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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미용실 거울 뒤로 수많은 내가 있다. 반사된 거울이 또 다시 비치면서 뒷모습이 연거푸 투영된다. 한 개 두 개 세 개 헤아리다 보니 서른이 넘는다. 계속 계속 이어지면 더 많이 나타날 텐데 시야가 막혀 버렸다. 어릴 적 장롱에 부착되어 있던 거울도 세 개의 작은 거울이 맞붙어 있었다. 지금처럼 움직일 때마다 똑같이 비치는 바람에 참 신기했었다. 미용실에 있는 세 개의 대형거울 역시 약간만 틀어져도 훨씬 더 많이 비칠 뻔했다.

제석천 궁전의 인드라망을 알고 있다. 수많은 그물코에 삼라만상이 투영된다. 동쪽 구슬은 서쪽, 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정신의 구슬은 물질,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시간은 공간, 공간은 또 시간의 구슬에 비치는 것으로 적이 몰려올 때마다 흔들어 물리친단다. 빛을 발하면서 시야를 차단하는 강력 무기였던 것이다.

불법을 수호하는 제석천은 아수라의 군대를 물리칠 때 인드라망이라는 그물을 사용했다. 우리도 뭔가 괴롭히는 게 있을 경우 인드라망의 해석대로라면 행복은 불행 불행은 행복의 구슬, 그리고 선은 악의 구슬을 악은 선의 구슬에 비치면서 어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드라는 불교적 세계관으로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얽혀 있다고 한다. 그물코마다 구슬이 서로를 비춘다. 인드라망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의지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나타낸다. 수많은 구슬 하나하나가 개체성을 유지하므로 낱낱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였으나 적을 물리치고 나서는 촘촘 얽혀 있는 사바세계의 상징으로 되었다.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이 얽혀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와 비슷하다. 말하자면 인연을 나타내는 본체였던 것일까. 제석천 궁전의 수많은 투명구슬처럼 크기와 모양과 빛깔은 다를지언정 빛을 주고받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를 이룬다.

초등학교 시절 구슬목걸이가 끊어질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바닥으로 일제히 흩어지곤 했는데 스커트의 장식 구슬도 하나가 빠지면 똑같이 퉁겨졌다. 우리 사회도 나 하나로 끝나지 않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이룬다. 인드라망은 결국 세상은 홀로 사는 게 아니고 서로 의지하면서 존재한다는 인과관계를 나타낸다. 장식으로 꿰어진 구슬 같은 경우 실은 보이지 않으나 안섶으로 꿰매 놓은 것을 봐도 우리는 피차 무관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미용실에 가면 어쩌다 세 사람이 동시에 머리를 다듬을 때가 있고 세 개의 대형 거울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바뀐다. 혼자일 때와는 달리 둘 이상이면 그 쪽 거울에 내가, 혹은 내 편의 거울에 상대방이 얼비치면서 복잡해져도 그래서 적을 무찌르는 천혜의 방어책이 되었다.

인드라망의 구슬만 해도 촘촘히 박혀 있을 때라야 더 많이 비추게 된다. 눈앞이 현란해지면서 무찌르기가 용이한 것처럼 우리들 하나하나는 미약해도 나는 너를 비추고 누군가는 나를 비춰주면서 뜻밖의 힘이 나온다.

인드라 망은 상대적인 것끼리 마주 비치는 게 특징이다. 맞부딪쳐 혼란스럽기는 해도 세상 모든 존재가 그물처럼 서로 연결된다. 겹겹 비치면서 얽혀 빠져나오지 못해도 원초적 삶의 몸짓이다. 수많은 그물코에 연결된 채 얽힐수록 복잡해지는 인연을 닮았다.

한때 제석천의 강력한 무기였던 인드라망은 이제 상징적인 의미로 남았다. 복잡하게 얽힌 삶은 힘들지만 그래서 외롭지는 않다. 아무리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의 고리였지만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햇살을 보라. 우물에 잠겨 있어도 젖지 않는 초승달처럼 자유롭다. 수없이 얽힌 인연은 복잡해도 그런 속에서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그게 또 삶의 비장카드인 것도 배운다. 공동체를 뜻하는 인드라망이야말로 누구도 막지 못할 강력 무기가 되면서 뚜렷한 이미지를 남겨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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