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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11.10 15:42:11
  • 최종수정2022.11.10 15:42:11
강릉 소나무 숲길을 오른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쭉쭉 뻗은 금강송이 위용을 자랑한다. 사열대를 향하여 나열하고 있는 병사들처럼, 계곡을 향하여 위엄 있게 서서 우리를 반긴다. 뾰족뾰족 하늘을 향한 이파리는 햇살을 향해 마음껏 피어나고 있다.

마치 따스한 봄날, 거실 깊숙이 스며들어 펼쳐지는 햇살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모습처럼 피톤치드 입자들이 내 몸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금방 기운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쭉쭉 뻗은 금강송은 불규칙하게 휘어진 여느 소나무들과는 외모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보통 소나무는 수피(樹皮)가 검고 거칠며 질서 없이 허름하지만, 금강송의 수피는 갑옷처럼 정교하며 단단하다. 그 모습이 늠름하기 까지 하다. 색깔도 붉은빛으로 우아하고 기품이 있다. 아마도 높고 험준한 태백산 준령의 정기를 받고 자라서 인가보다. 그 정기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빛난다. 나무들 사이에 서서 그 향에 취하고 있다. 우러나오는 그 신선함이 대단하다. 그래서 쓰임도 국보급이다. 왕궁이나 사찰 건축에 이용되고, 나라에서 보호하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나무가 있다면 금강송이 아닐까 싶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그 사이로 투명하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차가운 물이 닿는 바위들은 시린 몸을 웅크리고, 하얗게 질린 상태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서있다.

계곡 중간 중간에 낙차가 큰 곳으로는 크고 작은 폭포가 자리하고 있어 청명하고 투명한 물이 흘러내린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는 어떤 유명한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보다 더 청아하게 들려온다. 도시에서의 찌든 삶의 찌꺼기들을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맑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씻겨주어 우리를 새롭게 한다. 소나무향기와 계곡물에서 우러나오는 투명한 공기를 가슴속 깊이 밀어 넣어 찌든 때를 씻어낸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부터 시려오며 상쾌함이 온몸으로 퍼진다.

폭포수 아래 물길이 흐르는 곳에 누군가가 일부러 파놓은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커다란 항아리처럼 움푹 파인 물웅덩이가 있다. 폭포수로 쏟아진 물이 내려오다 웅덩이로 빨려 들어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아래로 쏜살같이 밀려 내려간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탐스러워 돌아나가는 물에 손을 담가본다.

예상대로 손이 에이듯 차다. '어딜 감히 때 묻은 손으로 더럽히려 하느냐' 하듯, 사춘기 소녀의 앙칼스럽게 토라지는 모습처럼 냉랭(冷冷)하다.

물웅덩이에는 둥근 돌이 물의 흐름에 따라 같이 돌고 있었다. 몇 만 년을 갈고 닦았는지 해변 모래밭에서나 볼 수 있는 자갈처럼 반들반들하다.

애초 물웅덩이로 처음 굴러들어 왔을 때는 모나고 각진 울퉁불퉁한 평범한 돌의 모습이었으리니. 수백 년 이든, 수만 년을 물길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겨 웅덩이를 돌며, 모난 곳은 부딪쳐 깨지고 갈리고 하여 지금처럼 매초롬한 주먹돌로 다시 만들어졌으리.

웅덩이 역시 오래전에 볼품없는 평범한 바위에 우연히 웅덩이로 생겨나, 그 위로 폭포수가 흐른다. 어느 때인가 커다란 모난 돌이 장마 때 굴러들어와 웅덩이 안에 갇혀, 물살에 떠밀려 돌아가며 부딪치고 갈리고 깨지는 아픔을 견디고 깎기며 다듬어졌으리. 육감적인 여인의 둔부와 같이 매끈한 모습으로 변하여 큰 바위 아래에 수줍은 듯 숨어 항아리 모양이 되었으리라.

그 세월이 얼마인가.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면 부딪치고 깨지는 아픔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처음으로 모난 돌이 웅덩이로 굴러들어 왔을 때는 물길에 흘러 부딪치는 아픔 속에서 얼마나 서로를 원망했을까. 몇만 년을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리니. 덕분에 날카롭던 돌도, 볼품없던 웅덩이도 어느 이름 있는 장인이 깎아놓은 것처럼 동그란 도자기 모습으로 환생하여, 항아리 속에 커다란 알을 품고 있는 듯하다. 아기자기한 장식품같이 변신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까지 느끼게 한다.

물웅덩이 속으로 낮에는 금강송이 가득 차고, 밤이면 별들이 가득 넘쳐흐르리. 웅덩이 옆에 표주박 하나 갖다 놓아, 별들이 웅덩이 속에 가득 찰 때면 별을 한 바가지 퍼서 그리운 사람 품에 안겨주고 싶은 마음 넘쳐난다.

자연에서 존재하며 우리를 경이롭게 만드는 모든 작품들이 그렇게 인고의 세월없이 만들어진 것이 있을까.

이운우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저서 '끈끈이 대나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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