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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최근 퇴직한 친구를 만났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잘살기 위해 건강, 돈, 자유, 즐거움, 사랑, 신앙, 권력, 명예, 지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것들을 갖추고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이해한다면 아마 행복할 것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자기보존을 제1원리로 삼는다는 것을 뜻한다. 살아있기 위해서는 건강과 함께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한다.

맹자는 '식색성야(食色性也)', 즉 식욕과 성욕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본성이라 했다. 살아 있기 위해서는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사람을 가리켜 인구, 식구라 한다. 모두 입구(口)가 들어가 있다.

또한 맹자는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마음도 든든해진다(恒有産 恒有心 항유산 항유심)'고 했다. 백성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하여 살아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말한다.

산다는 것은 생존이다. 생존은 existence다. existere는 ex_(로 부터)와 -sistere(존립하다)의 합성어로 생활(life)과는 다른 의미성을 지닌다.

너도 알지· 나는 곧 잊혀질 거야 봄은 자꾸 가래를 끓여올려 건물들은 서서히 마모되고 거리에 번지는 선인장 가시들 뱉어낸 가래처럼 꽃들은 폐허 위에서도 피어나 나는 그림자를 잃어버렸어 가위로 오린 종이인형처럼 훨훨 모래바람 속으로 날아가버렸지 먹먹한 공중으로부터 새들은 거듭 폐혈증의 울음을 전해와 서울은 잊혀진 도시야 거대한 사구들로 뒤덮여 봄도 봄이 뱉어낸 꽃들도 새들의 피울음도 기억을 잃어 조각난 유물처럼 나는 곧 잊혀질 거야

- 김근, 「모래바람 속」 부분, 『뱀 소년의 외출』, 문학동네, 2005.

우리는 자신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자신에게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채, "가위로 오린 종이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

기껏 구겨질 뿐인 삶은 오지도 가지도, 어딘가에 속할 수 없는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가위로 오린 종이인형처럼" 위태한 삶은 사막에 던져진 삶일 것이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은 "자꾸 가래를 끓여올"리게 하고, "거리에 번지는 선인장 가시들", "폐허 위에서도 피어나는" "꽃들", "거대한 사구들로 뒤덮여"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피울음" 소리가 생계수단을 든든하게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에서 "나는 그림자를 잃(을 수밖에 없)어 버렸"고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며, "조각난 유물처럼" 잊혀져 가지만 한편으로 뚜렷해지기도 한다.

이는 죽음에조차 주인이 될 수 없는 무력한 부재의 영역, '코도 입도 흩날려 몽달귀 같은' 끔찍한 것들로 산재해 있는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무력함은 자꾸 커져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실체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들은 특정 상황이나 사물이 빚어내는 뉘앙스 자체로 혼란스럽게, 그리고 복합적으로 교차 되기도 한다.

괴로워할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어디에도 없는, 어느 것으로도 모래바람 속 '나'를 대체할 수도, 부를 수도 없는 현실에 발붙이고 오늘을 이겨내고 있다.

"서울이라는 잊혀진 도시"에서 생계수단을 든든하게 만들고자 했지만 산다는 것은 생존임을 "먹먹한 공중으로부터" 찬 바람 불어와 옷깃 사이로 돌아 나가는 것을 보고 다시 확인해본다.

'식색성야'를 빼앗긴 주체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자기보존에 대한 욕망을 과감히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사회에 던져진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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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