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은 촉각의 시인, 감각의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시간의 순간적 현현과 사라짐을 기리는 일종의 현상학적 제사(祭祀)다. 그녀는 시를 통해 대상의 근원이나 배후를 탐색하지 않으며 초월을 꿈꾸지도 않는다. 그래서 어휘와 문장은 구심력보다 원심력, 응집보다 발산을 지향한다. 기표와 기의의 경계선은 흐를 뿐 특정 가치나 신념에 종속되지 않는다. 당연히 시적 자아는 확정된 고체의 형상을 만들지 않는다. 코기토(cogito)는 해체되고 이데아(Idea)는 붕괴된다. 세계의 중심이 인간이라는 신성한 관념도 해체된다.
시인은 말이 무력해지는 지점, 말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다시 시를 시작한다. 인칭을 파괴하여 비(非)인칭 화자를 탄생시킨다. 인칭의 파괴는 김행숙 시의 독창성과 기묘함을 낳는 주요 원인이다. 1인칭과 2인칭 대신 1.5인칭을 쓰는데 내 안의 너, 내 안에 섞여 있는 타자들을 연상시킨다. 다성 화자도 등장하는데 많은 경우 5~6명 정도의 소녀 화자들이 왁자지껄 말들을 토해낸다. 사춘기 화자, 귀신 화자, 흔적 화자, 메아리 화자, 꿈 화자 등이 뒤섞여 어지럽게 발화한다. 또한 투명인간, 유령, 귀신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독백 투의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놓기도 한다. 일부 평자들은 이들을 시인의 분열된 자아로 파악하는데 오진(誤診)에 가깝다. 이들은 자아의 감각적 창조물 또는 환상복제물인 클론(clone)들이다. 이 클론들이 각자의 시간을 살며 각자의 말과 기억을 쏟아놓는 것이다.
숲속의 키스 - 김행숙(1970~ )
두 개의 목이
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
창문이 열리고
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
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
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
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
키스는 가볍고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이처럼 시인에게 인간은 호르몬의 물적 존재일 뿐이고 이런 존재 인식이 기체의 형상들을 낳는다. 기존의 얼굴을 몰락시키고 새로운 얼굴을 탄생시킨다. 중요한 것은 이 몰락 또는 사라짐이 자유와 연계된다는 점이다. 세계는 늘 붙잡아 놓으려는 구속의 공간이기에 시인은 시 쓰기를 통해 세계로부터 연기처럼 사라지려 한다. 이 욕구가 서정적 이별의 이미지로 채색된다. 즉 그녀에게 세계는 늘 이별이 진행 중인 공간,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둥근 무대, 사랑이 진행 중인 곳이다. 발전 진보하는 곳이 아니라 끝없이 대체되는 곳이다. 이런 세계 구조의 메커니즘이 시인 특유의 반복적 복제 시학과 질문들을 낳는다. 질문을 낳는 주요 어휘로는 아이, 귀신, 계단, 얼굴, 해변, 고양이, 키스, 발목, 손목, 목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하는 어휘가 아이, 얼굴, 귀신, 해변, 키스 등이다.
오늘 소개하는 시 「숲 속의 키스」에서 주목되는 건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 교감보다 시인의 건축학적 관찰력과 경쾌하고 낯선 공간 해석력이다. 현대시에서 키스는 너무도 많이 다루어진 테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달콤한 감정의 교류와 기억의 재현, 육체의 합일을 통한 상처의 치유 등으로 상상력을 확장시켜 나간다. 이 시에서도 그런 정서적 교감 측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숲의 환상을 통해 낯선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펼친다. 두 사람은 두 그루 나무가 되어 하나의 육체를 이룬다. 손은 나뭇잎이 되어 날아오르고 물방울들은 가볍게 나뭇잎을 떠난다. 사람과 나무의 경계는 지워지고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이 뒤바뀐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다. 육체의 촉각적 접촉을 통해 두 존재는 기존의 자신을 몰락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부활한다. 숲 전체가 사랑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이 시에서 키스는 단순한 육체 접촉의 차원을 넘어서서 존재의 변신과 재생을 위한 감각적 행위로 시인의 '의식의 지향성'을 반영한다. 대체로 인간에게 의식의 지향성은 '의식 그 너머 상태'인 무한 혹은 영원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시의 궁극은 열려 있다.
이처럼 김행숙은 촉각의 느낌에 자주 매혹되는 시인이다. 얼굴 부위의 혀의 촉각적 느낌은 의식보다 앞서고 예고 없이 우리 몸 깊숙이 전달된다. 키스를 통한 얼굴의 재탄생, 몸의 재탄생은 진리의 재현 문제와 동궤다. 진리는 과연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시인은 키스 행위를 통해 상상한다. 이때 얼굴의 몰락은 진리의 몰락을 의미하기에 과연 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불확정성 세계관이 부각된다. 이런 인식의 극적 전환이 혀의 감각, 육체의 환상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귀하다.
/ 함기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