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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건축사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또한 다른 초등학교 교사가 담당 학급 학생에게 전치 3주에 이르는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초등학교 특수반 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아동학대로 고발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숨진 교사의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부모로부터 항의, 비난에 교사 경력 2년 차의 25세 어린 담임교사는 혼자 감당이 되지 않아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어쩌다 선생님이 교무실에 가서 출석부를 가져오라 하면 선택받았다는 어린 마음에 우쭐했다. 1년에 한 번 있는 선생님의 가정방문. 부모들은 농촌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어려운 상대였고 또 마땅히 대접할 것도 없어서 몸을 피하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선생님들은 엄격했지만 경외(敬畏)의 대상이었고 학생, 선생님, 학부모는 서로 지킬 것은 지켰다. 학교생활은 즐거웠고 힘센 친구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끼리 서열을 정하는 힘겨루기는 가끔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집과 반대 방향의 친구 동네에서 놀다 오곤 했는데 그런 날은 하루 7~8㎞를 걸어도 유쾌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학교 현실은 어떤가? 옛날에도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라는 말과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이 공존했다. 그래도 그때는 힘든 직업이었지만 존경은 받았다. 세상에는 잘 자란 학생이 더 많고, 좋은 선생님이 대다수이고, 사리분별이 있는 학부모가 더 많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몰지각한 학부모,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학생들이 많아진 반면 학교는 이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하고 있다.

2012년 '학교폭력 예방법'이 개정되고 2015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도 '아동학대'로 규정하여 학교 선생님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어느 변호사는 말한다. 아이들의 다툼을 법정으로 끌고 오면서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개입하여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더 어렵게 하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생각해 볼 일이다. 학교에서 잘못 대응하다간 아동학대·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당할 수 있어 '중립을 지키라'는 것이 대명제(大命題)가 되었다.

이번 젊은 교사의 죽음은 그동안 인고의 나날을 버텨온 교사들에게 '교권'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심어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들은 '교사에게 권위가 아닌 존중을,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 달라'고 외친다. '정당한 지도'를 못하는 교사의 자괴감을 교사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를 막지 않고서는 학교가 정상화될 수 없다.

미국의 '학생 권리장전'은 학생의 권리 외에 규정을 지키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권리와 책임을 확실히 했는데 우리의 서울·경기 등 6개 시도'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만 있을 뿐 학생이 지켜야 할 의무나 타인의 권리·존중에 대한 항목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금기(禁忌), 금도(禁度)가 무너져 이른바 선(線)을 넘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손자를 너무 버릇없이 키우면 할아버지 수염을 잡는다 했다. 고려 시대 나이 어린 김돈중이 아버지 김부식의 위세를 믿고 대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태웠다. 이제 선생님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사회 분위기를 바로잡아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 당당히 대응할 수 있는 법과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더 이상 일선 교사를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외톨이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이 안전하지 않은 학교에서 내 자식도 안전할 수 없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고소·고발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는 관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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