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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1.11 14:30:10
  • 최종수정2024.01.11 14:30:10
밤새 바람이 불다가 새벽이 되니 고요해졌다. 이른 새벽 아내 대신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찬 기류에 의해 이동된 눈구름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니 지나온 날이 떠오른다.

23년 전 아내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를 분양받아 문구점을 열었다.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모습들을 보면 욕심도 미움도 다 떨어 버리고 정직하게 살아야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아내는 어린이처럼 좋아했었다. 코흘리개 돈으로 많은 돈을 모을 수는 없지만 일자리가 있고 착한 어린이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고 보람이란다.

오늘같이 눈이 오는 엄동설한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처리 되면서 나는 갈 곳을 잃었다. 아침이면 허전한 마음에 축 늘어진 어깨를 추스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지만 여전히 막막할 뿐이었다. IMF 여파로 건설 시장은 얼어붙어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때여서 사업을 하기로 했다. 워낙 불경기여서 어려움은 계속됐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사업은 그럭저럭 잘 됐다. 하지만 공사대금으로 받은 수억 원의 어음이 부도가 나면서 빚을 지게 됐다. 하는 수 없이 살고 있던 시내 아파트를 팔고 내수로 이사를 오게 되고, 아내는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이른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연지가 이십여 년이 됐다.

시골이고 평수가 작은 아파트다 보니 홀로 외롭게 사시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 않거나 물이 내려가지 않으면 가게로 연락이 온다. 아내는 긴급으로 전화 요청을 하고, 나는 최대한 빨리 와서 해빙기로 언 수도를 녹여주면 금세 물이 나온다. "멀리 사는 아들딸 다 필요 없네. 사장님이 최고여 정말 고마워요" 하신다.

우리 가게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을 시내에서 구해달라고 부탁도 한다. 어르신들의 부탁이 있는 집에 들어서면 집안이 썰렁하다. 한겨울의 냉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난방은 전기장판에 의지하나 춥고, 외롭고, 쓸쓸하게 노년을 살아가고 계신다.

기술은 재능기부를 하지만 부득이 자재값은 받는데 가끔은 받지 않고 돌아올 때도 있다. 숨겨 두었던 꼬깃꼬깃한 돈을 한참을 바라보면 쓸쓸함이 묻어 있는 그 돈을 도저히 받을 수가 없어 "어르신 물 한 사발만 주세요. 오늘 일은 이 물 한 그릇으로 대신할게요"라고 하면 어르신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고맙다며 복 많이 받을 거라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나도 어려웠던 때가 있었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야 다음에 돈을 벌면 되지만 어르신은 목숨과도 같은 돈일 것이다. 돈보다도 더 값진 하루였다. 그 돈을 받았더라면 몇 날 며칠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골에서 공사를 하다 보면 저렴하게 잘해줘 고맙고 미안하다며 밭에서 풋고추며 깻잎 등을 따서 주시고 된장, 고추장까지 싸서 주신다. 이럴 때면 대학 다닐 적에 자취하던 생각이 난다. 어머님이 이것저것 빠짐없이 한 가방을 싸 주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높고 깊은 사랑을 주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면 가슴이 저리며 그리워진다. 부모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자 애쓰고 있으나, 살아 계셨을 때 은혜에 보답을 못 해드려 너무나 죄송하다.

아내는 손에 든 것을 보면서"오늘도 좋은 일 하셨구려"하며 잘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넘긴다. 한두 번이 아니니 으레 그러려니 한다.

어르신들은 온종일 TV만 보다가 지루하면 딸이 사는 집을 찾아온 것처럼 우리 가게를 찾아와 차 한잔을 마시며 담소하고 외로움을 달래다가 가시곤 한다. 그 뒷모습을 보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며, 교대 시간이 되면 우울했던 마음을 전해준다.

작지만 사랑방 같은 가게가 있어 행복하다. 몇 해 전부터 아내는 여름이면 채마밭에서 상추나 깻잎을 홀몸노인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나눠 준다. 동짓달이 되면 텃밭에서 가꾼 배추로 넉넉하게 김장김치를 담가 역시 나눠주곤 한다. 외롭게 사시는 어르신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서로가 마음의 의지가 되는 삶이다. 자식들이 드시라고 사준, 과자나 과일이 생기면 손에 들고 꼭, 문구점을 찾아오신다.

내리던 눈은 어느덧 쌓였어도 햇볕은 따사롭다. 이 한겨울, 하루빨리 화사한 봄이 와서 가난한 이웃들이 추위에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서로 돕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으면…….

가세현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팔창작 수강

-푸른솔문학 신인상·푸른솔 문학회 회원

-카페문학상·자랑스런 문인상 수상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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