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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18 16:05:56
  • 최종수정2024.04.18 16:05:56
햇살이 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봄날이다. 봄 햇살만큼이나 상큼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기어 다니는 쌍둥이 손자가 어느새 성장해 눈앞에서 달려오는 듯이 반가움이 앞선다. "뛰지 말고, 도서관이니 조용히 하세요." 인솔 선생님의 끝없는 당부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때뿐이다.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책을 고르기 시작한다. 서로서로 책을 권장하기도 하고, 인기 있는 책은 서로 먼저 차지하려 경쟁하는 모습이 귀엽다. 아이들은 성숙도에 따라 선호하는 책이 다르다. 고학년은 시집이나 동화책을 선호하고, 저학년은 만화책을 제일 좋아한다. 모두가 만화책이 진열된 책장 앞으로 몰려간다. 아이들은 제비새끼가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향해 노란 입을 벌리고 짹짹거리듯, 시선은 모두가 만화책에 향해있다. 만화책을 진열해 놓은 책장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이 살며시 떠오른다.

어린이들이 만화책을 좋아하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는 교과서 이외의 책은 볼 수 없었다. 중학교를 청주로 진학한 후에 만화방이라는 곳이 만화책을 빌려주기도 하고, 볼 수도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틈만 나면 만화방으로 갔다. 부모님들은 만화방에 가는 것을 싫어하셨다. 불량 학생들이나 가는 곳으로 인식하셨던 것 같다.

남주동 깡시장은 무심천에 두 개의 둑방 사이에 있었다. 안쪽 둑방 너머에는 시장골목이 있었고, 그곳에는 우리가 제일 많이 애용하던 시장만화방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시장만화방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앞쪽에서 시끄러워졌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 생각하는데 "너도 빨리 일어나!"하며 내 눈앞의 만화책을 낚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친구 엄마였다. 그 친구랑 나는 만화책을 빼앗기고 집에 끌려와 함께 꾸중을 들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만화방을 어른들 모르게 들락거렸다. 서로 다른 만화책을 빌려다 바꿔보기도 하며 만화책에 흠뻑 빠졌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만화책이 나름대로 상상력을 키워준다든지,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준다든지 긍정적인 면도 많은 것 같은데 어른들은 싫어했다. 어른들은 우리가 공부는 안 하고 만화책만 본다고 싫어하셨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에는 책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겼던 생각도 난다.

학기 초에는 언제나 분주했다. 새 책을 받아오자마자 책을 포장할만한 큰 종이를 구하기 바빴다. 밀가루 포대나, 사용하다 남은 벽지 등, 그중에 커다란 달력이 최고였다. 책이 구겨지고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그렇게 해야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줄로 알았다. 4학년이 시작되는 학년 초였나 보다. 새 책을 받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떼어 책을 정성껏 포장했다. 책을 보고 공부를 할 생각보다는 새 책을 유지하면 공부 잘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열심히 책을 싸서 때 묻지 않도록 깨끗이 보존했다. 책을 포장할 생각만 했지 달력이 어른들에겐 중요하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엄마께 사용하지도 않은 달력을 버렸다고 꾸중을 들었다.

책을 싸다보니 책 뒷면 표지에 "미래의 우리나라가 여기에 있다"라는 글귀를 보고 궁금해 책장을 넘기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책을 넘겨봐도 우리나라 미래의 그림이 보이질 않았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글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린이들이 책장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환하게 밝아 오는 듯하다.

책을 고르는 모습을 한동안 흐뭇하게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상상해본다. 금세 반짝이는 세상이 온 누리에 펼쳐지는 듯하다.

삼사십년 후에는 저 빛나는 새싹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으리라. 그때쯤 이 사회는 어떤 변화된 모습일까.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선진강국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해맑은 얼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쁨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이운우 프로필

푸른솔문학 신인상.
카페문학상. 정은문학상 수상
저서: 끈끈이 대나무풀꽃.
공저: 목련이 필때면. 노을빛 아리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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