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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5.14 13:58:58
  • 최종수정2020.05.14 13:58:58
[충북일보] 옛 고갯길로 더 잘 알려진, 나는 새도 쉬어 넘어간다는 새재(鳥嶺)의 조령산 정상에 올랐다. 때 마침 불어오는 마파람이 온몸을 감싸며 반겨준다. 심호흡을 크게 반복하며 오월의 조령산 정기를 들이킨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후련하다. 이어서 사방을 천천히 조망하며 자연의 신비함을 감상한다. 시선을 북쪽으로 향하니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기암괴석의 신선암봉이 위용을 뽐내며 바로 눈앞에 서있다. 그 뒤로 주흘산과 마패봉,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월악산의 능선이 마치 한 폭의 병풍처럼 다가오고. 남쪽으론 백화산과 희양산, 속리산의 명산들이 어슴푸레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구름과 하늘과 맞닿은 능선의 모습이 천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든다.

아내도 "아 좋다!"하면서 손을 치켜들고 숨을 깊게 들이킨다. "그러네, 미세먼지도 없고 좋은 날씨네. 경치도 장관이고." 보일 듯 말 듯 한 속리산을 가리키며 아내의 감탄사에 화답했다. "날씨 말구, 당신하고 이렇게 등산 다니는 거. 한 20년만 더 다녔으면 좋겠다." "꿈도 야무지네. 20년은 욕심 아녀 혹 10년이라면 몰라두."

40대 후반, 간경변으로 투병을 했던 때의 일이 스쳐간다. 몸이 이상해서 동네병원을 찾았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간에 종양이 있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종양이 암으로 판명나면 고칠 수 있을까. 살면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아내는 어찌되나. 자식들이 홀로서기를 하려면 1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아니 대학졸업 할 때까지 5년만이라도 제발…. 종합병원에서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온갖 상상과 걱정으로 번민을 했었다.

다행히 악성종양이 아닌 혈관종으로 판명되어 암의 두려움에선 벗어났으나 황달과 함께 진행된 간경변으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병원생활은 많은 생각과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름 열심히 살면서이제 좀 여유가 생겼는데 병을 얻었다는 억울함에 눈물이 나왔다. 이게 다 내 운명이려니 체념도 했다. 혹,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한 죗값을 치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난 과거에 대한 회한이 밀려왔었다.

같은 병실의 환자가 갑자기 숨을 거두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왜 사람들은, 아니 나부터가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그리 욕심이 많을까 회의(懷疑)하고 반성했다. 천명대로 살려면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라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돈 욕심, 자식 욕심, 출세 욕심 모두 버리자고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 당시엔 건강만 되찾는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건강을 회복하여 이렇게 아내와 함께 등산을 다닌다는 게 꿈만 같다. 10년만 아니 5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빌 때를 생각하면 더없이 감사하고 과분할 뿐이다. 그 때에 비하면 분명 욕심인 것 같은데 남 것 빼앗아 오는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꿈이든 욕심이든 앞으로 20년을 더 등산하자고 아내와 손을 맞잡았다.

어린 시절 나는 요즘 아이들 같이 하고 싶은 꿈을 갖지 못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었으나 가정형편으로 겨우 실업계고등학교를 근근이 다녔고 꿈도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꿈이 있었다고 한다면 장남으로서 빨리 돈을 벌어 살림에 쪼들리는 아버지를 도와 집안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은퇴 후 시간이 많아지고 건강이 좋아지니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꿈, 투병을 하면서 접었던하고 싶은 일들이 마음 속에 꿈틀댄다. 황혼의 꿈이 일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본다. 우선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 내가 쓴 책이 서점에 진열되고 찾는 이가 있다면, 정말 보람 있는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10년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무엇보다 곱게 늙어가고 싶다.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고집과 아집으로 일그러진 노인이 아니라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의 지적이고 교양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와 함께 명산을 둘러보고 전국의 둘레길을 걷고 싶은 아내의 꿈도 버킷리스트에 포함시킬 것이다. 이 모든 바람은 꿈일까 욕심일까.

신성용

「푸른솔문학」 신인상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충북도청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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