세며 잠이 들면 외할머니는 홑이불을 덮어주셨다. 아침을 먹자마자 냇가로 달려가서 멱을 감고 송사리를 잡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던 추억이 아련하다. 요즘 아이들은 경험하기 어려운 가난했던 시절의 농촌의 피서요 추억으로 남은 여름휴가였다. 고개 너머에 사시는 두 분 이모님 댁을 방문하면 더 반겨주셨다. 경제성장으로 삶이 풍요로워진 요즘 아이들은 부족함을 모르며 요구만 하면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있다. 배고픔과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고 있으니 행복한 세대라는 것이 느껴진다. 물놀이장에 가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이용하며 신나게 놀고 간식을 먹으며 더위를 잊고 있다. 저녁엔 피곤 할 텐데도 게임에 빠져 자정이 넘도록 놀다가 아침엔 9시가 지나도록 곯아떨어진다. 아침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계곡피서지로 널리 알려진 송계계곡은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로 넘쳐난다. 송림이 우거진 계곡의 공기는 너무 신선하여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런데 피서지 풍경을 살펴보면 아이들은 물놀이 어른들은 술 마시고 수다 떠는 모습만 보이지 책을 읽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2017년 국민 실태 조사에서 나타난 연간 평균 독서량은 한국의 성인은 8.3권이라 한다. 일본은 40권으로 우리에 비해 5배 정도이다. 미국은 12권, 프랑스 20권,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60권 정도의 독서량이라니 부럽기만 하다. 한국성인의 40%는 일 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무지하고 억지 부리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닐까·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와 워렌버핏은 연간 약 5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독서는 인간의 생각을 깊게 하고 진지한 성찰을 도와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주기 때문에 독서의 힘은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독서를 안 하면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 삶의 신념과 철학도 없어 생각의 내공이 약하다. 또 탐욕스러우니 욕심이 많고 공짜에 약하다. 진정한 피서는 몸도 쉬어야 하지만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독서삼매경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지난 5월에 성균관 유교문화 활성화사업단에서 시행하는"청소년인성교육"공모에서 전국 26개 향교·서원을 선정하였는데 충주향교는 3년째 연속하여 선정되었다. 세 명의 인성교육 자격강사가 충주남한강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니 폐교된 학교처럼 조용하여 절간 같은 느낌을 받았다. 80년대 중반에 학생수가 3천명이나 되었던 과밀학교에 필자가 근무 할 때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수 있었다. 한때는 충북에서 가장 큰 학교였는데, 도시 변두리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학생 수가 점차 감소하여 폐교절차를 밟고 있다. 중소도시까지 도심의 인구이동으로 공동화(空洞化)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심의 큰 학교들은 건물과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새로 생기는 아파트단지에 학교를 신설하고 있다. 저 출산으로 어린이는 줄어들고 노인인구는 늘어나는 역삼각형구조로 바뀌어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농산어촌의 인구감소로 70대가 마을의 청년회장을 맡고 있다니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인구정책이 무상(無常)하기만 하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세대인 58년생을 정점(頂點)으로 하향곡선을 그으며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출산장려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유교(儒敎)의 유(儒)자는 사람 인(亻)과, 필요할 수(需)의 합자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배워서 실천하는 학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행을 보고 배우며 자라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인성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에서 인성이 형성되고 굳어지기 때문에 때를 놓친 인성교육은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유교경전이나 조선시대의 교과서였던 동몽선습, 계몽편, 천자문, 격몽요결, 명심보감 등의 글속에 성현들의 명언 명구가 어린이들 마음에 감동과 감화를 주고 있다. 유교(유학)를 창시하신 공자님의 말씀을 풀이하고 이야기를 곁들여 설명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밝아짐을 느낄 수 있어 보람을 얻는다. 인성교육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요즘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마음공부는 소홀히 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근검절약을 모르고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 체격은 좋으나 체력은 떨어지는 아이로 인내력이 부족하고, 자력으로 학습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손발을 사용하는 노작활동을 하지 않아 땀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의지력이 부족한 어린이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녀교육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공부'가 고유어인지 잘못 알고 있는 점도 바로 잡아야 한다. 공(工)자는 만들어가는 것이요, 부(夫)자는 지성과 교양을 갖춘 완벽한 사람을 뜻한다. 한자어인 공부(工夫)의 참뜻을 정리하면'지성과 교양을 갖춘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학창시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배우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언어는 2/3가 한자어(漢字語)인데 한자를 모르면 독해력 즉 문장해독능력이 떨어져 글을 읽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어릴 때부터 쉬운 한자부터 가르치면 그 효과를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지키지 않는다면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조상의 전통문화유산을 자라는 세대에게 가르치며 경험하게 해야 한다. 