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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어느 가을날의 상념

  • 웹출고시간2023.11.27 17:41:34
  • 최종수정2023.11.27 17:41:34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달달한 모닝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 밖으론 휘이익… 쉬이… 바람 소리와 함께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이 공중에서 곡예를 부린다. 이미 땅으로 떨어진 낙엽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가 안간힘을 쓰듯 바스락거리며 시멘트 바닥을 뒹굴고 있다.

헛헛한 기분을 달래며 커피잔을 드는데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중학교 친구의 부음 소식이다. 순간 머리와 가슴에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고향에 정착해 마을의 이장까지 하며 활발하게 농사를 짓던 친구가 벌써 세상을 떴다니….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퇴직할 때만 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20~30년을 보내나 걱정을 했었다. 헌데, 한 해 한 해 계절이 바뀌고 떨어져 나가는 달력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지곤 한다. 지금 내 인생은 어디쯤 와 있을까. 떨어지는 낙엽같이 언제 이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는 허무한 인생인데, 지나온 삶에 지나친 욕심은 없었는지. 남에게, 내가 사는 사회에 해악은 끼치지 않았는지. 장남으로 가장으로 살면서 책임은 다했는지 곰곰이 과거를 돌이켜 본다.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중에 난 어떤 사람이었나. 당시 꼭 필요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적어도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는데, 이쪽 편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덤비다가 저쪽 사람에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낙인찍힌 건 아닌지. 장남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한답시고 동생들, 아내 자식에게 윽박지르며 내 생각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을 해본다.

얼마 전 고향 사람 모임에서 후배에게 들은 "형은 무슨 재미로 살아유· 담배도 안 피지. 술도 못 먹는다고 하지. 노래방도 안 가지. 그렇다고 애인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라고 한 것처럼 재미도 없고 행복하지도 못한 삶을 살아온 걸까. 아니면 아내와 함께 아들딸의 재롱을 만끽하며 자립까지 시켰으니 나름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보낸 걸까. 똑같은 삶을 다시 산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 좀 더 재미있게 즐기며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하는 오늘이다.

퇴직하고 나이를 먹다 보니 성공에 대한 관념도 달라지는 것 같다. 젊었을 땐 돈을 많이 벌고 승진을 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 즉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것이 성공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으니 이제는 평범하게 사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 느껴진다. "나쁜 짓 하지 말고 남에게 얻으러만 안 가고 살면 된다"고 입버릇처럼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젊었을 땐 마뜩잖았었는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어머님 나름의 가르침이 옳은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첫 직장에서 무탈하게 훈장까지 받으며 정년퇴직했고, 한 여자와 헤어지지도 사별하지도 않고 살고 있으니, 복이라면 복이요, 성공이라면 성공이다. 또 요즘 친구들끼리 농담 삼아 "자식들 다 결혼시켰으면 성공한거여"란 말을 하는데, 아들딸 모두 제 짝을 찾아 손자, 손녀까지 안겨 주었으니 이 또한 행복이고 큰 성공이라고 자위도 해본다.

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문턱에서 선 지금 이 가을을 어떻게 보낼까 깊이 생각해본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5세부터 75세까지라고 했다. 지금 내가 이 황금기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허무한 감상에만 빠져있진 말아야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아쉬웠던 점을 채워나가야겠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때 좀 더 즐길걸, 참을걸, 베풀걸' 이것을 못 했다고 가장 많이 후회한다고 한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참고, 베풀고, 즐기면서 이 황금기 가을을 보내야겠다.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꾸어 거무튀튀하고 우중충한 낙엽이 아닌 초록과 빨강 노랑이 은근하게 어우러진 감나무 잎같이 곱게 물들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신성용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충북도청 정년퇴직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푸른솔문학 수필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대수필문학상, 카페문학상, 녹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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