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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마이크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20.12.03 16:11:20
  • 최종수정2020.12.03 18:09:30

마이크 - 송승환(1970∼ )

내가 세워지는 곳은 검은 극장 빈 무대

나는 기다린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말한 것이다 나는 기다린다 내 몸속 자석과 코일 사이 발생하는 말의 전압 불현 불꽃과 빛으로부터 태어나는 언어 그녀는 단어에 리듬을 부여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내 육체의 전선을 끊는다 그녀의 육성이 날것으로 내 육체를 관통한다 나는 모든 벽을 울리며 사라지는 공기의 파열을 듣는다 나는 말한 것이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기다린다

조명이 꺼진다
송승환은 기존의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해부하여 재조립하는 파괴공학 언어 디자이너다. 그의 시에는 응시자의 직관적 눈, 사물의 내부를 파괴하는 날카로운 눈동자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의 시는 짧다. 간결하고 정제된 형식을 취한다. 그러나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대체로 세 겹의 중첩된 시선이 나타난다. 첫째는 하나의 대상을 심부 깊숙한 곳까지 응시하는 미시적 관찰자의 시선이다. 이 시선을 통해 사물은 사물의 껍질을 벗고 사물성 자체를 드러내면서 해부된다. 둘째는 해부된 사물을 통해 세계를 재해석하는 해석자의 시선이다. 그는 사물이 놓여 있는 시공간과 언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해석한다. 셋째는 사물과 사물, 사물과 언어, 언어와 세계의 통념적 관계를 부수고 해체하여 새로운 관계망을 그리려는 지도 제작자의 시선이다. 이 거시적 시선에 의해 그의 언어는 기존의 언어미학과 세계관에 도전하면서 그만의 새로운 사물지도를 그려나간다. 송승환의 시 텍스트는 이러한 삼중의 욕망의 시선들이 정교하게 교차된 언어 직조물이자 사물지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사물과 언어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특히 사물에 대한 감각적 통찰을 행할 때 사물에 대한 논리적 몽유, 사물들이 꾸는 꿈 혹은 사물들에 내재된 사물성 자체를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을 새로운 사물로 재탄생시킨다. 그에게 언어는 사물의 외피에 들러붙은 의미와 편견의 때를 벗겨 내는 세제 같은 것으로 사물을 세탁해 사물을 본래 자리로 되돌리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때로는 언어 자체를 세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는데 이때 시의 언어는 메타언어로 기능하면서 언어의 외피를 하나씩 벗기며 언어라는 사물 자체와 휘발되는 의미의 바닥에 접근해 들어간다. 그는 주로 두 가지 사물의 내적 공통점을 찾아내 그것을 이질적 언어로 결합하는 원거리 방식의 미학적 입장을 취한다. 대상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가 인간에게 주어지는 방식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는 다분히 현상학적이다.

오늘 소개하는 시 「마이크」는 마이크라는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마이크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 대해 정교하게 해석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편이 아닌 사물의 편에서 사물의 시선과 말로 언어를 사유하고 인간을 사유하는 전도된 시선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사물 화자인 마이크를 내세워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발언한다. 마이크는 지금 검은 극장 텅 빈 무대의 어둠 속에서 혼자 놓여 있다. 이 고립과 고독은 마이크가 처한 존재론적 상황이고, 이 침묵의 상황 속에서 시간이 소리 없이 흐른다. 사물이 침묵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존재 조건과 시간에 대해 침묵으로 발언하고 있기에,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시인은 말을 증폭시키는 매개물인 마이크를 통해 말의 탄생과 소멸, 그 과정을 주목하고 침묵에 대해 사유한다. 잠시 형체를 드러냈다 사라지는 말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시인은 왜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언어화하는가?

사물에 주어진 폭압적 이름에 압도당하지 않고 사물로 대표되는 침묵의 세계에서 사물을 건져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유를 전제하고 이 시를 보면 마이크는 시인 자신이 되고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점은 마이크의 실체가 아니라 마이크가 기다리는 대상임이 드러난다. 대상은 표피적으로는 마이크 자신의 고독한 상황을 끝내버릴 어떤 것, 즉 그녀 혹은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가 진짜로 기다리는 것은, 아니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녀도 그녀의 말도 아닌 말의 죽음, 사물의 죽음, 그 소멸 이후의 침묵이다. 조명이 꺼진 텅 빈 검은 극장이라는 부조리한 세계, 그 세계 속에 드리워질 말과 사물의 죽음, 그 죽음 이후의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다. 이 시는 침묵 속에서 침묵의 상태로 놓여 있는 사물이 사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향해 무수한 말을 침묵의 형태로 전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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