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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건축사

사람은 자신이 믿어 왔던 것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런 만큼 우리 주위에는 ‘자기 확신(自己 確信)’에 빠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운전석 앞 라이트와 범퍼가 망가져서 차를 수리했다. 마침 자동차 정기검사와 맞물려 자동차 검사도 같이 했다. 저녁에 운전을 하는데 새로 교체한 라이트가 이상했다. 각도가 숙여졌는지 불과 몇 m 밖에 비추지 못하고 그 뒤는 어두웠다. 다음날 수리를 한 공업사에 갔다. 설명을 들은 검사원은 차를 검사기계 앞에 세우고 검측을 하더니 기계 검측 상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차 앞에 와서 라이트 불빛을 한번 보라고 했더니 ‘나는 기계를 믿기 때문에 보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참 어이가 없었다. 사람의 감각이 때로는 기계보다 나을 때도 있으니 봐 달라고 다시 부탁했지만 그는 요지부동, 같은 말만 반복한다. 벽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할 수 없이 다음 날 다른 검사장에 갔다. 그쪽 검사원은 내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는다. 그는 운전석 앞 라이트의 각도를 약간 올리고 다른 쪽 라이트의 각도도 교정해 주며 ‘이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못 거창한 말을 했다. 밤에 운전해 보니 앞이 환한 것이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에 ‘방망이 깎던 노인’이 있다. 40년 전 방망이 깎던 노인을 회상하며 노인의 장인 정신과 화자(話者)의 자기반성을 통하여 사라져가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좋은 글이다. 방망이를 주문한 손님이 차 시간에 쫓겨 대충 만들어 달라 해도 노인은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라고 하면서 자기 할 일을 한다.

집에 들고 온 방망이를 본 아내는 방망이가 예쁘다며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고 칭찬한다. 그제야 그는 노인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풀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장자」 천도(天道) 편에 ‘수레바퀴 깎는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 수레바퀴를 깎는 ‘윤편’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제(齊) 나라 환공을 향해 ‘왜 옛사람의 찌꺼기를 읽느냐’며 참 진리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이다. 윤편은 ‘수레바퀴를 너무 작게 깎으면 바퀴 집이 헐거워져 빨리 닳고, 반대로 너무 크게 깎으면 끼울 수조차 없습니다. 바퀴 집에 알맞게 깎는 기술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장자는 이 일화를 통해 참다운 진리는 말이나 글로 담아낼 수 없음을 말한다. 옛 성현의 경전을 아무리 읽는다 해도 단지 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깨달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경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했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도 書不盡言, 言不盡意(글은 말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고, 말은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라고 했으니 이 또한 말과 글의 한계를 말해 주고 있다.

윤오영 선생의 ‘방망이 깎는 노인’이나 장자의 ‘수레바퀴 깎는 노인’ 모두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참 진리를 대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다. 자동차 검사장의 직원이 ‘기계’를 만능으로 여겨 기계가 가리키는 숫자와 좌표에 함몰되어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지나친 자기 확신은 지극히 위험하다. 물론 긍정적인 자기 확신은 순기능을 하지만 지나치면 ‘신념’이 되어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 된다. 차라리 나쁜 생각으로 무엇을 하려는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빠르다.

지나친 자기 확신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향된 사고(思考)에 갇혀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오류를 범한다. 집 안이 정리되려면 버릴 것은 버려야 하듯 우리들 머릿속도 버릴 것은 버려야 지혜로워진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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