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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히스테리아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107

  • 웹출고시간2020.12.17 17:39:33
  • 최종수정2020.12.17 17:39:33
2000년대 이전의 여성시가 이성적 사유의 부정을 통해 남성 지배담론에 저항하는 방식을 취했다면 2000년대의 여성시는 유머와 웃음의 방식으로 남성 중심의 질서체제를 부정하고 나아가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한다. 주체가 사라지고 조작되는 가상현실 세계, 외설스런 시뮬레이션 시공간을 제시하여 21세기 첨단문명의 폐부를 그로테스크하게 드러낸다. 김이듬 또한 이런 흐름 속에서 사물화 된 육체, 불구화된 자아를 절망적으로 그려내는 시인이다. 사실과 허구의 혼종을 통해 불모의 세계를 불모의 육체로 그려내는데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씨앗을 수정하지 못하는 땅, 습관적 유산을 반복하는 비극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생산성을 상실한 육체는 분실물 보관소 또는 죽음이 봉인된 보관함 같은 사물들로 전락한다. 남녀 간의 사랑 또한 감정이 휘발된 기계적 행위로 그려지고 노골적 섹스 이미지와 비린 생리 혈, 강박적 자위행위가 등장하기도 한다.

김이듬 시의 섹슈얼리티는 어둠의 세계에서 불임과 유산을 반복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삶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육체, 시, 세계는 하나의 자의식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변에 해당된다. 기억 속의 아픈 사건이나 충격적 장면이 삽입될 때 이 자의식 삼각형은 더욱 강렬해지고 넓이는 커진다. 특히 가족 폭력, 사회 폭력에 관한 기억 등이 펼쳐질 때 상처와 불안의 이미지들이 유리파편처럼 시 전반에 어지럽게 산포되고 분노 수치는 높아진다. 때문에 어두운 사건과 기억이 현재로 호출되는 재생과정에서 고귀하고 신성한 남성적 우상들은 저열해지고 탈(脫)신성화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김이듬의 시는 현대사회의 남성적 지배신화를 휘발시키려는 비판적 우화에 가깝다.

히스테리아 김이듬(1969~ )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 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찢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잡해죽겠는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사이더잖아 아웃사이더가 아냐 넌 자면서도 중얼거리네 갑작스런 출혈인데 피 흐르는데 반복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큰 문이 달린 세계 이동하다 반복적으로 멈추는 바퀴 바뀌지 않는 노선 벗어나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대형 생리대가 필요해요 곯아떨어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일 놈을 한 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주목되는 건 기억이 재생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시간의 흐름과 효과다. 과거, 현재, 미래는 직선적 흐름을 타지 않고 엉킨 노끈처럼 뒤엉키고 서사 또한 시인의 감정과 자의식에 의해 복잡하게 변형된다. 그런데도 유독 인물들은 또렷하다. 그녀의 시에서 인물은 임상적으로 이상증세를 앓는 자들이 많다. 히스테릭한 환자이면서 의사고 시인 자신이다. 다중의 인격과 분열을 앓는 자들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세상을 향해 혐오와 분노의 시선을 던지면서 자학적 행위를 통해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소외된 자들이다. 그녀의 시가 분열증적 환상과 죽음의 파토스, 고독과 비애감을 거느리는 것은 이런 인물들의 내면성 때문이다.

그녀 시에 나타나는 내면심리 층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방어적 응축심리다. 타인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내 손으로 나의 몸, 나의 살을 만지고 싶어 하는 자기 방어적 충동인데, 유년의 충격적 사건이나 가족 폭력 경험이 이런 방어기제를 낳는 것일 수 있다. 이 방어심리가 그녀 시에서 자위하는 화자를 탄생시킨다. 이때의 자위는 자기 연민이면서 자기 위로 행위이므로 자위행위 자체보다 자위를 하는 숨은 배경이 중요하다. 행위 이면에 숨은 화자의 심리적 공포와 불안, 그 원인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격적 분출심리다. 육체 안에 쌓인 억압된 공격 본능과 성적 욕망, 말에 대한 발화 욕망, 음식에 대한 욕구와 거부 또한 이 공격심리와 연관된다. 이런 심리가 시에 노출될 때 화자는 매우 솔직하고 대담하게 인간과 세계의 치부들을 폭로한다. 유려한 수식의 문장으로 시를 치장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충격적 서사 공간과 사건을 매우 사실적으로 노출시킨다.

이처럼 김이듬의 시는 비극 세계로부터의 자기탈옥 흔적이자 상실의 내면고백이다. 실제로 그녀의 시 밑바닥에는 모성의 상실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연민의 감정이 자기를 버린 권력자에 대한 공격적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형적 불구의 자학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은 모성이 사라진 불모의 도시, 불모의 가정이기에 그녀에게 모성은 잔인한 과대망상일 수 있다. 이런 비애의 감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을 시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녀의 시에 혼돈의 사건, 자학적 행위, 피학적 이미지, 분열적 자아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불편과 혐오의 시선만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이듬은 다소 삐딱한 시의 걸음으로 기우뚱 비뚤어진 이 세계를 똑바로 걸어가는 시인이다. 그녀는 어설픈 거짓 비유로 세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 않으며 허위의 관념으로 세계와 가짜로 화해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지치지 않고 계속 자신의 길을 이어가길 나는 응원한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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