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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2.15 15:33:39
  • 최종수정2019.12.15 15:33:39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하늘은 어둡고, 초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리고, 몸은 자꾸만 아파온다. 이렇게 종말이 오는 것인가. 아래 시는 정재학, 「전염병이 도는 마을」이다. 이 시는 동화 같은 악몽이 현실을 뛰어넘어 환상으로, 이 환상은 그로테스크하고 어두운 그림자로 변해 현실을 왜곡시키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마을에 아이들의 이빨이 녹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네 어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네 아이들은 배가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네 학교에서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지냈네 동네 지붕마다 달이 박혀 있었네 …(중략)… 아이들은 길가에서 커다란 빈 분유통을 굴리며 놀았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이들은 개털을 들이마셨네 그때마다 녹아버린 이빨을 토해 냈네 아이들은 그것들을 모아 지붕에 박힌 달 속에 넣어두었네 아이들은 손톱으로 서로의 이마에 구멍을 뚫었네 소독차가 마을을 돌고 아이들이 떼 지어 쫓아다니네

- 정재학, 「전염병이 도는 마을」

'아이들은 길가에서 커다란 빈 분유통을 굴리며 놀고 있는', '소독차가 마을을 돌고 아이들이 떼 지어 쫓아다니는' 동화 같은 상상력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이행하여 독립하려는 아이들이 겪는 통과의례라 볼 수 있다.

'녹아버린 이빨을 토해 냈네 아이들은 그것들을 모아 지붕에 박힌 달 속에 넣어두었네'에서 알 수 있듯 아이들에게 전염병은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소독차가 마을을 돌고 아이들이 떼 지어 쫓아다녔던 것'은 어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른 세계는 어떠한가.

아버지가 아기가 되어 마당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중략)… 아버지 저 좀 붙잡아 주세요 빌어먹을 제 손이 할머니 눈 속에 들어가 버렸어요 할머니 눈에서 날카로운 초생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툭툭 부러졌다 나는 할머니의 몸속에 들어가 아버지가 되어 기어 나왔다 문을 뚫고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 정재학, 「아라베스크」

환상적인 무늬와 문양이 있는 괴이하고 신비한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이 섞여 침울한 분위기를 만들어 오고 있다. 아라베스크 같은 현실과 환상 속에서 할머니와 아버지와 나는 차이와 반복에 의한 심리 변화를 통해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다.

2019년은 유달리 정치, 경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아라베스크 같은 기이한 모습이 많았던 해이다. 모순된 세계는 우리를 일반화된 시간 속에 두지 않고 혼돈과 혼란 속에 빠뜨려 파편화된 시간만을 존재하게 만든다. 요즘 들어 "이게 나라냐" 하는 탄식과 함께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얼어붙은 강에서 "쩡쩡쩡"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순에 의해 사라진 세계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것은 상상력뿐이다. 상상력은 '아버지가 아기가 되어 마당을 기어다니고', '나는 할머니의 몸속에 들어가 아버지가 되어 기어 나왔으며', '문을 뚫고 기차가 들어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할머니와 아버지와 나를 연결시키며 끝없이 반복되면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는 아라베스크와 같이 차이와 반복에 의한 신비로움으로 주술이 된다. 주술은 환상으로 현실 저편 세계이지만 냉혹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

"도덕은 시간과 지역, 계급,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당신에 의한 도덕은 준법, 즉 당신 계급이 누리는 특권에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이고, 우리 도덕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모든 이의 행복을 찾으라고 요구하지요.

우리에게 모든 도덕적인 규범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에리코 말라테스타, 『국가 없는 사회』)와 같이 스스로 "사랑합니다!"라는 주술을 걸어 견디면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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