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그는 도시 공간, 인공 언어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자연에 몸을 섞어 조응한다. 그의 시에 인간의 감각기관 중 눈과 관련된 빛의 일렁임, 귀와 관련된 소리의 미세한 진동, 고요 속의 격동 등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적극적 포용 때문이다. 크게 보면 그의 시는 시인과 사물들 사이의 감각적 조응이고 아름다운 교향(交響)이다. 사물과 사물에 대한 시인의 마음과 몸짓이 비빔밥처럼 잘 어우러져 섞인다. 큰 것과 작은 것, 복잡한 것과 단순한 것, 엉킨 마음과 텅 빈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움직인다. 그렇게 그는 고통과 상처, 슬픔과 환멸에 대한 이미지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삶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때론 광기와 열정을 통해 삶과 비판적으로 마주하기도 하고, 서(書) 화(畵)를 넘나드는 고전적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시적 산수화를 그리기도 한다.
오늘 소개하는 「돌확 속의 생」은 세 번째 시집 『수수밭 전별기』(2007)에 수록된 단아한 작품이다. 작고 아담한 절의 장독대에 놓인 돌확, 팔 할 쯤 빗물이 고인 그 돌확에 하늘과 구름이 비친다. 그런데 이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이 평범치 않다. 빗물이 고요의 힘으로 모셔져 있고 보기 때문이다. 그 빗물이 하늘과 구름을 모셔와 제 가슴에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돌확의 물에 말벌이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익사 직전의 위급한 상황에서 시인은 물에 비친 구름이 섬이었으면 하고 상상한다. 왜 그럴까· 돌확의 작은 물이 말벌에게는 망망대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바다에 빠져 익사 직전일 때 바로 곁에 섬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시인은 지금 죽음 직전에 놓인 말벌을 마치 자기 자신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돌확 속의 생 - 유종인(1968∼ )
돌확 하나 모셔져 있다
지난 가을비에
돌확엔 팔 할이 빗물인데
그 빗물이 고요의 힘으로 모셔져 있다
고요한 빗물이 말간 하늘과 햇솜 같은 구름을
제 가슴에 모셔와 담고 있는데
그 돌확에 누운 구름의 물 위에
말벌 한 마리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익사 직전의 말벌이 모셔져 있다
물속의 구름이, 섬이 되었으면 싶었다
마른 떡갈나무 잎새 하나 모셔와
구름의 물에 빠진 말벌을 돌확 밖으로 모신다
돌확을 뒤엎을 수도 있었는데
돌확 속의 물은
참 오래된 수도(修道)로 고요했을 뿐인데
말벌 하나 건져진 뒤
죽음의 수위(水位)가 저 돌확 속에 모셔진 줄 몰랐다
뭐든지 모셔지는 절간 추녀 밑에서
목마름도 모르고 풍경 소리 허공에 모셔 내가는
쇠물고기 그림자를
돌확의 빗물에 한번 모셔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