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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절 아래 수도원(修道院)에서 모처럼 주지스님과 차 한 잔을 마시는데, 다실(茶室)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수묵채색의 기법으로 화폭 가득 나팔꽃을 그린 족자였다. 그림 속의 나팔꽃은 새벽녘에 막 피어나는 개화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었고, 화제(畵題)를 보니, ‘만신추로입다시(滿身秋露立多時)’라고 적어 놓았다.
청초한 나팔꽃에 대한 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온몸 가득 가을 이슬 적시고 눈부신 시간 속에 서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알듯, 나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단 하루가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나팔꽃의 개화는 가장 눈부신 삶의 절정인 것이다. 따라서 나팔꽃이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것은 너무나 고귀한 그의 생애 때문이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짧게 만나는 간절함을 전해주는 것이다.

초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초가을까지 피고 지는 나팔꽃. 그 나팔꽃이 가을에 피었다면 얼마나 청조하고 애처로울까. 그래서 가을날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는 나팔꽃은 더욱 애 닮고 선명하다. 대신 나팔꽃은 그 하루를 가장 화려하고도 소중하게, 후회 없이 살다 가는 것이리라.

또한 수묵화의 소재로 나팔꽃을 그린 것도 멋이거니와 이 여름에 지천으로 흔한 연꽃보다는 나팔꽃을 다실의 주제로 삼은 주지스님의 안목도 남다른 것이었다. 내 짐작으로는, 그 방의 주인은 나팔꽃을 통해 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테면 나팔꽃을 보여줌으로서 세상의 무상을 일러주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는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팔꽃은 이른 새벽에 피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모닝글로리’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단 하루 동안 피기 때문에 꽃말도 ‘덧없는 사랑’이다. 문득 어느 여가수가 부른 유행가 소절이 떠오른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 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 주리라.”

덧없는 사랑에 대한 절절한 미움과 그리움을 나팔꽃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나팔꽃을 보면 새삼 이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차라리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이라면, 속절없다고 가슴앓이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속성을 즐기면 될 것이다.

꽃이 고귀한 것은 피었다 지기 때문이듯, 사랑 또한 영원하지 않으므로 애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본질을 알면 그 짧은 사랑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무상하다는 것은, 덧없다는 의미보다는 본질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젊고 좋았던 시절을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그리워하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의 주어진 상황을 존중하고 몰입하는 적극적인 태도 같은 것을 말한다. 즉, 영원하지 않으니까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랑의 속성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불만과 고통이지만, 인정하고 나면 그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다. 이렇듯 무상은, 매 순간 변화하는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긍정의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찰나를 놓치면 전부를 놓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변화 속에 숨을 쉬며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꽃이 피어 있는 순간을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 생을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나팔꽃 피듯 열정을 다 쏟아 부어라. 그러면 후회도 미련도 없는 삶을 살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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