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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향기 - 소낙비 내리던 날

  • 웹출고시간2020.08.20 17:08:25
  • 최종수정2020.08.20 17:08:25
오랜만에 주말아침 늦잠을 자려 했건만, 베란다에서 들리는 둔탁한 소리에 일어났다.

아내가 부산하게 움직이다, 나를 보자마자 날씨가 덥기 전에 얼른 내수 밭에 좀 갔다 오자고 한다. 아내는 젊어서부터 텃밭 채소 가꾸기를 취미로 즐겨왔다.

반면 나는 농사하고는 거리가 멀다. 집안의 화초도 가꿀 줄 모르고 관심조차 없으니, 아내는 나보고 화초도 싫어하는 무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아내는 본인이 좋아하기에 취미농사를 잘 즐길 줄 안다. 노후생활 최고의 건강 지킴이라며 자화자찬이다. 비라도 올라치면 새벽에도 밭을 먼저 다녀온다. 귀찮고 힘들 텐데도 좋단다. 자신은 농작물과 대화를 한다며, 채소가 자라는 모습이 그렇게나 예쁘고도 대견스럽단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도로 주변의 밭을 임대하여 출퇴근 시 오며가며 채소를 심고 가꾸어 왔다.

나는 억지로 갈려니 짜증과 불만이다. 더구나 아파트 1층 현관 옆 화단에 숨겨놓은 낙엽 썩은 퇴비를 차에 실으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인상을 쓰면서도 화를 참으며 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얼른 일 마치기만을 기다리면서 밭 주변을 서성였다.

금년은 가물고 이상고온 탓인지, 대파와 옥수수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고추도 시원찮고 상추는 잎이 어리다. 감자를 심은 한 고랑은 전혀 싹을 틔우지도 못했다. 오이는 고추 같고 다행히 열무하고 땅콩만은 그런대로 자란 듯 보였다.

그동안 무관심 했고 도와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나는 열무를 뽑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투덜댔다. 아내는 내 투정을 알아들었다는 듯, 가뜩이나 농사도 잘 안되어 속이 상하고 화가 났는지, 대뜸 시내버스타고 갈 테니 먼저 가라며 호미에다 화풀이다.

깜짝 놀라 엉거주춤 서성이는 내가 멋쩍다.

지나가는 동네 아주머니가 올해는 날씨가 가물어서 농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했고, 감자는 너무 늦게 그것도 얕게 심어서 말라 죽은 것 같다며 친절히 일러주신다. 아내는 자기가 자주 오지 못한 자기 탓이라며, 채소들에게 미안해하는 눈치이다.

비가 올 것 같으니 얼른 가자며 몇 번 재촉을 하다가 나는 열무와 상추만을 갖고 먼저 간다고 했다. 여전히 차안은 퇴비냄새가 짙다. 웬 걸 이를 어쩌랴, 수름재쯤 오는데 갑자기 굵은 소낙비다. 급히 차를 되돌려 다시 밭으로 갔다. 아내는 밭 옆집 처마아래 찢어진 비닐을 우비삼아 덮어쓰고 서 있다. 나를 보고는 반가울진대도 무표정이다. 비 맞는 채소들만 쳐다본다. 고집인지 화가 안 풀린 건지….

서있는 모습이 우습기는 하지만, 마음을 풀도록 달래주자.

이 소낙비가 농작물에게는 보약이라고 하면서 비도 오고 배가 고프니 얼른 마무리를 하자고 했다.

밭고랑 사이로 빗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비를 맞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아내의 흡족한 표정이 농작물보다도 더 생기 있고 밝다.

소낙비 탓에 일찍 돌아오는데 진흙 묻은 장화로 인해 차 바닥이 흙투성이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아내의 자세가 엉거주춤 매우 불편해 보인다. 차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앉으라 하니, 그제야 두 다리를 편다. 내가 오늘 당신한테 많이 배웠다고 먼저 말을 건네자, 아내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농작물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면서 때가 되면 와주기를 기다린단다. 그래서 농부는 항상 부지런해야 하고 선하고 착해야 한단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흙과 자연을 더 사랑해보라고 내게 권한다. 왠지 오늘은 아내가 나보다도 더 속 깊고,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내가 농사의 취미로 건강유지는 물론 즐겁게 생활하고 있으니 말이다. 갈수록 나에 대한 잔소리도 줄어든다. 이 또한 농작물 덕이다. 늦었지만 이제 나도 아내를 도와 농사를 좀 배워 보아야겠다.

류근홍

·청주대학교 졸업. 한양대 행정대학원수료
·충북대학교 행정대학원. 법무대학원 수료
·청주대학교 대학원 졸업(법학박사)
·현 청주교통(주) 대표이사, 충청북도교통연수원 이사
·효동문학상 수상. 푸른솔문학 수필 등단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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