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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 향연 - 재크의콩나무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93

  • 웹출고시간2020.03.19 16:54:14
  • 최종수정2020.03.19 16:54:14
이원의 시는 21세기 디지털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세계에서 전자사막을 떠도는 우리 존재의 좌표를 되묻는다. 스마트폰, 컴퓨터, 전자메일, 지하철, 엘리베이터, 주유소, 냉장고, 콘센트 등은 일상 속에서 우리의 몸을 지배하는 대표적 인공물들이다. 도시의 반복되는 기계적 삶을 재현하는 사물들이면서 시인의 주관적 해석과 사유에 의해 호출된 이미지 기호들이다. 시인 자신을 포함하여 현대인 또한 그런 왜곡된 기호,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분열의 기호로 전락한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서정의 감정들을 건조하게 배제시키고 그 자리에 첨단과학이 낳은 무감정 기계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배치한다. 현대인의 황폐화된 육체와 영혼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함이다. 달은 몸속에 웹 브라우저를 내장한 채 자기 몸을 파먹는 존재, 신은 그런 인공의 기계 몸 속에서 배양되는 존재로 설정된다. 한 마디로 시인에게 현대는 욕망을 통해 죽음을 팔고 사는 백화점 매장(賣場)이자 자기 존재의 매장(埋葬)지고, 현대인은 아름다운 낭만성이 제거된 사이보그 기계다. 이 사이보그를 통해 시인은, 나는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형이상학의 물음을 던진다.

시인이 전자초원을 표류하는 사이버(Cyber) 족들의 현실과 삶을 탐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이버 바다의 대표적 항구라 할 수 있는 야후(Yahoo), 야후의 강물 위에 비치는 천 개의 달 이미지는 무수히 복제된 우리의 초상이며 시인의 실존적 질문이 담긴 천개의 의문부호인 셈이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정교하게 얽힌 전자네트워크 사막에서 인간의 존재는 실체가 없는 이미지, 증발되어 사라지는 허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기에 전자 사이버 세계는 단순히 첨단문명이 낳은 편리한 인공의 가상공간을 넘어서서 우리의 실생활을 지배하고 우리의 생각과 판단까지도 지배하고 조종하는 실재공간인 것이다.

재크의 콩나무 -이원(1968∼ )

지하1층 식품 매장 재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1층 신변 잡화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2층 숙녀 의류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3층 신사 의류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4층 아동 의류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잇습니다)

5층 가전제품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6층 주방용품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7층 침구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8층 스카이라운지 매장을 지나 재크는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뿌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 속에 자라고 있는 뿌리는

하늘 아래 모든 埋葬으로 통합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시인은 자신의 존재 위상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유목하는 존재, 디지털 기계의 숲에 함몰된 존재임을 승인한 사실적 발언이다. 이원의 시에서 관찰과 묘사가 강조되는 것은 이처럼 현실세계를 반성적으로 바라보고 사유하는 눈과 치열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난 전자문명의 실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문명 속에 놓인 인간 군상들의 실존이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이원의 시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자 욕망이란 무엇이고 그 범주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면탐색의 결과다. 이런 통찰의 사유와 진단 때문에 그녀의 시는 철학의 뿌리, 철학적 서정과 다시 만난다.

이원 시인에게 세계는 불확정성 공간, 유동성 장소다. 만물의 위치는 고정될 수 없으며 의미 자체도 불확실한 곳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섞임의 상태를 지향한다. 그래서 기계의 몸과 인간의 몸이 섞이고, 기계의 생각과 인간의 감정이 섞인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섞이고, 낮과 밤이 섞인다.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흑백(黑白)이 뒤섞여 혼몽의 낯선 국경지대를 낳는다. 사물도 풍경도 사유도 가치도 모두 끊임없이 변하고 세계는 이런 변화를 위한 사건과 움직임의 연속 시간공이다. 그런 세계 속에서 시인은 지속적으로 자기 존재를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기 때문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그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시인은 현실을 더욱 구부리며 변화의 속도를 높인다. 그런 끝없는 변화와 질주 욕망을 담고 있는 대표적 사물이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는 디지털 세계의 끝없는 변속성과 시인의 욕망을 대리하는 운동성 오브제이자 사물 기표다.

이런 시간관, 세계관을 토대로 시인은 삶과 죽음의 접경지대에서 세계의 비밀들을 발견한다. 지상의 시간과 휘발된 시간들과 마주하기 위해 시인은 다양한 눈으로 세계를 응시하고 생각하고 감각한다. 어떤 때는 사선의 빛이나 빗줄기처럼 기울어진 각도에서 현상을 응시하고, 어떤 때는 사물들의 배후에서 세계의 뒷모습을 사유하고, 어떤 때는 해수면이나 허공 깊은 곳에 눈길을 둔 채 인간의 감정을 집요하게 감각한다. 시인에게 지상의 시간에 빛이 존재하는 것은 그 현상 자체로 고독한 행위인 것, 사물과 인간의 삶에 내재된 고독은 제거되어야할 어둠이 아니라 보존되어야할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부여되는 모든 상처와 결핍은 역설적으로 존재의 출발지가 되고, 세계는 존재의 아름다운 유배지가 된다. 인간과 사물, 시간과 공간, 시인의 사랑은 그렇게 탄생한다.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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