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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4.28 17:59:05
  • 최종수정2015.05.25 16:15:32

박일선

충북환경연대 대표

초·중·고시절 '환웅과 웅녀가 만나 단군이 태어나고 우리는 그 후손'이라고 배웠다.

그 때마다 "우리가 곰의 자손이란 말이야! 그런데 털은 왜 미국사람이 더 많지...."란 반문이 들었다. '해'를 숭상하는 '환(桓-韓)'족과 곰을 숭상하는 족속과의 결합을 문학적 신비주의로 표현했음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대학 땐 병영체험의 일환으로 '문선대'에 입소해 역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적이 없어요. 통일신라란 말은 맞지 않아요. 북에 발해가 있었으니 남북조시대라고 해야 합니다."란 말씀이 가슴에 박혔다. 가야에 이어 고구려, 백제도 멸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년)에 전국을 9주(州)로 나눴고 경덕왕 때 한식(漢式)이름으로 바꿨다. 삼국사기 지리지는 옛 고구려 땅엔 '한주, 삭주, 명주'를, 백제엔 '웅주, 전주, 무주'를, 신라엔 '상주, 양주, 강주'를 설치했음을 전한다. 이렇게 삼국에 삼주씩 설치한 것은 미완의 통일을 감추기 위한 의도임이 분명하다. 대개의 고구려 옛 땅은 신라나 당의 것이 되지 못하고 발해강역이 됐지 않은가· 일제는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한민족사를 누더기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예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둔갑시킨 것이다(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일제에 의한 이런 조작에 최남선선생이 강력히 비판했다. '옛날에 환국(빛의 나라)이 있었다'와 '옛날에 환인(하느님)이 계셨다'는 엄청나 역사해석의 따.그들은 조작된 삼국유사를 널리 배포해 대한국인들은 지금도 그것을 배우고 있다.이로써 단군조선이전의 수천년 역사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독도(獨島)'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우기는 못된 일본을 목격하면서도 한민족 스스로 자신의 상고사를 부정하는 기막힌 현실이다.신채호선생은 대륙삼한과 반도삼한, 한사군(漢四郡) 한반도 부재(不在)를 입증했다(조선상고사). 위만이 단군조선을 이었다는 망언은 한민족은 옛날부터 외세통치를 받아 일제지배가 당연하단 근거를 준다. 또한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한다는 허위적 주장은 중국의 북한흡수정책과 맞닿아 있음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 지금도 역사관광의 1번지는 경주다. 신라가 한곳에 오래도록 왕도를 두어 문화재가 많다. 하지만 백제나 가야의 고도개발에 대한 정부 관심은 경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충주 루암리와 묘곡에도 수백기의 고분이 있으나 발굴된 곳은 극히 일부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특정지역 우월주의를 심기 위한 차별정책이다. 신라 중앙탑은 국보6호로 지정돼 성역화 된지 오래다. 헌데 고구려비는 국보지정 후에도 긴 세월 방치돼왔다. 보호지붕이 뚫어져 비가 샜고 오가는 시멘트차량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그간 얼마나 신라편중사관에 취했는지 잘 보여준다. 호암동 청동무덤 주인이 허리에 청동거울을 차고 머리를 동쪽을 향해 누운 것은 태양숭배신앙을, 머리에 놓인 청동검 7자루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는 칠성신앙을 반영한 것이다. 햇살 무늬가 가득 찬 동경(銅鏡)을 품고 무덤 에서도 '나는 태양의 아들이다. 밝달림금(檀君)이다'라고 외치고 있다.그 내구(內區)의 사각형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방정하다(天圓地方)'는 한민족 시원철학이 담긴 것이다.상고사가 멸실된 지금, 전국체전으로 이전될 무덤에 어떤 옷을 입힐진 모두의 과제다. 마침 김광중부시장이 나서서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다행이다. 충주시는 '문화예술관광자문위원회'와 작가, 민속학자, 디자이너 등과 지혜를 모아 전국체전을 통해 이 청동문화재를 국민적인 보물로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지명학의 대가인 도수희교수도 '백제의 전기판도와 그 언어자료'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고는 하나 실상 고구려 본래의 영토는 내주지 않고 고구려가 이미 백제로부터 점령하였던 구(舊) 백제영토만 가볍게 내 준 듯하다"라고 했다.

성을 그것을 우리가 배우느표이결과이 석유환국''나라(桓國)'를 '사람(桓因)'으로 조작해 수천년 민족사를 감춰 지금까지 그 망령에 잡혀있다.

충주 호암동 전국체전부지 'Ⅰ-2'지점에서 2300년 전후로 추정되는 초기철기시대 돌무지나무널무덤(積石木棺墓)에서 무려 청동기 19점과 토기 2점, 칠기 1점이 출토(중원문화재연구원)됐다. 무덤도 완벽하고 하나의 묘에서 가장 많은 청동기를 발굴한 전무(前無)한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무덤 주인의 성격과 그의 신체 부위에 각기 다른 유물이 놓여 진 까닭, 그 숫자, 토기에 무엇이 담겼을 가능성 등에 대한 해석은 매우 빈곤하거나 아예 없는 듯하다.

그간 청동유물을 간직한 무덤이 완벽하게 발굴된 적이 귀해 연구가 어려운 것도 이유가 된다. 또한 상고문헌이 전쟁과 식민지배 속에서 멸실· 왜곡됐고 조선왕조의 중화사대정책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자료에 대한 위서(僞書)시비, 친일매국사학자 이병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주류 강단사학의 상황, 신채호 민족사학이 외면 받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환웅과 곰이 합궁하여 단군이 태어나고 바로 그 후손이 한민족이라고 배웠고, 한(漢)나라가 낙랑과 임둔, 대방, 현도라는 4군을 한반도에 세웠다고 배웠고, 삼한이 한강 이남에만 있었다고 배운 눈으로 어찌 이 무덤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

한민족의 태양숭배신앙과 오행(五行)사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어찌 묻힌 이의 머리가 동쪽을 향해 있고 머리에 '폭이 좁은 놋단검(細形銅劍)'이 다섯 자루 놓인 뜻을 알 수 있을까?

한국청동기 연구 권위자인 이청규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날 현장설명회를 통해 '세형동검과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청동투겁창(동창 모순차과모, 청동도끼(銅斧) 등 청동기가 대거 나온 것을 봐서 충주 일대를 지배하던 지방세력의 우두머리급 무덤으로 추정된다."며 "무덤축조방식과 유물부장방식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당대의 수장은 정치와 제사를 겸한 제정일치 사회의 지도자였다. '하늘과 사람의 소통'을 독점한 그들은 최고 권위를 상징하는 청동기를 달고 나라의 길흉을 점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일학교 다닐 때 '아브람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란 구절에 늘 의문을 갖고 있었다. 아브람의 아버지가 데라고 그의 아버진 나홀인데 마태복음은 왜 아브람부터 시작되는지, 그의 조상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 아브람부터 시작되는 마태복음의 기록은 예수의 메시아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뒤에 알았다.

라이프성경사전에 따르면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면서 풍요를 상징하는 달신(月神)을 숭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르가 있던 유프라데스강 일대는 수메르인들이 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그런데 구약엔 아브람 이전에 대한 기술은 귀하다.

결국 지금의 성경은 유대족이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選民)임을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1993년 평양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발굴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또한 평양주변의 봉화리 고성, 고연리와 지탑리, 성현리 토성도 발견했다. 이들 간격이 약 50~80리인데 이를 남일룡교수는 단군시대로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북한은 '대동강문명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민족의 역사적 정통성이 대동강과 평양임을 말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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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