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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스프링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112

  • 웹출고시간2021.05.06 10:49:16
  • 최종수정2021.05.06 10:49:16
오은의 시는 발랄하고 경쾌하다. 권위적인 치장을 하지 않고 고상한 내숭도 떨지 않으며 겉치레 폼도 잡지 않는다. 장난기 많은 영리한 아이가 장난감 퍼즐을 갖고 노는 것처럼 말을 가지고 까불까불 수다스럽게 장난을 친다.

말로 말 비틀기, 연상으로 말 이어가기, 속담이나 관용구 삽입하기. 끝말잇기, 말과 말 충돌시키기 등 운용 측면에서 보면 오은의 시는 쾌락의 욕망을 토대로 펼쳐지는 말놀이 공연, 말놀이 애드리브에 가깝다. 말 자체에 내재된 물성과 소리, 말에 대한 즉흥적 감각과 반응에 따라 시가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2009)은 다양한 말놀이 유희가 펼쳐지는 무대다. 음악, 영화, 철학, 수학, 과학 등 다양한 장르가 꽈배기처럼 뒤섞이면서 현대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희롱하고 욕망에 굶주린 자본문명 속의 현대인들을 식충들로 묘사한다.

말이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를 의심하는 이런 시선은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2013)에서도 이어진다. 블랙유머가 깃든 장난스런 말들로 문명사회의 모순과 위악을 비판한다.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2016)에서는 말놀이의 위트와 농담은 다소 옅어지고 부조리 의식이 짙어진다. 현대도시를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는 생존 사냥터로 보면서 현대사회의 절대적 수직구조, 그것의 폐허를 주목한다.

스프링 오은(1982~ )

더블린은 지금

텀블링하기 좋은 날씨

방과 후의 아이들이

봄처럼 튀어올랐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씨들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주근깨를 볼에 심은 아이들이

발끝을 모으자

해를 향해

자신들의 경쾌한 근원을 향해

스프링, 스프링

튀어오를 때

스카이가 다른 이유를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님을

열심히 일한 자들이 왜 떠나는가를*

방과 후 학습에서/비로소 이해할 때

아이들은

샘물 위에 피어난

마블링처럼 웃으며

고블린보다 신나게

더블린 한복판에서

텀블링, 텀블링

이 모든 도약이 꽈배기 한 입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수학자 존 내시(John Nash)는 소련 간첩들이 '이것'을 통해 내통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늘 소개하는 '스프링'은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맨 앞에 수록된 시다. 음성연상을 통해 더블린, 텀블링, 마블링, 고블린 등으로 옮겨가면서 아이들과 해바라기가 호환되는데, 아이들의 튀어 오름 행위가 존재의 근원, 시간의 기원, 빛의 기원을 향한 운동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불가능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가능한 세계로의 가벼운 도약이 꽈배기 한 입에서 시작되었다는 상상력도 재미있다. 또한 가능 세계로의 이행이 방과 후 학습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시각은 정규시간의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을 촉발한다. 그럼 시인은 왜 말들을 장난감처럼 운용할까? 부조리한 세계를 모반하는 힘은 말의 쇄신에서 비롯되고 말의 기능과 역할, 말의 사용 방법과 배치 방식, 의미의 산출 프로세스 등이 바뀌면 기존의 무겁고 심각한 세계 해석들과 다르게 현실을 재인식하고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유아적 말장난을 통해 정반대편의 세계, 규격화되고 질서정연한 어른들의 세계를 희화화하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곧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 자기 존재의 근원에 닿으려는 시인의 사색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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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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