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는 여성의 몸, 특히 자궁을 신전(神殿)으로 승화시켜 생명의 향연을 관능적으로 펼친다. 그녀에게 자궁은 생명의 발아 장소이면서 관능의 시원(始原)이자 수원(水源)이다. 그녀의 시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자궁 속의 물에 대한 무의식적 지향성 때문이다. 주목되는 점은 어머니가 시인의 사적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어머니들, 삶의 고난과 애환을 짊어진 여성들, 나아가 우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시인은 여성의 몸에 중심을 두고 불교의 윤회사상, 자연과 우주의 생멸원리, 시간의 순환론으로 사유를 확장해나가는 에코페미니즘의 시세계를 펼친다. 이런 점에서 김선우의 시는 모성적 부드러움과 생명의 잉태를 주로 다루었던 한국 여성시의 영역을 일정 부분 확장시키며,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생리와 배변 등 그 동안 우리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소재들을 재발견한다.
에코페미니즘의 세계에서는 몸의 감각과 영성(靈性)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정신과 육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몸 자체를 사유하는 주체로 승격시킨다. 김선우의 시에서도 여성의 몸은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나누어진 분열과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 합일과 조화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남성적 이성중심주의, 수직적 논리중심주의, 근대적 데카르트 사고와 원근법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 즉 시인에게 여성의 몸은 이성적 로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육체가 아니라 자연의 계절순환 원리를 생태적으로 재현하는 실체적 대상, 즉 자연이고 우주다. 따라서 시인에게 여성적 글쓰기는 단순히 시를 쓰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여성의 몸에 대한 전면적 확대와 재편 행위고 이성적 경계를 지우고 뛰어넘어 만물의 열락, 주이상스(jouissance)의 세계로 진입하는 행위다.
완경(完經) - 김선우(金宣佑, 1970~ )
수련 열리다
닫히다
열리다
닫히다
닷새를 진분홍 꽃잎 열고 닫은 후
초록 연잎 위에 아주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선정에 든 와불 같다
수련의 하루를 당신의 십년이라고 할까
엄마는 쉰 살부터 더는 꽃이 비치지 않았다 했다
피고 지던 팽팽한
적의(赤衣)의 화두마저 걷어버린
당신의 중심에 고인 허공
나는 꽃을 거둔 수련에게 속삭인다
폐경이라니, 엄마,
완경이야, 완경!
오늘 소개하는 시 「완경(完經)」은 김선우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시에서 수련과 엄마는 동일시된다. 닷새에 걸쳐 꽃잎을 열고 닫는 수련은 엄마의 몸, 몸의 시간과 직접적으로 연계된다. 수련의 하루는 엄마의 십 년에 해당하므로 닷새라는 짧은 시간은 오십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과 동일하다. 이 오십 년은 그 동안 엄마의 몸에서 수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생리와 아픔, 임신과 유산, 출산과 수유 등 고통과 슬픔과 희열을 대리하는 장엄하고 숭고한 시간이다. 닷새의 시간이 지나고 진분홍 꽃잎을 초록 연잎 위에 떨군 수련을 시인은 선정에 든 와불 같다고 말한다. 선정(禪定)이란 한마음으로 사물을 생각하여 마음이 하나의 경지에 정지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를 말하니, 시인에게 수련은 몸과 마음을 닦아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와불(臥佛)과 다를 바 없다. 엄마 또한 쉰 살부터 생리가 그치고 급격한 몸의 변화를 거쳤으니 적의의 화두(話頭)마저 걷어버리고 몸의 중심에 허공을 들인 수련과 동일한 존재다. 그래서 시인은 꽃을 거둔 수련(엄마)에게 온 사랑을 담아 속삭인다. 폐경(閉經)이 아니라 완경(完經)이라고! 이 시의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역치된 시선을 통해 발견해낸 숭고미에 있다. 김선우의 시가 종종 주이상스의 세계로 진입하는 건 이러한 영성적 시선과 사랑의 주체의식 때문이다. 다시 읽어도 아름답고 아픈 시다.
/ 함기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