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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6.24 18:04:40
  • 최종수정2021.06.24 18:04:44

임해종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6월이 지나가고 있다. 6월 만큼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오늘은 우리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날이다. 71년 전 1950년 6월 25일.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던 한반도는 과거부터 지속돼 왔던 침입들과 주변국들간의 대립에 희생돼야만 했던 비운에 쐐기를 박는 사건을 경험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한반도는 냉전체제의 여파로 미소군정기를 보내며 남과 북 두 체제로 나뉘었다. 그렇게 갈라진 채로 지내던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급작스러운 남침과 함께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됐다.

살기위해 같은 민족끼리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눠야만 했고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거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상황은 그야말로 처참했을 것이다.

당시 희생된 이들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21개국이 참여했다.

또 한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는 약 77만 명에 달하는 등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나의 아버지도 전쟁 당시 군에 입대했다. 남녘 끝 제주도에서 군사훈련을 받으셨다. 제주도 모슬포에서 훈련을 마친 아버지는 그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 현장이자 철의 삼각지대 중 하나인 김화지역(강원도 북부)에 파병되었다.

그곳은 당시 중부전선의 심장부라고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밤낮으로 고지를 두고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6개월 간 편지가 오지 않아 할머니와 어머니는 애를 태우셨다. 또 아버지가 실제로 죽었다는 소문도 들려와 온 가족이 마음을 졸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다. 공산군·중공군과 국군·유엔군의 대치와 무수한 전투 끝에 우리는 종전 대신 휴전이라는 잔인한 운명의 소식을 접했다.

같은 영토와 하늘 아래 휴전선을 기점으로 각 2㎞씩 떨어진 물리적 거리를 두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잔혹한 운명에 놓인 것이다.

다행히 나의 아버지는 전장에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휴전협정을 맺은 후 한반도는 남북을 불문하고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그 당시를 경험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가난의 굴레와 전쟁의 결과물에 온전히 직면했다.

또 가슴 아픈 전쟁의 잔해 속 산산조각 난 일상의 협곡을 굽이 돌아 풍파를 헤쳐나갔다. 가난한 나라라는 수모뿐만이 아니었다. 소위 힘 있고 잘 사는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처지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우리는 한국전쟁과 그 후 격변의 시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 시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당시 아버지 세대를 연기한 배우 황정민은 "힘든 세월에 태어나,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게 참 다행이다" 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민주화의 꽃을 피우는 과정까지 40여 년 동안 소위 바람 잘 날 없는 시기를 경험했지만, 당신들의 세대에서 비극의 고리를 끊고 국가와 후손의 번영을 위해 부단한 헌신과 희생을 보여줬다.

게다가 우리는 가진 자원도 없었다. 2차(공업, 광업, 제조업 등), 4차(정보, 지식 등) 산업의 쌀인 화석연료와 희토류와 같은 자원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불모지였다.

이러한 척박한 땅에서 우리에겐 오직 인재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를 적극 활용해 1970~1980년대 우리는 월남전쟁에 파병되기도 하고 노동력을 수출하기도 했다. 해외 차관에 의지해 선진국의 산업화 과정을 벤치마킹하는 등 차츰 나라다운 면모를 형성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10회 아시안게임(1986년)과 24회 서울올림픽(1988년)도 놓치지 않고 유치해 한국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드높이기도 했다.

제살을 도려내는 노력을 바탕으로 전쟁의 페허 위에서 약 70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불을 훌쩍 넘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국가경쟁력 종합 10위(WEF, 2019)' 에 진입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조국의 더 나은 미래와 자유를 위해 헌신과 나라사랑으로 전쟁과 불합리에 맞선 참전용사와 무수한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눈물겨운 그들의 희생과 아픔을 딛고 성장했다.

전쟁 후 긴 시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당시의 처참한 상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도 휴전중이고 현재 전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부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청춘과 바꾼 지금의 자유와 평화에 감사를 표한다.

또한 세월이 흘러도 선조들의 이러한 희생과 헌신을 길이길이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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