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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死産된 두 마음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20.07.30 16:03:12
  • 최종수정2020.07.30 16:03:12
황병승의 시에는 분열된 주체, 퀴어들, 잔혹극 서사, 비주류 아웃사이더, 무국적성, 텍스트들의 콜라주, 하위문화 등이 나타난다. 현실적 논리와 규칙을 침탈하고 훼손하는 부조리한 이야기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원인과 결과는 전도되어 있고, 본질과 현상의 구분은 무용해지고, 여성과 남성의 성 정체성은 뒤바뀌어 있다. 또한 실제와 표상의 경계는 사라져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모호해진다. 시의 화자들은 확정된 세계에 귀속하여 그 세계에 안주하거나 정착하지 않는다. 화자 대부분이 무국적자이고 끝없이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단자들이고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성(性) 소수자들이다. 문화 권력의 중심으로부터 배제된 자들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꿈으로, 질서에서 무질서의 세계로, 정형에서 무정형의 나라로 탈주하며 기존의 규율과 가치관을 훼손한다. 관습을 부정하고 총체성을 파괴한다.

이들은 왜 이런 이단적 행동을 하는 걸까? 현실은 가짜들이 넘쳐나는 곳, 정상과 비정상이 전도된 곳, 모순과 부작용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꿈과 동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독(毒)과 악(惡)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은 그런 세계에서 양산된 수많은 텍스트들을 비틀고 중첩시켜 무국적 텍스트를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시인은 심각하고 진지한 전투가 아니라 유희적 조롱, 비논리적인 꿈, 허구적 상상의 소설 방식을 취한다. 하나의 서사와 중심 주제를 세우는 방식을 버리고 놀이에 빠진 아이처럼 시 놀이에 빠져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펼친다.

死産된 두 마음 - 황병승(1970~2019)

땅 속에 거꾸로 처박힌 광대처럼

열두 살, 사탕을 너무 먹어서

두발은 계속 허공을 걷는다.

시간은 좀도둑처럼 어둠속에서

딸꾹 딸꾹 조금씩 죽어가고

참새들은 그것을 재밌어 한다.

서른여섯 살의 악마가 다가와 열두 살의 나를 지목할 때까지

(딸꾹거리며)

검은 칼을 든 악마가 열두 살의 내 목을 내리칠 때까지

불안에 떠는 광대처럼

(딸꾹, 딸꾹거리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이 땅속의 자식아!

흙 속에 처박힌 열두 살

귓속의 매미는 잠들지 못한다.
그 결과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려는 관습적 독자들의 눈에 그의 시는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분열적 중얼거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자폐적 서사로 비치고 이것이 그의 시를 혹평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실제로 그의 시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주체 또한 단일하게 확정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현실과 꿈이, 안과 밖이, 거짓과 진실이, 어른과 아이가 뒤바뀌는 혼종의 세계, 트랜스젠더의 세계를 그린다. 그러나 이런 전도된 세계가 21세기 현실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는 전언을 낳고 그로테스크한 허구들이 세계의 실상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성적 혼종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서 세계 전체가 감각의 파열과 분열증을 앓는 공간임을 자각케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시는 혼종의 미학, 퀴어(queer) 미학을 지향한다. 이는 시인이 어른들의 확정적 세계를 부정과 타락의 세계로 보는 반면에 아이들과 미성년의 세계를 불확정적 순수의 세계로 본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 아이들(미성년, 청소년) 화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어른 화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겉만 어른이고 속은 아이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대부분 합리적 규율과 도덕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물들로 하위문화를 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간다. 이런 특징을 포착하여 일부 평자들은 그의 시를 하위문화의 산물로만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시의 표층만 보고 내린 어설픈 진단이다. 하위문화의 감각과 코드로 채워져 있다고 해서 그의 시를 하위문화를 재현하는 시로 제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설적 시각으로 보면 그의 시의 아이들은 오히려 순수하다. 계산을 모르는 천진한 존재들이다. 육체만 성장했지 교묘한 전략을 통해 세계에 아부하고 치밀하게 계산하는 자들이 아니다. 아빠들의 어른 세계가 어떤 곳인지 빤히 알기에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하는 아이라는 점에서 영리하고 맹랑하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처럼 의도적으로 육체의 성장을 거부한 반항적 자아를 분신으로 선택한 아이에 가깝다. 이 아이의 눈에 어른들의 합리주의 세계관이나 공리주의 가치체계는 헛것 모래성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세상이 개나 돼지가 잔혹하게 도축되는 야만의 세계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아이의 눈에 비친 현실, 황병승의 시는 그 아이의 눈에 비친 뒤집어진 유희와 희롱의 놀이터, 상징과 은유의 놀이터다. 그의 분열적 문체와 서사 이면에 숨은 비극의 세계상이 나는 가슴 아프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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