옛 성현의 주옥같은 말씀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바른 인성을 갖춘 학생으로 키워야만 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딸 『이방카』는 백악관 선임고문이고, 북한 김정은 여동생『김 여정』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다. 우리의 정서로 바라보면 가족이 권력의 근거리에서 지도자를 보좌하는 것을 용인(容認)하지 않는다. 역대왕조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재등용이란 부와 권력이 아닌 능력과 그에 따른 노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관료가 되려면 과거를 치러야만 했다. 과거는 천민을 제외한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고시(考試)제도로 고급인재를 뽑아 관리가 되는 등용문이 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각이 곧 있을 것 같은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각료급은 청문회를 거치면서 관료의 자질과 업무수행능력을 검증한다. 개인 신상 털기에 집중하다보니 참신하고 적합한 인물은 공직후보자를 고사(固辭)하기 때문에 인물난을 겪는다고 한다. 장관급은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어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병역기피, 논문 표절 등에서 자유로운 후보자가 드물다. 인재를 골라 쓰는 일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조선시대에 인재를 제대로 추천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율곡 이이(李珥)를 단연 최고로 꼽는다. 율곡이 추천했던 대표적인 7인이 있는데, 뒷날 모두 고관대작에 오르고 나라를 위해서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 좌의정에 오른 정창연,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이덕형, 병조참판 이정립, 참찬에 오른 오억령 등 7인이 바로 그들이다. 율곡의 인재 알아보는 안목이 얼마나 높았나를 알게 해준다. 인재를 등용하는 일을 맡아 하는 분은 문왕을 도와 주(周)나라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인 강태공(姜太公)의 팔징지법(八徵之法)을 참고했으면 좋겠다. 첫째, 질문을 던져 일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지를 관찰하라.(問之以言 以觀其詳), 둘째, 말로써 궁지에 몰아넣고 위기상황을 맞게 해 그 사람의 대처 능력을 관찰하라.(窮之以辭 以觀其變), 셋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성실성을 관찰토록 하라.(與之間諜 以觀其誠), 넷째, 명백한 질문으로 그 사람의 덕성(인격)을 살피라.(明白顯問 以觀其德), 다섯째, 재물을 맡겨 보아 그 사람의 청렴성을 관찰하라.(使之以財 以觀其廉), 여섯째, 여색으로 시험해 보아 그 사람의 정조관념을 살펴보라.(試之以色 以觀其貞), 일곱째, 어려운 상황을 알려 주고 그 사람의 용기를 관찰하라.(告之以難 以觀其勇), 여덟째, 술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한 후 그 사람의 취중 태도를 살피라.(醉之以酒 以觀其態)하였다. 이를 참고로 하여 우리 현실에 맞는 기준을 설정하여 인재등용을 할 때 활용하여 꼼꼼하게 검증했으면 한다. 교육받은 인재를 공정하게 관리로 선발하려고 각종 시험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한다. 혜강(惠岡)은 인정(人政)이란 책에서 오직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으로 당당히 빛나는 하늘 화창한 태양 아래 서라.(惟以至公無私 立於光天和日)라고 인재등용을 요약했다. 올바른 인사 행정을 통한 인도 정치(人道政治)의 이상을 꿈꾼『인정』은 일종의 정치 교과서였는데, 정치의 본령은 안민(安民)이고, 안민의 요체는 용인(用人)에 달려 있는 것이다. 좋은 목재를 골라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직분에 적합한 인물을 뽑아 적재적소에서 일하게 하는 용인(用人)술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銘心)했으면 한다.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산거청쇄(山居淸洒)라는 문장은 "산중에 살면 가슴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내용이다. 봄철 내내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미세먼지를 피해 숲이 우거진 산중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가슴이 맑아지고 깨끗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명문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산중에 살면 가슴이 맑고 깨끗하여 접촉하는 사람마다 모두 아름다운 생각이 든다. 외로운 구름과 들에 나는 학(鶴)을 보면 속세를 초탈한 생각이 일어나고 돌 틈으로 흐르는 샘물을 만나면 씻어버릴 생각이 든다. 늙은 향나무와 매화나무를 어루만지면 굳은 절개가 치솟고, 백사장의 갈매기와 사슴을 벗하면, 번거로운 이름을 다 잊게 된다. 만일 한번 속세로 뛰어들면 사물과 상관하지 않는다 하여도 곧 이 몸도 무용지물에 속하리라"(山居,胸次淸洒,觸物皆有佳思。見孤雲野鶴,而起超絶之想,遇石澗流泉,而動澡愛吃·,撫老檜寒梅,而勁節挺立,侶沙鷗麋·,而機心頓忘 若一走入塵寰,無論物不相關,卽此身亦屬贅旒矣) 이 문장의 요점은 자연 속에서 참된 삶을 모색(摸索)하라는 내용의 글이다.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수시로 요동치는 뉴스를 보다가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가슴이 답답할 때 채널을 돌리다보면 이내 마음이 편해지는 프로그램이 있다. 시청률이 높은 모 종편방송에서 만든 "나는 자연이다."라는 프로그램은 채근담에 나오는"산거청쇄"와 연결된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속의 숲을 배경으로 펼쳐져 우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인 자연인의 사연을 들어보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산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사기를 당하여 속세의 삶의 싫어 혼자서 자연 속에 살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개그맨 두 사람이 번갈아가면서 자연인과 2박 3일간 생활하는데, 자연인의 진솔한 삶을 재미있게 연출하는 기획의도가 성공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프로그램은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말이나 휴가철이 되면 계곡의 야영장은 예약을 하지 않고는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자연 속에 들어와서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며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려는"산거청쇄"라는 명문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 야영을 좋아하였던 추억이 떠오른다. 어릴 때 따라다니던 자녀들이 성장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의 숲속에 마련된 야영장에서 캠핑을 즐기고 있다. 세 자매 가족이 캠핑을 할 때 몇 차례 다녀왔는데 자연과 떨어져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 같다. 한 두 명의 자녀만 기르는 세대들의 자연 체험 장으로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삼겹살을 숯불에 구워 상추쌈에 싸서 먹는 재미도 있지만 저녁에 별을 바라보며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가족이 화목해지는 것 같았다. 모닥불이 다 탈 무렵 군고구마를 구워서 숯검정을 입가에 묻혀가며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먹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자연인들도 한두 가지 반찬으로 야외에서 맛있게 먹는 음식은 고급음식점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연 속에서 직접 가꾼 무공해 채소와 과일 등으로 별식을 만들어 먹는 재미는 시청자들에게도 군침을 삼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자연인은 60대 이상이 많은데 혼자의 외로움과 식사문제, 빨래 등의 고충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자연에 순응하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연인 이야말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전의 명문장과 함께 생각해 보았다.
충주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축제인 우륵문화제가 올해로 49회를 맞이한다. 내년이면 반세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지난 6월 11일 오후2시에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충주지회(회장: 백경임)주최로 우륵문화제 발전방안 포럼 및 시민토론회가 관아골 갤러리에서 개최되었다. 포럼의 주제는 1주제 우륵문화제 발전방안과 2주제로 명현(名賢)추인을 다뤘다. 주제별로 발제자 1명과 토론자 2명씩 6명이 참여하였고 좌장은 주체단체를 이끄는 백경임 예총회장이 맡았는데 시민의 열띤 토론으로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지역마다 조상들이 남긴 독특한문화가 유형과 무형으로 남아있는데 이를 계승발전 시키기 위하여 문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은 고장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제 1주제의 발제자 박정현 감독이 제시한 우륵문화제 활성화 방안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현대문화와 융합으로 비전을 창출하고, 문화제의 역사적 가치를 제고하고, 시민이 공감하며 참여할 수 있는 정체성확립과 가치를 부여하여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토론자인 김문식(전, 충주교육장)도 우륵문화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고, 삼국의 문화를 융합한 축제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른 토론자인 건국대행정학 이향수 교수는 관(官)주도보다는 준비단계 부터 지역주민이 참여하여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축제가 되어야 하고, 축제에 정통한 전문가 중심으로 체계를 구축하여 지역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발전방안에 대한 시민토론자의 의견도 다양하게 나왔다. 반세기를 맞이하여 우륵문화제를 재조명하고 정체성을 살려서 방향을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느낀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륵이라는 인물을 넣은 문화제의 명칭을 고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반대의견이 심하여 못 고치고 있다고 하는데 문화제의 명칭은 지역문화의 정체성과 성격 내용을 함축한 간판이요 얼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중요하다. 문화는 지역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충주의 문화는 중원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삼국의 각축장이 되었던 지역으로 고구려비(국보 205호)와 신라 탑평리 7층 석탑(중앙탑 국보 6호), 백제의 철문화가 대표적인 유산으로 남아있고, 삼국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지역으로 국내 유일한 지역특성을 살리는 문화제가 되어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우륵(于勒)이라는 인물은 가야국 성열현(省熱縣: 경남 의령군 부림면)에 살다가 가실왕 때 신라에 투항하여 진흥왕의 배려로 국원(國原: 충주)에 제자 이문(泥文)과 함께 낭성에서 살다가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탄주하며 세 명의 제자를 길렀고 가야금 185곡을 남겨 3대악성이 된 인물이다. 대표적인 인물을 문화제 명칭에 넣으면 한명의 인물을 위한 문화제로 축소 될 수 있기 때문에 충주를 상징하는 삼국의 융합문화와는 빗나가고 있어 정체성을 잃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주에는 신라문화제가 공주 부여에는 백제문화제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고려 때 국원경(國原京), 신라 때 중원경(中原京)이었던 충주는 삼국문화제로 확대발전 시켜나가면 삼국의 문화를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특화된 유일한 명품문화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지리적으로 중심고을에 위치하여 전국의 관광객이 찾아오기에 용이한 지역 특성도 있다. 예총에서 주관하던 문화제를 충주문화원과 화합하여 새로운 기구로 재구성하여 삼국의 문화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명년에 50주년을 맞이할 때는 새로운 삼국문화제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소박한 의견을 제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